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한평 반의 평화)

dante 2009. 10. 31. 12:13

글 김흥숙/그림 김수자

▲ 파란 하늘과 평상만 하던 큰 나무 그늘
ⓒ 김수자
그때도 나무들이 서둘러 몸을 키우고 있었으니 꼭 이맘때였나 봅니다.
몸 안에 목마른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자꾸 갈증이 나던 시절, 떠오르는 사람이 꼭 하나 있었지만 연락할 수는 없었습니다. 학기말 시험 중이라 끝나고 만나기로 했었으니까요.

한 달 전쯤 미팅에서 처음 본 그는 '다음에 언제 만날까요?'라는 말을 하지 않아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남들이 다 하던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제 콧대를 꺾으려 했다는 걸 수십년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때는 그것을 몰랐으니 여간 혼란스러웠던 게 아닙니다.'함께 있었던 한나절 동안 분명히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왜 다시 보고 싶다는 말을 안 하는 걸까?'
나중에야 제가 다니던 학교로 편지를 보내와 어렵게 한번을 만나고는 시험이 끝난 후 다시 보기로 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영어 회화 클럽엔 ㅅ 대학교에 다니는 서글서글한 회원이 있었습니다. 주말 낮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가려는 저를 '서글씨'가 부르더니 오후에 별 일 없으면 자기 학교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 학교에 다니는 그가 생각나 두말 않고 따라 나섰습니다. 시험기간이니 그가 꼭 도서관에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도서관을 보고 싶다고 하자 서글씨는 아무 의심 없이 앞장을 섰습니다.

"우리 학교 도서관이 개가식이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친절한 서글씨는 추임새까지 넣어주었습니다. 저도 그 학교 도서관이 좋다는 얘기는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 서글씨를 따라 도서관을 구경하는데 대학 도서관에 유일하다는 자주색 카펫과 개가식 구조보다는 공부하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혹시 그가 있는가?' 요리조리 살펴보았지만 끝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낙담한 마음을 감추며 애써 명랑하게 서글씨에게 고맙다고, 도서관이 이렇게 좋으니 공부가 절로 되겠다고 덕담을 했습니다. 기분이 고조된 서글씨가 밖에 나가 시원한 것을 먹자고 제안했지만, 무언가 저를 붙잡는 게 있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저 큰 나무 아래 앉아 쉬면 어때요?"
대안을 내자 착한 서글씨는 기쁜 얼굴로 동의했습니다. 어느 대학이나 그렇지만 그때는 그 학교에도 건물보다 잔디가 많았습니다.

큰 나무 아래 살짝 비탈진 잔디밭은 그대로 녹색 우단 보료였습니다. 그 위에 앉으니 도서관의 입구가 보였습니다. 도서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중에 언뜻 그의 모습이 보인 것 같았습니다. 신사로 불리던 서글씨가 아이스크림을 사오겠다고 자리를 떴지만 오히려 도서관 쪽을 보기가 쑥스러웠습니다. 그냥 큰 나무 아래 그늘 속에 양치식물처럼 앉아 저 멀리 파란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친구는 어디 갔어요?" 조금 붉은 목소리가 물었습니다. 돌아보니 왼팔을 뻗어 큰 나무에 기댄 그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꼭 목소리만큼 붉었지만 눈빛은 수줍고 서늘했습니다. 파란 하늘이 그의 뒤로 무한히 아름다웠습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같은 클럽 다니는 친군데 학교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해서요…… 걘 아이스크림 사러 갔어요." 사실을 말하는데도 서글씨에게 조금 미안했습니다.

