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이야기가 있는 풍경

강창덕 2017. 1. 12. 14:23

밤바다에 비친 달그림자

마산에는 특정인의 이름에서 비롯된 명칭들이 있습니다, 월영동, 문창교회등이 대표적입니다. 경남대학교 앞 사거리에서 통영가는 길 한편에 초라하게 세워져 있는 누각이 하나 있습니다.

 

주변이 주택 밀집지인 데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어 이곳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인지 알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신라의 대학자 문창공 고운 최치원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월영대가 있습니다.

 

 

      (작자미상으로 일제시대 때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월영대)

 

1993년도 1월 8일 경삼남도 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된 월영대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 마산 앞바다의 아름다움에 반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 이름하여 달그림자(月影臺) 입니다. 천주교 마산교구 월영성당의 주보 이름이 ‘달그림자’이기도 합니다. '2014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주제가 '달그림자(月影 The Shadow of the Moon)' 였습니다.

 

 이곳 월영대는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글깨나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다녀가는 순례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월영대는 높이 1.2m 정도의 직사각형 보호 축대로 둘러져 있습니다.

 

최치원선생의 학문이 얼마나 뛰어난지 몇 백년이 지난 시기에도 그를 흠모하는 학자들이 많았습니다. 꿈 속에서 노닐며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서술한 소설류인 몽유록 소설 가운데 대관제몽유록(大觀齊夢遊錄) 있습니다.

 

                  (신마산 댓거리에 위치한 월영대 비석)

조선 중종 때 문인이었던 심의라는 학자가 지은 책입니다. 이분의 호가 대관제인데 심의선생이 지은 대관제몽유록(大觀齊夢遊錄)에서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문장왕국(시인의 나라)을 세웠으니 천자는 최치원, 수상에는 을지문덕 좌상에 이제현 우상에는 이규보로 삼았다는 내용입니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최치원 선생도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신라의 신분 제도인 골품제가 그랬습니다. 골품제는 왕족 이나 고위 귀족으로 이루어진 골족과 하급 귀족인 두품 층으로 구분되었습니다. 6두품은 두품층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였는데 왕은 이들을 정치적인 조언자로 삼았습니다.

 

 6두품의 대표적인 인물로 최치원, 원효, 설총 등이 있습니다. 최치원선생은 지금에 생각하면 상상조하 하기 힘든 12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고, 18살에 당나라 조정이 외국인을 등용하기 위해 설치한 빈공과에 급제하여 당나라에서 여러 관직을 지냈습니다.

 

신라에 돌아온건 28살 때 였습니다. 신라에서 최치원 선생은 한림학사(신라의 관직. 당나라 때 황제의 자문 구실을 하며 주로 조칙의 기초를 담당하였는데 이 제도를 신라에서 받아들인 제도)에 임명되었습니다.

 

이런 관직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한림학사직을 그만두고 자청해서 외직으로 전전하다가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슬퍼하면서 방랑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생활의 마지막 귀착지가 바로 마산이 됩니다. 마산에 머물다 합천 해인사로 떠나게 됩니다.

 

경남 김해시에 가면 한림면이 있습니다. 이곳의 지명 유래를 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이 고장 출신인물인 김계희(金係熙)의 관직명이었던 한림학사에서 마을이름의 유래된 지역도 있습니다.

●내용:
인성환*김성호*허정욱*최승권*정다운*단경수*유금순일당은
일제시대일본국을 국가라 주장하고 인정하라고,
일제시대[순사]를 주장하고 인정하라며,
일제시대 일본천황의 왕권정치를 해야된다고
주장하며 국민들을 추행하는 강력범죄조직입니다. -이상-

※궁금한 사항이 있으신분은 가까운군부대나 국방부 군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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