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0:18

금융대란 속에서 널뛰기하는 주가와 금값 소식을 읽다가 집을 나섭니다. 뉴스가 없는 곳을 그리며 어찌어찌 가다보니 북촌입니다. 안국동과 삼청동 사이 고즈넉이 들어앉았던 동네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문득문득 솟은 현대식 건물들 사이 낮은 기와집들이 초라해 보이고 구불구불 좁게 흐르던 골목이 넓어져 자동차들이 속력을 냅니다.

 

보행자를 위한 길은 없다시피 하지만 모든 길의 주인은 사람 아닌가, 오히려 느릿느릿 걸어봅니다. 정독도서관과 아트 선재센터가 만나는 너른 길에 이르니 커피 향내가 가득합니다. 미국풍 유럽풍 성업 중인 카페들이 경쟁적으로 커피를 볶아대며 행인을 유혹합니다. 여러 십년 동안 즐겨 마시던 커피지만 향기가 너무 짙으니 오히려 마시고 싶은 마음이 달아납니다.

 

카페에 들어가는 대신 도서관 마당의 벤치에 앉습니다. 바랜 노란 색 도서관 건물과 가을빛을 띠기 시작한 나뭇잎들이 이루어내는 평화 속으로 커피 냄새가 진군해옵니다. 오랜 독재 정권이 키워준 획일화에 대한 반감과 의문이 솟구칩니다. 녹차, 국화차, 모과차, 유자차, 그 차들의 향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이곳에 일렁이던 오래된 시간과 바람의 향기는?

 

-커피 향기 속 신자유주의-

 

제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초입니다. 소위 시카고학파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신자유주의 이론이 등장하던 시기이지요. 소득 평준화와 완전 고용을 통한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즈 경제학을 부정하며 무한 경쟁을 주창하는 이론입니다.

 

제가 커피에 중독되는 동안 세계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젖어들었고, 커피 농업과 거래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수확이 느리나 자연친화적인 ‘그늘 농법’대신 수확이 빠르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나 비료와 살충제에 크게 의존하는 ‘일광 농법’이 확대되었고, 무수한 중간상들의 개입으로 불공정 거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국제 시장에서 커피 값이 얼마나 오르든 생산 농민의 삶이 악화일로를 걷는다는 게 알려지면서 ‘공정 거래’ 커피도 나타났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돈이 중심인 자본주의 세계에서 커피의 ‘전락’이 특이할 것은 없습니다. 식량마저 돈벌이의 수단이 된 오늘이니까요. 식량 가격 폭등으로 금년 말쯤엔 10억 명의 세계인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게 되리라는 게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얘기입니다. 식량 생산을 2배로 늘리고 기아를 퇴치하기 위해선 매년 300억 달러의 돈이 필요하지만, 금융 위기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돈을 제일 먼저 줄일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합니다.

 

-인본(人本)은 좌파?-

 

금융은 한 마디로 돈놀이입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걸 만들어 돈을 버는 대신 돈을 이리저리 돌려 이익을 챙기는 것이지요.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금융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으니 그 꽃의 수명이 다한 건 아닌지, 정말 꽃은 꽃인지 의심해야 할 때인지 모릅니다. 신자유주의를 강매하다시피 하던 미국 정부가 시장 개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이참에 세상의 운행 방향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돈이 근본(資本)’인 세상에서 ‘사람이 근본(人本)’인 세상으로요. 네? 자본주의의 종말을 꿈꾸면 좌파라고요? 부자의 손해보다 가난한 사람의 배고픔을 먼저 생각하는 게 좌파라면 좌파가 되는 게 옳겠지요.

 

나뭇잎 사이로 바람은 불어도 커피 냄새는 사라질 줄 모릅니다. 잘 사는 나라에서 1 파운드(약 373 그램)당 9달러에 팔리는 과테말라 커피 원두, 그것을 생산하는 농부가 받는 돈은 50센트라고 합니다.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 옵니다. 다시 사람이 주인인 곳을 찾아 걸음을 옮겨야겠습니다. 어쩌면 오늘 밤 장대비가 쏟아져 저 횡포한 냄새를 지워줄지 모릅니다. 우주는 균형을 지향한다는 그 말을 믿고 싶습니다.

 
 
 

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0:14

대학이 개강을 하니 동네가 살아납니다. 중년의 조바심을 아랑곳 않고 천천히 흐르던 젊은 인파가 아예 서버립니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도넛 가게가 ‘그랜드 오프닝’을 하고 있습니다. 오색 풍선이 재색 보도에 색을 입히고, 주홍과 빨강으로 장식한 가게 안에도 웃는 얼굴이 가득합니다. 이 가게가 누구의 무덤 위에 세워졌는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3년 전 겨울, 마음이 새 동네에 정붙이지 못할 때면 언제나 이리로 발을 옮기곤 했습니다. 건물마다 1개에서 4개에 이르는 분식집들이 텅 빈 채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어 지나치기 괴로웠지만, 이곳에 이르면 오래 살던 동네에 온 듯 마음이 문득 편안했습니다.

 

한참 닦지 않아 선팅을 한 것처럼 보이는 유리창, 책을 들여다보기엔 너무 어두운 조명,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처세술 책들과 약간의 문방구류, 펼친 노트만한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하고 앉아 있는 주인. 그래도 책방은 책방이라 먼지 쌓인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다보면 가슴에 알 수 없는 기쁨이 솟고, <푸슈킨 비밀 일기>의 몇 구절이 떠올라 혼자 웃기도 했습니다.

