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만의 참세상

부당권력이 또 부조리가 판을 쳐도 참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기에 살만한 세상이다

노향균 동지에게 울면서 쓰는 사과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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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안청/지지배배

2007. 6. 22.

노향균 동지에게 울면서 쓰는 사과의 글

노향균 동지!
삶을 살아온 과정에서 요즘 같이 가슴을 저미는 시기가 없을 줄 압니다. 부천시지부의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저의 책임이 자못 크다는 생각에 노향균 동지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더 이상 마음의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2년여 전에 노향균 동지가 나를 찾아와 지부장 출마를 권유하였을 때, 나는 계속 거절하였지요. 그 후로도 계속 찾아와 나를 찾아와 귀찮게 하는 당신에게 냉소적으로 쏘아붙였던 일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민모가 부천시지부 지도부가 되면 부천시지부 다 말아먹는다!”는 당신에게 
“당신들도 다 똑 같은 사람들이다!”며 냉소적으로 일갈하는 나에게 울먹이면서
“어떻게 내 이야기도 듣지도 않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나요?”는 말에
“시간이 없으니 5분 안에 말을 하라!”고 했던 일...
결국 짧은 시간의 설명으로 내 마음을 움직였고 당신의 권유대로 지부장에 출마하였던 일이 하필 지금에 와서 새삼스러울까요?

지부장 임기가 시작된 후 당신과 나는 적지 않은 부분에서 충돌을 하였으며,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였던 것이 지금에는 아리기만 합니다. 이에 더하여 나는 당신이 그렇게도 견제하는 민모 간부에게 전폭적인 힘을 실어준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부에 출근하던 당신을 미워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단히 아쉽게도 우둔한 나는, 당신의 노동운동 건강성과 진정성에 대하여 임기가 끝날 무렵에야 알았습니다. 당장 오늘 내일이 아니라 10년, 20년의 후배들을 위해서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당신에게, 나는 왜 그리 혹독하리만치 구박을 많이 하였던지,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기만 합니다.

존경하는 노향균 동지!
지금 부천시지부 일부 간부들이 하는 노조 분열 양상에 대응하기 위하여 지난 20일에 중앙의 동지들과 함께 내려 온 당신의 얼굴을 몇 개월 만에 보는 것인가요?
그 자리에서 당신은 나에게 
“나는 결코 사람을 잘못 선택하지 않았다!”며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이 왜 그리 나의 가슴을 울리던지요? 
평소에는 싸우다가도 막상 조직의 위기가 닥쳐오니까,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행동에 옮기는 박명하 초대지부장님과 나에게 감동하여 쏟아내는 눈물이라는 것을 당신의 눈은 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눈물을 보면서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더군요.
“운동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나는 오늘의 이 지리멸렬한 싸움에서 당장에 이긴다는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다만 적어도 운동의 건강성을 지키고 정당성을 조합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어렵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사태가 온 것에 대하여 전직지부장의 책임이 어찌 없겠습니까? 역사는 현재 진행형인데 지부장의 임기가 끝났다고 이 책임을 방기해야 할까요? 그것이 양심 있는 사람의 처신일까요? 그것은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해야 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책임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나와 친분이 있는 직원에게 전화하기 위하여 개인정보를 보았더니, 조직에게 하고 싶은 말에 “1톤의 생각보다 1그램의 행동이 중요하다.”로 나를 감동시키더군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노향균 동지!
얼마 전에 헨릭 입센이 쓴 ‘민중의 적’이라는 희곡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가슴을 치고야 말았습니다. 120여 년 전의 노르웨이와 현재 우리의 천박한 문화가 어쩌면 그리도 흡사할 수가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민중의 적’에서 스토크만 박사는 막강한 권력자이자 친형인 시장과 죽음을 각오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친형(시장)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스토크만 박사는 눈 하나 깜짝도 않고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데 혼신을 다합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정의롭고 정당하다는 신념 하나로 가정이 풍지박살 나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문학과 사상의 힘은 이렇듯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노르웨이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학은 시대를 대변하는 것이지요. 행복지수가 가장 높기로 유명한 노르웨이가 원래부터 그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르웨이도 1세기 전에는 우리와 같은 천박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노르웨이를 1세기 만에 이렇게 만든 저력이 무엇일까요? 내가 북유럽을 미력하게나마 연구한 바에 의하면, 입센이라는 작가가 사회 변화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으며(옆 나라 덴마크에서 조금 이른 시기에 그룬트비 목사가 사회 변화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같은 결과를 가져온 일치 현상) 노향균 동지 같은 바보 같은 사람들에 의하여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결과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지쳐있을 동지에게 ‘민중의 적’이란 희곡의 일독을 권하고자 합니다.

노향균 동지!
누가 말하더군요. 작금에 있어 노동운동은 옛날 독립 운동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입니다. 독립 운동은 피아구분이 명확하여 국민들에게 호소력이 강하였던 데 반하여, 현실의 노동운동은 피아구분의 불명확성과 자본과 권력, 그리고 수구언론들에 의한 왜곡과 호도를 일컬어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내일은 소위 ‘비대위’라는 사람들이 우리와 갈라서기를 결의하는 날이네요. 그런 점에서 착잡한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하나로 합쳐도 권력과 자본에 대항하기 힘든 이 와중에 자신(소수 간부)들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하여 쪼개져 나간다니, 서글픔을 넘어 노동운동에 대한 회의마저 느낄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 진실을 누가 알려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아는 사람이 알려야지, 진실을 아는 사람조차 외면한다면 세상은 어찌되겠습니까?

이렇게 절망적일수록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이런 말씀처럼 말이에요.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처음이 나중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나중이 처음을 규정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 신선생님은 늘 처음처럼 하라고 저 글을 써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시곤 하지요. 우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처음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날 상처를 준 점, 다시금 용서를 구합니다.

2007년 6월 22일에 부천에서 
공무원노동조합 부천시지부 조합원 이종만 두 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