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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거사 2016. 3. 2. 15:05

이종걸 국민저항권? 선거는 뭐하러 있나?

 

- 이종걸은 불출마하고 투쟁을 하길.......

 

2016. 3. 2

 

    필자는 비주류 이종걸이 원내대표에 당선될 당시 많은 우려를 했었습니다.

    이종걸은 당내 비주류이면서도 친노 운동권 못지 않은 강경파이자, 우왕좌왕하는 전략부재의 모습을 드러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필자의 우려와 같이 이종걸 원내대표가 그동안 대여협상이나 당내 갈등에서 드러낸 모습과 결과는 필자의 우려 그 이상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손자를 내세우는 이종걸은, 사실 그의 사촌형인 이종찬이 해방 후 귀국하여 매우 어려운 생활로 경기고를 나와 육사에 진학했던 것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또한 성대에서 서울대로 재입학을 하는 등 지각대장이 별명인 이종걸은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가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한 필리버스터 마지막 주자로 국회 본회의 연단에 올랐습니다. 그는 테러방지법을 테러빙자법이라고 조롱을 하면서, 국민이 저항권을 행사해야 할 쿠데타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필자는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에 대하여 공감을 하면서도, 지금처럼 국회의 통제에서 벗어난 국정원의 테러방지법에 대하여 찬성을 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대선개입이나 유우성 간첩 조작과 같은 국정원의 일탈을 고려한다면, 국정원이 국회의 통제를 받을 수 있어야만 야당에서 우려하는 인권침해의 소지를 없앨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 테러방지법에 더민주가 이처럼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이유는 더민주의 이종걸 원내 대표와 같은 비주류 강경파나 친노 강경파가 처음부터 법안 자체에 반대를 하다가, 나중에 컨트롤 타워를 이제 막 신설된 국민안전처로 옮기자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전략 부재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종걸은 테러방지법을 박근혜 정권의 쿠데타라고 말하면서, 이에 불복하는 '국민저항권'을 언급했습니다.

    과거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시절, 독재 정권이 가장 자주했던 말 중 하나가 바로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악법도 제정된 법이니 일단 따라여 한다는 국민의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의회의 1/3을 임명하고 또한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던 독재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대한민국은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시민혁명을 통하여 제도적 민주주의를 완성했습니다.

 

    이종걸은 국민저항권을 주장하기 이전에, 선거에서 이겨서 테러방지법을 바꾸기 바랍니다.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종걸의 주장대로라면 지금 거리에 나가 시위를 하는 투쟁이 필요하지, 정치라는 의회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종걸이 국민저항권을 주장하려면, 그부터 다음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하고 시민단체와 함께 거리에서 투쟁을 하면서 혁명을 하기 바랍니다.

    국민저항권을 외치는 이종걸이나 필리버스터에 참여하여 대여투쟁을 강조하던 더민주나 정의당의 의원들, 그들은 대화와 타협이 기본인 정치를 할 자격이 없으며 선거라는 민주주의 제도를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들이 바로 다음 총선 공천 배제의 대상입니다. 

 

   다음은 필자가 작년에 썼던 이종걸과 그의 사촌 형 이종찬과 관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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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 부르짖는 이종걸, 그리고 그 사촌형 이종찬

 

2015. 11. 17

 

    독립운동가 이회영과 그 동생이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의 가족과 좀 연관이 있는 필자는 되도록 이종걸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종걸이 오늘 지난 14일 10만 군중대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과격 시위대를 옹호하면서, 이완용이 3.1운동에 참여한 민중을 폭도라고 왜곡한 것을 예로 들어 폭력을 행사한 일부 시위대를 3.1운동으로 저항한 민중으로, 이들을 진압한 경찰을 일제의 헌병과 경찰로 매도하는 것을 보면서 이종걸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우리 모두가 잘아는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는 전가족과 전재산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귀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당 선생은 모두 5남 5녀를 두었습니다. 전처인 달성 서씨와 사이에서 차남 이규학을 낳았고, 이 이규학이 흥선대원군의 외손녀인 조계진과 결혼하여 김대중 정권 초대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본처가 일찍 사망을 한 후, 우당 선생은 이은숙과 결혼하였고, 이은숙과 사이에서 얻은 10남매의 막내인 이규동을 낳았고, 이규동의 아들이 바로 이종걸입니다.

