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이야기가 있는 풍경

강창덕 2017. 1. 26. 13:37

 

최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곽재우 !!

 

몇 년전이라 기억조차 가물가물 합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주관이 된 경남이야기 탐방대에서 의령군 부림면에 있는 홍의장군 곽재우 유적지를 둘러 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던져준 이가 바로 홍의장군 곽재우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에 조선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누리는 명예만큼 사회적인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신분제도가 엄격한 조선시대 양반은 계급적인 위치뿐만 아니라 부에 대한 소유도 일반 양민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었다고 봅니다. 특히 부에 대한 욕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을 겁니다. 아흔 아홉 칸 가진 부자가 백 칸을 채우기 위해서 한 칸 가진 사람 집을 뺏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가진 부를 베풀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기도 합니다. 곽재우의 재력은 실제로 작지 않은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홍의장군 곽재우 동상)

 

경상도 일대가 왜군에 의하여 유린되자 선조 임금은 백성을 안정시키고 사태수습을 할 수 있는 관리를 파견하는데 이를 두고 초유사(招諭使)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곽재우 장군의 전공을 보고한 장계를 살펴보면 초유사 김성일은 홍의장군은 원래 집안이 부유했는데 의병을 모집하는데 전 재산을 모두 내 놓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수백마지기의 토지와 200~300명의 노비가 있었다는 기록들을 보면 곽재우 장군도 비슷한 경제력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선조실록에서도 곽재우 장군의 재산을 의병을 모으는데 희사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의령에 사는 고 목사(牧使) 곽월(郭越)의 아들인 유생 곽재우는 집안이 본래 부유하였는데, 변란을 들은 뒤에는 그 재산을 다 흩어 위병을 모집하니 수하에 장사들이 상당히 많았다. 가장 먼저 군사를 일으켜 초계(합천군 초계면)의 빈 성으로 들어가 병장기와 군량을 취득하였다 1). 고 했습니다.

 

 

 

 

                                         (홍의장군 곽재우 동상)

 

임금은 백성까지 버리고 도망을 가고 궁궐은 백성들에게 불에 타는 비참한 현실을 앞에 두고 선비가 전 재산을 내놓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떨쳐 일어난 한 것입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에 발발했습니다. 그때 곽재우의 나이는 당시 장년에 속하는 40세 였습니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빠지자 그는 지체 없이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몸소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고 여기에 재산까지 희사한 것입니다.

 

바로 400여년 전, 이땅 최초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몸소 실천 하신 분이 바로 곽재우 장군이라고 봅니다. 임진왜란 당시 영남의 곽재우, 정인홍 호남의 고경명, 김천일 그리고 호서의 조헌이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기록에 남아 있는 많은 의병장들 가운데 사재를 털어 의병을 모았다는 장군들은 흔하지 않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불공정분배가 불거져 나옵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중국인)이 가져간다는 속담처럼 일을 한 대가가 잘못 나누어집니다. ‘지붕유설’(1614년에 펴낸 일종의 백과사전)의 저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임진왜란 당시 명장으로 두 사람을 뽑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민족의 영웅 ‘이순신’이요, 다른 사람은 홍의장군 ‘곽재우’입니다.

 

조선조 임금 가운데 가장 개념이 없는 임금으로 거론되는 선조는 전쟁의 최고 공로를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 군대의 공으로 돌렸습니다. 사대주가 핏속까지 뿌리 깊게 내려앉은 조선의 처지를 보면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선조와 함께 피난길에 오른 대신들이 전쟁의 최고 공로자로 보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활이나 칼자루 한번 잡아보지 않은 대신들을 공신록에 올린 것입니다. 선조를 수행한 호성공신(扈聖功臣)은 86명이나 책봉한 데 비하여, 전공(戰功)이 있는 사람에게 준 선무공신(宣武功臣)은 18명에 불과했습니다.