"아이스크림요? 그럼 금방 오겠네요. 내일 시간 있어요?"
"며칠 있으면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인데……."
"그땐 그때고……."
"시험 다 끝나셨어요?"
그가 약간 초조한 시선을 서글씨가 사라진 방향으로 던지며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상관없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 날 ㅅ 대학교 앞 유성 다방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햇수로 4년 후부턴 한 방을 쓰게 되었고요. 달라서 끌렸던 걸까요? 그는 제가 왜 그러는지를 모르고 저는 그가 왜 그러는지를 모르는 채 시간이 자꾸 흘렀습니다. 밤새 싸우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구청으로 가자고 큰 소리로 약속해 놓고 막상 아침이 오면 각자가 바빠 구청행을 미룬 날들도 많았습니다. 삶은 고해라고, 즐거움은 짧고 괴로움은 길다고 퉁퉁 부은 눈으로 주정하던 밤이 영영 계속될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그가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 또한 제가 왜 그러는지 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둘이 함께 목마른 식물처럼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지요? 시들기 시작하자 싸움도 울음도 줄어들었습니다. 틈틈이 그를 괴롭히면서도 밖에서 상처를 받을 때면 역성드는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그의 그늘로 들어갔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온 인류를 사랑하는 것처럼 어렵다더니, 저를 사랑하는 일이 퍽도 힘겨웠나 봅니다. 그의 머리칼은 성글어지고 날씬하던 허리는 굵은 나이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날, 그 큰 나무 아래서 '순간 속 영원'을 보았다고, 그가 바로 내 큰 나무라고.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저를 그 곳으로 이끌었던 서글씨가 생각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2:01

오랜만에 뵈었으나 여전하시어 기뻤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골프를 치시고 일주일에 두 번씩 산에 오르신다니 꾸준한 운동이 좋긴 좋은가 봅니다. 적지 않은 퇴직금과 연금, 선생님의 직업을 이어 받은 자제분들 두루 부럽고, 비싼 저녁을 사주시며 제 글에 배인 ‘분노’를 염려하실 때는 송구스러웠습니다.

 

“전엔 따뜻하고 서정적인 글을 쓰지 않았나? 그 글들, 좋던데... 아무튼 열심히 써요.” 뭐라고 한 말씀 드리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물들기 전에 떨어진 잎사귀들이 제법 차가운 바람을 타고 거리를 휘돌았습니다. 힘겹게 어둠을 이고 선 작은 가게들, 피로에 젖은 채 하루를 정리하는 얼굴들, 윤기 흐를 제 얼굴이 부끄러웠습니다.

 

-다리가 되는 칼럼-

 

지금, 바로 이 시각에도 이 나라와 세계 안팎에선 무수한 일들이 일어나고, 수없이 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사라집니다. 그 많은 일들과 사람 가운데 무엇에 대해, 누구에 대해 쓸 것인가를 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글의 종류는 사람의 종류만큼 많습니다. 어떤 이의 글은 지식과 성취로 넘치고, 어떤 이는 가르치려 하고 어떤 이는 일어나 싸우자고 합니다.

 

자랑할 지식도, 나아가 싸울 용기도 없는 제가 칼럼을 쓰는 이유는 희망 때문입니다. 배부른 사람과 배고픈 사람을 잇는 다리를 하나 놓았으면, 배부른 사람과 배고픈 사람이 만나 함께 ‘적당히 배부른’ 상태를 도모하도록 도왔으면 하는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제 칼럼에서 읽어내신 분노는 투쟁이나 파괴를 부르는 성냄이 아니라, 의당 누려야할 기본적 조건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절망적 상황, 희망을 밀어내는 상황에 대한 분노입니다. 오래전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던 공분(公憤)이지요. 모두가 갖고 태어났으나 잠시 잊고 있는 양심과 사랑을 끌어내어, 함께 희망과 대안을 찾기 위한 마중물입니다.

 

지난 주 서울에서는 진보적 시민운동을 이끌어온 시민단체 인사들이 모여 ‘희망과 대안’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현 정부 출범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공감대 위에 내년 지방선거에 맞춰 대안정치세력을 육성한다고 합니다. 민주주의의 5개 기둥 중 하나로서 행정, 입법, 사법부와 언론을 감시, 견제해야 할 시민단체들이 직접 정치활동에 나서게 된 것도 슬픈데, 더 마음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소속 노인 수십 명이 애국가와 태극기 없이 하는 행사가 어디 있느냐고 소리치며 회의를 방해한 겁니다. 홈페이지에 “노구의 몸으로... 자유대한을 지키고자” 나섰다고 쓰여 있는 걸 보니 노인들의 단체입니다. 이달 초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지를 이장하라며 시위하기도 했습니다.

