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만의 참세상

부당권력이 또 부조리가 판을 쳐도 참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기에 살만한 세상이다

통영이 왜 통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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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엄쉬엄/보니좋네

2011. 11. 21.

마산겨레하나 3번째 역사기행, 통영, 거제에 가다

 

3년전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 소설 흔적을 찿아 벌교에 갔다온 후로 탄력을 받아 작년에는 창녕의 역사적인 흔적들을 둘러보고 내친짐에 멀쩡한 강에 기계들이 점령하여 통곡하고있다는 강, 낙동강 함안보 건설 현장까지 둘러보았다.

 

올해는통영과 거제의 문화와 역사를 찿아 길을 나섰다. 아침 집을 나서니 제법 바람이 차가웠고 옷을 두껍게 입고 나간것이 다행이었다. 버스는 아침 9시에 댓거리 경남대 앞에서 출발하여 40여분 걸려 먼저 도착한 곳이 통영의 세병관이다.

 

통영시내에 있어 이 앞을 자주 지나쳤지만 그냥 지나쳤지 어떤곳인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올해도 벌교기행에서 해설을 맡아 주셨던 김동국선생님이 수고를 했다. 세병관에 들어서자 김선생님은 '통영이 왜 통영인지 아셔요'하고 질문을 한다. 다들 멍멍~

 

선생은 삼도수군통제영(수군절도사를 총괄하는 통제사가 머무는 곳)이 이곳에 있었기에 '통제영'을 뜻하는 통영이 지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통제영이 있던 자리가 바로 세병관이었다. 통제영의 부속기관으로 6방 13공방이 있었는데 이것이 통영의 12공방으로 남아있고 나전칠기도 이 13공방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세병관은 선조37년(1604년) 삼도(경상,전라,충청)수군통제영이 통영으로 옮기면서 통제영성과 관아를 지었으나 지금은 세병관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여수 진남관, 경북궁 경희루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목조건물이다.

 

세병관이란 현판 글자 하나의 크기가 2m에 달했다. 이는 세병관을 두보의 세병마(洗兵馬)라는 시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세병마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두보의 대표적인 시로 현판 글자의 크기로 보아 당시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것을 얼마나 기뻐했는지 짐작케 한다.

 

세병관의 출입문에는 止戈門이란 현판이 붙어있는데 지과(止戈)란 창을 거둔다는 뜻으로 전쟁이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새겨져있다. 세병관은 천장이 나무 서까래가 드러나 있었으나  중앙 뒷쪽 부분에는 마룻바닥이 한단 높게 되어있었다. 이곳이 궐패를 모시는 자리로  그 천장은 우물천장과 삼면에 창호문으로 되어있었다.

 

지과문 오른쪽에 있는 2층 누각은 수항루로 왜적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던 곳이라 한다.

 

이날 충격적이고 새로운 사실은 한산대첩에서는 판옥선의 승리,  명량대첩에서는 울독목의 지형을 이용한 전술의 승리를 이루었으나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적군의 화살에 맞아 사망에 이른다. 이 부분에서 논란이 많다는데 과연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이 왜 갑판에 나와있었나' 라는 것이다. 통제사는 통제실(조타실)에 있어야 맞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이순신은 자살을 택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이미 이 전쟁이 끝나고 살아 돌아가면 옥고를 살거나 중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야 하기에 극단의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뛰어난 전략가임에 분명하나 성웅은 아니라는 것이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롤모델(용명한 군인)이 필요했는데 찿은 것이 이순신이었던 것이다. 군사정부 직후 이순신 영웅화 작업이 이루어졌고 어마어마하게 지은 현충사건축 역시 대표적인 작업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에서 이기고도 결국 300년이 지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300년 전 임란에서 망했다면 우리 민족이 단합하여 더 빨리 이 국면에서 탈출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좀더 역동적인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며 이곳 세병관에서의 설명을 마무리 했다.

 

 

 

 

 

 

 

 

아래는 김동국선생님의 실재 설명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다음 코스로 동피랑으로 이동했는데 거리는 불과 1km 남짓했다.

통영 어시장이 있고 동피랑 오르는 입구쪽 내항으로 최근 문제시 되고있는 판옥선과 거북선이 부둣가에 떠있었다.

 

 

 

부둣가에서 바라본 동피랑 마을, 이 길이 동피랑 오르는 길이다.

 

 

동피랑 언덕 길가에서 잉어빵을 팔고있는 아줌마... 언덕위라 겨울에는 바람이 거셀것 같은데...

 

 

 

 동피랑 좁은 골목길, 둘이 비켜가기가 곤란한 언덕길을 오르고 있다.

 

 

 

동피랑 꼭대기다. 낮은 언덕인데 바닷바람이 좀 쌔게 불어오고있었다.

 

 

 

동피랑에 오르면 바로 마주치는 벽화다.

 

 

 

통영항에 정박중인 어선들 사이로 호수같은 바다가 보인다.

 

 

 

오리지날 통영김밥인 풍화김밥( ☎ 055- 642- 0821)이다. 박경리선생 문학관 뜰에서 먹었다.

 

 

 

박경리선생 묘역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오르는길 애기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아래사진은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이다. 보이는것은 모형 경비초소다.

 

 

 

아래 사진들은 거제의 함목, 그러니까 해금강 들어가는 입구 왼편에 있는 바람의 언덕 풍경이다. 오전 마산에서는 추웠는데 이곳에 오니 바람도 없고 기온은 따뜻하였다. 이날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밀려오고 발길은 내내 이어졌다.

 

 

 

 

 

 

 

 

 

 

 

 

내년에도 마산겨레하나 역사기행은 계속됩니다. 김동국선생님, 또 같이했던 여러분들 수고하셨고 좋은 역사기행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