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ante 2021. 7. 30. 08:14

까치집처럼 살려 했는데

더위도 추위도 담아두지 않고

비와 바람도 다만 흐르게 하는

까치집처럼 살려 했는데

주름 늘어가는 몸집에

더위가 들어앉아 주인 노릇을 하니

사지는 절인 배추꼴이 되고

정신은 젖은 손수건처럼

제 할 일을 못하여

에고 칠월은 낭비로구나

한 뼘도 자라지 못하고

한 낱도 영글지 못했구나

탄식 중에 화분 사이를 거닐다

깜짝! 오월 초에 피었던 재스민

활짝 핀 보라 여섯 송이

음전한 봉오리 하나

처음 겪는 더위는 마찬가진데

내겐 낭비인 칠월이

재스민에겐 부활이로구나

나의 각성은 늘 부끄러움이구나

사람에게 부끄러움보다 더 큰 각성이 있을까요
시인님 건강하고 무탈히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ㅎㅎ... 요즘 까치집은 더 세밀해지고 길어지기도 헸답니다
저희 집옆 대나무밭에 서있는 나무 위에 까차집을 지었는데 입구를 휘어지게 하고 나뭇가지도 촘좀하게 엮어 바람이라도 그리 숭숭 통과하기 쉽지 않겠던데요~~~^ 그런데 그 집도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이름 모를 새들에게 애써 지은 집도 뺏기고 쫒겨났답니다. 까치는 열매를 먹지 않으니까 해조가 아닌데 이녀석들은 떼지어 다니면서 열매라고 생긴 것은 죄 쪼아먹어 골칫거립니다.벝 가에 몇 그루 심어놓은 사과나무에 열매들이 몸뚱이를 불려가는데 벌써부터 공격하니 그물을 쳐얄 것 같습니다. 고추를 따면서 사과를 지키면서 7월이 갑니다~~^

 
 
 

나의 이야기

dante 2011. 6. 18. 11:51

컴퓨터 바탕화면이 군자란에서 재스민으로 바뀌고 나니 제 마음까지 달라집니다. 주홍 큰 꽃이 화려하고 짙푸른 잎이 넓직한 군자란을 대하면 저도 모르게 기가 솟곤 했는데, 보라색 재스민 꽃과 손톱보다 조금 긴 작은 잎들을 보면 들떴던 마음도 가라앉습니다. 마음이 시선을 좌우하는 일이 적지 않지만 눈이 마음을 지배하는 경우도 그에 못지 않은가 봅니다.  

 

사람도 군자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스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파바로티의 아리아들을 들으며 그가 군자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떠난 자리는 그 어느 테너로도 메꾸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장수의 시대에 겨우 72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참으로 아깝고 안타깝습니다. 그의 이른 죽음을 생각하다 그보다 더 먼저 떠난 제 친구를 생각합니다. 기품있으나 재기어린 미소를 담고 있던 눈빛, 색으로 표현하면 꼭 저 재스민 꽃빛입니다.

 

군자란이든 재스민이든, 군자란 같은 사람이든 재스민 같은 사람이든,  살아있는  존재는 무엇이나 죽음에 이르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그들의 삶은 끝나지 않습니다. 지구처럼 크고 아름다운 수박을 들고 하늘하늘 언덕길을 올라오던 제 친구도 여전히 제 기억 속에 푸르게 살아 있습니다. 오수희, 여전히 아름답구나, 재스민처럼!    

 
 
 

오늘의 문장

dante 2010. 5. 17. 08:44

"나의 영혼이여, 그동안 오래도록 붙잡혀 있었구나.

이제 감옥에서 벗어날 때가,

이 짐스러운 육체에서 떠날 때가 되었다.

나의 영혼이여, 이 고통스러운 결별을

즐겁고 용기 있게 맞이하기를." -- <죽은 철학자들의 서書>에서 인용.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평생 떠돌이꾼으로 서른여덟 번이나 주소지를 바꾸었으며,

죽은 후에도 시신이 수 차례의 여행과 가매장을 거쳐

1819년에야 생 제르멩 데 프레 성당 부속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보헤미아의 엘리자베스 공주

(참수당한 영국 국왕 찰스 1세의 조카딸)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며,

두 사람은 지적인 면에서 대등했다고 합니다.

찰스 1세가 참형을 당했을 때 데카르트는 엘리자베스를 위로하는 편지에서,

한순간에 영광스럽게 참수형을 당한 것이

침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았을 거라고 말했다는데,

바이러스성 질병에 걸려 고통받다가 결국 '침대에서 죽음을 기다'린

그의 종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문득 던지는 한마디 속에 우리 생애의 마지막 모습이

암시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래어 떨어지는 베란다의 재스민꽃이

태어남과 죽음, 피어남과 시듦을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