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dante 2021. 8. 1. 08:32

8월은 일요일에 왔습니다.

출장지에 하루 먼저 도착해

하루 쉬고 다음날부터 일하려는

사람 같습니다.

 

8월이 일요일에 온 것은 어쩌면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시간의 배려일지 모릅니다.

 

'2021년에 들어선 지 

일곱 달이 지났다, 너는 그 일곱 달을

뭐 하는 데 썼느냐?'

절박한 매미들의 울음 사이로 시간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2021년 8월 1일의 우리는

나날의 삶과 그 삶이 수반하는 무게에 눌려

질문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뫼비우스의 띠를 닮은 숫자 8

8월이야말로 잃어버린 질문을 찾아내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어디서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을 땐

19세기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

(Alfred, Lord Tennyson: 1809-1892)의 시

'합창 (Choric Song)의 2연에서 시작해도

좋겠지요.

 

2

Why are we weighed upon with heaviness,

And utterly consumed with sharp distress,

While all things else have rest from weariness?

All things have rest; why should we toil alone,

We only toil, who are the first of things,

And make perpetual moan,

Still from one sorrow to another thrown; 

Nor ever fold our wings,

And cease from wanderings, 

Nor steep our brows in slumber's holy balm; 

Nor harken what the inner spirit sings,

"There is no joy but calm!" --

Why should we only toil, the roof and crown of things?

 

왜 우린 짓눌려 있을까,

괴로움에 시달려 기진맥진한 채,

만물은 피로와 권태에서 놓여나 휴식하는데?

만물은 쉬고 있는데 왜 우리만 힘들게 애쓰는가,

우리만 죽어라 애쓰네,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만,

그러면서 끝없이 신음하네,

하나의 슬픔에서 다른 슬픔으로 던져진 채;

 

한 번도 날개를 접지 못하고,

한 번도 방랑을 멈추지 못하고,

성스러운 잠의 향유에 눈썹을 적시지도 못하고;

내면의 노래에 귀기울이지도 못하고,

"평온 없이는 기쁨도 없다!" --

왜 우리만 애써야 하는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만?

 

 

 

 

 

 
 
 

나의 이야기

dante 2021. 7. 30. 08:14

까치집처럼 살려 했는데

더위도 추위도 담아두지 않고

비와 바람도 다만 흐르게 하는

까치집처럼 살려 했는데

주름 늘어가는 몸집에

더위가 들어앉아 주인 노릇을 하니

사지는 절인 배추꼴이 되고

정신은 젖은 손수건처럼

제 할 일을 못하여

에고 칠월은 낭비로구나

한 뼘도 자라지 못하고

한 낱도 영글지 못했구나

탄식 중에 화분 사이를 거닐다

깜짝! 오월 초에 피었던 재스민

활짝 핀 보라 여섯 송이

음전한 봉오리 하나

처음 겪는 더위는 마찬가진데

내겐 낭비인 칠월이

재스민에겐 부활이로구나

나의 각성은 늘 부끄러움이구나

사람에게 부끄러움보다 더 큰 각성이 있을까요
시인님 건강하고 무탈히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동행

dante 2021. 7. 27. 07:51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현관문을 여니

커다란 골판지 상자가 와 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받아보는 '새벽 배송' 선물입니다.

 

제 힘으론 들일 수 없어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상자 얼굴의 글씨를 읽습니다.

'부드러운 복숭아'입니다.

상자를 열지 않아도 복숭아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 같습니다.

 

과대 포장이라면 질색하는 저를 위해

포장이 단순하되 신선한 복숭아를 찾아 보낸 수양딸...

저는 무엇을 했기에 혹은 무엇을 하지 않았기에

이런 홍복을 누리게 된 걸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자리에 머무는 새벽을 뚫고

저희 집 앞을 다녀간 사람... 그이에게도 감사합니다.

 그이의 하루가 너무 고단하지 않기를,

그이가 너무 늦지 않은 밤 피곤한 몸을 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고보니 땀이 제 온몸을 적셔 잠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것은

'새벽 배송 선물'이 왔으니 새벽에 일어나 받으라는 소치입니다.

땀 때문에 새벽 잠을 잃었다고 속으로 꿍얼거렸는데,

땀 덕에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게 된 것입니다. 

역시 제 몸은 제 머리보다 현명합니다.

 

그런데 '새벽 배송 선물'을 가져온 그이는 어떻게 

이 공동주택의 입구를 통과해 저희 집 현관 앞에 선물을 두고 간 걸까요?

제 수양딸도 모르는 이 건물 출입구 비밀번호를 그이는 아는 걸까요?

그의 머릿속엔 얼마나 많은 건물 출입구의 비밀번호가 들어 있을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옵니다.

안녕히 주무셨냐는 인사와 함께 저희 집 현관 앞의 선물 상자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 위쪽 '7월 27일 00:24'를 보니

새벽이 아니라 한밤중에 두고 간 것입니다.

새벽 두 세 시에 다녀간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하다고 오늘 하루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보내시라고

답장을 보냅니다. 그이가 어떻게 이 건물의 출입구를 통과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감사가 궁금증을 이깁니다. 

 

'부드러운 복숭아'를 보내준 연진씨, 어둠을 뚫고 복숭아를

가져다 주신 분, 복숭아를 키워 주신 분, 복숭아 속에 들어앉은 시간...

다시 두루 감사하는 하루입니다.

 

그런데 큰일났습니다.  머리가 띵하고 자꾸 눈이 감깁니다.

창밖 햇살이 무대 조명 같은데 졸음이 쳐들어옵니다.

어서 '부드러운 복숭아'를 먹고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수양 딸에게 제 철에 나오는 복숭아를 받으셨으니 좋으시겠습니다.
두루 감사드린 분들을 살펴보니 역시 세상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숭아 한 상자가 김 시인님께 이르기 위해선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야했으니 말입니다
사회적으로 생산된 잉여가치가 직접생산자에게 보다 많이 돌아가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어서 맛있는 복숭아 드시고 찜통 더위 이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