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명화감상

금동이 2015. 5. 20. 09:00

 

표현주의(expression‍ism, 表現主義)

 

 

넓은 의미에서 표현주의는 리얼리즘에 반대하는 미학 일반을 가리킨다. 초현실주의, 형식주의, 모더니즘 등이 이에 속한다. 리얼리즘은 이미지보다 현실을 우위에 둔다. 그러나 표현주의는 영화의 다양한 형식과 실험을 우선한다. 그것은 객관적 현실보다 주관적 심리, 꿈과 환상의 표현 등에 치중한다. 특히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왜곡과 과장의 미학을 통해 전후 독일의 사회적 불안을 잘 드러낸다. 독일 표현주의의 화려한 스타일은 할리우드 공포영화와 필름 누아르에 이식된다.

 

 

 

1. 표현주의 개념

 

예술사에서 표현주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부르주아 미학의 반작용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리얼리즘의 재현 미학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모더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간주된다(Hayward, 2006).

 

넓은 의미에서 표현주의 미술의 흐름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폴 고갱(Paul Gauguin),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후기 인상파,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피터 몬드리안(Pieter Mondrian)의 추상미술,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의 야수파,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귀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의 상징주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입체파 등 다양한 경향들을 포괄한다. 표현주의 미술은 자연의 단순한 모방에 반대하고, 인간 감각과 감정의 표현과 구성에 주목한다.

 

특히 1910년대를 전후해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등이 활발하게 표현주의 미술과 연극 운동을 전개했다(Thomson, 2010). 그들은 왜곡된 빛과 색채, 과장된 무대 세팅과 연기로 주관적이고 극단적인 감정을 표현했다. 이 당시 표현주의 운동은 현실의 객관적 재현에 반대하고 다양한 형식을 통해 주관적 의식과 심리적 효과를 창출하는 데 집중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표현주의 미학은 또 다른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1935년 게오르그 루카치(György Lukács)와 벌인 유명한 리얼리즘 논쟁으로 표현주의 미학의 가치를 옹호했다. 그는 현실의 총체성, 본질과 현상의 유기적 통일성을 작품 속 전형성으로 구현할 것을 강조하는 루카치의 리얼리즘론을 비판했다. 브레히트가 보기에 예술의 진정한 힘은 현실에 대한 작품의 형식적 통일성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유기적 조화를 깨뜨리는 것으로부터 온다(Brecht, 1989). 루카치와 달리 브레히트는 객관적 현실의 연관관계를 총체적이고 통일적으로 모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순적이고 대립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동시에 브레히트는 여타 표현주의 예술 운동의 주관적, 심리적 측면의 지나친 강조에도 반대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미학에 근거한 예술의 감정적 카타르시스와 동일시 효과에 반대한다. 극적 갈등의 첨예화와 파국을 통한 해결이라는 고전적 드라마 기법을 거부하고 관객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교훈적 효과를 창출한다. 그는 한밤의 북소리(1922), 서푼짜리 오페라(1928) 등을 통해 서사극 이론을 발전시킨다.

 

브레히트는 다양한 예술적 형식과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거리두기 효과(Alienation Effect)'를 강조했다. 줄거리에 음악으로 주석 달기, 관객에게 직접 말 걸기, 번호 붙이기, 연극 무대장치 드러내기 등 관객의 몰입을 차단하는 '거리두기 효과'를 창출함으로써 예술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현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나중에 브레히트의 표현주의 미학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장 마리 스트로브(Jean Marie Straub), 다니엘 위예(Daniele Huillet), 두샹 마카베예프(Dusan Makavejev) '정치적 모더니즘' 영화의 맥락에 가 닿는다(MacCabe, 1974). 그들은 관객이 영화 속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환상에 동일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브레히트의 표현주의 방법론, 즉 비판적 거리두기 효과를 활용한다.

