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서 일어난 일

강창덕 2011. 4. 4. 10:57

 

 

1987년 서울 시내 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최루탄에다 지랄탄까지 서울 하늘을 뒤 덮으면서 메케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군사독재 시절이었던 당시는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게 아니라 선택된 사람들을 체육관에 불러놓고 대통령을 선출했다.

 

                       (단일화도 못하면서 머리를 맛대면 뭘해?)        노컷뉴스 제공

 ‘체육관 선거’ 대신, 새로운 헌법에 따라 16년 만에 처음으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1987년 12월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1987년 당시 DJ, YS는 민주화운동의 지도자 위치에 있었다.

 

 단일화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를 대부분의 국민은 두 사람의 선의와 양식을 믿었다. 죽쑤서 개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전두환을 대신한 노태우와 멋지게 진검승부를 내 줄 사람은 바로  DJ, YS 두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단일화에 실패한 나머지 결국, 대통령 자리는 12.12군사쿠데타 주역인 노태우로 넘어갔다. 노태우가 37%인 828만여 표, 김영삼이 633만여 표, 김대중이 611만여 표, 김종필이 182만여 표였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표를 합치면 55%를 넘었다. 2011년 4.27 김해을 보궐선거 야권단일화 구조를 한번 보자. 2/22일 부터시작된 야4당 선거연합은 지금까지 10여차례 협상을 진행했다.

 

 이후 시민단체의 중재안에 대해 3/22일까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수용의사를 밝혔다. 수용을 거부했던 진보신당까지도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내 놓으면서 기대를 모았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김해을 후보 단일화 방식에 대해 각각 현장투표방식의 국민참여경선과, 여론조사경선을 주장, 50:50%씩 반영하는 것에 의견 접근을 보았다. 하지만 협상 막바지에 국민참여경선 표본 추출방식에 대한 이견으로 합의에 실패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선거인단 표본추출방식에서 무작위 추출을 주장한 반면, 국민참여당은 표본추출시 김해을 선거구의 성별·지역별·연령별 유권자 비율을 일정 정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아직 협상의 여지는 남겨두고 있으나 이명박 정부 심판에 동의하는 다수의 유권자들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후보단일화에 자당 후보가 유리하게 적용 할 '표본추출방식' 때문에 합의에 실패했다.

 

이러한 문제가 전 국민적 여망인 야권연합을 파기할 정도의 쟁점이 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국회의원 1석이 야권연합을 통해 정권을 교체하자는 전국민의 여망보다 우위에 있는지도 궁금하다.

 

이런 짓 거리를 하고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적자계승 주장 할 염치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죽은 대통령을 팔아 국회의원에 당선되겠다는 파렴치한 생각을 이들은 가지고 있다.

 

죽은 대통령을 팔면서 까지 자기 잇속은 철저히 챙기겠다는 것은 어느 나라 민주정치 인지 모르겠다. 24년전 국민들은 최루탄을 매일 마셔가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만들어 냈지만 정작 정치 지도자들의 개인 욕심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김해을 보궐선거에 야권단일화에 실패한다면 민주당과 국참당은 조만간에 간판을 내리라는 압력에 직면 할 것이다. 국민들의 투쟁과 노력으로 얻은 산물을 정치인들이 무임승차 하는 일은 한번이면 족하다.

 

 일제시대 때처럼 알량한 자리 하나 보전하려고 나라를 팔아먹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강창덕)

지당한 말씀입니다^^
잘계시죠,, 운동 열심히 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