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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현_락키온 2007. 4. 14. 10:48

  제목: 아이를 부자로 키우는 법
  지은이: 변재용
  출판사: 중앙MB
  출판년도: 2000년 7월 25일
 
      - 작가 소개 -
   한솔교육 대표이사
   영유아 학습 교재 '신기한 한글나라' '신기한 영어나라'등 신기한 나라 시리    즈

유아교육의 필요성과 그 효과에 대한 뜨거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1956년 전북 고창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75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으     나
학생운동을 하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    다.
   졸업 후 초기 자금 150만 원을 들고 노량진 주택가 반지하방에서 영재수학    교육
연구회를 만들어 유아교육 시장에 첫 발음 내디뎠다. 하지만 사회운동에    대한 미련
을 버리지 못해 그 후로도 10여 년 동안 회사와 야학활동을 병행했    다.
   그러다 1989년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환경이 문화이고, 그 문화를 바꾸는     방

은 교육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유아교육 사업에 뛰어들     었다. 꼬

2년에 걸친 준비 끝에 1991년 한솔교육을 설립, '신기한 한글나라'    를 선보여 장안

화제가 되었다.
   그 뒤로도 영유아들을 위한 획기적인 교재들로 유아교육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
켜, 지금은 회원만 35만 명을 넘는다. 이처럼 초고속 성장으로 눈부신 성    공 신화

이루었음에도 본인 스스로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모든 어린이들을 세계 최고의 인재로 만든다"는 자신의 꿈을 아직     실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머리말 -
  아이를 행복한 부자로 키우는 법

   '한솔교육'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 나는 소위     남

이 말하는 성공을 이루었다. 매출액 3억으로 시작해 700배 가까이 성장한    우리 회

를 보고 '초고속 성공 신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나를 보면 농담조로 그런다.
   "돈 좀 버셨겠내요." "부자 되셨겠네요."
   맞다. 나는 돈을 벌었다. 그런데 내 수중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돈이 없   
다.
왜냐면 나는 우리 회사의 미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벌어들인 돈의    많은 부분
을 다시 투자하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의 연구개발비는 매출액의      2.14퍼센트로

른 회사들의 평균 투자율보다 높다. 직원들 교육훈련비에  대    한 투자도 상위 10대
기업 투자의 세 배이다.
   그런데 덕분에 기분 좋은 오해를 사기도 했다. 외환 위기가 닥쳐기 이전인     199
7
년까지 지도 교사 '전원'을 상대로 해외연수를 시행했는데 그때 사람들이    그랬다.

많은 지도 교사 모두에게 그런 교육을 시키는 것 보니  돈이 남아    도는 것 같다고,
IMF때 단 한명의 직원도 감원하지 않는 걸 보고서도 사람들    은 똑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결코 돈이 남아돌아서 그런게 아니다. 그렇게 투자하려면 다른 부분    들

있어서 뼈를 깎는 절감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도 나는 최고의 교재와    최고의 지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쪽을 택한다. 왜냐면     나는 단순히 아이

에게 교재를 파는 것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파는 교육 사    업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프로그램 개발이나 인재 양성에 투자한 만큼 아이들    의 미래 또한 풍요로워질 테니
까.

   나는 누가 "당신은 부자입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부자다"라고 당당하게 말    한
다. 기본적으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 돈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그  돈으로    의식

를 해결할 뿐더러 가족과 함께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나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어느 장도 물질적인 여유, 즉 부는 반드시 필요   

다고 생각한다. 삶 자체가 돈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삶을 지탱하    는 데

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돈이 많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축복    받을 일이다.
   하지만 내가 부자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은  "돈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    다.
가진 돈의 액수만 놓고 따지면 나는 부자 축에 속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부
자라고 우기는 것은 내가 가진 돈으로 사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밝    은  미래에 조금
이나마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는 '행복한 부자'
다.

   나는 내 아이가 나처럼 행복한 부자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행

한 부자가 되려면 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    떤 노력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다.
   그런 건 절대 학교 같은 데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나마 대부분의 부모들도    자
기네들은 돈에 얽매여 살면서, 자식에게는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    라고

한다. 나는 그런 부모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아이가 행복한 부자가     되길 바란

면 절대로 "인생에서 돈은 별로 돈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가르쳐     서는 안 되기 때
문이다. 물론 아이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모가

이의 앞날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 아이를 행복한 부자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만    한
방법들을 고스란히 털어놓았다. 그것은 내가 행복한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기
도 하다. 막상 쓰고 보니 과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사람인    가 부끄럽지

내가 행복한 부자니까 쓸 수 있었다고 위안을 삼아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모든 부모와 그들의 아이들의 행복한 부자가  되기    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2000년 7월 변재용 -
 
    - 차례 -
  제 1장 아이를 부자로 키우는 법
  카네기가 빌 게이츠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성공하는 시대다
  부자는 자신의 몸값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절대로 유산을 남기지 마라
  사람이 곧 재산임을 가르쳐라
  '버는 법'보다 '쓰는 법'이 중요하다
  돈을 찾아다니게 만들어라
  실패를 권장하라
  내가 두성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

