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1:19

1980년대 식사 자리에서 한번 뵙고 처음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겉모습만 조금 변하셨을 뿐 여전하신 것 같습니다. 2주 전이던가요? 거제도 생가 옆 광장에서 자신을 기념하는 ‘기록전시관’ 기공식에 참석하시어 말씀하셨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여러 행태로 볼 때 머지않은 장래에 형무소에 가게 될 것이라 믿는 국민이 전부”라고. 또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에게 ‘6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돈을 주고 이뤄냈으며 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실소를 자아내는 ‘증언’ -

 

지난주 월요일부터는 SBS라디오 ‘한국현대사 증언’에 출연하여 ‘집권비망록’을 들려주고 계신데 자기합리화와 책임 전가가 실소를 자아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IMF 외환위기 사태를 언급하시며 경제가 나빠지기 시작할 때 “나는 상당히 걱정을 했는데, 경제부총리나 경제특보 같은 사람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하신 것, IMF 사태를 초래한 책임의 ‘최소한 65%’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있다고 하신 게 재미있습니다.

 

SBS가 왜 하필 지금 ‘집권비망록’을 방송하는지, 거제시가 왜 시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영삼 ‘기록전시관’ 건립을 하는지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정치란 비정치적인 사람이 이해하기엔 너무도 복잡한 수학이니까요. 빚은 있지만 비리 정치인과 경제인들 덕에 통이 커진 제가 보기에 건립비용 34억 원은 큰돈이 아닙니다. 김정일에게 주었다는 6억 달러도 ‘천문학적’ 액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천문학적’이라는 표현을 쓰려면 둘째 아드님 현철 씨를 구속되게 만든 1997년 한보사태 때의 부정대출액처럼 수조 원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이미 아실지 모르지만 지금 국민의 분노와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노 전 대통령 가족이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부정은 그 이전 대통령들과 그 가족들이 저질렀던 비리까지 상기시키며 냉소와 자포자기를 부추깁니다. 이런 판국에 그런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신 분이 자꾸 추임새를 넣으시니 안타깝습니다. 차라리 “나도 아들 단속을 제대로 못했었는데 남의 일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고 하셨으면 적잖은 국민의 공감, 나아가서 존경까지 사셨을지 모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국민은 아직 ‘문민정부’가 장기적 비전 없이 취했던 조처들의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세계화’ 구호가 불붙인 영어열풍은 영어교육을 15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시켰지만 우리의 토플 성적은 세계 최하위권이고, 1996년 서둘러 가입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한국은 좋지 않은 일에서 늘 선두그룹입니다.

 

여기저기 보도된 것만 보아도 여성 자살률 1위, 전체 자살률 3위, 출산율 꼴찌, 청소년 흡연율과 자살률 1위, 수면 시간 짧기로 1위, 근로시간 길기로 1위, GDP(국내총생산)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꼴찌, 결혼건수 대비 이혼율 3위, 자동차 사고율 4위, 고령인구비율 8위, 빈곤율(소득이 중위 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상대적 빈곤층의 비율) 6위... 최근엔 사회보장의 척도인 ‘사회임금’ 수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스웨덴의 사회임금 비율은 48.5 퍼센트, OECD 평균은 31.9 퍼센트인데 우리나라 비율은 7.9퍼센트밖에 안 되니 국민이 구조조정에 격렬하게 대응하는 거라고 합니다.

 

-소리 없이 말하는 법-

 

아무리 젊어보이셔도 여든이 넘으셨습니다. 연세 높은 분들이 존경받는 첫 번째 조건은 떠오르는 생각을 다 발설하지 않는 거라고 합니다. 청와대 시절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몸은 빌릴 수 없다”며 조깅을 열심히 하셨지만 이제 연세도 있으시니 책을 좀 뒤적여 보시면 어떨까요? 마침 내일은 ‘책의 날’입니다. 소리 없이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활자들을 통해 다변을 능가하는 침묵을 터득하시고 존경받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1:16

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가 아프다기에 문병을 가니 2인실에 있습니다. 그새 생활이 좀 나아졌나 생각하는데 친구가 말합니다. “5인실에 있었는데 환자 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문병 온 사람들이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 부르면서 나한테도 교회 다니세요, 예수님 영접하면 나아요, 자꾸 그러니 괴로워서...”

