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Gijuzzang Dream 2008. 1. 30. 22:09

 

 

 

 심득경 초상 (沈得經 肖像)

 

 

 심득경초상, 보물 제1488호, 윤두서, 1710, 비단에 엷은색, 160.3×87.7

 

그림 맨 위에는 <定齋處士沈公眞>이라 적었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지난(2007년) 7월 31일부터

심득경 초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서화실에서 전시하고 있다.

이는 '호남의 전통서화‘라는 주제로

조선시대의 서화와 호남 출신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알리고자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것으로,

조선시대에 화명을 떨쳤던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의 작품이다.
유물카드에 의하면 1932년 양철수에게 구입한 초상화로
이 초상은 요절한 심득경(1673~1710)을 애도하여 윤두서가 그린 것이다.

 

심득경의 어머니는 윤두서의 증조부인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큰딸로

심득경과 윤두서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심득경은 윤두서보다 5살 아래였는데 1693년 윤두서와 함께 진사에 급제한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매일같이 윤두서와 어울렸다.

그러던 심득경이 1710년 8월 38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이를 애통해 하던 윤두서가 그 해 11월에 그를 추모하여 초상을 그린 것이다.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초상화 양식을 따랐지만 기존의 초상화와 달리

필치가 부드럽고 담채(淡彩)가 은은하여 문인화가의 솜씨다운 면모가 두드러진다.

이 초상을 그린 후 심득경의 집에 보내 벽에 걸었더니 온 집안이 놀라서 울었는데,

마치 죽은 이가 되살아 온 것 같았다고 한다.


초상에서 보이는 심득경은 동파관(東坡冠)을 쓰고 흰색 유복(儒服)차림을 하고 있다.

몸을 오른쪽으로 약간 틀고 의자에 앉아 손을 앞에 모은 자세이다.

허리에는 청색 세조대(細條帶)를 맸고, 녹색과 흰색의 혜(鞋)를 신었다.

 

심득경의 인상은 인자하고 내성적이다.

코는 단정하며 입술은 붉어 기품이 있다.

피부는 깨끗하고 눈썹은 가지런하며 귀는 시원하다.

살쩍(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털)은 성글고 수염은 많지도 적지도 않다.


심득경이 세상을 떠난 후 기억만으로 그려냈지만

묘사와 표현이 핍진하여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전하는 듯하다.

 

그림에 쓰인 찬문(贊文)에서도

이 초상이 심득경의 모습과 인품을 너무나 잘 나타냈다 하여 감탄하고 있다.

보물로도 지정되었지만 <심득경 초상>은 문인화가가 그린 초상화의 명작으로 손꼽히며

윤두서가 이 분야에서도 당대의 선구였음을 잘 보여준다. 

  

 

 


 

화면 오른쪽 상단의 찬문(贊文) 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形端骨秀 質淡氣淨 心純神粹 玉潔氷凊  (형단골수 질담기정 심순신수 옥결빙청) 

仁厚謙愼 公直光明 面方而脩 色晢而馨  (인후겸신 공직광명 면방이수 색절이형

目淡鼻端 脣赤齒精 耳凉鬢疎 眉端鬚淸  (목담비단 순적치정 이량빈소 미단수청)

端恭其儀 淸汗其聲                           (단공기의 청한기성)

遺像儼然 宛如其生 彷佛其見 怳惚其聽  (유상엄연 완여기생 방불기견 황홀기청)

嗚呼匪子之容貌 熟知子之性情             (오호비자지용모 숙지자지성정)

嗚呼匪子之氣像 熟知子之德誠             (오호비자지기상 숙지자지덕성)

驪興李漵贊 斗緖書                           (여흥이서찬 두서서)  

 
“단아하고 빼어난 골격, 담담하고 맑은 기질, 마음과 정신이 순수하여 옥처럼 맑고 얼음처럼 차갑다.

인후하고 겸손하며 공정하고 밝다. 얼굴은 네모지며 길고, 얼굴빛은 밝고 향기롭다.

눈은 해맑고 코는 곧으며 입술은 붉고 치아는 가지런하다.

귀는 시원하고 귀밑머리는 성글며, 눈썹은 단아하고 수염은 청결하다.

거동은 바르고 공손하며, 목소리는 청아하고 윤택이 난다.

의젓한 모습의 초상화여, 완연히 살아 있어

직접 보는 것 같고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구나.

오호라, 그대의 이 용모를 보지 않고 누가 그대의 성정을 알 것이며,

그대의 이 기상을 보지 않고 누가 그대의 덕성을 알 것인가.

여흥(驪興) 이서(李漵)가 찬(贊)하고 공재 윤두서(尹斗緖)가 쓰다.”

 

 

 

 

 

화면 왼쪽 상단의 찬문(贊文)

 

水月其心, 氷玉其德, (수월기심, 빙옥기덕,)

好問力踐, 確乎其得. (호문역천, 확호기득.)

惟子之吾, 喪도之極. (유자지오, 상도지극,)

漵又贊                  (서우찬)

 

 

물 위에 뜬 달 같이 깨끗한 마음, 얼음같이 차고 맑은 그 덕성,

묻기를 좋아하고 힘써 실천하여 그 얻음을 확고히 했네.

그대가 나를 떠나가니 도를 잃어버린 지극한 슬픔.

이서(李漵)가 또 글을 짓다.

 

 

 

 

화면 오른쪽 하단의 찬문(贊文)

 

維王三十六年庚寅十一月寫, 時公歿後第四月也.

海南尹斗緖謹齋心寫

 

숙종 36년인 경인년(1710) 11월에 그렸는데 당시는 심득경공이 돌아가신 후 4개월이 되었다.

해남의 윤두서가 삼가 재계하고 마음으로 그리다.

 

- 박물관신문, 박해훈(국립광주박물관)

- <조선시대 초상화>, 국립중앙박물관, 2007 참고

- 모든 그림자료는 기주짱 추가  

 

 

 

 

 

 

 

 

 

- 이사오 사사키 / "Place Where We Can Be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