 

곽재우 장군은 추천을 받았지만 생존해 있다는 이유로 공신에 책봉되지 못했습니다. 공신의 책봉 과정에서도 임진왜란 전쟁 영웅들에 대한 격하 작업이 이루어졌고, 곽재우 장군에게도 어김없이 적용 됩니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조정에서는 은밀히 감시인을 파견하여 곽재우의 동정을 살피면서 그를 압박해 나갔습니다. 이를 지켜본 곽재우는 관직에 뜻을 잃고 경북 현풍의 비슬산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장군은 초야로 들어가면서 “고양이를 기른 것은 쥐를 잡기 위함이니, 이제 적이 이미 평정되었으니 나는 할 일이 없다. 이제 돌아갈 것이다”는 말을 남기고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를 몸소 실천하신분이 무슨 부귀영화 나 권력을 탐하겠습니까?

 

관계가 아주 불편했던 선조임금이 죽자 광해군은 즉위하자마자 곽재우 장군을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임명 합니다. 이때 곽재우장군이 얼마나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낙동강을 굽어보고 있는 망우정)

 

그때 곽재우의 삶은 청빈함을 넘어 곤궁한 지경에 이르렀던 것 같습니다. 교지를 가지고 찾아갔던 금군(禁軍)은 “인적이 아주 끊어진 영산의 산골에 두어 칸의 초가를 짓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생계가 아주 초라했고, 병들어 누워서 나오지도 못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곽재우의 아들은 아버지가 상경하려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타고 갈 말과 몸종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단벌옷도 다 해져 날씨가 추우면 길을 떠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국왕은 즉시 의복을 지급하라고 하명했다” 2). 고 나와 있습니다.

 

화려한 출세가 행복의 필수적 조건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후기의 주요 인물들이 숱한 당쟁과 모함으로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그 시대상의 역사성 만으로도 피로도를 느끼게 만듭니다. 현실을 떠난 곽재우 장군은 별세할 때까지 계속 망우정에 머물다가 1617년 4월 10일 65세 나이로 하직 합니다. 강가의 지은 정자는 근심을 잊고 지내겠다는 뜻을 지닌 망우정(창녕군 도천면 우강마을)이었습니다. 정말 흐르는 낙동강에다 근심을 띄워 보낸 것은 아닌지 넌 저시 물어보고 싶습니다.

 

 

 

<참조>

1) ‘선조실록’ 선조 25년 6월 28일

2) ‘광해군 일기’ 1608년 9월 14일

主人長任 前 上書-전단지 무단 부착을 용서하옵소서!!!
[1/70억이라는 모두 다 똑같은 지분의 지구주인으로서 소비를 통한 평등한 ‘환경파괴권’을 요구하시오.물론 이제까지는 환경파괴권이란 개념은 없었지만 시대에 따라 새로운 개념이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는 것입니다.일만년 전에 ‘공해니 환경’이니 하는 개념은 있지도 않았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불과 10년 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금연아파트니 금연거리를 가능케 한 것은 ‘비흡연권’또는 ‘혐연권’이란 개념이 생겨서 가능해진 일입니다. 오로지 인류가 그 동안 정의를 위하여 흘려 온 피와 땀과 눈물의 총량이 비로소 ‘환경파괴권’이란 개념의 생성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처음엔 젊잖게 요구하십시오. 다음에 수백만의 성난 군중이 되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십시오. ‘제1인류시대’의 잔재들을 싹쓸어 버리십시오. 딱히 순서랄 것까지는 없지만 우선 호화주택이 눈에 띄겠죠? 총명함과 학식으로만 따진다면 프랑스 대통령감 영순위라 할 유럽은행 총재를 역임했던 자크 아탈리의 ‘예언’- 아무리 늦어도 21세기 중반이면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 현재의 발전 모델을 휩쓸어 버릴 것이다. 자본주의의 수명을 말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 끝을 21세기 중반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지구촌에서 가장 hot한 소장 경제학자 토마 피게티도 포함해서요.

●내용:
인성환*김성호*허정욱*최승권*정다운*단경수*유금순일당은
일제시대일본국을 국가라 주장하고 인정하라고,
일제시대[순사]를 주장하고 인정하라며,
일제시대 일본천황의 왕권정치를 해야된다고
주장하며 국민들을 추행하는 강력범죄조직입니다. -이상-

※궁금한 사항이 있으신분은 가까운군부대나 국방부 군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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