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시애틀

미국 시애틀에서 거주할 때 처음 시작한 블로그로 여러 여행지와 일상사들에 대한 글

코로나와 새로운 직장으로의 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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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0. 12. 21.

한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가 2020년 12월이 되자 점점 더 심해져 하루 10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새롭게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3단계 거리두기를 하느냐 마느냐로 시끄럽습니다. 호흡기 의사로서 거의 1년간을 긴장 속에 살다 보니  정신적인 피로감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조금 우울해집니다. 어디 여행도 가지 못하고 집과 직장만 반복하다 보니 뱃살만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헬스클럽에 골프연습장이 있어 뒤늦게 다니며 배우고 있었는데 코로나 감염이 시작되면서 다른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싶어서 3월 이후 나가지 않았습니다.  3개월 정도 회비를 그냥 날리고 말았는데 좀 아까운 생각이 들긴 합니다.  여행의 경우도 지난 추석에 아이들과 아내 모두 집에 남겨두고 저 혼자만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 오랜만에 뵙고 성묘하고 돌아온 것이 다였습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의료진들이 조심해도, 진료받으러 오는 환자들은 제주도 여행 다녀와서 몸살이 났다고 진료받으러 오니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끝없이 챗바퀴를 돌다가 일 년이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최근에는 회식도 없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식당 가기도 어려워 백종원 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을 보면서 요리하는 법을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주말마다 아내 대신 요리를 시도해 보고 있는데 김치볶음밥이나 라면, 짜파게티와 같은 쉬운 음식만 시도하다가 두세 달 전부터는 부대찌개, 칼국수 같은 음식을 만들고, 2주 전에는 오징어를 두 마리 사다 손질을 직접 해서 오징어 볶음을 만들어 오징어 덮밥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간단히 준비된 짬뽕 요리 세트를 사다가 만들었고 일요일에는 닭칼국수를 시도했습니다. 백종원 씨의 요리 방송이 워낙 따라 하기 쉬워서 인지 가족들 모두 맛있게 먹어줘서 계속 시도해보고 싶은 용기가 생깁니다. 특히 어제 닭칼국수는 멸치액젓을 넣었더니 간 맞추기가 어려웠는데 완성된 후에는 국물이 진짜 잘 나와서 시도해 본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시도가 그나마 우울감을 덜어주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마치 미국 연수 시절과 같이 가족들이 더 가까이 마주하게 되고 대화하면서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 이 어려운 시기를 넘기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징어볶음을 만들어 덮밥을 해 먹었습니다.
닭칼국수를 만들었는데 모양이 그리 매력적이진 않네요
마트에서 산 칼국수의 면발은 아주 좋았습니다

 

직장 이직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2년전 글을 남겼듯이 2018년 2월 말에 십여 년간 근무했던 대학병원을 그만뒀습니다. 정든 병원을 떠나 연봉이 훨씬 많았던 인천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했습니다. 몸값이 많이 올랐지만 그만큼 업무강도가 높아졌고 입원환자가 많아 하루 종일 콜이라 불리는 환자에 대한 보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잘 훈련된 간호사들의 도움과 밤에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12시 이후 환자들을 돌봐준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의 도움이 있어 2년간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겨 가족들도 모두 좋아했었습니다. 체력이 되는 한 열심히 일하고 오래 머물러 있으려 했는데 2020년 초에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 찾아와 버렸습니다.

호흡기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내 직장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병원 의사장님과 상의하여 안심 진료소를 병원 사무동 3층에 차리고 두 달간 수 없이 많은 코로나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당시 신천지 사태로 대구에 대규모 발병이 생기면서 다수의 호흡기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안심 진료소를 찾았고 저와 전문의를 막 딴 다른 호흡기내과 선생님 둘이 하루씩 번갈아가며 진료를 봤습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투구 같은 안면 보호대를 쓰고 두꺼운 가운으로 몸을 감싸고 장갑을 두 개씩 끼고 N95 마스크를 쓰고 하루 종일 진료를 보다 보니 집에 오면 피곤해서 바로 잠이 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스트레스로 체중도 많이 늘고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코로나 초창기 진료보면서 ...

 

두 달간 이런 시간을 보낸 후 대구의 감염이 점점 안정되기 시작했고 신규 확진자도 줄어들면서 조금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경영난에 처한 이사장의 입원 환자 수를 늘리라는 압박이 시작되었습니다.  내과 외래에서 이 년간 잘 지내왔던 간호사들도 모종의 이유로 하나둘씩 사직해 버리고 정신적 압박도 심해지다 보니 어느 날 이사장과 면담을 하다가 감정적으로 울컥하여 "내가 그만두겠다"라고 말하도 나와버렸습니다. 두 달간 코로나의 최전선에서 병원 직원들을 지휘하며 일해왔는데, 이제 좀 전국적으로 안정세에 들어가자마자 입원 환자 늘리라는 말을 계속 해대니 사실 감정을 다스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동안 의리를 생각할 때 그냥 나가는 것이 가슴이 아팠지만 저 말고도 호흡기 의사가 한 명 더 있었고 대구가 안정되면서 전국적으로 신규 환자가 줄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메르스 때처럼 한두 달 내에 코로나 사태가 종식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만둘 수 있었고 매달 적립해 두었던 퇴직연금 명목의 돈으로 생활하며 2-3달간 백수로 지내려고 했습니다. 2-3달간 운동도 하고 살도 빼면서 건강도 찾고 재충전해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만뒀다는 말을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올리자마자 1주일도 안되어 새롭게 개원한 병원이 있는데 호흡기 의사를 구하고 있다며 면접 보러 가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친구처럼 지내는 호흡기내과 형들인데 호흡기내과 의사를 구할 수가 없다며 꼭 면접을 보러 가라고 계속 권유를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3개월의 휴식이었지만 형들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면접을 갔는데 그만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며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바람에 겨우 2주간의 휴식 후 다시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차 의료재단에서 새롭게 고양시에 개원한 병원에 입사하게 되었고 내과와 중환자실의 설계도면부터 장비, 인원 등 다양한 준비과정에 관여하게 되고 많은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참 저는 일복을 타고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지난 몇 개월간 병원장님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협력센터 팀장, 교육수련부 차장, 약제위원회 위원장, 개방병원 대표 의사, 약제부장, 인증평가 위원회 2 팀장, 중환자실장 등의 직책을 맡게 되었고 외래나 입원 환자는 적었지만 병원 개원과 관련된 온갖 업무에 관여하며 행정일에 많은 시간을 쏟게 되었습니다. 11월 이후에는 새로운 의사들이 입사하고 병원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제가 맡고 있던 감투 몇 개를 넘기게 되어 어깨가 조금 가벼워졌고 내년에 인증평가를 마치고 나면 좀 더 책임이 덜어질 것 같습니다. 의사는 감투보다는 환자를 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환자는 좀 더 많아지고 감투는 좀 더 적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몇 번의 이직을 경험하다 보니 제가 예전 대학교수 시절보다 좀 더 유연해지고 여유가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기는 합니다.

 

두서없이 올 일 년간 겪었던 일들을 적다 보니 내용이 많아졌네요. COVID-19이 지배했던 올 한 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한평생 경험해 보기 어려운 힘든 해였던 것 같습니다. 두 아이 돌보랴 자신의 직장일 하랴 힘들었던 아내에게도, 학교도 가지 못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두 딸에게도 정말 힘든 한 해였겠죠.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점점 코로나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 놓지 말고 좀 더 조심하고 좀 더 힘내면서 새로운 해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