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명화속 이야기

금동이 2020. 3. 7. 06:02

 

 

 

 

환영(The Apparition) 1876

 

 

위의 작품은 <구스타프 모로>의 그림이다. 그는 1826년 프랑스 파리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72세의 생애를 살았다. 그는 19세기 상징주의 미술의 대표적 화가다. 상징주의는 당시 실증주의와 과학만능주의, 그리고 예술의 퇴락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예술사조다.

 

 

한마디로 상징주의는 인간의 내면의 사고와 꿈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모로는 명화를 정의하길, "영원히 남게 될 그림은 생각과 꿈 그리고 마음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손재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신화적 주제를 집중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위의 그림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14장 전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이야기인즉슨, 예수님 당시 유대왕 이던 헤롯이 폭정을 일삼고, 게다가 동생의 아내를 취하자 요한이 헤롯왕을 질타했다. 그런던 어느날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추어 헤롯을 기쁘게하자, 그녀의 청을 들어 주기로 한다.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는 요한의 목을 청한다. 그러자 헤롯은 요한을 잡아 목을 베, 머리를 소반에 담아 그녀에게 준다. 그렇지 않아도 요한은 헤롯의 눈엣가시였으므로 그를 죽일 명분을 찾고 있던 차였다. 그렇게 헤롯이 요한의 목을 베길 두려워 했던 까닭은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의 두려워 하였더니" <마14:5>하였다.

 

 

영국의 사회주의 정치가 토니 벤은 말하길, "왕들은 권력(Power)을 가졌고 예언자들은 원칙(Principles)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권력은 수시로 변동하나 원칙은 항구적인 것이다. 권력에게 있어서 대원칙은 민중이다.

 

 

이걸 현실정치에 엮어보면 '원칙'도 민중의 힘을 업어 '권력'이 되는 순간 한결같이 부패했다. 노무현, 한명숙 이들은 한때 우리들의 원칙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밀어 권력이 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을 잡는 순간 '원칙'을 버리고 옛날의 권력을 뒤따랐다. 그리고는 궤변만 늘었다.

 

 

헤롯의 '권력' 은 세례요한이라는 '원칙' 앞에 한낱 아침에 떳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언자들의 전통에 따라 '원칙'을 자기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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