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성황후

이슬눈 2021. 7. 5. 03:13

잊혀진 대한제국의 소중한 사진자료
 




  우리의 마지막 황실 귀한자료임니다 잘 간직하고 후세에 전합시다
 
서울대박물관이'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특별 사진전을 개최했다
 
 
 
 
 
 


 
'마지막 황실, 대한제국' 사진전.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일본으로 떠나는 덕혜옹주(1925년3월28일 촬영)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伊藤博文과
조동윤 남작(1919년2월9일 촬영)





 삼전에 참배하기 위해 영친왕과함녕전을나서는 고종의 모습  (1918년1월15일 촬영)


 
 
덕수궁 석조전 앞 기념촬영.
1918년 1월 23일 오후 2시경 영친왕의 귀국을
기념하여 촬영된 사진으로 당시 고종을 비롯한각계

 인사들을 모두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이날 기념촬영에는 이왕직 중추원 인사들,
총독부 관료들과 일본 軍警 고위층들이
참가, 총 3장의 기념 사진을 찍었다.

당시 조선을 지배하던 일본 인물들의면면을 보여준다




 도자기에 휘호하는 영친왕



 사진기로 창경원 하마를 촬영 하는 영친왕








수업을 마친 덕혜옹주가 교문 을 나와
마차에 오르려 하는 모습을 찍었다.
일본풍의 교복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양식모자를 쓴 다소곳이 고개숙인 모습이다.뒤에는 한복을 입은 시종 이 겉옷을 들고따르고 있다. (1925년 촬영)



  고종의 막내딸로 비운의 일생을 보낸 덕혜옹주가日出소학교에서 일본학생들과 함께일본어 수업을받는 모습이다.  뒤에 교사들과 수행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업 광경을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1925년3월강제유학을 떠나기 직전 찍은 사진인듯.정중앙에있는 흰 얼굴의 앳된 소녀가 덕혜옹주다.얼굴에 애잔한 기색이 감돈다. 아이들이 들고 있는교과서에  쓰여진‘국어’란 명칭은 일본어를 뜻한다.1925년 3 월께 일본으로 강제유학을 떠났다.(1925년)



  군복차림의 영친왕이 1918년1월25일 경성유치원을 방문한 모습.
(1918년 1월25일 촬영) 
  



 
영친왕이 조선 방문을 마치고 당시 남대문역(서울역)에서 도쿄행 열차를 타기 직전 모습.
연미복 입은 수행원들과 함께 거수경례하며
플랫폼을 걷고 있다.(1918년 1월26일)





 1919년 2월 9일 고종 황제가 승하한 창덕궁함녕전에서  일본왕가 장례의식인 봉고제(장례를 하늘에알리는 의식)가열렸다.함녕전에 차려진 일본신사풍의 제단 앞에서황실유족과 일본 제관들이 의식을 치르는장면이다. 왼쪽 문 바로 옆에서 힐끗카메라를보고 있는 인물이  당시 총독 하세가와다.<서울대박물관 제공(2006/05/26 15:27]출처 : 인터넷 한겨레)





이승만 대통령이 그의 저서 '독립정신'(1910)에서
명성황후로 지명한 사진이다




 
주한 이탈리아 공사 카를로 로제티의'꼬레아꼬레아니'(1904), 우리나라에 왔던미국 선교사호머 헐버트(1863~1949)의'대한제국멸망사'(1906)등에 실린 사진이다.
- 호머 헐버트씨 는 1906년 발간된
`한국 견문기'138쪽에서 `궁녀'라고 소개(왼쪽).(오른쪽)독일 출신 작가의 사진첩에서나온 것.'시해된 왕비'라는 뜻의 독일(Die ErmodeteKonigin) 설명이 붙어 있고대원군의 평상복사진과 배경이 같아 일부에서는명성 황후로 추정 하기도 했다.그러나 이미1890년대 초반 발간된 미국국립박물관 보고서,영국 잡지화보 등에 '조선의 궁녀'라는설명으로 실린 사실이 확인되었다.





 
위 왼쪽 사진 ; 고종, 순종,
오른쪽 ;독일어로 ‘Palastdame’(궁녀),
영어로 ‘ Attendant on The King of
Korea'(조선 왕의 시종)로 기록됨.아래 사진; 대원군,
오른쪽은 중국풍 복식 차림의 대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