  제 2장 아이를 부자로 키우려면 가정경영 이렇게 하라
  가슴 뛰는 삶을 가르쳐라
  때로는 게으른 엄마가 되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를 당신의 머릿속에 가두지 마라
  자식과 싸우려거든 제대로 싸워라
  당신의 어머니로부터 벗어나라
  '자아존중'이라는 무기를 들게 하라
  하루쯤 아이에게 부모가 될 권한을 주라
  가끔은 아이를 거꾸로 보라
  아이는 부모의 엘리베이터가 아니다
  당신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제 3장 한솔교육의 성공에서 배우는 학습전략
  자녀를 가르치는 4가지 학습 대원칙
  인터넷 교육, 4세부터 가능하다
  엄마가 영어 박사일 필요는 없다
  그림을 아이들의 언어로 이해하라
  엄마 먼저 수학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라
  '한글 떼기'에도 단계가 있다
  음악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제 4장 나는 조용한 혁명을 꿈꾼다
  아이들은 이런 엄마 아빠를 원한다
  '조기 교육'이라는 말이 없어져야 하는 이유
  나는 조용한 혁명을 꿈꾼다
 
      아이를 부자로 키우는 법

    카네기가 빌 게이츠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

   지금 우리 회사에서 나온 '신기한 한글나라' '신기한 영어나라'등 신기한 시    리

를 보고 잇는 아이들은 35만 명을 넘는다.  내 입장에서야 점점 늘어나는    회원들을
보면 가슴 뿌듯하고 기쁘지만 한편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교재를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 또한 커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더 유용한 교재    를 만들기 위해 지도
교사들과 회원 어머니들을 만나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    가 많다.
   그런데 회원 어머니들과 얘기하다보면 가끔 놀라는 것이 그저 "자식이  공부    를
잘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 좋은  직장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는 어머     니들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인다.
   "사회가 그런데 어떡하겠어요?"
   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생각해보자. 이제 일류 대학    을
나왔다고 그보다 못한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무조건 잘 되는 세상은 지나    간 지 오
래다. 그렇다고 안정된 직장이 있는가. 아니다. 소위 잘 나간다는 기    업들도 순식

에 무너지는 세상이다. 몰론 지금도 학벌 중시 풍토가 다 사라    진 것은  아니다.

전히 그 망령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얼마 못 간다. 이제 예전부터 우리가 손에 들고 있던 지도    로

길을 찾아갈 수가 없다. 여러 세대에 걸쳐 통용돼온 원칙과 생각이 지금    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겁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길 일이다.     아이가 당신보

더 빠르게 부자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는데 돼 그것을     마다하겠는가.

   산업 시대를 풍미했던 철강왕 카네기와 컴퓨터 천재로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을
맡고 있는 빌 게이츠가 최고의 부자 자리를 놓고 한판 재결을 벌였다.
   제 1라운드. 카네기는 자신이 갖고 있는 풍부한 철을 이용해 수천만 대의 컴    퓨
터를 만들었다. 이제 세계의 컴퓨터 시장을  자신이 거머쥐리라 확신했던 카    네기.
하지만 그가 만든 것은 '깡통'이었다. 부속품들이 제 기능을 하게 만들    어줄 프로

램이 없으니 그가 만든 것은 그야말로 깡통에  불과했다. 카네기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이 만든 컴퓨터에 빌 게이츠가 만든 마이크로소    프트  프로그램을 채워
넣어야만 했다.
   제 2라운드. 화가 난 카네기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원들에게 빌 게이츠를    이
길 수 있는 전략 마련을 황급히 지시했다. 그가 명령을 하달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전화와 팩스. 그러나 한꺼번에 몰린 통화량 때문에  전화와 팩스 모두    불통이 되고
말았다. 이 사이 카네기의 음모를 전해들은 빌 게이츠는 재빠르    게 인터넷 게시판

대응 방안을 올렸고, 이를 받아본 전 세계의 마이크로소    프트 직원들은 일사분란하
게 움직여 카네기를 막아냈다.       
   제 3라운드. 카네기는 빌 게이츠의 주력 부분인 컴퓨터 시장을 포기하고 새    로

분야인 자동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자동차 판매를  두고 고객 만    족 서비스
경쟁을 벌인 것이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 자동차를 만들어내기 위    해  다양한 모형
을 재작했고, 고객이 마음에 안 들어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시 만들어냈다. 이

이 빌 게이츠는 자신의 주력 분야인 컴퓨터를 이 경쟁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한가지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고객
이 원하는 디자인과 성능을 접수받고, 이를 토     대로 모의 테스트까지 실시한 것이
다. 결국 고객들은 빌 게이츠가 만든 서비    스 방식을 택했다.
   게임을 하려면 게임의 규칙을 알아야 하고, 누구와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

