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이야기가 있는 풍경

강창덕 2016. 12. 12. 09:52

김수로왕릉 곳곳에서 불 수 있는 두 마리의 물고기(쌍어)와 인도 갠지스강 중류 아요디아의 한 사원에서 발견한 쌍어 문양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요? 이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은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강력한 증거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수로왕릉의 정문을 지나 가락루(駕洛樓)라는 망루를 통과하면 납릉심문(納陵心門)이라고 쓰인 문이 나옵니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증거인 납릉심문에 있는 쌍어)

 

그 문을 통과하면 바로 김수로 왕릉이 나옵니다. 수로왕릉 안의 납릉심문(納陵心門)에 새겨진 쌍어문을 살펴보면 제단 같은 것을 중앙에 두고 물고기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무늬인데 이를 두고 쌍어문(雙魚文)이라고 부릅니다. 납릉심문(納陵心門)의 우측에 있는 숭인문(崇仁門)에도 같은 쌍어 무늬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수로왕과 허황후의 첫 만남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건무 24년(중국 후한 광무제의 첫 번째 연호이며 서기 48년) 7월 27일, 김해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9명의 전설적인 수장인 구간(九干)들이 수로왕에게 배필을 구할 것을 권합니다. 이는 김수로왕이 왕으로 등극한지 9년이 지나도록 짝을 찾지 못하자 신하들이 발 벗고 나선 것입니다.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파사석탑이 현재 황후 무덤 앞에 놓여 있다)

 

신하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수로왕은 "천명(天命)이 있을 것이니 경들은 염려 말라"고 대답 합니다. 아마도 수로왕은 신의 계시를 받아 믿는 구석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허황옥을 태운 배가, 붉은 돛에 붉은 기를 휘날리면서 서쪽 바다로부터 옵니다. 수로왕이 마중을 나가, 대궐 서남쪽 산기슭에 장막을 쳐서 임시 궁전을 만들어 놓고 기다립니다. 수로왕이 허황옥과 함께 침전에 들었을 때 허황옥은 자신이 아유타국 공주이며 나이는 16세라고 밝 힙니다.

 

 

 

                                (김수로왕과 첫 날밤을 보낸 흥국사)

 

그리하여 수로왕은 허황옥과 함께 두 밤, 하루 낮을 지낸 후, 8월 1일 한 수레를 타고 대궐로 들어오는데 오정(午正)이 가까운 시간이었다”고 전합니다. 홍익대 김태식 교수는 “김수로왕이 신귀간으로 하여금 승점으로 가게 한 그 승점은 지금의 김해시 봉황동 봉황대로 추정하고 허왕후를 맞이하기 위해 장막궁전을 설치하였다는 곳도 김해시 반룡산(盤龍山) 산자락으로 보고 있습니다. 왕후의 배가 처음으로 닿은 별포(別浦) 나루터는 뒷날 주포(主浦)라 한 오늘날의 부산 강서구 미음동 와룡 마을의 옛 나루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 해설사들은 여러 자료를 토대로 망산도(부산 강서구 송정동 산188)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기 46년, 지금으로부터 1968년 전 가락국 김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 허황옥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 진 망산도에는 국내서는 잘 볼 수 없는 거북 등을 닮은 바위가 인도에서는 자주 목격되는 돌이 있습니다.

 

 

 

                                           (가락국에 첫 밟을 내 디딘 망산도 )

 

그리고 망산도에서 동복방향으로 70m 쯤 되는 곳에 있는 ‘유주암’이라는 바위섬이 있습니다. 허황옥이 타고 온 돌배가 바다에서 뒤집혀 오늘날 ‘유주암’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이를 기념하는 유주각을 세웠다고 합니다. 비각에는 ‘대가락국 태조왕비 보주태후 허씨유주지지’(大駕洛國太祖王妃普州太后許氏維舟之地)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김수로왕과 허황옥이 첫날밤을 보낸 흥국사는 가야 불교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기 48년 김수로왕이 명월산 고교(高橋) 밑에서 아유타 공주를 맞아들여 첫 날밤을 보낸 절입니다. 김수로왕은 아유타 공주(허황옥)의 아름다움을 달에 비유하여 이산의 이름을 명월산으로 하고, 이곳에 명월사를 지어 새 왕조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한편 부인과 세자를 위하여 흥국사를 창건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김해 어방동 분산성내 330m 정상에 위치한 해은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년 전 가락국이 건국되고 약 7년 후, 허왕후 와 그의 오빠 장유화상이 돌배에 불경과 파사석탑을 싣고 바다를 건너 이억만리 머나먼 바닷길에 숱한 풍랑과 역경을 막아준 바다 용암의 은혜에 감사 한다는 뜻으로 남 쪽 황금바다를 굽어보는 이곳 만장대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바다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의 해은사(海恩寺)를 창건 했다고 합니다. 고려문화재연구원 김병모 교수는 중국 사천성 안악을 탐방 하면서 ‘금석문’에 보주허여황옥 (普州許女黃玉))이 새겨진 명문을 발견 합니다.

 

 

 

 

허황후가 인도에서 곧장 김해로 온 것이 아니라 중국 사천성 안악을 거쳐서 김해로 왔다는 주장을 하면서, 지금도 중국 사천성에는 허씨 집성촌 15명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보주 땅의 암벽에서 "후한 초에 허씨의 딸 황옥이 용모가 아름답고 지혜가 남들보다 나았다"라는 글귀가 발견된 점, 김해의 수로왕비릉에 있는 비문에서 허황옥을 보주태후라고 칭한 점 등이 동일인물 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입니다.

 

 

 

                                       (인도 아유디아 희두교 사원에 있는 쌍어문양)

 

 

                                          (허황옥 유허비)

 

그리고 쌍어신앙은 중국 사천 지방에서 한국으로 이동한 허황옥 일행에 의해 가락국에 퍼지게 되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김병모 저,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 보주 땅의 암벽에서 "후한 초에 허씨의 딸 황옥이 용모가 아름답고 지혜가 남들보다 나았다"라는 글귀가 발견된 점, 김해의 수로왕비릉에 있는 비문에서 허황옥을 보주태후라고 칭한 점 등이 김병모 교수가 제시한 근거들입니다. 오는 11/8일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김수로왕릉에서 ‘허황후 신행길’축제가 대대적으로 열립니다.

 

* 망산도와 유주암은 2008년 4월 2일 부산광역시기념물 제5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원래는 행정구역이 진해 용원동에 속해 있었으나, 1995년 지방자치단체법에 따라 진해 용원동 일부가 부산으로 편입되면서 가락국의 전설이 부산 행정관할구역으로 바뀌었습니다.


●내용:
인성환*김성호*허정욱*최승권*정다운*단경수*유금순일당은
일제시대일본국을 국가라 주장하고 인정하라고,
일제시대[순사]를 주장하고 인정하라며,
일제시대 일본천황의 왕권정치를 해야된다고
주장하며 국민들을 추행하는 강력범죄조직입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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