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2021년 03월

26

합의된 공감 영화 "미나리"를 보고서

↑영화 시작 전. 스크린 양옆 커튼이 접히고 화면 크기가 커지며 영화가 시작한다. 1. 극장은 한발 물러서야 볼 수 있는 세계다. 스크린과 일정 거리를 두어야 영화가 골고루 보인다. 거리가 너무 멀어도 선명도가 떨어져 세부와 생생한 현장감을 놓친다. 2. 영화 "미나리"는 이민자 이야기를 다뤘다. 사람은 너나없이 익숙한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 용케 살아남는 서사를 쓰다가 생을 마친다. 식물의 씨앗이 모체를 떠나 치열한 생존경쟁을 치르는 천신만고 끝에 뿌리를 내리고, 이민자가 모국을 떠나 낯선 세계서 가까스로 정착한 서사도 그와 유사하겠다. 3. 부부의 세계 또한 이민자가 마주하는 환경처럼 각자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일이 '이민'이라면 '결혼'은 자기를 떠나 다른 ..

05 2021년 03월

05

잡담 or 한담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1. 윤석열 씨가 사퇴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정치 중립을 지켜야 할 권력기관 공무원의 사직이 약을 팔려는 약장사의 쇼처럼 떠들썩했다. 아마도 그는 지난해 총선 전에도 그랬듯이 다가오는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전날 대구를 무슨 출정식 하듯 요란스럽게 방문했는데 역시나 마지막까지 사사롭고 정치적이었다. 2. 총장 재임기간 내내 윤석열 씨는 거칠고 엉뚱했다. 조국 씨처럼 손봐주리라 벼른 사람은 막강한 검찰권을 동원해 일가의 인격과 인생을 짓밟고, 김학의 씨처럼 봐주고 싶은 사람은 사건의 본질보다는 도피를 막은 공무원을 범죄자로 내몰았다. 3. 그는 꼼수에도 능하고 염치가 없다. 재소자를 겁박해 없는 죄를 만들어낸 검사를 감찰하려는 임은정 검사를..

26 2021년 02월

26

합의된 공감 가타부타 토 달지 말고 자, 비트 주세요! 영화 <위 아 40>

영화 한 편 소비하는 일이 갈수록 쉽다. 극장에 가지 않아도 아무 때나 넷플릭스나 아마존 등에서 골라 보다가 영 내키지 않으면 도중에 그만둔다. 영화 한 편 퍽 쉽게 잊힌다. 대개의 영화는 특별하지 아니하여 예사로운 예측 안에 머문다. 대체재가 시장에 널린 영화의 유효기간은 짧고 영화와 사귄 추억도 바삐 사라진다. 흑백 영화 "위 아 40"은 다채로웠다. 캐릭터의 매력과 찰진 대사, 빼어난 편집 역량이 유머와 함께 흑백 영화 구석구석을 빛냈다. 인간의 노화는 사실 아무리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외쳐도 슬픔이고 때로 수치이며 공포다. 감독은 그 무거운 주제를 목청껏 18번 부르듯 제대로 통제하며 탄력과 활기, 자신감과 재생력을 잃어가는 중년의 이야기를 쾌활하게 그려냈다. 인내심 부족한 내 엉덩이도 영화에..

25 2021년 02월

25

잡담 or 한담 "쇠뿔은 단김에!"

1. 누군가 아궁이에 군불을 땠나 보다. '검찰개혁 속도조절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완급조절. 좋은 말이고 들을 땐 그럴듯해도 실속은 없다. 그 말은 때때로 약자와 비겁자의 변명으로 쓰이기도 한다. 2. 프랑스는 독일에서 나치가 등장하자 독일과의 국경 일대에 350km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한다. 지금도 자주 언급되는 '마지노선'이다. '페탱'같은 어리석고 무능한 프랑스 지휘부는 독일 전력을 박살 낼 최전방 정찰기의 첩보도 무시하면서, 막대한 자금과 전력을 쏟아부은 마지노선만 믿고 독일군을 '엄중히' 지켜만 봤다. 3. 정작 독일의 주력부대 전차군단은 프랑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고원 지대로 진격하며 파죽지세 기동전을 펼쳤다. 마약 성분이 들어간 '퍼버틴'을 복용한 독일 병사들도 지칠 줄 모르는 ..

