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 프리즘

이슬눈 2017. 10. 9. 14:28

"훈민정음 창제·반포 과정은 영화보다도 더 극적"

 

        
[인터뷰] '훈민정음 전문가' 김슬옹 한글학회 연구위원 "한겨레 모두 보는 영화로 만들자"

[오마이뉴스 글:신향식, 편집:김준수]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왼손에는 책이 한 권 들려 있다. 어떤 책일까.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국보 70호이고 199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마침 올해는 세계기록유산 등재 20돌이기도 하다.

훈민정음 연구가 김슬옹 박사(56, 한글학회 연구위원, 연세대 외래교수)는 "한글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면서 "훈민정음 창제과정은 영화처럼 극적이기 때문에 영화로 각색해도 훌륭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대왕이 비밀리에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2년 6개월만에 해례본이 나오고, 이것이 역사에서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는 과정이 극적입니다. 비밀리에 연구하게 한 것도 극적이고, 15세기에 하층민인 노비 집단이 이 글자를 배울 수 있게 된 것도 기적이고, 해설한 책을 펴낸 것도 기적입니다. 1천만 관객이 아니라 남북한 한겨레 7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영화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훈민정음 언해본 목걸이를 착용한 김슬옹 박사.
ⓒ 신향식
김슬옹 박사는 "훈민정음 28자만 배우면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 지혜를 발휘할 수 있고, 특히 해례본에는 엄청나게 많이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면서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 과정을 영화로 만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새 문자 훈민정음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세종대왕은 비밀리에 연구하여 1443년에 훈민정음 28자를 만들어 신하들에게만 알렸다. 이후 실험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새 문자 훈민정음과 그것을 만든 원리, 운용 방법을 알렸다. 이 책에는 창제의 취지와 원리, 역사적 의미 등을 비롯하여 문자의 다양한 예시 등이 실려 있다.

김슬옹 박사는 "한글을 배우면 성리학이든 어떤 학문이든 풀어낼 수 있으니 한문으로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던 양반들은 훈민정음을 무서워했을 것"이라며 "기득권이 사라지므로 한글을 2류 문자로 취급한 걸로 추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인근 전통찻집에서 훈민정음 연구가 김슬옹 박사를 만나 구술 대담을 했다. 김 박사는 2016년 3월부터 2017년 10월 현재까지 훈민정음 해례본 특강을 한글문화연대에서 8주 과정으로 진행 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 ‘별’ 글자가 있는 정음해례 26ㄴ(간송본) ‘별’ 글자가 있는 정음해례 26ㄴ(간송본).
ⓒ 신향식
- '<훈민정음> 해례본'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요?
"인류 최고의 문자 해설서답게 당대 최고의 철학, 수준 높은 언어학, 문자학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더욱이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지식과 정보를 나누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해례본은 모두 66쪽으로, 이 가운데 8쪽까지는 세종대왕이 직접 저술한 '정음편'입니다. 이 정음편의 서문에 '유통(流通)'이란 말이 나오는데, 15세기 말(우리말)과 글(한문)이 유통이 안 되니 한문을 아는 이와 모르는 이가 유통(소통)하지 못하고 그래서 모두 유통할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 왜 해례본 교육에 몰입하고 계신지요?
"이런 해례본이 우리 학계와 교육계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현재 해례본만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전문가가 많이 나올 리 없습니다. 이 책은 다양한 학문이 녹아 있는 융복합서이고 한문본이다 보니 학제적 연구와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쉽지는 않지만요."

-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배워할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지요?
"이 강의를 위해 누구나 쉽게 해례본을 연구하고 배울 수 있게 여러 방식의 교육용 자료를 구성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실 며칠 뒤면 이 자료가 책으로 나옵니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의 합리성, 지식과 생각의 자유로운 소통의 평등성 등이 담긴 훈민정음 정신을 함께 새겼으면 합니다.

"훈민정음에는 누구나 평등하게 배울 수 있는 '문자 민주주의' 담겨"

▲ 훈민정음 해례본 둘째 장  『훈민정음』 해례본 둘째 장 복원본.
ⓒ 신향식
- <훈민정음> 해례본은 왜 중요한가요?
"해례본이 중요한 이유를 두 가지로 짚어보겠습니다. 첫째로는 한글 창제 원리가 정확히 기술된 것은 이 책밖에 없습니다. 18세기, 19세기 훈민정음을 연구했거나 언급한 학자들이 꽤 있지만 이들 모두 이 책을 보았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책 수집광이었던 이덕무(1741~1793)조차 이렇게 써 놓았을 정도입니다(관련 자료를 갖고 나와 보여 주며).

