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과 '파괴자'가 상호작용하는 복잡계에서 살아남기, 소설 <파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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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or 한담

2022. 3. 30.

 

1.

"파친코"는 올해 들어 손에 잡은 첫 소설인데 술술 잘 읽혔다.

완독 하느라 21시간을 썼다.
하루 4시간씩 투자하면 5일이 걸리는데 흥미로운 작품이라 4일 만에 끝냈다.


2.

시대 순으로 전개한 편년체 형식의 소설은

개인과 가족의 역사를 다루면서 사회사를 포괄한다.
작가는 몹시 험난했던 자이니치의 여정을 재구성하면서 영리하게 다음 장이 궁금하게 만들고, 
단 한 문장으로 가슴이 철렁하는 경험(2권 '노아' 관련)을 선사한다.


 

3.
한국의 지난 100년은 불우했다.
자기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나라와 국민은 우왕좌왕 갈팡질팡했다.
매판과 친일은 우울과 조증처럼 쉽게 구분되지 않았다.

 

친일과 항일이 대립했고 디아스포라와 동화 정책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했다.

 

일본 지배세력의 심중을 헤아리고,

그들의 혀가 되고,

손과 발이 된 이들의 후손은 여전히 한국을 좌지우지한다.

 

우리는 세상의 복잡성과 다층성, 다면성을 넓고 깊게 이해한다는 핑계를 대며

그런 행태에 굉장히 너그러운 사회가 되었다.

 

 

 

◆파괴자가 상황에 따라 파수꾼이 되고, 파수꾼이 파괴자가 되기도 하는 역설

 

 

4.

'선자'의 임신 같은 하나의 사건은 한 개인의 삶에 그치지 않고

후대에 까지 영향을 미치며 삶의 무질서도가 증가한다

 

선자에게 한수는,

선자에게 노아는,

노아에게 선자와 한수는,

경희에게 요셉은,

노아와 요셉에게 종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한국계 미국인 등에게 모국과 한국, 미국의 존재는,

자기 삶을 일정 부분 갈아 넣거나 새로운 정체성 정립을 방해하는 파괴자이면서

그들의 삶이 작동하도록 동력을 제공하는 파수꾼 역할도 하지 않았을까?

 

얼핏 보기에는 부조리하고 상반된 그 패러독스는 살면서 사사건건 부딪치고,

서로 어긋나서 양립하기 힘든 두 대립물이 공존하는 시공간이 내가 사는 현실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곳에서도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해 출처불명의 우월감이나 적대감을 가지고

차이를 과장 선동해 차별을 유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부산물 같은 평범한 개인들이 발휘하는 인내와 비범함에,

그들이 쓴 부스러기 연대기에 나는 새삼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