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그들의 조국, 촛불밥벌이

약수거사 2019. 5. 15. 13:33

6. 5.18 행사, 황교안은 안 되고 룸싸롱 우상호는 된다?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5공세력이 5.18 광주학살을 통하여 강제로 집권을 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북한군 개입설 역시 날조된 것으로 일부 극우세력의 터무니없는 주장임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5.18 사업회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행사참석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반대를 하였다. 친문지킴이를 나선 유시민은 광주에서 황교안이 나타나면 등을 돌리고 악수도 하지 말라고 주장을 했다. 그런데 이같은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민주화를 위하여 헌신했다는 지금의 586세대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우선 이 문제에 대하여 한번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임종석을 포함한 전대협 출신 인사들이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주장이 사실상 왜곡임을 증명하는 글이다.


Quote  

임종석의 그 시대와 전대협 

- 전대협이 1987년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새빨간 거짓말 


2017. 11. 7 


   청와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전희경 국회의원과 임종석 비서실장의 설전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전희경은 과거 학생 운동권 단체였던 전대협의 반미(反美) 강령을 거론하며 "임종석 실장 등 전대협 간부 출신 여러 명이 현재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면서, 그들을 주사파라고 불렀고 또한 청와대 참모들의 "대북관·대미관을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임종석은 발끈하면서 "매우 모욕감을 느끼고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5·6공화국(그 시대) 때 의원님이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보지 않았지만, 인생을 걸고,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 의원님이 말한 것처럼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하면서, 나아기 "그게 질의입니까? 매우 유감입니다"라며 "국민의 대표답지 않게 질의한다"고 말했습니다.

   전희경의 발언에 대하여 민주당은 철지난 색깔론이라고 공격하면서 임종석을 포함한 청와대를 옹호하고 있는 반면, 한국당은 문재인 정권의 안보관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위 논란에서 색깔론과 안보관이라는 매번 되풀이되고 있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소모적 싸움에 대하여 일반 국민은 염증을 느끼면서 정치에 대한 혐오감만 늘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필자는 임종석 실장의 발언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임종석과 같은 80년대 운동권 출신의 이른바 선민의식과 우월적 사고라는 병폐입니다.

   임종석이 전희경을 향하여 "(당신이) 그 시대(5,6공화국)에 어떻게 살았는지" 라고 되묻는 질문의 한 복판에는, '1987년 반독재 민주화 운동 당시 임종석 자신은 투쟁에 앞장을 섰지만, 전희경 당신은 자신의 안위만 챙기지 않았는가'하는 비난이 담겨있습니다. 이것은 1987년 민주화가 임종석과 같은 학생운동세력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믿음과 자기 확신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1987년 민주화는 전희경과 같은 자기 보신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 투쟁의 선봉에 나섰던 학생운동권 자신들의 업적이라는 것이 임종석의 생각입니다.

 

   문제는 이같은 독선과 오만이 곧 학생운동권 몇 년의 경력으로 정치를 독점하고자 하는 기득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민주당이나 청와대의 80년대 학생운동권 경력의 인사들 투옥기간은 평균 채 2년이 되지 않습니다. 1987년 민주화까지 이들이 민주화의 선봉에서 투쟁을 했던 기간도 불과 몇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1960년 4.19 혁명에서 주도세력이 학생이었던 것에 비하여, 1987년 시민혁명의 주도세력은 당시 야당을 이끌던 김영삼의 신민당과 재야를 대표하던 김대중, 대학생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일반 시민이었습니다. 일반 시민의 호응이 없었다면 87년 민주화 투쟁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1975년 생인 전희경은 당연히 5,6공화국 민주화 투쟁에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임종석의 논리대로하면, 유신시절 반독재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임종석은 반유신투쟁의 선봉이었던 이재오나 김문수, 손학규 등 70년대 운동권에게 그 어떤 비난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5, 6공화국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는 임종석과 같은 전대협 출신 운동권의 자부심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요? 1987년 6월 29일 대통령직선제를 수용하는 노태우의 이른바 6.29 선언 이후인 7월 5일 연세대에서 이인영을 의장으로 하는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 협의회) 발족 이후 같은 해 8월 19일 충남대에서 전대협은 출범을 하였습니다. 필자가 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필자가 당시 전대협의 모든 행사에 직접 참여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냉정하게 말한다면, 전대협은 1987년 6월 시민항쟁의 승리 이후 출범한 것으로, 전대협이 민주화를 이끌었던 주체라는 인식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대협은 김일성 주체사상의 민족해방을 받아들였던 NL계열이 주도했던 단체로, 당시 민중민주주의를 지향했던 PD계열은 참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전대협 1기와 2기의 의장을 고대 총학생회장 출신 이인영과 오영식이 맡았던 이유 역시 이들이 모두 NL계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1989년 소위 SKY대 출신이 아닌 한양대 출신 임종석이 전대협의장을 맡게된 것은, 당시 SKY대 총학생회가 NL이 아닌 PD계열이 장악을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임종석의 전대협 의장 시절 임수경의 북한방문이 있었지만, 이를 주도했던 것은 임종석의 3기 전대협이 아니라 오영식의 2기 전대협이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전대협의 투쟁은 북한과 그 궤를 같이 하는 주한미군 철수 등 반미에 집중되었습니다. 당시 1987년 김현희의 대한항공 폭파 부정, 88서울올림픽에 대하여 처음 '남북분단 고착화하는 올림픽 개최반대'에서 '남북동시개최 요구'로의 전환,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를 위한 임수경 방북 등은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필자 역시 전대협 투쟁에 동참을 했었지만, 이후 1990년대 북한의 대량기아사태와 인권탄압을 보면서 전향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임종석을 포함한 전대협 세력이 1987년까지의 민주화 투쟁에 개별적 또는 산발적으로 참여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전대협이 민주화를 주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1987년 이후 전대협은 민주화와 거리가 먼 반미투쟁에 앞장을 섰을 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임종석의 전대협이 내세웠던 '한반도 비핵화와 주한미군철수'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 의하여 아직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임종석과 같은 운동권의 선민의식은 곧 자신들의 투쟁경력을 밑천삼아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자기 합리화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우월적 자부심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독선과 오만의 정치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약수거사

