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dante 2017. 6. 9. 11:07


저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텐데, 저는 커피가 주는 '각성'과 '고양'을 좋아합니다.

탁한 머리를 씻어 주고, 땅으로 들어가려는 정신을 일으켜 세워줍니다.


아래에 오늘 경향신문에 실린 박경은 기자의 글을 옮겨둡니다.

오래 전 종로의 '커피 커피' 에서 마시던 계피 넣은 모카커피가 떠오릅니다.



[종교와 음식](15) ‘악마의 음료’에 반한 교황 “세례 주자”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커피 없는 세상. 좀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커피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료다. 커피가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은 17세기 초반 가톨릭교회, 좀 더 엄밀히 말해 당시 교황의 판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역사에서 만약은 없다지만, 그래도 그때 교황이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아마 커피의 위상은 판이했을지 모른다.

커피의 원산지가 에티오피아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커피라는 이름도 에티오피아의 커피 산지 카파에서 유래됐다고 추정된다. 6세기경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침공한 것을 계기로 커피는 아랍지역으로 퍼졌다. 커피 이동의 중심지는 예멘의 항구도시 모카였다. 이후 16세기까지 커피는 이슬람문화권을 대표하는 음료였다. 커피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16세기 후반, 오스만튀르크와 활발한 무역을 하던 베네치아공화국을 통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유럽과 이슬람권의 아침 모습은 사뭇 달랐다. 유럽 사람이 아침에 맥주를 마셨다면 이슬람권에선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유럽에 들어온 커피는 지식인들과 예술가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이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맥주와 포도주의 소비량은 줄어들었다. 매출 감소가 이어지자 자연히 기존 시장 체제의 기득권자들의 불만은 높아갔고 이들은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 “지옥을 연상시키는 악마의 음료” “신이 이교도들에게 포도주를 금한 대신 준 것이 커피이므로 커피를 마시면 사탄에게 영혼을 빼앗긴다” 등 유언비어가 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급기야 추기경을 비롯해 가톨릭 성직자들은 당시 클레멘스 8세 교황에게 사탄의 음료 커피를 금지시킬 것을 청원했다. 하지만 판단을 내리기 전 교황은 커피를 시음하고 그 맛에 반하게 된다. 음식연구가 심란 세티는 <빵 와인 초콜릿>에 커피를 맛본 교황이 “왜 이 악마의 음료는 이교도만 마시라고 하기에는 안타까울 정도로 맛있을까. 우리가 그것에 세례를 주어 진정한 기독교도의 음료로 만들어 악마를 놀려주자”라고 외쳤다고 썼다. 교황의 지지를 얻은 커피는 이후 유럽 전역으로 급격히 퍼져갔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100&artid=201706082109025#csidx1e397c896173b14a6dcd3de9bfb1429 



저는 본래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고 분위기를 흩으리지 않기 위해 설탕을 넣어 쓴 맛을 감소시켜 먹었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호감이 가는 분을 만난 다음엔 그분이 커피 애호가여서 이제야 깊은 맛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양촌리(?) 커피보다 더치의 맛이 뛰어나다는 것도 배워가고 있답니다~~~^^

 
 
 

나의 이야기

dante 2011. 3. 5. 09:05

제게 커피는 사람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이 없다는 믿음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으니까요. 특히 블랙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과 저 사이엔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정한 커피가 추억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와 마시던 커피 생각이 먼저 납니다.

 

1980년대 중반 언론의 자유를 저당잡힌 상태에서 기자 노릇을 하던 시절, 저와 같은 출입처를 출입하던 다른 신문사 기자가 안기부 (지금의 국가정보원)에서 고문을 당하고 나왔습니다. 고막을 다쳐 이비인후과를 드나들던 그 친구가 병원 가는 길에 한 번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종로 어디쯤 작은 이비인후과에 들어가 치료를 받는 동안 저는 그 건물 지하의 커피숍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아침 시간인 만큼 지하 커피숍은 텅 비어 있었고 주인인지 바리스타인지 한 사람만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져온 메뉴판엔 수십 가지의 커피가 있어 이름값을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집 이름이 '커피 커피'였거든요. 거기서 마셨던, 계피가루를 살짝 뿌린 모카 커피의 맛, 제 잔이 빈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말도 하기 전에 다시 정성껏 한 잔 내려다주던 바리스타가 지금도 종종 생각납니다. 

 

다 자라 만난 후배의 아내 미순씨와 각별한 사이가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두 사람이 다 커피를 매우 좋아한다는 점일 겁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다 별로 튼튼한 위장과 몸을 갖지 못해 가끔은 아무리 마시고 싶어도 진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게 오히려 서로에 대한 연민과 우정을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외출이 뜸한 제가 어쩌다 시내에 나가면 종착지는 대개 미순씨가 일하던 사간동의 서울셀렉션 북카페였습니다.

 

지난 가을 미순씨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바인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니 제 갈 곳 하나가 줄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도 그가 없으니 커피 맛까지 달라진 듯한 기분이 듭니다. 밥맛도 함께 먹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더니 커피맛도 그런가 봅니다.

 

'커피 커피'의 바리스타처럼 미순씨도 제 마음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언제부턴가 그가 어바인에 있는 '피츠 커피 (Peet's Coffee)'의 커피를 보내줍니다. 엊그제도 두 봉의 커피가 왔습니다. 맛을 비교해보라는 짤막한 메모가 미순씨 얼굴처럼 반가웠습니다. 집에 커피 많이 있으니 보내지 말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착하고 순한 미순씨가 이 일에 관해서만은 제 말을 듣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나 봅니다. 태평양을 건너온 원두의 향에 취해 마시기도 전에 행복했습니다.

 

어떤 상대를 좋아하면 그 상대에 대해 알고 싶어집니다. '피츠 커피'가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 집은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었습니다. 2차대전 후 미국으로 이주한 네델란드 사람인 알프레드 피트 씨가 첫 번째 가게를 연 것이 1966년, 지금은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일리노이, 매서추세츠, 오레곤, 워싱턴 주 등에 피츠 커피가 있다고 합니다. 스타벅스의 창업자도 '피츠 커피'에서 커피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피츠 커피'를 받아 그 향기를 맡을 때, 그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릴 때, 완성된 커피를 마실 때, 미순씨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도 지금쯤 같은 커피를 마시고 있을까, 몸의 형편이 진한 커피를 마실 만 할까... 커피는, 선물은, 받은 사람 속에 자꾸 제 영토를 확장하는 나무입니다. 자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미순 나무'를 만나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