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1:53

올해처럼 사회적 파장이 큰 죽음이 연이은 해도 없을 겁니다. 설날을 엿새 앞두고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에서 일어난 화재로 5명의 시민과 1명의 경찰관이 숨진 것을 시작으로, 5월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8월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고, 열흘 전엔 북한이 소리 없이 방류한 물로 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두 대통령의 서거가 옳은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게 했다면, 용산과 임진강의 참사는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합니다.

 

-신속한 보상 타결-

 

한국수자원공사는 임진강 시설관리 책임을 물어 직원 5명을 직위해제하고 재택근무 시스템을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6명의 인명을 빼앗은 근무태만의 벌로는 가볍습니다. 유족들에게는 희생자 1인당 평균 5억 원의 보상금과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해 일주일 만에 합동영결식이 치러졌습니다. 짧은 협상 시간에 비해 큰 보상금이라 10월 재보선 때문에 정부가 서둘러 보상에 합의했다는 말이 인터넷에 떠돕니다. 보상금이 슬픔을 지우진 못하겠지만 용산 참사 희생자 가족들에겐 부러운 일일 겁니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건 1월 20일, 철거민들이 건물 옥상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겨우 25시간 만에 경찰특공대를 투입했던 정부는 아직 철거민들과 법정싸움 중이고 5명의 유해는 여전히 장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4월22일 첫 공판에서 이덕우 변호사가 말한 대로 “세입자들에게 지원되는 금액은 2천 5백만 원에 불과한데 이들이 그 돈으로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생각하면 철거민들의 저항이 이해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다른가 봅니다.

 

지난 주 정부는 임진강 참사 관련 차관회의를 열고 내년 6월 완공 예정인 임진강 중류의 군남댐 증축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군남댐은 평상시 저수량 7천만 톤에 비상시 저수량이 1억3천만 톤이지만 북한의 황강댐은 3~4억 톤을 저수할 수 있다는 겁니다. 군남댐을 계획할 때 황강댐의 규모를 몰랐던 건지 의아합니다.

 

민주당의 송민순 의원은 지난 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현인택 통일부장관에게 우선 1997년 유엔에서 채택한 ‘국제수로의 비항해적 이용에 관한 협약’에 남북한 동시 가입을 위해 북측과 협의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그 협약에 물 방류시 사전 통보를 비롯해 수자원 공동 이용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이 다 들어 있다는 겁니다. 일단 협약에 가입한 후 양자 합의를 통해 구체적인 협력을 해야 하며, 물이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 만큼 남한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서독을 흐르는 제일 큰 강인 엘베강 문제에 있어서도 하류인 서독이 훨씬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겁니다.

 

-독일에서 배울 것-

 

물이 칼이라면 상류를 가진 쪽이 칼자루를 쥔 것이니 임진강의 경우 칼자루를 쥔 건 북한입니다. 칼자루를 쥐고 흔들면 칼끝을 쥔 쪽은 다칠 수밖에 없습니다. 상류에서 수공에 나선다 해도 댐만 있으면 막을 수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공무원들이나 군인들이 제 할 일을 하면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겠지만 근무태만이나 판단 착오가 다시는 없으리라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이번에도 제 할 일을 한 건 오직 한 사람, 임진강 상류를 지키다가 새벽 2시 50분에 수위 상승을 사단본부에 최초로 보고한 초병뿐이니까요.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다시피해온 정부가 물을 방류하며 사전통보하지 않았다고 북한을 비난하는 건 우습습니다. 그런 건 사이좋은 이웃 사이에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요. 부디 남북한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지 말고 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과 물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기 바랍니다. 보름 남짓이면 추석입니다. 신속한 사과와 보상으로 임진강 희생자들의 귀천(歸天)을 도운 것처럼, 설날을 잃어버린 용산 참사 유가족들이 추석 명절이라도 제대로 지낼 수 있게 사과하고 보상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1:49