'훈민정음에 초성(初聲)·종성(終聲)이 통용되는 8자는 다 고전(古篆)의 형상이다. ㄱ 옛글자의 급(及)자에서 나온 것인데, 물건들이 서로 어울림을 형상한 것이다. ㆍㄴ 익(匿)자에서 나온 것인데, 은(隱)과 같이 읽는다. (가운데 줄임) 세속에 전하기를 '장헌대왕이 일찍이 변소에서 문살을 배열(排列)하다가 문득 깨닫고 성삼문 등에게 명하여 창제하였다'한다.<이덕무, <청장관전서> 54권 양엽기 1, 현대어번역(고전번역원)> 임금은 변소에 가지 않고 변기틀인 '매화틀'을 침소에서 이용했음에도 이런 잘못된 제자 원리가 어지럽게 유포된 것은 해례본을 보지 않고 썼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해가 완전히 풀리게 된 사건이 1940년에 <훈민정음> 원본 발견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해례 부분, 특히 '제자해'에 창제 원리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그 다음에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둘째는 누구나 평등하게 배울 수 있는 문자 보편주의, 문자 민주주의를 담고  있기에 중요합니다. 쉬운 문자, 누구에게나 과학적이고 간결한 문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꿈과 이상을 담을 수 없지요."

- '<훈민정음> 해례본'의 인류 보편주의를 설명해 주세요.
"해례본은 하층민을 배려해 새 문자를 만든 세종의 인류 보편의 문자 꿈이 담겨 있어 위대합니다. 훈민정음 창제 동기와 목표, 취지 등이 담긴 세종 서문과 정인지 서를 함께 보면 그 점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려운 한자 때문에 기본적인 소통조차 못하는 하층민을 배려하여 훈민정음을 만들었습니다. 하층민과 더불어 양반을 포함한 모든 백성들이 편안하게 쓸 수 있는, 하루아침에 배우는 쉬운 문자를 만든 것입니다."

- 해외 학자들도 한글을 높게 평가하는데….
"영국의 역사가 존맨은 한글을 '인류 문자의 꿈'이라고 했고, 이런 문자를 만든 세종을 기려 일본의 천문학자 와타나베는 자신이 발견한 별 이름을 '7365 Sejong'이라 하여 이른바 '세종별'이라 지었지요. 놀랍게도 해례본에서 예를 든 훈민정음 마지막 글자는 '별'입니다. 누구나 쉬운 문자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나눠 별이 되라는 의미는 아닐까요."

-'<훈민정음> 해례본'의 융합적 가치는 무엇인지요?
"해례본에는 인류 최고 수준의 학문과 사상이 두루 반영되어 있습니다.  지금 수준으로 보아도 최고의 문자로, 과학에다 천지인 삼재 사상, 자음에는 오행 철학과 음악까지, 모음에는 수리철학까지 적용하여 만고불변의 소리 문자를 굳게 세운 것입니다."

- 해례본에 가치를 매긴다면 얼마나 될까요?
"해례본은 흔히 '무가지보'라고고 부릅니다. 가격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비싸고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실제 공정한 값을 따져 대략의 가격을 추정해볼 수는 있는데,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동대문디자인센터에서 전시할 때  그 가격이 매겨진 적이 있습니다."

▲ 『훈민정음』 해례본 셋째 장 훈민정음 해례본 셋째 장 사진본.
ⓒ 신향식
- 보험사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전시를 위해서는 보험에 들어야 하는데 보험사에서 추정한 돈은 최소 1조 원이었습니다. 국제 고가품 사례에 비추어 그렇게 추산한 것인데 세계기록유산인데다가 종이 책으로서의 가치, 인류 최고 문자로서의 가치 등이 고려되었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1940년에 매입한 가격은 정확한 기록도 없고 증언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 당시 일본돈 만 원, 중개료까지 합치면 만천 원으로 서울 최고 비싼 기와집 열 채 값이었다고 합니다."

- 한글은 왜 '과학적인 문자'라고 불리나요?
"한글을 과학적인 문자라고 하는 것은 핵심 제자 원리가 과학적이고 문자를 확장하는 방식이 체계적이기 때문입니다. 15세기에는 기본자가 지금보다 네 자가 더 쓰여 기본자가 28자였는데 이는 상형기본자 8자, 자음자 5자와 모음자 3자를 통해 확장된 것입니다. 그냥 더한 것이 아니라 자음은 획을 더하는 방식으로, 모음은 기본 세 자를 합치는 방식으로 규칙적으로 확장자나 응용자를 만들었습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자음은 발음 기관 어딘가에 닿아 나는 소리이므로 발음기관을 본뜨고, 모음은 입술, 혀, 목구멍 등 여러 복합적인 작용으로 나므로 발음기관을 본뜨지 않고 하늘(·), 땅(ㅡ), 사람(ㅣ) 등의 삼재를 상형한 뒤, 이를 합성하여 우리말에 담겨 있는 음양의 기운을 살려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등의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자음과 모음,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를 합쳐 만드는 방식도 '호하후허'에서 보듯 간결하고 체계적입니다."