04 2021년 01월

04

잡담 or 한담 달변가 이낙연 씨의 언어도단

1. 이낙연 씨가 정초에 난데없이 사면론을 들고나왔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씨만을 콕 찍어 구제해 주자는데, 나는 새해 첫날부터 궂은소리를 들은듯 기분이 언짢았다. 서울대 출신 후배들에게만 유난히 다정하고 다른 이에겐 가혹하리만큼 엄격하다더니, 그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보다는 제 마음에 근거해 선별하는 일을 좋아하나 보다. 2. 재난지원금도 홍남기 씨와 손발을 척척 맞춰 선별지원을 고집하더니 뒤늦게 내놓은 대책은 한심스러웠다. 방역 전쟁에서 누군가는 안전한 후방에 있고 누군가는 보급이 끊긴 최전방에서 독박을 쓰고 있다. 3. 코로나19 방역은 의료진 덕분이다. 또한 여러 사람이 흘리는 피눈물의 대가이기도 하다. 의료진은 명분과 보람을 얻고 얼마간의 보수라도 받지만, 소상공인, 특수고용직, 고용취약..

24 2020년 12월

24

잡담 or 한담 머뭇거리지 않는 살의

어제는 입이 써서 홍합 국물에 소주를 마시고 싶었다. 술 담배 끊은지 십수 년이라 하는 수 없이 연신 커피만 마셨다. 검찰과 법원에 똬리를 튼 독사들의 수사와 판결은 징그러워서 소름이 돋고, 치사하고 졸렬해서 헛웃음이 나왔으나 법비들이 꺼내 보인 강렬한 살의만큼은 연쇄살인범의 범행 현장을 보듯 섬뜩했다. 그 와중에 득달같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말 잔치판을 벌이며 거나하게 취한 얼굴로 횡설수설 되는대로 지껄이는 언론과 진중권 씨 같은 사람들도 보았다. 그들의 살의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엊그제 만난 목련나무는 벌써 속을 단단히 채운 꽃눈을 만들고선 동짓날을 사뿐히 뛰어넘었다. 목련나무는 허름한 부엌에서 자식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어떻게든 만들어내던 어머니처럼 때맞춰 꽃을 날래게 피워낼..

댓글 잡담 or 한담 2020. 12. 24.

23 2020년 12월

23

합의된 공감 웃음 달 - 박경희

박경희 시집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중 전문 이승에서는 어떻게든 꿈을 이루려 눈코 뜰 새 없이 일손을 놀리더니 저승 가서도 뭐 하느라 바쁜지 코빼기도 디밀지 않더군요. "그러는 법이 어디 있어요?" 라고 트집을 잡아 따져묻고 싶은데, 어느 날 꿈에 잠시 틈내어 다녀가면 그늘진 마음이 불을 밝히지 않아도 환해져요. 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언감생심 나도 앙큼한 꿈을 꾸었지요. 네, 나는 겉으로는 얌전을 떨면서 속으로 호박씨를 깠어요. 만약 꿈에서 깨지 않았더라면 결정적 장면이 뒤이었을 거라고 입맛을 다시지만, 어머니의 백일몽도 감질나게 뜸만 들이다 끝났나 봐요. 그래요, 필요할 때 없거나 모자라면 안타까워요. 어떤 꿈은 악몽이어서 꿈속에서도 깨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꿈을 깨면 한낱 꿈이어서 서운하고..

댓글 합의된 공감 2020. 12. 23.

17 2020년 12월

17

잡담 or 한담 12월, 슴슴한 국물처럼 누긋하다

1. 코로나 덕분에 12월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각자의 피치 못할 사정에도 시간만큼은 흐지부지 흘렀다. 며칠 전 새벽에는 눈이 왔고, 나는 어둠 속에서 커피머신으로 한때의 잔상을 녹여 사진이나 글로 추출하듯 에스프레소 두 번, 룽고를 한 번 내려 마시며 새벽 특유의 정감에 덜미를 잡힌 채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두 번 들었다. 2. 한 번은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한 음반이었고 두 번째는 로저 노링턴의 지휘에 귀를 기울이며 어스레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음악 문외한인 나는 지휘자의 자리바꿈에 따른 음악의 인상 변화를 확연하게 느꼈다. 유명 지휘자들의 해석보다 템포가 빠른 그들의 지휘가 빚은 소리는 귀를 거쳐 가슴속까지 흘러들었다. 그 소리는 맹렬한 기세로 대양을 헤엄치는 참치처럼 질주하였고, 어느 마..

댓글 잡담 or 한담 2020.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