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명화감상

금동이 2014. 3. 13. 13:00

 

윈슬로 호머의 작품세계 Ⅱ- Winslow Homer[남자들]

 

[미국 수채화가 : 1836-1910]

 

 

미국의 자연주의 화가 윈슬로 호머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명이다. 그의 작품들은 19세기 후반의 미국 미술에서 가장 강렬하고 표현이 풍부하다고 평가를 받고있다, 그가 그린 주제들은 겉보기에는 매우 단순하지만 느낌은 매우 강렬하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종군 화가로 뛰면서 그린 삽화가 인기를 끌면서 이름을 알리게 된 호머, 그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프랑스 인상주의와는 달리 단순한 스타일을 보여주었으며 여기에 직설적인 서정성을 가미하여 당시 유럽풍 위주의 미국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호머는 뉴잉글랜드의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6세 때 그의 가족은 당시에는 시골 마을이었던 케임브리지로 이사했으며, 호머는 시골에서 성장을 하였다. 어머니가 아마추어 화가였지만 호머는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적은 없다고 한다. 독학과 어머니의 도움으로 그림을 시작한 호머는 19세때 보스톤에서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그의 미술 인생을 시작하였다.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호머는 전선에서 드린 드로잉들을 <하퍼스 위글리 Harper's Weekly>에 기고했는데, 대부분의 다른 종군 미술가들과 달리 전투 장면보다는 일상적인 야영 생활 장면들을 더 많이 다루었다. 전쟁은 길어졌고, 호머의 그림들 역시 사람들 사이에 인기를 끌게 되었다.

1865년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 된 호머는 전쟁이 끝난 직후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 <전선에서 온 포로들 Prisoners from the Front>란 작품으로 커다란 호응을 얻게 된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화해의 분위기를 훌륭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당시 호머의 화실을 뉴욕에 있었지만 도시는 거의 그의 작품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호머는 날씨가 따뜻해지면 몇 개월 동안 펜실베니아와 허드슨 강 유역, 뉴잉글랜드를 여행하면서 야영생활도 하고 사냥, 낚시 등을 즐기면서 자연과 그 속의 순박한 사람들을 스케치 했다.

1866년 프랑스에서 인상주의의 화풍을 공부하면서 작가로서 성숙하게 되지만 결코 유럽 인상파와는 다른 미국적인 인상주의를 표현했다.

호머의 유화들은 점점 규모가 커졌고, 인물들은 더욱 고독해보였으며, 자연의 세부에 대한 그의 관심은 더욱 커져갔다. 호머는 수채화와 유화를 병행하면서 기념비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 매사츄세스의 바다풍경 그리고 말년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플로리다 바하마 캐러비안의 풍경과 아울러 우아하고 따뜻하지만 귀족풍이라기 보다는 서민여성의 아름다움을 흠모했던 듯한 그는 그 당시 미국의 자연주의 화가중 보기 드믈게 많은 여성을 모델로한 작품을 남겼다.

갑작스럽게 떠난 영국의 한 외딴 항구에 머물으면서 호머는 그물을 수리하고, 집을 지키고, 아이들을 키우는 어부의 부인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또한 호머는 바다에 매료되었고, 자연의 힘에 부딫힌 인간의 운명에 강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세찬 바다에 맞서 힘과 지혜과 경험으로 이겨내는 용감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에 큰 관심을 가졌지만 대외적으로는 비사교적이었던 호머는 노년기에 들어서는 거의 칩거에 들어간다. 그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거의 하지 않았고 점점 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하지만 작품 활동만은 더욱 활발해졌다. 호머는 1910년 프라우츠넥에 있는 작업실에서 죽었는데요, 사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닥 알려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