한글날이 '10월 9일'인 이유

▲ 『훈민정음』 언해본 첫째 장 교정본 『훈민정음』 언해본 첫째 장 교정본.
ⓒ 신향식
- 곧 있으면 10월 9일 한글날입니다. 한글날은 왜 '10월 9일'인가요?
"세종은 임금이 된 지 25년째인 47살 때, 1443년 12월(음력)에 훈민정음 창제를 알리고 50살 때인 1446년 9월 상한(음력)에 반포했습니다. 이로부터 4년간 <훈민정음> 보급에 주력한 뒤 1450년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럼 1446년에 실제 훈민정음 반포식을 했을까요? 1446년에 반포했다는 것은 반포식을 열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훈민정음'이란 새 문자를 해설한 책 <訓民正音>을 간행, 출판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상한은 1일부터 10일 사이이므로 정확한 날짜는 모릅니다. 상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 오늘날 한글날인 10월 9일입니다.

- 기적의 문자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 간행 571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훈민정음 해례본에 얽힌 몇 가지 궁금증을 질문 드리겠습니다. 우선 <훈민정음> 해례본은 왜 '해례본'이라 부르나요?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을 비롯해 집현전 학사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 등 여덟 명이 함께 지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직접 쓴 부분을 '정음편' 또는 '본문'이라 부르고, 신하들이 풀어 쓴 부분을 '정음해례편' 또는 '해례편'이라고 부릅니다. '정음편'은 세종의 서문과 '예의'로, '정음해례편'은 '정인지 서'와 '해례'로 구성됩니다. 세종 서문을 자세히 풀어쓴 것이 '정인지 서'이고 '예의' 부분을 자세히 풀어쓴 것이 '해례'입니다. '해례'는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의 다섯 '-해'와 용자례의 '-례'를 합쳐 이르는 말입니다. 책 제목과 문자 이름이 '훈민정음'으로 같다 보니, 책 제목에는 '훈민정음'에 흔히 '해례본'을 더 보태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릅니다.

- 해례본은 왜 '간송본'이라 부르고 또 '상주본'은 무엇인가요?
"<훈민정음> 해례본은 글자를 나무판에 붓으로 쓴 것을 새겨 찍어낸 목판본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정교한 활자본이 아닌 목판본으로 찍어낸 것은 빠른 시간에 많은 책을 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종대왕이 직접 펴낸 초간본은 오랜 세월 알려지지 않다가, 1940년에 경상북도 안동에서 이용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그 책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사들여 지금은 간송미술관(서울 성북구 소재)에서 소장하고 있어 '간송본'이라 부릅니다. 다만 간송미술관이 1938년에 건립된 것이라 낡고 협소해 현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최첨단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한편, 2008년에 경상북도 상주에서 또 다른 원본이 배익기 선생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이 원본을 '상주본'이라고 합니다. 상주본은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면서 소장자가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 간송본의 앞 두 장 네 쪽이 가짜라고 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지금 있는 것은 어떻게 보사한 것인지요?
"간송본은 발견 당시 세종이 직접 쓴 네 장 가운데 두 장, 총 네 쪽이 없었습니다. 발견자 이용준 선생이 해례본의 조맹부체에 능해 직접 보사한 것으로 추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부분은 세종실록에 실려 있고 또 정음편만 언해한 이른바 '언해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 간송본은 세상에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나요?
"이용준 선생이 앞표지와 두 장을 보사한 보사 원본을 전형필 선생에게 판 뒤 해방 직전 월북하여, 그 어디에도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아 발견 경위와 정확한 보사 과정 등은 미스터리로 남았습니다. 다행히 간송 전형필 선생은 당시 최고의 서지학자였던 송석하 선생을 통해 모사하게 하였고 그것이 훈민정음 최고 전문가였던 홍기문 선생에게 전달되어 그 가치를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우리말글 학자였던 외솔 최현배 선생은 1942년에 출판된 <한글갈>에서 이 책이 세종시대 원본임을 입증했고, 해방 후 조선어학회와 통문관에서 영인본을 펴내 연구와 교육으로 널리 알려지게 했습니다. 2015년에는 간송미술재단이 직접 교보문고와 함께 소장본과 똑같은 복간본을 펴내 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했습니다."

