오늘의 문장

dante 2020. 10. 21. 12:03

거의 매일 밥벌이 현장에서 과로로,혹은 과로로 인한 절망으로 야기된 죽음이

보도되는 것을 보며, 경제학자이며 역사학자이고 인류학자이며 철학자인

칼 폴라니(Karl Polanyi)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 1886년에 태어나 1964년 캐나다에서 숨진 폴라니가 

1944년에 세계에 선물한 죽비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을

소환하며,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단순히 시장에서의 상품이라는 허울을 씌워 인간의 모든 사회적 문화적 욕구를

처참하게 부정해버리는 시장 자본주의의 더욱 포괄적인

인간 파괴"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겠지요.

 

(https://www.ecommons.or.kr/series/Review/post/27 인용)

 

오늘 경향신문에도 이중근 논설실장이 폴라니를 소환한 글이 실렸습니다.

이 실장에게 감사하며 옮겨둡니다.

 

[이중근 칼럼]100년 전 칼 폴라니의 월급 사용법

이중근 논설실장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1909~2005)의 자서전에 그가 경제사회학자 칼 폴라니(1886~1964)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드러커가 김나지움을 막 졸업한 1927년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당시 유럽의 명성 있는 경제잡지 ‘오스트리아 경제’에 기고한 것을 계기로 편집진이 청년 드러커를 신년 특집호 제작회의에 초대했는데, 부편집장이 폴라니였다. 드러커가 회의 후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고 하자 폴라니는 그를 집으로 초대한다. 폴라니의 집은 빈 시내에서 멀었다. 빈민가 종점으로 가는 전차를 타고, 그 종점에서 다시 전차를 갈아탄 뒤 공장과 창고가 늘어선 지대를 지나 또 다른 종점에서 내리고 다시 20분간을 더 걸어가서야 당도했다. 쓰러질 것 같은 판잣집들과 쓰레기 더미에 둘러싸인 허름한 5층 집이었다. 껍질을 대충 벗긴 설익은 감자가 크리스마스 만찬의 전부였다. 하지만 드러커 ‘생애 최악의 식사’도 그를 놀라게 하기엔 일렀다. 폴라니와 부인, 장모 그리고 외동딸 등 네 가족이 다음달 생활비를 어떻게 벌 것인지를 놓고 벌인 논쟁에 그는 귀를 의심했다. 그날 낮 폴라니가 월급으로 거액의 수표를 받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참다 못해 드러커가 “박사님 월급으로 생활비는 충분하지 않나요?”라며 끼어들었다.

이중근 논설실장

순간 네 사람 모두 말을 멈추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러곤 합창하듯 동시에 말했다. “아주 훌륭한 생각이로군요. 월급을 자신을 위해 쓰다니! 우리는 그런 소린 생전 처음 들어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요.” 그러자 폴라니의 부인 일로나가 말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논리적인 사람들이죠. 빈은 헝가리 난민들로 넘쳐나고 있어요.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지만 칼은 돈을 벌 수 있어요. 그러니 칼의 월급은 다른 헝가리 사람들에게 주고, 우리가 나가서 필요한 돈을 벌어오는 것이 논리적인 일이죠.”(피터 드러커 자서전 인용)