 

집에 가는 길에도 천국을 파는 사람이 여럿입니다. 오리고기 전문식당 앞에선 교회 선전 플래카드를 든 10여 명이 찬송을 부르고 있고, 길을 건너니 중년 여인이 아는 사람처럼 다가와 교회광고지를 끼운 휴대용 화장지를 건넵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50미터쯤 가다가는 “불신지옥 예수천국”이라 쓰인 커다란 붉은 십자가를 둘러멘 남자를 만납니다. 어둡고 지친 얼굴, 갈비탕이나 한 그릇 먹이고 싶지만 오해를 사기 쉬우니 그냥 갑니다.

 

-천국 가는 길-

 

며칠 전 택시를 타고 새로 지은 교회 앞에 신호대기중일 때 운전기사가 말했습니다. “로또만 맞으면 교회를 지을 거예요.” 독실한 신자인가 생각했더니 다음 말이 엉뚱했습니다. “신학교 나와 취직 못한 목사, 전도사 많으니 두엇 불러다 미리 헌금 수입을 몇 대 몇으로 나눌 건가 정한 후에 간판을 다는 거예요. 수입이 아주 짭짤하대요. 교회나 절이나 종교기관은 세금을 안낸다면서요?”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천당 못 간다”고 가르치는 건 바로 이런 교회일지 모릅니다.

 

18세기 스웨덴의 천재 과학자이며 신학자인 스베덴보리는 56세 때 영계를 체험한 후 지옥과 천국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수많은 신학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는 죽음은 있으나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 죽은 후 천국으로 가는가, 지옥으로 가는가를 결정하는 건 종교도 지식도 재산도 아니며 지상에서 진실로 행한 이타적 사랑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침내 집입니다. 힘들 땐 텔레비전을 켜놓고 생각 없이 앉아있는 게 제일이지만, 화면 속엔 가문 밭에서 말라 죽어가는 배추들, 물을 맘껏 먹지 못한 가축들이 빈 수통을 핥는 모습이 처연합니다. 얼른 채널을 돌립니다. 폭풍우와 태풍을 견디려면 횡대보다 종대를 이루어 걸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살수차를 동원해서 물을 쏘아대고 그 물에 흠뻑 젖은 유명 개그맨들이 크게 웃습니다. 저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은 해남의 목마름을, 아니 세상의 목마름을 모르는 거겠지요. 경제위기가 뭐야 하는 부자들처럼 말입니다.

 

서울 큰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성경공부 모임에서 “경제 상황이 이러니 모두들 힘들잖아요?” 했더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을 짓더랍니다. 지난 주 발표된 고위공직자 재산과 국회의원들의 후원금 내역을 보면 쉬이 이해가 됩니다. 공직자 60퍼센트의 재산이 늘고 한나라당 의원들의 후원금은 92퍼센트나 늘었다고 하니까요.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은 4억4천390만 원이 늘어 356억 9천 여 만원이 되었답니다. 집 한 채만 빼고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하셨으니 대통령의 재산이 늘어난 건 좋은 일입니다.

 

-천국 만들기 캠페인-

 

지구촌의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시민단체 지구촌나눔운동이 발행하는 소식지 봄 호의 표지 글은 “물은 곧 빈곤이다”입니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은 수도꼭지만 틀면 물을 마실 수 있지만 나머지 3분의 2는 생존을 위협하는 갈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나라 교회들이 천국가기 캠페인 대신 물 아끼기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요? 죽은 후에 천국 가라고 설득하는 대신 목마르고 굶주린 이웃의 입에 물과 음식을 넣어주며 살아서 천국을 만들자고 캠페인을 벌이는 건 어떨까요. 마침 오늘은 만우절, 누구나 바보가 되어 웃는 날입니다. 이 날을 기해 지금 나보다 힘겹게 사는 사람들에게 내세의 천국을 양보하는 바보가 되기로 결심하면 어떨까요? 그거야말로 이현주 목사가 얘기한 “예수, 그분을 다시 바라보자”가 아닐까요? 우리들의 천국을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일이 아닐까요?

