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1:09

지난 달 문화체육관광부는 종교단체들이 내놓은 자료를 근거로 ‘2008종교현황’을 발표했습니다. 인구 4천 8백만 명인 우리나라에 8천 2백만 명이 넘는 신도가 있다니 종교단체들이 거짓말을 했나 봅니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 짙은 종교색으로 물의를 일으켜온 현 정부도 자꾸 거짓말을 하니 종교와 거짓말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거짓말은 얼굴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초콜릿투성이의 입으로 초콜릿을 먹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식의 노골적인 거짓말, 숨겨둔 애인을 만난 후 가게에 들렀다 온 남편이 아내에게 애인 얘기는 빼고 가게에 다녀온 얘기만 하듯 중요한 사실을 빠뜨려 상대의 오해를 유도하는 거짓말, 사실이 아닌 걸 믿도록 오도하는 거짓말, 말은 맞지만 진의를 숨기는 거짓말,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제외한 나머지를 과장하는 거짓말...

 

-정부의 거짓말-

 

청와대는 최근 경찰에 용산 철거민 참사를 잠재우기 위해 군포 연쇄 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했음을 인정했습니다. 처음엔 부인하다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 개인적 생각을 전한 거라고 말을 바꾸더니, 행정관이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보낸 이메일은 “비록 사신(私信)이지만” 청와대 근무자로서 부적절해 경고했다고 했습니다. 경제위기로 우울한 국민을 웃기려는 걸까요? 초콜릿 범벅인 입으로 초콜릿을 먹지 않았다고 우기는 것 같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키스디)이 지난달 내놓은 “방송규제완화의 경제적 효과 분석”을 언론관계법 개정의 당위성을 강조하는데 이용하며, 법이 통과되면 2조 9천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2만 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달 초 연세대에서 열린 미디어공공성포럼 세미나에서 동의대 문종대 교수는 “2004년 이후 방송시장이 연평균 10퍼센트 성장했지만 고용인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며 고용창출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한나라당 법안대로 규제를 완화하고 키스디의 계산 방식으로 고용증가 여부를 산출할 경우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방송 산업의 일자리가 12,693개 증가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3,021개 줄었고, 대기업이 지상파를 인수하면 이윤논리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문 교수의 설명입니다.

 

국토해양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당위성 홍보를 위해 만든 동영상에서 거짓말이 무더기로 발각되자 홈페이지를 통해 ‘해명’했습니다. “우리나라 하천환경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자연적인 습지가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강조할 목적으로 ‘자연습지 전무’라는 자막이 삽입됨. ‘전무하다’는 표현은 강조를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사실왜곡을 의도했던 것은 아님... 철새가 찾지 않는다는 표현은 하천환경이 점점 나빠지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자 한 것은 아님... 홍보동영상은 영산강과 낙동강의 수질이 나쁘다는 사실을 죽은 물고기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했음. 다만, 외국 사진이 사용된 것은 적절치 못했던 것으로 판단됨.”

 

-거짓말하면 다리가 짧아져-

 

반성 없는 ‘해명’을 보니 아직 드러나지 않은 심대한 거짓말이 얼마나 많을까 걱정이 됩니다.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포기한다며 25명 규모의 사업단을 해체하고 41명으로 구성된 ‘4대강 살리기’ 기획단을 출범시켰지만, 사업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19세기 이탈리아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에서 요정은 말합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거나 다리가 짧아진다고.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여 코가 길어졌지만 긴 다리가 자랑인 요즘엔 다리가 짧아질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길지 않은 다리가 더 짧아지면 본인도 괴롭고 보는 이도 괴로우니, 제발 거짓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0:39

꼭 일 년 만입니다. 두루마기 차림으로 차례 상에 제주를 올리시는 걸 보니 건너편에 앉아계실 할아버지, 할머니, 누대 조상님들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80여 년 낡은 무릎을 힘겹게 굽히고 앉아 가만가만 지난 일 년의 희로애락을 보고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부모님 앞에 성적표를 내놓은 초등학생입니다.

 

언젠가 아버지의 노트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신앙의 대상을 조상과 선산의 묘소에 두고 살아왔다. 내 조상이 위대하고 전지전능하지는 못할망정 당신들의 자손인 나를 사랑할 것이고 나 자신 그 분들로 인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엊그제 시립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230여 명의 홀몸 노인들이 합동 차례를 올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차례 상 앞에 섰을 그 분들을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옵니다.

 

-민주주의는 어렵다-

 

아버지가 다시 젊고 늙은 자손들과 굽히기 힘든 무릎을 굽히실 때 과일부터 남의 살까지 각양각색 음식이 차려진 차례 상이 보입니다. 며느리들의 일을 줄여줘야 한다는 어머니와 ‘형식을 줄이다 보면 내용이 사라진다’는 아버지의 주장이 맞서 상의 크기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셨지요. 결국 ‘민주주의는 어렵다’며 중간 크기로 맞추신 상, 볼 때마다 슬며시 웃게 됩니다.

