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그것은 삶에 대한 밀착 - 오 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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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된 공감

2018. 7. 5.




통장 갯수가 늘고, 집 평수가 넓어지고, 차 배기량이 커졌다.

근데 삶이 이래도 되는 건지 자꾸 의문이 든다.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사는 집, 누구나 쓰는 제품들, 다들 타는 차, 다들 하는 유희. 

대동소이하게 평준화된 삶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훗날의 후회가 예감돼 어딘가 불안하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구나'라는 생각은 항상 20년쯤 지나야 들기 마련인가.

이십대에는 그때를 어정쩡하다고 느꼈는데 사십대에는 어쩐지 또 이 나이가 어정쩡하다.


꾹 다문 입매로 짐짓 근엄을 떨고 가끔 제 잘난 맛에 거들먹거리지만 정말 별거 없는 중년. 

어떤 날은 아주 작은 계기로 사는 게 기쁘고 또 어느 날은 까닭 없이 가슴이 먹먹하다.












혼자인 여자, 그러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영화는 그녀를 이렇게 소개한다.


세츠코(루시)는 혼자다.

그녀는 애인을 친언니에게 빼앗긴 이후부터 줄곧 비혼인 처지다.


세츠코는 타인으로 겹겹이 포위된 세상을 홀로 살아간다.

이물질을 염려해 손바닥만한 마스크를 쓴 그녀의 현실 무대는 보자기만 하고

그 자신이 먼저 부유하는 먼지 취급을 받는다.


회사에서도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절대 마음 붙이지 않으며 마음을 붙이는 것 또한 허용하지 않는다.

모두의 위선을 속속들이 폭로하며 모두로부터 멀어진다.


화려한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만,

그녀는 화폐만큼의 소장가치도, 교환가치도 없는 존재다.


해가 뜨면 멀쩡한 그녀는 해가 지면 전혀 정리되지 않은 집에 파묻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다른 언어를 배우려 만난 한 남자의 별 의미없는 포옹에 모든 게 달라진다.

그 감정은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느낌과는 질적 차이가 컸다.


혼자인 루시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인생은 참 종잡을 수 없다.









그때부터 그녀는 탈고립 행보를 시작한다.

사랑을 찾아 피로와 권태로 맥이 풀린 일본을 벗어나고 

그녀 인생의 가해자이면서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언니와 동행하는 대담성을 보인다.









포옹, 그것은 삶에 대한 밀착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 꼭 사람일리는 없다.

고양이나 식물이 사람에게 주는 기쁨도 새삼 신기하다.


사람은 사람에게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안긴다.


그러나 대개 사람과 사랑은 인간에게 유용하다.

그로 인해 대충 살던 생을 한층 더 깊게 실감하기 때문이다.











영어 배우기? No, 자기 진실 말하기!


루시의 몸부림은 철없는 중년의 객기가 아니다.


중년의 시무룩한 힙라인처럼 부박한 현실을 어떻게든 딛고 일어나 삶에 감응하려는 발버둥이다.


타인을 호명하는 데에 서툴던 그녀가 '존'을 '조~~온'으로 발음하듯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공부다.

그 행위는 살아 있는 자기 삶에 말을 거는 연습이다.


그녀의 '존(Jone)'에 대한 구애와 투자가 남는 게 없더라도

루시는 분명 '존'이라는 자극에 의해 재생되었다.


비록 한때여도, 사랑은 우리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성화한다.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못보던 무지개를 프리즘 하나로 확인하듯이,

감정의 바닥부터 정점까지를 모두 경험하는 사랑은 

삶에 대한 정서적 지분을 넓혀주는 최고의 투자인 셈이다.












무언가를 배웠다는 건 이전에 없던 게 생겼다는 의미다. 

영화 도입부에 일어난 자살 사건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던 루시는

자신의 절실함에 전력함이 얼마나 현명한지를 깨달았다.


사람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뉴스나 책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삼십대에 해야 할 일' '사십대에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기준은 과연 누가 정한 걸까.

누군가는 '상식'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았다.




우리가 서둘러 체념했던 말이 삶이 되는 쾌감


일필휘지로 쓴 삶이 있다면, 

인생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썼다 지우고 다시 쓰면서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경우도 있다.



루시로 변한 세츠코는 한번의 포옹에서 각별함을 느꼈다.

사는 동안 그 감정을 잃지 않는다면 매순간은 그만큼 절실하고 특별해질 테고

우리를 감싸 안은 생의 품 또한 한결 넓어질 것이다.


아울러 루시는 이미 쳐 있던 괄호를 벗어던지며 자기 갱신을 했다.

어제의 나를 오늘 다시 확인하기보다 다른 내가 될 가능성을 백지 위에 실컷 썼다.

나는 그녀의 그 철없음을 적극 옹호한다.


루시는 현실의 세츠코로 돌아왔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그 현실을 대하는 세츠코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하이, 마이 네임 이즈 루시.

나이스 투 미츄.


내일 역시 우리의 기대에 맞춤하게 후련하거나 흡족하진 않을지 몰라.

설령 그렇더라도,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했기에 살아갈 힘이 생기는 거야, 그렇지 않아 조~~~~~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