 
 
 

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1:12

키위는 제주도 키위, 당근도 제주도 ‘흙당근’만을 고집하지만 직접 가는 건 오랜만입니다. 비행기가 난기류를 통과하느라 심하게 흔들립니다. 옳은 일보다 옳지 않은 일을 많이 해서 벌을 받는가, 잠시 하늘의 심판을 생각합니다.

 

마침내 제주. 바닷바람이 이마를 씻어줍니다. 한창 성이 났을 때조차 곡선으로 솟구치는 바다, 둥글게 구르는 산들, 비뚤비뚤 밭을 그리는 밭담들, 거리에서 집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목 올레, 검은 흙과 검은 돌, 엎드려 바람을 맞는 초가집의 검은 돌 박힌 벽, 유채꽃과 해녀, 무엇보다 사람의 동네를 기웃거리는 낮은 하늘이 아름답습니다. 그래, 서울은 천박한 졸부들의 놀이터가 되었지만 제주야 너만은 언제나 지금 같아라, 염원합니다.

 

-기울어지는 제주-

 

송악산에 오르니 바다 건너 산방산과 군산이 당당하고도 담담합니다. 제주도 산에는 봉우리 대신 오름이 있습니다. 용암이 흐르며 나무와 풀을 지워 흙이 드러난 흔적이지요. 숱 없는 아버지의 정수리를 보며 아버지의 세월을 생각하듯, 오름을 보며 산의 나이와 속마음을 헤아리는데, 제주 출신 동행이 말합니다, 저곳에 50층 건물이 선대요.

 

제주도가 말레이시아 버자야그룹과 ‘버자야 제주 리조트(BJR)’를 설립, 서귀포시 예래동 일대에 ‘예래 휴양형 주거단지’를 조성한답니다. 2015년까지 18억 달러를 투자, 50층짜리 레지던스호텔, 37층짜리 리조트호텔, 27층짜리 카지노호텔 등을 지을 거라고 합니다. 표고 335미터인 군산과 394미터인 산방산 앞에 240미터, 170미터, 146미터짜리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선다니 제주도가 기울어질 것 같습니다. 문득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인터넷미디어 회사 ‘다음’의 글로벌미디어센터가 떠오릅니다. 많은 직원을 거느린 첨단 회사지만 제주 바람의 통로를 기본으로 설계한 건물은 2층 같기도 하고 4층 같기도 한 자연의 일부입니다.

 

당초 5층 이하 호텔과 의료시설을 짓겠다던 BJR측이 50층 호텔로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며 사업계획 변경을 요청하자 제주도가 그걸 승인했다고 합니다. 초고층 건물은 제주의 스카이라인이나 예래동의 자연 지형과 맞지 않는다며 반대하던 도의회도 어느새 조용하고, 경관은 물론 마을의 상징인 ‘논짓물’과 용천수의 훼손을 걱정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잊힌 것 같습니다. 논짓물은 바닷물과 용천수가 만나는 특이한 노천탕으로 “세계 어떤 관광지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게 다녀간 사람들의 평입니다.

 

김태환 제주지사는 예래단지가 조성되면 관광객이 획기적으로 증가할 거라고 하지만, 관광은 특정 지역에 고유한 풍광과 삶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인데 과연 고층시설 때문에 손님이 늘어날까요? 김 지사는 또 6,300명의 고용효과, 소득 1,428억 원, 생산 7,741억 원, 부가가치 4,130억 원 등의 경제효과가 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이며 내놓는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과연 이 사업들이 제주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줄까요? 최근 통계청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 군사도시들의 고용률은 낮고 실업률은 높다고 합니다.

 

-이름뿐인 평화의 섬-

 

2005년 초 정부에 의해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도지만, 60만 명도 안 되는 섬사람들은 이제 수백, 수천 억 원의 돈을 좇는 사업으로 인해 분열되었고 제주의 평화는 이름뿐입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엣가시가 되어 두고두고 사람들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겠지요.

 

도의회도, 또 내년 도지사 선거를 벌써 준비하느냐는 비판을 받는 김 지사도 모두 제주를 사랑할 겁니다. 다만 사랑의 방법을 모르는 거지요. 마침 오늘 제주와 서귀포에선 예래동의 운명을 놓고 공청회가 열립니다. 이 공청회에서 ‘자연생태 우수마을’ 예래동을 바르게 사랑하는 법이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남아있게 하기 위해 하늘이 해일과 지진을 일으키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