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희망 있는 지옥에서 살아남기

댓글 0

합의된 공감

2021. 10. 16.

전 세계 주류 매스컴(mass communication)이 무시할 수 없는 유행 아이템이 된 "오징어 게임"을 보았다.

나는 요즘, 불편과 결핍이 일상이어서 다들 그러려니 하며 살던 시절의 상징 같은
달고나와 구슬, 딱지, 오징어 게임 등이 지구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얼떨떨한 시간을 보낸다.

 

그 덕분에 어린 시절과는 다른 운율과 속도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되뇌는 재미를 맛봤다.

 

 

 

 

승자 독식 경쟁을 부추기는 나 사는 현실에서는

돈 벌려다 목숨을 잃는 이야기가 흔하게 들린다.

 

연줄이 없어 외줄에 의지해 고층건물 청소를 하다 추락사한 청년이 있고,

주식, 코인, 부동산 시장에는 배달 노동자가 신호 떨어지기 무섭게 내달리듯

남보다 1초라도 먼저 매수 매도 타이밍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글로벌 대기업의 흥망성쇠도 경쟁 회사보다 먼저 적기를 포착하는 기술에 달려있다.

 

 

 

 

오징어 게임은 내러티브의 신선함보다는 인물과 공간을 구성하는 시각적 변화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가령 탈락자의 시신을 거두는 관은 선물 포장 상자처럼 큼지막한 리본이 달렸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배경음악은 동요처럼 피가 튀는 잔혹극을 보는 시청자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세모와 네모 등의 기호를 전면에 새긴 가면을 쓴 등장인물의 스타일도 눈에 띄었다.



 

 

계단식 침대는 카메라가 출연자를, 참가자가 서로를 감시하기에 딱 좋은 배치다.

 

 

 


원근법의 모순을 드러낸 에셔의 작품을 보는 듯한 계단식 건물과 파스텔 색상은

그 출구 없는 암울한 장소를 따뜻한 판타지로 그려낸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우화를 차용한 서바이벌-데스 게임은 대개 

주인공을 제한된 공간이나 상황에 몰아넣고 그의 분투를 관찰하는 설정과 플롯을 가진다.

"오징어 게임"도 루저 성기훈을 '을들의 전쟁터'인 진흙탕에서 볼썽사납게 싸우는 개들 중 한 마리로 가두고 

그가 위험 상황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투쟁하는지 관찰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 참가자들이 첫 번째 게임 후 과반수 투표로 게임을 중단하고 현실로 복귀하지만
그들은 게임보다 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각성한 채 

다시 자신들이 거부했던 세계로 돌아온다.

그들 속에는 "자신은 절대 죽지 않는 "안전'"을 담보로 게임과 규칙을 만들고 
직접 게임에 참여하고 즐기다

인간 전체를 경멸하다 죽는 인간에 그친 인물 '오일남'도 있다.

그가 물었다.
"자넨 아직도 사람을 믿나? 그 일을 겪고도?"

 

 

 

 

 

 

 

455명이 죽어 나가는 살처분 게임에는 목적 지향형 인간 '상우'도 참가했다.

그는 돈을 둘러싼 게임에 익숙하고, 머리 잘 쓰고 눈치와 동작이 잽싼 데다 스펙도 빵빵하지만,

그 역시 세상의 크나큰 성취와 비교하면 근본 없는 흙수저에 루저일 뿐이다.

 

냉철한 인간 상우는 게임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다가 마지막 순간에 사람에게 기댄다.
최후의 1인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1인을 부탁하며 제 목숨을 버린다.

'상우'의 삶의 원동력은 '돈'이었을 테고, 그가 가장 먼저 숙고하며 결정한 사항도 사람보다는 
돈이었을 테지만 그는 마침내 인간을 의지한다.

 

 

 

 

 

한국에는 어린시절에 몸에 익힌 놀이처럼 친숙한 몇몇 상식이 있다.

1. 연줄을 동원해 줄을 잘 설 것. 
2. 결혼과 인맥 등으로 편을 먹고 되도록이면 힘센 (미국 일본 같은 선진국, 대기업, 대도시, 대단지, 전문직업군 등) 쪽에 붙을 것.
3. 자기 혹은 우리 편 이익을 위해 죽기 살기로 공격하거나 방어하며 자기 효용성을 입증할 것.

 

그런 '한국서 살아남기 게임'을 하면서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를 외치고 싶은 때 간혹 있지만,

일면식도 없는 바리스타가 침을 뱉거나 독극물을 타지 않았다는 거대한 믿음이 있기에

나는 태연자약 커피를 마시고 택배가 현관에 제대로 도착한다.

 

그 간단한 상식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짐을 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그러니까 희망은 새벽에 문 앞에 도착한 택배처럼 여러 사람 손을 거치며

'신'이 아닌 사람 손에 이끌려 따라온다.

 

각자가 무엇을 믿든 자유지만, 누구 하나쯤은 해맑은 표정으로

돈의 편이 아닌 사람을 귀히 여기는 귀한 사람 편에 서야 세상이 미쳐 돌아가지 않을 텐데,

그런 순진한 믿음이 있어야 세상이 좀 순해질 텐데

혹시 "자넨 아직도 사람을 믿나?"라고 나는 나부터 먼저 나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