 

마침내 차례가 끝나고 음복(飮福)의 시간, 조상님들이 물리신 상에 앉아 조상님들이 주시는 복을 먹습니다. 순리가 지켜지지 않는 세상, 삼대가 동석하니 나이 먹는 일조차 행복합니다. 당연히, 이 행복을 누리기는커녕 설을 눈앞에 두고 목숨을 잃은 용산 철거민 참사의 여섯 희생자가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절절히 집 없는 설움을 겪으신 아버지도 그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오래전 마포 한 구석 아버지 소유의 작은 건물은 동네에서 세가 제일 낮았습니다. 누군가 세를 올려 받으라 하자 “세를 많이 받으면 그 사람들은 언제 집을 사냐?”고 반문하셨죠. 저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초라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언덕을 오를 때는 “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늘 이웃을 강조하시어 우리 살림이 어려운 걸 몰랐습니다.

 

용산 참사를 생각하니 성급하고 과격한 진압에 대한 원망과 반성을 모르는 정부에 대한 걱정이 꼬리를 뭅니다. 정치인들이 숨진 철거민들을 위한 합동분향소에 갔다가 유족들의 거부로 발길을 돌렸다지요. “제일 나쁜 정치는 국민과 싸우는 것”이라는데 요즘 우리나라에선 늘 정부와 국민이 싸우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려워도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정치인은 되지 말라-

 

아버지는 결코 정치인은 되지 말라 하십니다. “정치집단이나 정치인은 대체로 두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나라와 불행한 사람을 위해 헌신하려 하고, 다른 부류는 정치를 이용해 자신의 영달을 이루려 하는데, 희생당하는 쪽은 항상 전자이다. 그러므로 정치에는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뛰어난 사람은 제도권 교육을 오래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건, 열두 살에 가장이 되어 평생 홀로 자신을 교육해 오신 아버지 때문입니다.

 

명문학교 출신이나 학교를 다니지 못한 노인이나, 못 쓰는 칼처럼 이성(理性)을 버려두고 장수(長壽)에 대한 열망과 추억으로 소일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노인은 다 같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버지, 당신은 아직 ‘노인’이 아닙니다. 당신의 문제의식과 지적인 호기심이 명절 전 갈아놓은 칼날 같으니 말입니다.

이쯤 쓰고 보니 왜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한 통이 책 한 권 분량이나 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담기엔 너무 짧은 지면, 머지않아 다시 한 번 긴 편지를 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 그때까지 안녕하셔요!

 
 
 

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0:36

바그다드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 사건으로 시작된 2008년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속에 끝났습니다. 자살 폭탄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건 20여명이었지만 가자사태는 5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를 낳고도 아직 진행 중입니다. 달력은 오늘을 2009년 1월이라 하지만 세상은 아직 2008년 13월입니다.

 

-말 뿐인 세계의 지도자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일요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에게 “비극적 상황 종료를 위해 즉각 행동하라”고 요청했지만 스스로 전장을 방문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반 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의 과도한 실력행사를 비난하며 지상군의 가자 진입을 멈추라고 요구했습니다. 두 달 전 세계인의 박수 속에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가 침묵하는 동안,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은 가자사태의 책임은 하마스의 테러리즘 때문이라며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시선을 나라 안으로 돌리면 가슴이 더 답답해옵니다. 정부는 12월 29일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의 조심스런 성명을 내놓은 후 ‘상황 파악’ 중이고, 서울 서린동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선 소규모의 반이스라엘 시위가 진행 중이지만 국민들 중엔 가자사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세계 12, 13위를 오르내린다지만 타인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의식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후진국민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테러리즘 운운하는 것을 보니 지난 주 영국 유력지 가디언의 인터넷판에서 본 니르 로센의 글이 떠오릅니다. 로센은 테러리즘은 강한 나라들이 자신들에게 희생당하는 나라들의 투쟁을 일컫는 데 쓰는 규범적 용어라며, 약한 나라들의 투쟁은 결코 테러리즘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1948년부터 75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곳에서 축출되었고 수많은 가옥이 파괴되었으며 식민지 개척자들이 그들의 땅에 정착하고 있다... 약한 자가 가진 힘은 강한 자의 힘보다 훨씬 적어 피해도 적게 줄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탱크와 비행기가 있었다면 카페를 폭파하고 자가제조 미사일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그들의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이다.”

 

로센은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싸우는 건 다가오는 선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정 후보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거라는 겁니다. 그는 “아랍인의 피에 젖은 손을 갖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수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국회인 크네셋 선거는 2월 10일 실시됩니다. 가자에서 총격이 멎는 건 그 후에나 가능할 거라는 관측이 그래서 나옵니다.

 

500여 명의 사망은 500여 명의 삶이 파괴되었음을, 그들의 꿈과 사랑, 추억과 다짐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뜻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건 그냥 숫자일 뿐입니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숫자를 가지고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는 동안 가자지구 주민 150만 명과 이스라엘 국민 730만 명은 각자가 섬기는 신을 부르며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하늘이 무서운 새해-

 

그러나 지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신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성경, 토라경전, 코란, 불경 등 모든 경전들이 하지 말라는 살인(살생)을 저지르는 게 사람이듯 그걸 막는 것 또한 사람의 일입니다. 이제 그만 정치 지도자들이 계산을 멈추고 가자로 달려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 하늘이 오랜 침묵을 깨고 마침내 단죄에 나설지도 모릅니다. 나라가 있기 전, 종교가 있기 전, 정치가 있기 전부터 하늘을 우러르던 사람들을 위해, 하늘이 나설지도 모릅니다. ‘세계 천문의 해’라는 2009년, 별을 관측하는 사람들이 하늘의 분노를 보고 기함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하늘이 무서운 새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