 

정치적 모더니즘 영화들은 할리우드 리얼리즘 영화의 연속적 내러티브 관습을 깨뜨리고 다양한 영화 형식을 실험한다. 카메라는 관객을 향해 말을 걸고 180도 룰을 이탈한다. 점프컷과 불연속적 편집이 의도적으로 사용된다. 관객의 몰입을 막는 2차원적 수평 트래킹이 빈번하고, 음악과 자막은 극의 맥락과 분리된다. 이처럼 표현주의 방법론은 반리얼리즘 영화 미학을 개척하기 위한 다양한 형식 실험에 활용되었다.

 

2. 표현주의 영화의 미학

 

영화사에서 표현주의 미학은 넓은 의미에서 리얼리즘 영화의 미학과 대비되는 것으로 사용된다. 리얼리즘 영화가 객관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반면, 표현주의는 다양한 형식과 표현으로 비현실적 꿈과 환상, 주관적 심리 상태 등을 묘사하고자 한다.

 

영화의 초창기 루이 뤼미에르(Louis Lumiere)가 리얼리즘 경향을 대표했다면, 다양한 트릭과 마술 기법을 사용한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는 표현주의 경향을 보여 주었다.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는 영화의 초창기 다양한 트릭과 마술 기법을 사용해 표현주의 경향을 보여 주었다. 사진은 <달나라 여행>(1902) 중 한 장면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는 영화의 초창기 다양한 트릭과 마술 기법을 사용해 표현주의 경향을 보여 주었다. 사진은 <달나라 여행>(1902) 중 한 장면커뮤니케이션북스

 

이후에도 영화사는 크게 리얼리즘과 표현주의의 두 경향으로 양분된다. 할리우드 고전 리얼리즘, 네오리얼리즘, 다큐멘터리, 민중영화 운동 등은 리얼리즘의 맥락에 놓인다. 반면 독일 표현주의, 프랑스 인상주의와 초현실주의, 러시아 형식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은 표현주의의 맥락에서 더 이해하기 쉽다. 말하자면, 영화의 역사는 예술의 내용과 형식 사이에서, 또는 현실 세계의 재현과 그 표현 방법론 사이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다.

 

그러나 루이스 자네티(Louis Giannetti)의 말처럼 영화사의 주요한 두 가지 경향이 절대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Giannetti, 1999). 실제 영화 작품은 어느 정도 두 경향의 혼합이다. 두 경향은 상호작용하며 발전해 왔다. 이를테면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남자는 한 작품 속에 리얼리즘과 표현주의 경향이 절묘하게 공존한다.

 

리얼리즘이 현실의 진실성을 입증하고자 할 때, 표현주의는 공상의 현실감을 보여 줄 뿐이다. 두 경향은 영화 예술의 두 가지 본질, 즉 현실과 환상, 기록과 재구성, 모방과 창조의 이중성을 가리킬 따름이다.

 

사실주의 영화이론가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영화가 물질적 현실을 사진적으로 복제하는 데 주목한 반면, 표현주의 영화 미학의 대표 이론가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은 그의 책 예술로서의 영화(1933)에서 물질적 현실과 영화적 현실 사이의 차이를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영화는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기보다 매체의 형식과 한계 속에서 재구성한다.

 

특히 형태 심리학자로서 아른하임은 인간 눈과 카메라의 지각 방식이 지닌 차이에 주목한다. 영화 예술은 카메라 렌즈의 왜곡, 슬로·패스트 모션, 이중인화, 편집에 의한 시공간의 재배열 등으로 물질적 현실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변형한다(Arnheim, 1957). 영화 매체의 형식적 특성과 상징적이고 창조적인 표현 방식이야말로 영화를 예술로 만들어 주는 힘이다.

 

표현주의 영화의 미학은 객관적 재현에 반대하며 주관적 감정과 심리의 리얼리티에 주목한다. 그것은 카메라 촬영과 편집의 다양한 조작과 변형을 통해 영화의 예술적 능력을 극대화한다.

