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ante 2011. 3. 5. 09:05

제게 커피는 사람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이 없다는 믿음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으니까요. 특히 블랙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과 저 사이엔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정한 커피가 추억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와 마시던 커피 생각이 먼저 납니다.

 

1980년대 중반 언론의 자유를 저당잡힌 상태에서 기자 노릇을 하던 시절, 저와 같은 출입처를 출입하던 다른 신문사 기자가 안기부 (지금의 국가정보원)에서 고문을 당하고 나왔습니다. 고막을 다쳐 이비인후과를 드나들던 그 친구가 병원 가는 길에 한 번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종로 어디쯤 작은 이비인후과에 들어가 치료를 받는 동안 저는 그 건물 지하의 커피숍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아침 시간인 만큼 지하 커피숍은 텅 비어 있었고 주인인지 바리스타인지 한 사람만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져온 메뉴판엔 수십 가지의 커피가 있어 이름값을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집 이름이 '커피 커피'였거든요. 거기서 마셨던, 계피가루를 살짝 뿌린 모카 커피의 맛, 제 잔이 빈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말도 하기 전에 다시 정성껏 한 잔 내려다주던 바리스타가 지금도 종종 생각납니다. 

 

다 자라 만난 후배의 아내 미순씨와 각별한 사이가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두 사람이 다 커피를 매우 좋아한다는 점일 겁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다 별로 튼튼한 위장과 몸을 갖지 못해 가끔은 아무리 마시고 싶어도 진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게 오히려 서로에 대한 연민과 우정을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외출이 뜸한 제가 어쩌다 시내에 나가면 종착지는 대개 미순씨가 일하던 사간동의 서울셀렉션 북카페였습니다.

 

지난 가을 미순씨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바인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니 제 갈 곳 하나가 줄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도 그가 없으니 커피 맛까지 달라진 듯한 기분이 듭니다. 밥맛도 함께 먹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더니 커피맛도 그런가 봅니다.

 

'커피 커피'의 바리스타처럼 미순씨도 제 마음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언제부턴가 그가 어바인에 있는 '피츠 커피 (Peet's Coffee)'의 커피를 보내줍니다. 엊그제도 두 봉의 커피가 왔습니다. 맛을 비교해보라는 짤막한 메모가 미순씨 얼굴처럼 반가웠습니다. 집에 커피 많이 있으니 보내지 말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착하고 순한 미순씨가 이 일에 관해서만은 제 말을 듣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나 봅니다. 태평양을 건너온 원두의 향에 취해 마시기도 전에 행복했습니다.

 

어떤 상대를 좋아하면 그 상대에 대해 알고 싶어집니다. '피츠 커피'가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 집은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었습니다. 2차대전 후 미국으로 이주한 네델란드 사람인 알프레드 피트 씨가 첫 번째 가게를 연 것이 1966년, 지금은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일리노이, 매서추세츠, 오레곤, 워싱턴 주 등에 피츠 커피가 있다고 합니다. 스타벅스의 창업자도 '피츠 커피'에서 커피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피츠 커피'를 받아 그 향기를 맡을 때, 그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릴 때, 완성된 커피를 마실 때, 미순씨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도 지금쯤 같은 커피를 마시고 있을까, 몸의 형편이 진한 커피를 마실 만 할까... 커피는, 선물은, 받은 사람 속에 자꾸 제 영토를 확장하는 나무입니다. 자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미순 나무'를 만나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