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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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or 한담 기이한 풍속

1. 뒤축이 해질 대로 해져 바늘과 실로는 꿰매기 힘든 양말을 신은 입성 초라한 사내가 전두환 씨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남자는 제복을 입지 않았는데 군모를 썼고 평상복을 입은 민간인인데 거수경례를 한다. 그의 정체는 애매하지만, 다른 설명이 없어도 남자의 볼품없는 행색으로 현재 신분이 쉽게 식별된다. 그는 한 나라를 손아귀에 쥐고 호사스러운 삶을 살다 간 사람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는데, 아이러니한 사진을 보는 내내 웃음으로 환멸과 냉소를 표현하는 블랙코미디를 볼 때처럼 쓴웃음이 나왔다. 괴상하고, 엉뚱하고, 부자연스러운 부조화가 선뜩해서 그로테스크를 느꼈다. 2. 더러는 전두환 식의 삶을 내면화, 표준화하고 살면서 폭군이 완력을 휘두르지 않아도 주군의 삶에 경의와 충성심을 내보인다. 그들은 상위..

댓글 잡담 or 한담 2021. 11. 26.

24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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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or 한담 Ding-Dong! The Witch Is Dead

1. 전두환 씨가 죽었다. 그는 끝내 사과를 하지 않았는데, 인간에게 사람됨을 묻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2. 볼 때마다 역겨움이 치밀어 오르는 사람이어도 막상 그의 부고를 듣고나면 미움을 지속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부고를 접하면 혐오하느라 부글부글 끓던 마음이 희멀건 뭇국처럼 희미해졌다. 무성하던 잎들이 모두 지고 능선이 훤히 드러난 겨울에 앙상한 나목이 맨몸으로 찬바람을 맞는 듯한 서늘함이 마음 한켠에서 일어나고 괜스레 속이 헛헛해서 나는 희희낙락할 수 없었다. 3.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모든 비능률, 모순, 비리를 척결하겠다." 학살이 끝난 뒤 전두환과 그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받든 언론이 한 말이다. 4. 전두환은 육사 출신이 권력을 장악하던 한국서 군부가 가진 힘과 절대 권력에 저항하는..

댓글 잡담 or 한담 2021. 11. 24.

13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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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or 한담 마음이 가는 '말'에 대한 말

1. 홀로코스트 악몽 가운데서도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말한 이가 있었다. 그럴 수도 있어서 사람들은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에 갈채를 보냈다. 그 반면에 역사에 대한 낙관을 무책임하게 전유하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하듯이 약육강식의 역사만을 긍정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약육강식의 질서를 인정하되 긍정하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인생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법한 환갑을 갓 지난 사내가 일련의 어두운 역사를 반복하는 인간이 가진 확증편향의 항구성을 직시하고, 복수를 복습하려는 무의식적 욕망들을 지켜보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질 수도 있다. "'악한 사상과 이념은 혼자 오지 않는다' 악한 사상과 이념은 서로 연대해요. 그러니까 악은 악끼리 선은 선끼리 연대하는데 악의 연대가 훨씬 강고합니다. ..

댓글 잡담 or 한담 2021. 11. 13.

11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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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된 공감 "이건 정말 나체화구나 하는 느낌이 처음으로 가슴에 팍 부딪쳐옵디다"

"빗속에서 사람들이 경찰하고 한참 대결하는 중이었죠. 최루탄에 투석으로 맞서고 있었어요. 솔직히 얘기해서 난 비에 젖은 사람들이 똑같이 비에 젖은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는 그 장면에 그렇게 감동하지 않았어요. 그것보다는 다른 걱정이 앞섰으니까요. (······) 그런데 잠시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 장면이 휘까닥 바꿔져버립디다. 삼륜차 한 대가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는 그만 소용돌이 속에 파묻힌 거예요. 데몰 피해서 빠져나갈 방도를 찾느라고 요리조리 함부러 대가리를 디밀다가 그만 뒤집혀서 벌렁 나자빠져버렸어요. 누렇게 익은 참외가 와그르르 쏟아지더니 길바닥으로 구릅디다. 경찰을 상대하던 군중들이 돌멩이질을 딱 멈추더니 참외 쪽으로 벌떼처럼 달라붙습디다. 한 차분이나 되는 참외가 눈 깜짝할 새 동이 나버립..

댓글 합의된 공감 2021. 11. 11.

10 2021년 11월

10

합의된 공감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가급적이면 나는 램의 편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디킨즈의 궁둥이를 걷어찰 만큼 나는 떳떳한 기분일 수가 없었다. (······)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임을 나는 솔직히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분노란 대개 신문이나 방송에서 발단된 것이며 다방이나 술집 탁자 위에서 들먹이다 끝내는 정도였다. 나도 그랬다. 내 친구들도 그랬다. 껌팔이 아이들을 물리치는 한 방법으로 주머니 속에 비상용 껌 한두 개를 휴대하고 다니기도 하고, 학생복 차림으로 볼펜이나 신문을 파는 아이들을 한목에 싸잡아 가짜 고학생이라고 간단히 단정해버리기도 했다. 우리는 소주를 마시면서 양주를 마실 날을 꿈꾸고, 수십 통의 껌값을 팁으로 던지기도 하고, 버스를 타면서..

댓글 합의된 공감 2021.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