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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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10.

"가급적이면 나는 램의 편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디킨즈의 궁둥이를 걷어찰 만큼 나는 떳떳한 기분일 수가 없었다.

 

(······)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임을 나는 솔직히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분노란 대개 신문이나 방송에서 발단된 것이며 다방이나 술집 탁자 위에서 들먹이다 끝내는 정도였다.

 

나도 그랬다. 내 친구들도 그랬다.

껌팔이 아이들을 물리치는 한 방법으로 주머니 속에 비상용 껌 한두 개를 휴대하고 다니기도 하고,

학생복 차림으로 볼펜이나 신문을 파는 아이들을 한목에 싸잡아 가짜 고학생이라고 간단히 단정해버리기도 했다.

 

우리는 소주를 마시면서 양주를 마실 날을 꿈꾸고, 수십 통의 껌값을 팁으로 던지기도 하고,

버스를 타면서 택시 합승을, 합승을 하면서는 자가용을 굴릴 날을 기약했다.

 

램의 가슴을 배반하는 디킨즈의 머리는 매우 완강한 것이었다.

우리의 눈과 귀와, 우리의 입과 손발 사이에 가로놓인 엄청난 괴리는 우리로서는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도리어 나는 그날 밤새껏 램의 궁둥이를 걷어차면서 잠을 온전히 설치고 말았다."

 

윤흥길 단편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중

 

 

 

 

 

오는 금요일 "알릴레오 북스"에서 윤흥길 씨의 단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다룬다고 한다. 
아무래도 소설의 무대가 '성남시'인 탓이 크겠지만
나는 유시민 작가가 내가 본 작품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재밌는 구경을 기대하며 다시 읽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연작은 1977년에 세상에 나왔다.

어두컴컴하고 스산한 터널에서 출구를 찾아 앞만 보고 내달리듯 
스크럼을 짜고 하나의 목표 "잘살아보세!"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나아가던 시대였고, 

그때나 지금이나 생존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문학 나부랭이도 과도한 의무감과 자의식 과잉에 시달리던 때였다.

 

드디어 변화무쌍한 한국 사회는 남들이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독재가 가고, 투사의 시대도 가고 가난도 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익과 가치 사이에서 방황하고,

돈이 언제든 우리네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쓰지 않는 단어와 표현이 수두룩한 책을 다시 읽는데

거부감이 일지 않아 편안하였다.

솔직히 말해 2021년에는 작품이 발표된 1977년(광주대단지사건은 1971년에 발생)과 비슷한 슬픔이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더는 목청을 높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2021년에도
자존과 치욕을 가르는 높고 단단한 장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