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만의 참세상

부당권력이 또 부조리가 판을 쳐도 참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기에 살만한 세상이다

지난했던 공직의 시간들을 반추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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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1.

처음 공무원이 되겠다고 맘먹은 이유는 놈팽이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기술도 돈도 빽도 없는 놈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먹고살기 위해서 양심과 인간의 존엄 따윈 생각하지 않았았습다. 순응하고 눈치보며 시키는대로 일 잘하는 모범 공무원의 길을 뚜벅뚜벅 걸었습니다.

 

그런데 한순간 주변을 둘러보니 나의 위치는 너무 초라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는 직렬이었죠.

소위 공직사회에서 말하는 한직(閑職)에 소수 소외(疏外)직렬이었었습니다.

이미 직렬별 서열과 역할이 제도화되어 더는 꿈을 펼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이런 모순의 공직구조에 할 말을 할 수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공직사회개혁을 기치로 직장협의회를 거쳐 공무원노조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노동조합은 노동3(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주어져야 온전한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이걸 정부에서 아끼는 바람에 오랫동안 법외노조로 있어면서 이의 쟁취를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습니다.

 

과정에서 수많은 공무원들이 고초를 격었고 공직에서 쫒겨나는 등 대량해직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공무원노조 활동으로 해고된 뒤 일터로 돌아오지 못한 공무원 해직자는 136명입니다. 35명이 해직자 신분으로 퇴직했고 원직 복직 요구를 하다 숨진 이는 5명이며 이 중 2명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무원노조는 조합원을 징계하고 설립신고를 반려하는 등 노조를 탄압한 옛 정부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고 현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이 일에 뛰어들었다가 징계에 해직까지 당하는 아픔을 격었지만 2009년 운 좋게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후 공무원노조가 와해되고 이합집산으로 갈피를 못잡을 즈음 공직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되었고 감사실은 출근하면 임종만 블로그 검열이 일상이 되었고 공직사회내에서 요주의 인물로 감시대상자가 됩니다.

 

이 블로그 운영이 빌미가 되어 2012년 퇴출교육대상자 명단에 오르고 항의의 표시로 1인시위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으로 또 징계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블로그를 쉬게 되었고 이명박근혜정권 시절 대형악재가 많아 시사인, 뉴스타파 등 대안언론에 관심을 가지고 후원과 구독으로 절제하며 트윗, 페북 등 SNS로 분통을 삭히곤 했습니다.

 

이마저도 눈에 거슬렸는지 직장의 감사실에서는 약점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일과 관련해서는 꼬투리를 잡을게 없자 가정의 농사일에 관심을 보이며 농장 주변을 어슬렁거렸습니다. 우리 부부는 일이 터지고 한참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집사람이 관리하고있는 농장은 개발제한구역내에 소재하고 있어 먹잇감으로 아주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20153월쯤으로 기억됩니다.

 

여느 때처럼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퇴근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직원이 전화를 받고는 노조사무실로 올라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문을 열고 들어서니 금방 왔는지 숨이 찬 모습으로 감사실 직원 두명이 서 있고 한명은 열심히 컴퓨트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방금 농장에서 왔는데 기간제 4명이 밭에서 나무를 자르다 적발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있을 수 없고 믿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나름 이들에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옳곧게 행동하고 살았는데 모든 것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임종만을 조질려고 애써던 사람들이 한 건 했다는 만족감에 입가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급하게 자판을 두들기던 직원이 A4용지 반쯤 작성하여 감찰반장에게 건냈고 이어 읽어보라고 나에게 건냈습니다.

중략 ...몇시경에 ...4명이 공용차량과 공용장비를  이용 ...계장 개인농장에서 나무를 자르다 적발되었기에 ...확인합니다.중략. 싸인을 하라는 거였습니다.

순간 머리안이 하해졌습니다.

 

 

수년간 일이 있을때면 인력 사람을 불러서 일을 시키다 기간제 임금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을 안 집사람의 권유로 용돈 벌이나 하시라고 일이 있을 때면 쉬는 날 일을 시키곤 하였습니다.

 

이때도 주말 쉬는 토요일 일을 부탁해 놓고 있었는데 기간제 반장님은 그날 가로수부산물을 처리하기 위하여 부산물처리장으로 가는 길에 길목인 밭에 들렸다 누워 있는 나뭇가지를 잘랐던 것입니다.

 

이 일로 기간제 반장을 불러 진술서를 받는 등 괴롭혔고 끝내 규정에도 없는 징계까지 먹이더군요.

기간제는 말 그대로 기간을 정하여 일하는 사람으로 징계제도가 없음에도 임종만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모양이 필요했고 이를 근거로 나에게도 징계가 주어졌습니다.

 

일을 시킨 것도 아니고 직접 업무시간에 개인용무를 본것도 아니어서 징계사유가 애매하자 구청 담당부서를 동원하여 농장을 디지기 시작하였고 개발제한구역법위반을 묶어 세트로 징계사유를 적시하여 저들이 그렇게 원하던 한방을 날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감사실의 진두지휘로 구청은 부역자로서 충실히 저의 부부를 괴롭혔고 구청의 요구대로 수천만원을 들여 농사짓는 공간을 친환경적으로 원상복구하고 구역질 나는 전쟁을 끝냈습니다.

 

2016년 어느 가을, 느닷없이 인사이동으로 새로 온 구청직원이 농장을 급습하였습니다. 이 직원은 전 담당자가 확인하고 원상복구가 완료된 부분을 또 행정처분에 형사고발까지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보라 직접 담당자를 만나 사유를 들어보기 위하여 휴대폰 녹음을 알리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준비해간 질문에 답하던 담당자는 녹취로 족쇄를 찰 형편임을 직감하고  5분여 시간이 지나자 계장님 녹음을 정시시키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라며 곤혹스러워 하였습니다.

 

이후 녹음을 끄자 담당자는 저희도 어쩔수 없습니다. 감사실에서 세부 방법까지 제시하며 지시를 합니다. 이해해 주십시오하며 오히려 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들 역시 부역은 했지만 피해자였습니다.

 

그래서 또 저들이 요구하고 원하는 방법으로 보완조치를 완료하였고 모든 처분을 두 번에 걸쳐 받아야 했습니다.

 

저들의 저의는 명명백백했습니다.

임종만을 끝까지 괴롭혀 가정을 파탄내고 공직사회 내에서는 나쁜넘으로 인식시키는 일이었습니다.

 

혼자서 저항해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고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시간과 세월이 해결해 줄 수밖에 없는 구도였습니다.

 

더디어 2018년 6월! 그렇게 허세 부리며 날뛰던 주구들은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새로운 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바로 지방정권이 교체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