이 대목에서 드러커는 감동이나 충격, 존경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18세 청년 드러커가 폴라니와 가족을 향해 느꼈을 감정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훗날 20세기의 지성으로 불린 드러커의 삶에 이 만남이 끼쳤을 영향을 유추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 배운 사람들이 편법적으로 사익을 챙기다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존경받았던 전직 대통령의 아들은 국회의원이 되면서 재산을 숨기다 들키자 편법으로 증여했다. 야당 국회의원은 국회 관련 상임위에서 터줏대감으로 활동하며 자기 친족회사에 건설공사가 가도록 힘을 썼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거주하지도 않을 세종시에서 특별분양을 받아 거액을 챙긴 공직자들도 있다. 앞에서는 정의와 도덕을 말하면서 뒤론 차곡차곡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 그러고도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되지 않았느냐고 항변한다. 지식을 자신들의 비위를 변명하고 가리는 데 활용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가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100년 전 폴라니가 주목한 불평등 구조와 자본주의의 폐해는 여전하다. 가진 사람들의 돈과 권력 향유는 오히려 더욱 교묘해지고, 그 틈에서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고 있다. 정의와 공정에 목마른 젊은이들의 불만은 분출할 출구만 찾고 있다. 시대가 변해도 불평등을 해소하는 접근은 다를 수 없다. 제도를 고안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솔선수범이 그것이다. 지금 우리 부동산 정책이 딱 그렇다. 투기 공직자들이 기획하고 법을 통과시킨 위선적인 정책이 눈 밝은 시민들에게 통할 리가 없다. 그동안 수차례 내놓은 정책에 ‘영끌’과 ‘빚투’에 몰린 젊은이들이 반응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시대의 어느 누구도 폴라니와 그의 가족처럼 사회 변혁에 온전히 삶을 바칠 수는 없다. 폴라니처럼 허름한 집에 살면서 월급까지 통째로 내놓는다면 가식이라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작금 시민들이 공직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폴라니와 같은 특별한 희생이 아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에 응답하라는 것뿐이다. 여기서 지난 7년 동안 국회에서 썩고 있는 이해충돌방지법을 주목한다. 속칭 김영란법을 통과시킬 때 국회의원들만 대상에서 쏙 빠져나와 누리던 그 특권을 이제 폐지할 때가 되었다. 여야 모두 약속한 대로 이 법을 정기국회에서 꼭 통과시켜야 한다. 희생하라는 게 아니라 그동안 누려온 것을 내려놓아달라는 간곡한 요청이다. 폴라니를 100분의 1이라도 따라 한다면 이번엔 가능하지 않을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210300045&code=990100#csidxbe81a2e39a713a18746f9aca767f018 

아, 감동입니다
우리 사회를 유지 시키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의와 공정인데 오직 경제로만 그것도 소수에게 집중되는 천민경제로만 달리고 있으니 균열이 심각합니다, 머리로는 인식 하는데 실천은 여전히 이기적이니 칼 폴라니를 스승으로 모셔서 배워얄 것 같습니다,자기 앞에 아무리 돈을 쌓아도 이웃들이 부실하면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동행

dante 2013. 12. 25. 12:02

똑 같은 바티칸이 교황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지난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후 바티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선 사랑이 느껴집니다. 현지 시간 어젯밤 열린 성탄 전야 미사에서 교황은 아기 예수상을 두 손에 안고 성베드로 성당으로 들어선 후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어둠 속에 빛이 되게 하셨다"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듯 나 또한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 말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계사에 피신한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과 조합원 등 철도노조 관계자 4명에게도, 경찰의 불법 침입으로 아수라장이 된 민주노총, 민노총과 뜻을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교황의 목소리가 들렸기를 바랍니다. 조계사 부근의 경찰관들도 그 목소리를 들었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조계사 경내로 진입하라는 명령이 내릴 경우 그 목소리에서 힘을 얻어 '신성한 명령 불복종'이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걸까요?

 
교황은 "어둠의 정신이 세상을 감싸고 있다"며 "우리 마음이 닫히고 자만심과 기만, 이기주의에 사로잡히면 어둠에 떨어지게 되고, 반대로 하느님과 형제·자매를 사랑하면 빛 속을 걷게 된다"고 말하고 "주님은 거대하지만 스스로 작아졌고 부유하지만 스스로 가난해졌으며 전능하지만 스스로 취약해졌다"고도 했습니다.

교황은 또 트위터에 "크리스마스 행사는 온갖 소리로 가득하지만 사랑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침묵의 공간을 갖는 것이 좋다"는 글을 올렸고, 교황청 라디오를 통해서는 "주님을 통해 마련된 곳이 있는가, 아니면 단지 파티와 쇼핑을 위한 곳만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오늘 정오 성 베드로 광장이 보이는 발코니에서 성탄 강복 메시지를 발표할 교황, 진정 약한 사람의들 편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해에도 부디 안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분이 우리의 동행이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래는 지난 달 교황이 처음으롤 발표한 권고문에 대한 정인환 한겨레신문 기자의 기사입니다.


첫번째 ‘교황 권고’ 공개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 비판
“노숙인 숨지면 뉴스 안되지만
주가 2p만 떨어져도…말이 되나”

교황 프란치스코가 장문의 권고문을 발표해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새로운 형태의 독재’로 통렬히 비판했다. 또 “교회가 손에 흙을 묻히는 것을 주저해선 안 된다”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현실 참여를 강조했다.


