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씨가 독점한 고약한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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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or 한담

2019. 12. 29.

진중권 씨가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는다면서도 

최근 자신의 행위는 '부패한 친문 측근들' 때문이라는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도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부패한 집단권력에 맞서는 비범한 개인, 즉 투사로 셀프 격상하는 목적에 충실했다.

 

못된 인간들이 그런다.

"다 너를 위해서 그런다고. 사랑해서 때린다고."

 

윤석열 총장도 언제는 자기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더니 대통령에 대한 충정은 변함없다고 언론플레이를 했다.

 

말은 복잡해도 본질은 단순하다. 

다 행위와 결과로 드러난다.

 

 

 

 

 

↑진중권 씨는 불과 몇 년 전에 조국 교수로부터 받은 캣타워를 SNS에 올렸었다.

 

진중권 씨는 자신이 오랜동안 "국이"라고 부르던 친구 가족에게 행하는 폭력을 정의와 결기로 포장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지나치게 자신만을 향하고,
자기 존재 증명 강박에 갇히는 일인칭 언어는 타인을 가차없이 내리누르는 폭력성을 띤다.

설령 표창장 위조가 맞더라도 재판 결과를 보고 등돌려도 늦지 않다.

우리는 무결점의 순결한 공간에 살고 있지 않다.
집착과 질투와 지배 욕망과 인정 욕구를 지닌 인간들이 득실대는 현실에서
논쟁하고, 오독 오판하고, 사랑하고 떠들고 싸우고 부대끼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살아간다.

어처구니 없는 혐의로 친구의 부인과 친동생이 구속되고, 
자식들이 난도질 당하고, 그 상황을 친구의 노모가 간신히 견딜 때 
진중권 씨는 기민한 태도로 그들에게 돌을 인정사정 없이 던졌다. 

최근 조국 교수가 구속 기로에 섰을 때는 더 신이난듯 떠들어댔다.
보는 순간 위조인 줄 알았다는 최성해 총장 발언처럼 자신은 척 보면 안다면서도 아무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자칭 진보가 내세우는 정의와 윤리가 과연 그렇게 고약한 것인지 나는 정말 어지럽고 어리둥절하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는데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진중권 씨는 이전에도 타인의 고통을 비아냥 소재로 삼았다. 고 송지선 아나운서를 조롱한 진중권의 트윗.

 

 

 

우리 마음은 불완전하고 뾰족하여 인간 모두를 사랑할 능력이 절대 없지만, 
사람이 광야에서 홀로 울 때 그 사람을 보듬지는 않더라도 야멸찬 말을 하려던 입을 다물고,
돌을 던지려던 팔을 거두는 어수룩한 인간일 수는 있다.

나는 시시비비를 가려 법으로 다스리는 법치와 함께
그런 덜 정의로운 태도가 우리를 야만으로부터 구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