 

어버이다운 어버이이든 아니든, 연세 드신 분들이 한가로이 여생을 즐기던 시대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엔 노인이 너무 많고 노인으로 살아야할 시간이 너무 깁니다. 지난 7월 1일 현재 우리나라 총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0퍼센트를 넘었고, 2016년엔 노인인구가 14세 이하 인구를 추월하게 된다고 합니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골프도 좋고 등산도 좋지만 건강만을 목표로 삼는 노인은 존경받지 못합니다. 부디 선생님의 건강과 장수(長壽)가 젊은이들에게도 기쁨과 영감(靈感)을 주기를 바랍니다. 물들기 전에 떨어진 잎사귀처럼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갑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을 보며 배우고 싶습니다. 노년은 젊을 때 실천하지 못했던 정의를 행동에 옮기는 시기라는 것, 두려움 없이 희망과 대안을 키우는 거름이 되는 때라는 것. 언젠가 소박한 백반을 대접하며, 오래전 선생님이 사주신 브레히트 시집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아까 드리지 못한 답변 대신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가 실려 있는 107쪽에 은행잎 하나 꽂아두겠습니다.

 
 
 

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1:57

추석 명절 덩두렷한 달을 보며 저 달로 허기를 채우는 사람은 없을까 생각한 게 저 하나일까요?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은 반갑고, 여럿이 모여 빚은 송편은 맛있지만,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떠드는 텔레비전 추석특집들이 오히려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보고 싶은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 먹고 싶은 송편을 먹지 못한 아이들의 슬픔이 가중될 것 같았습니다.

 

-거꾸로 가는 경기도의회-

 

어른들의 배고픔도 그들만을 탓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굶주리는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나잇살이 부끄럽습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1,660만 가구 중 3퍼센트에 해당하는 54만 가구의 작년 수입은 월 20만원도 안 되었다고 합니다. 정부가 정한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49만 845원, 2인 가구 83만 5,763원. 최저생계비 이하를 버는 절대빈곤층의 5분의 1은 끼니를 거릅니다. 학교급식비를 지원 받아야 할 저소득층 자녀는 2006년 52만 6천여 명에서 올해 73만여 명으로 증가하고, 급식비를 내야 하는데 내지 못한 학생들의 수는 거의 두 배나 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상급식을 늘리긴커녕 중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놀랍습니다.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지난 7월 도교육청이 상정한 2차 추경예산안에서 초등학생 무상급식 지원 예산 85억 원 전액을 삭감했습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무상급식 예산 삭감과 도청 내 교육국 설치와 관련해 경기도의원 5명과 도청 공무원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부르자, 도의회 의원 9명이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증인 출석 요구가 “지방의회의 의결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나아가 지방자치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폭력”이라고 주장했지만, 동의하는 국민이 몇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거꾸로 가는 건 경기도의회만이 아닙니다. 교사 김호정 씨는 최근 모 신문에 서울 남부교육청을 비난하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급식비 지원 대상엔 기초수급자와 한 부모가정 자녀, 지역건강보험료 2만 9천원 미만 납부 가정 자녀 외에, 담임교사 추천을 받은 학생들이 포함되는데, 추천 학생 수가 초과되었다며 남부교육청이 담당교사들과 교장들을 징계하고 초과된 13개 학교 300여명의 급식비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는 겁니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초·중학생의 무상급식을 위해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고등학생이 제외된 건 안타깝습니다. 급식비를 연체한 학생들 중에서도 고등학생 연체자 수가 가장 가파르게 늘고 있으니까요. 2006년 8,365명이던 초등학생 연체자 수는 2008년 10,887명으로 늘고, 중학생은 4,088명에서 7,469명으로 늘었지만, 고등학생은 4,500명에서 13,552명으로 3배나 늘었습니다.

 

-체납 세금으로 무상급식을-

 

예산이 없어 무상급식을 하지 못하는 거라면 고액 국세체납자들로부터 밀린 세금을 거둬들이면 됩니다. 최근 5년간 세금을 10억 원 이상 체납한 고액 체납자 4,426명의 체납액은 18조에 육박하고, 5천만 원 이상 체납자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니 말입니다.

 

지난 4월 초를 기준으로 유치원과 초·중·고교에 다니는 우리나라 학생 수는 작년보다 17만 명이 줄었고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겁니다. 올 1월에서 7월까지 태어난 아기의 수만 보아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1만 2,800명이나 감소했으니까요. 출산을 독려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준다, 육아 지원금을 준다, 요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왜 태어난 아이들의 배고픔은 해결하지 못하는지, 먹이지도 못할 아이들을 왜 그렇게 낳으라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쌀 풍년으로 농민의 시름이 깊어가는 이 가을, 부디 청소년들이 양껏 먹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어른들의 나잇살이 부끄럽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