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명화감상

금동이 2017. 10. 14. 09:00


빈센트 고흐

Vincent van Gogh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20세기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평생 구백여 점의 작품을 그렸고 동생과 삼촌이 미술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동안에 팔았던 그림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단 한 점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망 후 10여 년이 지난 1901년 파리에서 열린 회고전을 계기로 작품 세계가 재평가되었고 이후 현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절묘한 색채, 열정적인 붓놀림, 독특한 윤곽 형태 등으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대표작으로는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침실〉, 〈붓꽃〉, 〈자화상〉 등이 있다. 가족, 친구들과 주고받은 900여 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이 편지들은 반 고흐를 ‘불행한 예술가’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53년 네덜란드 남부의 시골마을 준더르트에서 태어났다.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집안 분위기는 엄숙하고 종교적이었다. 열여섯 살에 미술품 딜러였던 삼촌의 소개로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몇 년 후에는 그가 평생 동안 경제적,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동생 테오도 같은 화랑에 취직하여 딜러가 되었다. 그는 구필 화랑의 런던과 파리 지점에서 근무하며 약 7년 동안 딜러로 활동했다. 그 덕분에 매일 수많은 화가의 다양한 그림을 접할 수 있었고 이는 예술적인 감각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사실주의 화가 밀레와 근대 풍경화를 개척한 카미유 코로의 영향은 평생 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미술 작품이 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을 싫어했던 반 고흐는 손님과 크게 다툰 사건으로 해고되었다.

1877년 목회자가 되려고 신학을 공부했으나 교수들과 의견 대립이 잦아 목회자 자격을 얻지 못하고, 벨기에 남부의 광산 지역으로 가서 선교 활동을 했다. 하지만 교회 측은 교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크게 실망한 그는 그림을 통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겠다는 생각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1885년까지 벨기에와 네덜란드 각지를 떠돌며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를 그리며 드로잉, 수채화, 유화 기법을 거의 독학으로 익혔다. 이 무렵 대표작으로는 고된 농부들의 삶을 소재로 한 〈감자 먹는 사람들〉(1885)이 있다. 이 작품은 반 고흐 초기 명작으로 평가받을 뿐 아니라, 반 고흐 자신도 대표작으로 꼽은 작품이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허락 없이 자신들을 그렸다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 시기 작품들은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 강해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1886년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위해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미술 학교에 입학했으나 학교 교육이 맞지 않아 석 달 만에 그만두고 동생 테오가 있던 파리로 갔다. 툴루즈 로트레크, 고갱 등 뛰어난 화가들과 교류했고, 피사로, 쇠라 등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접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갔다.

1888년 도시 생활에 지친 반 고흐는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이주하여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전형적인 반 고흐 스타일 그림들은 대부분 이때 그려졌다. 반 고흐는 함께 작품 활동을 하려고 폴 고갱을 초대했으나 예술관과 성격 차이로 자주 다투었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낸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인 1888년 12월 고갱과 심하게 다툰 반 고흐는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말았다. 며칠 뒤 고갱은 파리로 돌아갔고 다시는 반 고흐를 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반 고흐를 ‘붉은 머리 정신병자’라고 욕하면서 그를 마을에서 쫓아내 달라고 당국에 탄원서를 올렸다. 한때 경찰이 그의 집을 폐쇄하기도 했으나 동료 화가 폴 시냐크의 도움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889년 발작이 점점 심해지면서 아를 근처에 있는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인생의 마지막 1년을 보냈다. 이곳에서 유화만 백오십여 점을 남겼을 만큼 놀라운 생산력을 보였다.

빈센트 반 고흐는 10여 년 남짓한 작품 활동 기간에 무려 구백여 점의 유화와, 천백여 점의 드로잉 및 스케치를 남겼다. 그 작품들은 이후 인상파, 야수파, 독일 표현주의, 초기 추상파 등 유파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화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890년 7월 27일 반 고흐는 들판으로 걸어 나가 가슴에 총을 쏘았다.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치명상을 입었고, 이틀 후 동생 테오가 바라보는 가운데 서른일곱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평생 그의 경제적, 정신적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 역시 6개월 후인 1891년 1월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