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만의 참세상

부당권력이 또 부조리가 판을 쳐도 참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기에 살만한 세상이다

마산에 울려퍼진 남원의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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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엄쉬엄/노래하며

2011. 11. 16.

살아서는 호남, 죽어서는 영남, 역사에서는 민족의 인물 김주열

 

어제저녁 마산 3.15아트센터에서 ' 김주열 열사가' 마산공연이 있었다. 마산에 살아서 그런지 김주열 열사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마음이 가고 가능한 함께 하고픈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지나온 열사의 행사때 마다 참여해 오고있다.

 

김주열 열사 186 대장정에 참여했고 마산중앙부두에서 있은 국민장에도 참여했다. 그래서인지 작년에 신청하여 얼마전 확정된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인 중앙부두와 인근 해역이 '경상남도 기념물 277호'로 등록되었다는 소식도 예사롭지않게 들렸다.

 

 

5분여 늦게 행사장에 도착하니 벌써 3.15 대강당 1층은 사람들로 다 차버렸고 안내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역시 반쯤 사람들이 자리잡고있었는데 얼마 안있어 꾸역꾸역 밀려들어오는 사람들로 이내 2층 마저도 빈자리가 몇개 없이 차버렸다.

 

왜이리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았을까? 정말 예외의 일이 벌어졌다. 제아무리 좋은 공연이라도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는 사람가뭄을 타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실 공연보다도 어쩌면 썰렁한 객석을 채워드릴 생각이 더 많았다. 알고보니 김주열 열사의 모교인 용마고등학교(옛 마산상고)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였던것이다.

 

△ 남원시립국악단 예술감독 이난초의 열창 모습

 

이 학생들이 판소리에 관심이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50년전 이 학교의 선배 열사로 인하여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그 큰 공로로 이 사회로 부터 존경을 받고있으니 후배들로서 자부심과 자긍심이 대단 할 것이며 선배를 닮고싶은 마음들이 가슴속 한켠에는 분명히 있을것이다.

 

이 창작판소리는 김주열 열사의 고향 전라도 남원에서 탄생되었고 출연진 역시 남원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박영철 남원대표님을 비롯 전라도 사람들도 다수 참여하였다.

 

 

열사 한사람을 기리기 위해 50년이 지난 지금 열사歌가 만들어 진것도 예사롭지 않지만 그 구절구절 하나하나가 분노, 정의, 애틋함, 사랑, 슬픔으로 엮어져 쉬임없이 1시간여 동안 그때의 생생한 현장을 리얼하게 소리로 표현하였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앉아 가만히 듣고있자니 60년 3월 15일로 시간여행을 와 현장에 있는듯 했다. 판소리는 처음 남원골 평온한 곳에서 출발하여 마산에 주열이가 유학오게된 배경과 3.15 자유당 부정투표 현장, 야당의 선거무효 선언, 학생들과 시민이 섞여 시위가 일어나는 경위, 경찰의 실탄사격으로 이어지는 현장이 묘사된다.

 

'대열이 혼비백산 허둥지둥 요란 헐 제 여기도 피웅 저기도 튀웅 아스팔트에도 튀웅 피웅 하늘에는 폭죽처럼 조명탄이 훤하고 담벼락에도 튀웅 튀웅 튀웅 불꽃이 튀어 어지럽고 백설기 가루 날리 듯 최루가스까지 난무헐제(눈물 콧물 앞을 가려 눈도 뜰 수 없게 되야 서로 부딫히고 쓰러지고 얼크러져, 밟고 밟히어 아비규환이 될제) 총소리는 더욱더 커저만 가니 거기 누구없소. 아이고... 사람들 우리 좀 살려 주시오. 내 말이 들리거든 우리 좀 살려 달란 말이요. 우리 다 죽어 가고 있소. 이놈의 세상이 어떤 세상이길래 사람이 죽고 쓰러지고 피터지고 또 죽어가고 이것이 참말이란 말이요. 아이고 이것이 뭔 일이여~

 

이때여 사람들이 도망가기 바쁠 적의 한 어리디 어린 학생, 들리듯 말듯 외치는 소리 "경찰 아저씨들 우리는 당신들의 아들이며 동생들이요. 총을 쏘지 마시요." 외치건만 또, 탕 탕 탕...탕 탕 탕 수백 수천발의 총성이 울러 퍼지니...

 

맥없이 쓰러지는 어린 학생을 주열이 안으려는 그 순간 어디선가 뭔가 허공을 날아 오르는 소리 탕.... 일순간 고요한 밤바다처럼 모든 것이 일시에 정지된듯 사위가 적막해 지고 아이고 이를 어쩔거나 주열이 머리가 획 등 뒤로 젖히면서 보듬던 학생을 놓치고 바람에 흩날리듯 그저 외마디 소리 한마다 못하고 나무토막 모양 그저 털썩 나가 떨어지고 마는구나...'

 

△ 출연진 임현빈,고현미, 이난초, 김윤선, 조선하, 양희정, 김형석님이 공연후 인사를 하고있다

 

이 구절을 듣고 있자니 분노가 솟구쳤다.

 

그리고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주열이 시신이 떠오르고 애타게 아들을 찿다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있는 아들을 보고 주열 어머니는 '내 앞에 있는 이사람이 누구요? 나는 이런사람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구만요. 내 아들 주열이는 나를 보면 내 손을 먼저 덥석 잡으며 엄니하고 날 부를 텐디, 아무 말 없는것이 내 아들이 아니란 말이요..."

 

도창의 소리는 이어진다.

'주열아... 주열아...

우리아들 주열아... 세상천지 어느곳에 이럴수가 있단말이냐! 죽을 일이 있으면 천번이고 만번이고 내가 대신 죽을텐디 차디찬 주검으로 귀신이 되어 돌아오니이게 진정 너란 말이냐...'

 

'중략'

 

'여보시오 세상사람들... 자식하나 바쳐서 이 나라를 바로서게 한다면 남은 삼형제에 나까지 못바치리까마는... 내 아들 주열이 죽음을 헛되이 말아주시오. 숱허게 쓰러져간 우리 자식들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 주시오...'

 

△ 공연후 뒷풀이 자리인 불종거리 토속음식점 '황토'에서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마산대표인 백남해 신부께서 각 테이블을 돌며 인사한다

 

앉아있는 내내 가슴이 미어질것 같은 느낌이었고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아마 주열이 어머니의 '내 아들 주열이 죽음을 헛되이 말아주시오.' 이 자식 잃은 어머니의 통곡이 사람들을 전율케해 마산을 거점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분노로 번져 4.19가 터지고 5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아들 주열의 산 친구들이 그때의 생생한 기억들을 잊지 못하고 산자로서 죄책감으로 김주열 열사를 기리는 일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박영철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남원대표께서 역시 뒷풀이장에서 감사 인사를 하고있다.

 

지금, 김주열 열사로 인하여 동서가 열리고 화합하고 있다. 그리고 김주열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정체성에 확고한 쐐기를 박았으며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에 흡입되어 그 가치가 되살아 나고 있어 이를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들의 가치관 정립에 긍정적인 신호탄이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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