2009년 1월 11일(남편의 일기):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8월 20일(아내의 편지):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 용서하며 아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을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 편히 쉬시게 할 겁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변치 않는 사랑-

 

아시다시피 위의 ‘남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고 ‘아내’는 이희호 여사입니다. 저는 두 분을 만난 적이 없지만 책에서 만난 두 분을 어떤 은사보다 존경합니다. 그래서 대통령, 여사 하는 호칭보다 ‘선생님’이라 부르길 좋아합니다. 두 분은 각기 한반도의 평화와 여성 지위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세계적 인정을 받았지만, 제가 그 분들을 존경하는 건 두 분이 서로에게 보인 변치 않는 사랑 때문입니다. 감옥의 김선생이 이선생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합니다. 이선생이 옥중과 병상의 남편을 위해 손수 한복을 짓고 장갑을 뜨개질한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결혼은 감정적 무장해제를 뜻하는 일이 많아, 집은 일탈과 퇴행의 공간이 되는 일이 잦습니다. 밖에서는 교양인으로 행세하는 사람들이 배우자를 막 대하고, 남에겐 결코 하지 않을 심한 말을 배우자에게 쏘아대는 일도 흔합니다. 다른 연령층의 이혼은 줄고 있는데 소위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건 긴 결혼 기간 동안 쌓인 불만과 분노의 탓이 큽니다.

 

남편은 아내가 무섭다며 밖으로 돌고, 아내는 남편에게서 찾지 못하는 보람을 자녀에게서 찾으려 과도한 관심을 쏟습니다. 집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지고 매식 덕에 덩치만 큰 아이들은 젓가락질도 배우지 못한 채 6·25도 5·18도 모르는 상식 결여자로 자랍니다. 외국인 친구가 “한국 사람들은 가족끼리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드문데 왜 그렇게 큰 집을 사고 싶어 하느냐?”고 묻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김 선생은 평생 단 두 번 결혼식을 주례했는데 1997년 4월 배우 오정해 씨의 결혼식에서 행한 주례사가 유명합니다. 부부는 상대방의 기를 살려줘야 하고,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간적 성장과 일에서도 하나가 되어야 하며,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상대가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하려 할 때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부부가 도덕적으로 떳떳하게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그 두 사람의 사랑은 물론 가정이 행복해지고, 자식들도 부모를 존경하며, 이를 통해서 가정 전체가 단합된 모습을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도덕적으로 떳떳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바보 취급을 당합니다. 가정에선 떳떳한 삶 대신 어떻게든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행복은 자꾸 멀어지고 자식들은 부모를 경원하며 가족 간의 단합과 존경은 책 속의 얘기가 되어갑니다.

 

-하느님과 하나님-

 

이 글의 첫 두 문단에서 보듯 한 분의 ‘하느님’은 다른 분의 ‘하나님’입니다. 두 분의 종교는 47년 전 결혼 당시부터 엊그제 사별의 순간까지 달랐지만, 그 다름이 사랑과 존경을 방해한 적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부와, 부부가 되려 하는 사람들이 두 분의 동행에서 배우기를 바랍니다. 우연과 필연 이 맺어준 부부의 연(緣)에 감사하며, 서로의 같음을 바다로 보고 다름을 물거품으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둘이 함께 양심을 돛 삼아 항해하다가 마침내 닻을 내릴 때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행복하게 토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1:39

낡은 콘택트렌즈를 바꾸러 종로1가 안과에 갑니다. 한때 높았던 건물이 이제 꺽다리 손자들 사이 키 작은 할아버지 같습니다. 1층 로비 안내원의 무표정도 15년 전 앳되던 렌즈담당자의 친절도 여전합니다. 병원이 아니라 오래된 친구 집입니다. 마침 점심시간입니다. 길 건너 혈관처럼 이어진 작은 골목 켜켜이 수백 개의 밥집이 있으니 그 중 한곳을 골라 들어가야겠습니다.