즉, 1936년 생 이종찬과 1957년 생 이종걸은 21살 차이가 나는 사촌지간입니다.

 

    이종찬은 중국에서 태어났고, 해방후 김구선생과 함께 귀국을 했습니다. 이종찬이 어려서 귀국을 했을 당시 그의 부친은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생활능력이 없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경기고를 거의 고학으로 나온 이종찬은 학비 문제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였고, 1979년 12.12 반란 당시 중앙정보부에 근무를 했었습니다.

    이종찬은 이후 민정당을 창당하는데 주역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민정당 원내대표와 사무총장을 하면서 전두환 신군부에 협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종찬은 민정당 내 강경파에 맞서 온건파를 이끌면서 1984년 학원 민주화 조치를 이끌어냈으며, 야당과 타협을 중시하는 정치를 했습니다.

    이런 이종찬의 합리성을 인정한 김대중 대통령은 그를 초대 국정원장에 임명하여 국정원 개혁을 이끌게 하였습니다.

    사회주의 계열과 아나키스트로 인정을 받았던 우당 선생은 비록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지만, 그의 활동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5년 이종찬이 기념관을 건립한 이후입니다. 그것은 이종찬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이종찬은 혜화동에 우당 기념관을 열었다가 지금 신교동 자신의 자택을 기념관으로 개조를 하였고 우당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반면 이종걸의 부친이자 10남매의 가장 막내인 이규동은 우당 선생이 서거를 하신 후 모친 이은숙과 함께 귀국을 하여 서울 종로구에서 여관을 하면서 비교적 여유롭게 살았습니다.

    1957년 생 이종걸이 그 당시 피아노를 배울 정도였으며, 이종걸은 예능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중학교인 예원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지금도 예원학교나 예고에 입학하려면 개인 레슨비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종걸은 피아노 대신 경기고에 진학하였고 성대를 다니다가 중퇴를 하고 다시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하였고, 다시 법대로 재입학을 했습니다, 1977년 성대에 입학한 그가 3년의 군대 생활을 마친 후 서울대를 졸업한 것이 1988년입니다.

    물론 이종찬이 고교시절과 성대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구속된 전력은 없으며 비교적 유복한 가정환경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대학을 오랫동안 다니면서 고시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당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는 이종찬, 그는 매우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낸 반면 이종걸은 비교적 유복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최근 이종걸의 행보를 보자면, 마치 이종걸만이 우당 선생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것 만 같습니다.

 

    이종걸의 별명은 지각대장입니다. 그가 원내대표 경선에서 여러 차례 낙마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지각으로 다른 동료의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에게 '그년'이라는 막말로 비난을 부르고 공개 사과를 했던 이종걸은 비노 비주류이지만, 그의 행보나 발언은 친노 강경파 그 이상입니다.

    이종걸 스스로 자신이 독립운동가 우당 선생의 후손임을 강조하지만, 필자가 이종걸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약수거사

(若水居士의 世上談論 http://blog.daum.net/geosa3661)

출처 :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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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찌꺼기는 가라...
원문쓴 너도 가라
얼릉 보기에는 귀공자타입의 신사인데 자기나라 대통령이 아무리 밉기로서니 '그년' 라고
폄훼 욕하는는 인격을 보면서 저도 실망했고 그 지역구 유권자분들도 평가해야할것 같습니다.
이종찬과 이종걸에 대해 궁굼했는데 상세히 알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한 사촌도 있지만 남같은 사촌도 많습니다. 이 분들도 보니 가까운 사촌은 아닌듯 보입니다. 그러니, 걸어가는 길도 너무 틀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