교황청은 26일(현지시각) 누리집(vatican.va)을 통해, ‘복음의 기쁨’이란 제목으로 교황 프란치스코가 직접 작성한 첫번째 ‘교황 권고’ 원문을 공개했다. 전문과 5개 장에 걸쳐 모두 288개 조문, 244쪽으로 구성된 ‘복음의 기쁨’의 핵심은 제2장 1항 ‘현대 사회가 직면한 몇가지 도전 과제’로 보인다. 예수회 사제로 오랜 기간 빈민사목에 열정을 바쳤던 교황의 사회 인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배제의 경제 △돈의 맹목성 △금융체제의 지배 △폭력을 부르는 불평등 등을 오늘날 세계가 맞닥뜨린 ‘도전 과제’로 꼽았다. 그는 “(구약 시대의) 10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제는 ‘배제와 불평의 경제체제를 유지하지 말라’고 말해야 할 때다. 이런 경제체제야말로 사람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극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면서, 절대다수와의 (소득)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며 “시장과 금융투기에 완벽한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이러한 불균형이 결국 자기만의 법과 규칙을 강제하는 독재체제를 만들어냈다”고 통박했다. 교황은 “우상으로 숭배했던 고대의 ‘황금 송아지’가 오늘의 돈”이라며 “전세계적으로 냉혹한 경제체제의 독재가 횡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파 경제학의 핵심 주장인 ‘낙수효과’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교황은 “자유시장을 통한 경제성장이 결국 좀더 정의롭고 포용적인 세상을 만들 것이란 ‘낙수효과’ 이론은 단 한번도 현실에서 증명된 바 없다. 현 체제를 신성화하고, 그 안에서 경제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선의를 맹목적으로 믿겠다는 조잡하고 순진한 발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세태에 대한 통박도 이어졌다. 교황은 “늙은 노숙인이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건 뉴스가 안 되지만, 주식시장이 단 2포인트라도 떨어지면 뉴스가 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어 “모든 게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굴러가면서, 강한 자가 약한 이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이들이 배제된 채 일자리도, 미래에 대한 가능성도, 절망에서 탈출할 수단도 없이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간마저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소비재’ 취급을 받는 세상에 대한 비판도 담겼다. 교황은 “배제된 이들은 우리 사회의 밑바닥도 변방도 소외된 것도 아니다. 더이상 우리 사회의 일부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착취를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쫓겼다. 버려져야 할 찌꺼기 취급을 받고 있다”고 탄식했다.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와 관련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지금, 교황이 제시한 ‘교회의 사명’은 눈길을 끈다. 교황은 “문 밖에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예수께선 끊임없이 ‘어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라’고 가르치셨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안온한 성전 안에만 머물며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며 “잘못될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거짓된 안정감을 심어주는 구조 안에서 침묵을 지켜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을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권했다.

 
 
 

나의 이야기

dante 2011. 8. 29. 07:42

끝없이 날아드는 우편물 중에 백화점 광고지들이 있습니다. 거의 가지 않는 저에게 이렇게 열심히 보낼 때 열심히 드나드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판촉을 할지, 광고에 기울이는 이 모든 노력과 비용 때문에 백화점 물건값은 또 얼마나 비싸질지... 장부를 보지 않아도 훤히 보입니다.

 

백화점은 '자본주의의 꽃'이라지요.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사람(人)이 아닌 '자(資)'를 '본(本)'으로 삼는 생각이니 저와는 맞지 않습니다. 당연히 백화점도 저와는 맞지 않습니다. 백화점은 은행처럼 돈 많은 사람을 대우하는 곳입니다. 아무리 인격이 훌륭해도 돈을 많이 쓰지 않는 사람은 백화점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가 백화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피곤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이상한 건 그런 백화점이 늘 붐빈다는 겁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든 아니든, 늙은 사람이든 젊은이든 백화점엔 늘 사람이 많습니다. 요즘은 대학생들까지 백화점으로 몰립니다. '대학(大學)' 즉 '크게 배워야 할' 때 도서관이나 서점 대신 '백 가지 잡화가 있는 곳'으로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정일이 1991년에 펴낸 시집 <지하인간>엔 "백화점을 다스리는 자가 필시/국방을 다스리게 되리라"는 빛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가 이런 통찰력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마도 그가 받은 공교육이 중학에서 끝나 대학 따윈 다니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그가 표제시 '지하인간'에서 보여주는 '의지의 낙관' 혹은 '의지의 다짐'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지금 '대학'이라는 곳을 다니는 젊은이들이 그의 패기를 배웠으면, 그리하여 백화점은 그만 드나들고 차라리 저 무수한 길들을 떠돌았으면 좋겠습니다.

 

 

지하인간

 

내 이름은 수물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