 

-사라진 골목들-

 

분명히 종로구 청진동, 조선시대 서민들이 세도가들의 말을 피해 들어가 숨던, 즉 피마(避馬)하던 피맛골인데 빼곡하던 빈대떡집, 생선구이집 모두 사라지고 새로 지은 고층건물들이 혼란에 빠진 중년을 내려다봅니다. 언뜻 광화문과 함께 인근 뒷골목도 ‘정비’되었다는 보도가 떠오르지만, 머리보다 의리 있는 발은 새 건물들 사이를 서성입니다. 하늘을 이고 앉아있던 수십 년 전통 해장국집이 20층 건물 1층에 옹색합니다. 자식들 등살에 시골집 포기하고 아파트에 세든 늙은 어머니 모습입니다.

 

밥은 그만두고 광화문으로 갑니다. 종로구에서 18년을 산 제게 광화문은 고향이고 추억입니다. 먼 길 다녀오는 어스름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이면 집에 다 온 듯 마음이 놓였습니다. 길눈은 어두워도 광화문통만은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왕복 차로 6개를 줄여 만든 폭 34미터, 길이 557미터 ‘광화문 광장’이 낯섭니다. 광장 양끝에 폭 1미터, 길이 365미터, 깊이 2센티미터 ‘역사물길’이 그나마 귀엽습니다. 동쪽 물길에는 조선건국부터 2008년까지의 주요 역사가 617개 돌판에 새겨져 있고, 서쪽 물길은 후세가 기록하도록 빈칸으로 두었다고 합니다.

 

낯설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결국 적응하게 됩니다. 다만 그 과정이 스트레스를 수반합니다. 사람을 위로하고 안정시키는 건 낯익은 풍경입니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오래된 건물들을 보존하는 건 그 자체의 가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위한 배려일 겁니다. 언론은 스트레스로 병원을 찾은 사람의 수가 2005년 6만6천 명에서 2008년 10만천 명으로 53% 증가했다고 야단이지만, 저로선 4천 8백만 국민 중에 겨우 10만여 명만이 스트레스 환자라는 게 오히려 놀랍습니다. 올해엔 온 나라가 ‘정비’중이니 환자의 수가 더 늘어날 겁니다.

 

이순신 동상 앞에는 ‘분수12·23’이 있습니다. 원균이 이끌던 조선군이 왜구에 대패한 후 재기용된 이순신 장군이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며 전의를 다졌고 23번 전투를 치러 23번 승리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지만, 인터넷엔 분수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하필이면 일본 왕의 생일 날짜와 같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이순신의 승전횟수도 23번이 아니라는 겁니다. 해군교육사령부 부설 충무공리더십센터의 제장명 교수가 2007년 봄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소설과 드라마 등에서 주장한 23전 23승의 근거가 희박”하고,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치른 해전은 총 43회로 38번은 승리했으나 5번은 전과나 피해가 뚜렷하지 않다고 합니다.

 

‘63빌딩’도 있긴 하지만 고유명사가 된 숫자는 ‘6.25’ ‘8.15’처럼 대개 어떤 사건을 나타냅니다. 네 개의 숫자는 기억하기도 어렵고 “일이이삼 분수에서 만나자”거나 “십이이십삼 분수에서 만나자”는 건 어색하니 그냥 ‘광화문 분수’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솟구치는 물기둥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솟아납니다. 저기 섰던 큰 나무들은 어디로 갔을까, 겨울이 오면 저 분수들은 무엇을 하고 22만여 포기 꽃들로 만든 카펫은 어떻게 될까...

 

-인공적 아름다움-

 

새 렌즈를 끼면 세상이 잘 보이지만 낄 때뿐입니다. 분수의 아름다움은 물을 뿜을 때뿐이고, 꽃 카펫이 아름다운 것도 꽃이 피어있을 때뿐입니다. 470억 원을 들여 광화문 광장을 만든 이유가 무엇이든 부디 잠시 눈 즐거운 인공정원 이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훗날 저 ‘역사물길’ 속에 이 광장이 떳떳한 성취로 기록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