Unquote


   1980년대 광주를 시작으로 부산, 서울, 대구에서 발생했던 미국문화원에 대한 점거 및 방화사건은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용인 내지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을 하였다. 이같은 반미투쟁은 어쩌면 남미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해방신학의 시대적 조류일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다. 최근 국회에서 1980. 5.21 전두환의 광주방문을 증언했던 미군정보원 김용장의 발언에서도 미국의 광주학살 개입이나 방조는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광주학살을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으로 몰아서 죽이려고 했던 전두환은 미국과 일본의 압력을 받고 그의 망명을 허용하였다. 다시 말해서 1980년대 미문화원 방화와 같은 반미투쟁은 어쩌면 그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사실 김대중과 광주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1980년 5월 광주의 민주화투쟁은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반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민주화에 앞장섰던 그런 김대중을 사실상 부정했던 것은 바로 지금의 유시민을 포함한 586 세대의 민주당 정치인들이다. 1999년 동아일보 기고를 시작으로 김대중에 대한 비난에 열을 올렸던 유시민은 집권 말 탄핵까지 주장을 하였다. 그의 DJ에 대한 비판글은 지금 노무현, 문재인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유시민은 자신의 비난에 대하여 나중에 공식 사과를 하였다. 하지만 유시민의 DJ에 대한 비난을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노무현이 집권하자마자 시작된 DJ에 대한 배신행위, 즉, 열린우리당 창당 때문이다. 유시민을 비롯하여 지금 민주당의 주류인 이해찬대표, 이인영원내대표, 우상호 등 586정치인 대다수는 평생 민주화에 헌신했던 DJ와 호남동교계를 구태세력, 유신과 야합한 반개혁 세력으로 규정하고 열린우리당에 동참을 하였다. 이것은 사실 DJ와 호남에 대한 배신이었고, 2016년 총선기간 중 문재인은 이에 대하여 공식사과를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지난 17년 대선에서 갑자기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라는 구호가 등장한 것이다. 이는 DJ를 배신했던 지금의 문재인 정권이 호남의 표를 얻기 위한 선동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돌아와 가택연금이 풀리면서 DJ와 호남동교계가 가장 먼저 찾았던 곳은 바로 광주였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장면하나가 바로 망월동에서 무릎꿇고 오열하던 DJ의 모습이다. 이처럼 광주와 5.18 그리고 김대중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DJ는 전두환을 용서했다. 지금의 자유한국당 대통령 김영삼이 잡아넣었던 전두환의 사면을 요구했던 것은 바로 DJ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전두환을 용서했다. 이것은 화해와 용서를 넘어서 국민통합을 위한 DJ의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광주는 황교안의 방문을 반대한다. 물론 5.18 북한군 개입과 같은 주장을 한 극우 김순례, 이종명, 김진태에 대하여 아직도 처벌을 하지 않은 점을 생각한다면, 광주 5.18 단제의 이같은 비난과 반대는 일면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황교안이 5.18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또한 YS를 비롯한 상도동계가 전두환 처벌에 앞장 섰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용서와 화합의 정치를 보였던 김대중을 생각한다면, 황교안의 광주방문에 대하여 이를 너그럽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민주당과 유시민은 황교안의 광주방문을 정치적 목적이라면서 비난을 하고 있다. 그런데 2000년 5.17 전야제에서 룸싸롱에서 술집여자를 낀 채 양주를 먹으면서 유행가를 불렀던 민주당 송영길, 김민석, 김성호, 장성민, 이종걸, 김태홍, 우상호, 정범구와 이들을 옹호했던 지금의 문재인 정권이 황교안의 광주방문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DJ를 폄하하면서 동교계를 모두 당에서 사실상 쫒아냈던 유시민이 황교안의 광주방문을 비난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황교안 광주방문에 대한 지금 문재인 정권의 비난이야말로 정치척 목적을 위하여 사실상 광주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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