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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덕 2013. 6. 27. 13:25

창원 외동 목리 불망비(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어떤 사실을 적어 세우는 비석)를 찾아가는 길부터 벽에 막혔습니다. 수 십개의 마을 유허비(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가 건립되었지만 사전 허락 없이 찾아 갈 수 없는 유일한 곳이 바로 목리였습니다.


                                        (1973년 11월 목리 모습)


 LG전자 창원 제2공장 안에 있는 목리 불망비는 일단 회사로부터 출입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담당자는 휴가 중이었고 주말, 휴일은 더군다나 더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일과 시간에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창원 SK 데크노파크 아파트형 공장 8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목리불망비가 있습니다. 웅남면 목리를 기억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느티나무 였습니다. 




                                  (LG전자 창원 2공장 내, 불망비가 있는 곳)


지금이야 가고 싶어도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이긴 하지만 유일하게 과거 목리를 기억하게 만드는 이정표 이기도 합니다. 수령 300여 년의 느티나무는 공장부지보다 5m 정도 높습니다. 올라가는 계단에는 LG전자가 “이곳은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절대 금연구역 입니다”는 푯말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나름 목리 수호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실제 문화재(원주민들에게는 문화재 보다 더 소중 할 수도)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곳 원주민들은 1974년 공단이 형성되면서 뿔뿔이 흩어졌고, LG전자 창원 제2공장은 1987년에 공장이 준공되었습니다. 





이후 주민들은 매년 설이 지나고 첫번째 일요일 이곳에 모여 당산제를 지내며 고향을 찾고 있습니다. 1980년 이 나무 옆에 ‘목동유적지영세불망비’가 300년이 넘은 마을 당산나무 옆에 세워졌고, 바로 옆에는 1999년 3월, 목리 원주민들의 이름도 함께 새긴 비석도 있었습니다. 


목리들은 다른 어느 동네보다 넓었음을 흑백 사진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목리는 다른 동네에 없는 마을 공동 소유의 동산이 있었는데, 이를 ‘동구지’라고 불렀습니다. 목성(木星) 남쪽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동구지 바로 옆에는 하천이 흐르고 소나무 숲이 울창했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1년에 한번씩 동제를 지내며 또한 여름 한 철 동민들의 좋은 놀이터로 유명합니다. 또한 목리에는 마을노래까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매우 특이한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昌原 木里 靑年 團歌(창원 목리 청년 단가. 다음카페 장복산에서 발췌)

1. 엄숙한 장복산의 그림자 우리 같이 목리에서 길러 나도다. 고운물 맑은물 찾아 나가니 우리 앞에 보이는게 사랑 이로다. 상쾌한 이내 마음 모아 물 같이 갖은 용기를 배웠네

우리같이 목리에서 길러 난다.


2.박달나무 무성하게 우거진 곳에서 우리들은 그 안에서 건설 하노라. 한 포기 풀잎과 맑은 우물에 우리들은 그 안에서 뛰어 논다. 즐거운 이내 마음 모아 물 같이 갖은 용기를 배웠네 우리 같이 목리에서 길러 난다.


3.이 곳에서 자라난 동포 형제여 우리 같이 인정 많고 정이 넘치라. 한 마음 한뜻을 서로 모아서 우리 고장 우리 앞길 뻗어 나가세. 쾌적한 이내 마음 모아 물 같이 갖은 용기를 배웠네 우리 같이 목리에서 길러 난다.



                                  (목리에 살었던 원주민들의 명단)


목리는 분성 배씨(盆城 裵氏) 와 밀양 박씨(密陽 朴氏)가 많이 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자나무 서남쪽에 있는 들을 ‘귓귓돌’, 섬모 동쪽에 있는 들을 ‘섬모’, 목동 북쪽에 있는 들을 ‘재드리등’, 섬모 앞에 있는 들을 ‘앞들’, 목동 북동쪽에 있는 보를 ‘섬모’라 불렀습니다. 





                                        (과거 목리 모습들 입니다)


창원군 웅남면 목리의 오래전 이름인 진목리(眞木里)는 『창원도호부권역 지명연구』에 따르면, ‘정남(正南)에 형성된 마을’을 뜻 합니다.(디지털 창원대전 참조) 목리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현 창원터널 근처의 불모산동에서도 보도연맹원 9명이 성주지서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이들 외에도 성주지서 경찰관이 집집마다 돌면서 관련자들을 연행했다는 증언도 전해집니다. 그 외에도 웅남면 목리에 살았던 주민 김모씨는 같은 마을에 살다 당시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같은 마을 사람 6명이 성주사 계곡으로 끌려가 총살되었다고 증언했습니다.



* 과거 사진은 양해광 선생님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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