 

3. 독일 표현주의 영화

 

1919년 최초의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The Cabinet of Dr. Caligari)>을 연출한 로베르트 비네(Robert Wiene, 1873~1938) 감독

1919년 최초의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The Cabinet of Dr. Caligari)>을 연출한 로베르트 비네(Robert Wiene, 1873~1938) 감독커뮤니케이션북스

 

좁은 의미에서 표현주의는 1920년대 독일 영화의 특정한 경향을 지칭한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1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탄생했다. 1919년 베르사유조약은 패전국 독일에게 엄격한 전쟁 책임과 배상을 부과했다. 당시 독일 사회는 패전에 따른 경제적, 문화적 황폐감과 가치관의 붕괴,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은 이러한 사회적 무질서와 혼돈, 심리적 불안과 공포를 반영했다.

 

당시 독일 영화가 급부상한 데는 1917년 제국주의 선전을 위해 정부 주도로 만들어졌던 영화사 우파(UFA, Universum Film Aktien Gesellschaft)의 영향이 컸다. UFA는 소규모 영화사들이 결합한 대규모 영화사로 정부의 경제적, 재정적 후원을 통해 유럽 최고의 스튜디오 시스템과 기술 인력들을 갖추었다. UFA는 전후 독일 영화의 부흥을 주도했다.

 

1919년 최초의 표현주의 영화로 간주되는 로베르트 비네(Robert Wiene)칼리가리 박사의 밀실(The Cabinet of Dr. Caligari)을 비롯해, 프리츠 랑(Fritz Lang)마부제 박사(Dr. Mabuse The Gambler)(1922), 메트로폴리스(Metropolis)(1927), (M)(1931), 프리드리히 무르나우(Friedrich Wilhelm Murnau)노스페라투(Nosferatu)(1922), 마지막 웃음(The Last Laugh)(1924) 등이 대표작들이다. 특히 크라카우어는 정신병 환자의 망상 속에서 연쇄살인범 이야기를 다룬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 당시 억압되고 짓눌린 독일 사회와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칼리가리 박사는 히틀러를 예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Kracauer, 2004).

 

또한, 현대 기계문명을 비판하는 프리츠 랑의 걸작 메트로폴리스는 심원한 SF적 상상력과 미래에 대한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비전, 계급관계에 대한 통찰, 웅대하고 정교한 건축학적 세트와 미장센 등을 통해 독일 표현주의의 마지막 대작으로 평가된다.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은 표현주의 영화의 주요 특징을 회화적, 조형적 미장센이라고 지적한다(Bordwell, 2008). 무대 세트들은 기이하고 뒤틀려 있다. 인물들은 병적이고 비정상적이며, 배우들의 연기는 과장되고 음울하다. 조명은 빛과 어둠의 극단적 대비를 이루며, 카메라 앵글은 비스듬하고 극단적이다. 이처럼 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플롯이나 내러티브 관습에 치중하기보다는 파격적이고 스타일리시한 미장센으로 사회와 개인의 불안과 공포심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1927년을 전후로 서서히 막을 내린다.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거센 도전,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의 흥행 참패와 전반적 영화 제작비의 상승, 특히 1933년 히틀러와 나치스의 집권은 많은 재능있는 영화 감독들이 할리우드행을 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프리츠 랑과 무르나우를 비롯해 많은 감독과 배우들이 예술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향했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수명은 10년 남짓으로 단명했지만 영화사에 남긴 자취는 길고 강했다. 특히 왜곡과 과장의 심리학, 기괴하고도 정교한 미장센, 강렬한 명암의 조명과 극단적 앵글의 촬영 등 독일 영화의 화려한 스타일과 양식화된 기법들은 할리우드 공포영화와 필름 누아르의 장르 속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심리 스릴러를 비롯해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1931), 드라큘라(Dracula)(1931), 마이클 커티스(Michael Curtis)카사블랑카(Casablanca), 오손 웰즈(Orson Welles)악의 손길(Touch of Evil), 팀 버튼(Tim Burton)가위손(Edward Scissorhands)등 뛰어난 미장센과 심리 묘사를 보여 준 많은 영화들이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표현주의 (영화 역사와 미학, 2012,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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