 

“책장을 여는 건 여자의 다리를 벌리는 것과 같다. 지식이 내 눈 앞에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렇다. 모든 책들은 각각 제 나름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책을 하나 열고 숨을 들이쉬면 잉크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책마다 그 냄새가 다르다... 아무리 바보스러운 책이라도 처음 그 책을 여는 순간엔 내게 기쁨을 준다.” 평생 뭇 여성을 사랑하다 연적과의 결투에서 얻은 상처로 사망한 푸슈킨다운 비유입니다.

 

-- 문 닫는 가게들 --

 

우리 동네에서 사라진 건 그 서점만이 아닙니다. 김밥과 떡볶이에서 해장국까지 수십 가지 음식을 팔던 꼬마 식당들, 치킨 집, 생맥주집, 아이 옷집, 어른 옷집, 비디오와 책 대여점, 헤어숍, 가방 가게, 꽃집, 목욕탕까지, 기억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집들이 사라졌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은 나라가 잘 살게 되면 자영업자의 수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1인당 GDP가 1만 달러 이하일 때는 자영업자의 비율이 20 퍼센트가 넘지만, GDP가 2만 달러쯤 되면 20 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GDP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의 비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지만 결국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문제는 가게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정부나 언론도 열심히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특수법인으로 설립된 소상공인지원센터가 있어 자영업컨설팅을 해준다고 하지만 예산 때문에 도움 받을 사람의 수를 제한합니다. 홈페이지에는, 올해 3월부터 “예산 소진시”까지 자영업컨설팅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 몇 줄 건너, 7월 3일 18시 현재 신청건수가 2008년도 정부지원 예산범위를 초과하여 신청을 마감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정부의 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건 개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일깨우는 겁니다. 무수한 분식집들을 보고도 또 하나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키고, 이 나라 자영업의 어두운 미래를 경고하며 맞춤한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으로 당선된 대통령의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자영업의 앞길이 아무리 험해도 꼭 그 길을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명지대 앞으로 오십시오. 분식집이나 가방 가게 말고 책방이나 북 카페를 하십시오. 반경 몇 킬로 안에 서점다운 서점 하나 없고 북 카페도 하나 없으니 분명히 잘 될 겁니다. 주인이 텔레비전 대신 책을 보고, 가끔 유리창도 닦고 하면 말입니다. 겨울 방학쯤이면 저 도넛 가게 때문에 시름시름하다 문 닫는 집이 서넛은 나올 테니 그 때 오십시오. 흘러넘치는 음식의 거리에서 오히려 허기진 영혼을 위한 집을 세워주십시오.

 
 
 

한국일보 칼럼

dante 2009. 10. 31. 10:09

 

이 명박 대통령이 지난 주말 베이징에서 거꾸로 된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했다고 구설에 올랐습니다. 네티즌들이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에 게재된 대통령의 사진에서 태극이 뒤집힌 걸 발견한 겁니다. 비판이 잇따르자 곤혹스러워진 청와대가 언론사들에게 문제의 사진이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여 비난이 더욱 세졌습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사용되고 있는 태극기의 규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개막식 때 한국 팀의 기수인 장 성호 선수가 들었던 태극기, 박 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받는 시상식장에서 사용된 태극기 등의 네 괘가 규격보다 작다는 겁니다. 그렇게 보아 그런지 텔레비전 속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슬퍼 보입니다.

 

네티즌들이 들으면 화를 낼지 모르지만 거꾸로 달린 태극기 소식이 오히려 위안을 줍니다. 세계화를 좇느라 국어와 국사 등, 제 것 교육을 소홀히 해온 나라에서 이런 식의 잘못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하여 살고 있는 네티즌들이 그 잘못을 발견하여 문제를 삼았다는 사실이 고마워서입니다.

 

제가 본 모든 미국 영화에는 성조기가 등장하지만 태극기가 나오는 우리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언젠가 미국인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하니, 미국은 역사가 짧은 이민자들의 나라여서 인위적 통합과 단결 노력이 필요하고,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곳곳에 국기를 게양하다보니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설명했습니다. 더불어 한국처럼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일 민족 국가는 그런 식의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국내 거주 외국인의 수가 백만 명에 이르는가 하면, 정부가 앞장서서 반만년 역사를 깎아내리려하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 ‘광복 60주년’을 앞두고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민해야 할 때,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원 전 2333년 단군이 나라를 세운 것을 기념하는 “개천절”이 이미 있는데도 말입니다. 바로 이럴 때 대통령이 잘못된 태극기를 흔들며 웃는 일이 생겼으니 국민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좋은 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태극기는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인 박 영효 등이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 만들었으니, 태생 자체가 독립국가로서의 한국을 상징합니다. 우주와 자연의 생성원리를 나타내는 태극의 빨강은 존귀와 양(陽)을, 파랑은 희망과 음(陰)을 의미하며, 사괘의 건은 천(天)·춘(春)·동(東)·인(仁), 곤은 지(地)·하(夏)·서(西)·의(義), 이는 일(日)·추(秋)·남(南)·예(禮), 감은 월(月)·동(冬)·북(北)·지(智)를 뜻한다고 합니다.

 

대통령이든 국기 제작자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높은 분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실용주의자들이 그 실수를 핑계로 국기를 바꾸자고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일본 국기처럼 거꾸로 드나 바로 드나 상관없고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는 국기로 바꾸자고 말입니다.

 

그러나 애국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혼신의 힘으로 거대한 장벽 같은 러시아 선수들과의 싸움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여자 핸드볼 팀, 이 대통령이 뒤집힌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했던 바로 그 팀이 몸소 보여준 것처럼 애국은 힘든 일입니다. 이번 광복절부터 우리 국민 모두 태극기 바로 알기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부터 새로이 우리 국민이 되는 사람들까지, 태극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생각하고, 건곤이감으로 인의예지를 공부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극기가 슬픈 얼굴로 보이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