▲ 훈민정음 언해본 세종대왕 서문 『훈민정음』 언해본 세종대왕 서문의 끝부분
ⓒ 신향식
- <훈민정음> 언해본은 무엇인가요?
"<훈민정음> 언해본은 <훈민정음> 해례본 가운데 세종대왕이 직접 쓴 서문과 예의 부분을 한글로 번역하여 간행한 것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로는 세조가 펴낸 것으로 정확한 제목은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입니다.

- 언해본을 국어사학회에서 복원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언해본은 1459년 세조 5년에 월인석보라는 불경 책 앞머리에 실려 있는 것인데 이 언해본은 세종 때부터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 중론입니다. 그래서 세종 때 것으로 복원해 본 것이죠."

덧붙이는 글 | 서양 고전만 읽지 말고 우리 고전인 '훈민정음 해례본'도 읽어보고, 이것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만물 프리즘

이슬눈 2010. 2. 22. 07:33
뉴스: 히잡 벗기고 억지 국가부르기... 프랑스 맞아?
출처: 오마이뉴스 2010.02.22 07:31
출처 : 국제일반
글쓴이 : 오마이뉴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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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 프리즘

이슬눈 2010. 2. 16. 02:13

"추억의 고향 가는 길 입니다!"


설날의 추억을 떠올려 보기 위해
60, 70년대로 한번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설날이 다가오면 때때옷을 사러 시장에 갑니다.
좋으면서도 어찌할 줄 모르는 꼬마의 표정이 귀엽네요.



때때옷을 입고 뽐내는 꼬마 아가씨들!
그때의 자기만 한 딸을 둔 엄마가 되었겠지요?



당시의 대표적인 선물 세트 가운데 하나지요?
선물용 설탕 세트를 사서는 고향 갈 꿈에 부풉니다.



그러나 고속버스표를 예매하는 여의도광장에는
삽시간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표가 동나 버렸고



용산역 광장에 몰려든 예매객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포로수용소를 방불케 합니다.



예매 인파로 불야성을 이룬 서울역!
불과 20여 년 전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데모를 진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상사를 막기 위해 동원된 경찰입니다.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한 예매객들이
텐트까지 동원하여 날 새기만을 기다리고



고향으로 달려가는 꿈을 꾸면서
지하도에서 새벽을 기다리며 잠을 잡니다.



고향행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입구 앞에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고



부딪히고 밀치더라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짜증 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눈 덮인 하얀 초가지붕이 그립고



꾸벅꾸벅 해 저무는 늦은 시각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그립고



자식을 기다리는 고향 어머니의
저녁밥 짓는 모습만 떠오를 뿐입니다.



"이눔 자식들 빨리 안 오나?
저녁도 안 먹고 얼마나 배가 고플꼬?"



아빠는 귀여운 딸을 목마하고
엄마는 등에 업고 기차로 향합니다.



탔다는 것만으로 그들은 행복합니다.
자리가 없어도 좋고 선반이라도 좋습니다.



사람이 아닌 짐이 되어도 좋습니다.
설날 고향에만 갈 수만 있다면 행복합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가지!
고향집 대문을 들어설 수 있다는 기쁨과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린
고향집 처마만이 떠오를 뿐입니다.



한편, 고향에서는
설 준비에 분주합니다.



어머니는 떡방앗간에서
떡국 만들 떡가래를 정성스레 뽑고



이게 무엇인지 아시지요?
온도계가 달린 이 신기한 기계!



설이 다가오면 언제나 기다렸던 뻥튀기 아저씨!
친구들이랑 종일 뻥튀기 기계 옆에서 구경했던 시절!



그러다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무럭무럭 김이 피어오르면
광주리에서 흘러나온 옥수수나 쌀을 주워 먹었던 시절!
수십 년이 지난 그날이 너무도 그리운 오늘입니다.



이제 곧 설 차례를 지내려나 봅니다.
어른들의 설빔에서는 근엄함이 느껴지고
맏종부의 모습에서는 가문의 힘이 느껴집니다.



맏종부가 차린 제사상 앞에서
후손들이 조상에게 술을 올리고



몸과 마음으로 조상께 엄숙히 절을 합니다.
오른쪽 꼬마의 옷차림이 비범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제사를 지내며 가끔 웃었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오래된 한 장의 널뛰기 사진이지만
담장 너머로 보였다 사라졌다 했을 댕기 머리!


 


 흥겨운 장단의 풍물패가 동네 집집을 돌 때!
그 흥겨움에 춤을 추며 졸졸 따라다녔던 설날의 추억!
양지바른 초가지붕 아래서 윷놀이했던 그날의 설날이 그립고
세뱃돈 줘야 하는 나이가 된 지금 세뱃돈 받던 설날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