지 않으면 내가 그 게임을 주도하기는커녕 그 게임에 휘둘리게 되기 쉽    다.
   위의 이야기는 물론 가상의 것이다. 하자만 카네기적인 방식이 더 이상 통하    지
않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컴퓨터라는 하드웨어보다 그    속에 들

있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한 시대로, 인터넷이 전화와 팩스를 대    신하는 시대로

겨지고 있음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그런 세상이 오리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여 엄천난 부를  거머쥐    었
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누가 땅이나, 돈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다. "돈 없    는 부

만나서 내가 이 모양이지"하는 소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벤처기업'이

는 말이 고유명사화되어 있는 지금, 부의 척도는 기존의 방식을    뒤엎고 무에서 유

만들어내는 '창조력'에 있다. 최소한의 돈만 있어도 질 좋    은 지식과 정보를 제대

활용하고 응용할 줄 아는 창조력이 있다면 그는 분    명 부자가 될 것이다.
   이제 신세계가 열리고 있다.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이 만들어지고     있
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다. 돈을 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은 바로 창조력이     다. 부

들의 위대한 자산 중의 하나는 그들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    한다는 것이
다.
그러므로 아이를 부자로 키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가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자신의 창조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아이의 창조력을 논할 때 부모들은 창조력이 일부 특    정
한 사람이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냐고 묻곤 한다. 창조력을 재능의 한가지    로 받

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창조력을 지    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창조력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도록 격려했는가에    따라 그 발현 여

가 달라질 뿐이다.
   아이가 갖고 있는 독특한 개성을 잇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이 하는    대
로 행동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이 가진 재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    록 만들
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 본연의 창조력은 활짝 피어날 것이다.
   자, 이제 아이의 창조력을 키우는 아이를 부자로 키우고 싶다면, 성공의 지    름

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고정관념을 버리자.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로    막는 첫번
째 요인이 바로 부모가 가진 온갖 고정관념이기 때문이다.
   갈릴레오가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그들이 자기 안에서 무엇인가를 찾도록 돕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성공하는 시대다

   나의 아버지는 일평생 농사짓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사신 분이다. 지금처럼    제

로 된 농기계 하나 없던 시절, 아버지는  직접 모내기를 하고, 물 대는 길    을  내

위해 손수 도랑도 파고, 또 추수 때가  되면 온종일 낫을 들고 논에     계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뙤약볕에 아래 땀 흐리며 농사일 하시는 아버지    의 모습이  못내 안
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단순히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농    사를
지으셨던 것만은 아니었다. 결혼 당시만 해도 아버지는  변변한 땅뙈기     하나 없는
가난한 농부셨다. 하지만 나중에는 근동에서 논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부자가 되

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부자가 되고서도 하루도 논에 나가는    것을 거른 적이 없으

다. 심지어 하루 종일 다른 마을에  볼일이 있어 다녀오    신 날도 예외는  아니었
다.
아버지는 정말 농사일을 좋아하셨던 것이다.
   만약 농사일을 힘들고 고되다고만 여겼다면 어느 정도 형편이 나아졌을 때    장사
를 하거나 아예 소작을 주고 편안하게 사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 한번도
농부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기를 원치 않으셨다. 또 곡식을 심고    거두는 일에 큰
자부심을 느끼셨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부와 명    예
를 쌓아가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늘 그러셨다.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해라."
   그러나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자식들을 보며 그런 말을     하기
란 쉽지 않다. 나 역시 아버지로부터 성공의 지혜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인 두성이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녀    석
이 원하는 일을 찾는다고 해도 그것으로 밥벌이는 할 수 있을지, 자신의 삶    을 제

로 꾸려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혼란에 빠졌다. 아들녀석이 갑자기 컴퓨터 게임에만 몰    두
하는게 아닌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컴퓨터를 선물 받고 좋아서 어쩔 줄 모    르던 녀
석을 볼 때만 해도 녀석이니만큼 그 컴퓨터가 어떤 방면으로든 아이    의  재능을 확
실하게 키워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녀석이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
면서까지 흠뻑 빠져 있는 일한 게 세상에 컴퓨터 게임이라    니!
   속으론 당혹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일단 얼마간 녀석의 태도를 지켜보기로 했    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 나아지려니, 고등학생이 되면 나아지려니 하면서     기다리다

어느덧 고3 문턱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더 이상 두고볼 수만은 없었다. 결국 나는  아들녀석에게 "컴퓨터 겜임 같은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우선 공부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을  꺼내    고야 말
았다. 그런데 녀석이 대뜸 한다는 말,
   "아빠 엄마는 항상 공부 얘기뿐이에요. 그건 네가 다 알아서 한다구요."
   뭐가 그리 서러운지 녀석은 눈물까지 보였다. 울먹이는  말에 아들녀석은 끝    내
집을 뛰쳐나갔고 그 순간 우리 부부는 충격으로 서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시

이 흐르자 나 자신에 대한 견딜 수 없는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했     다.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다니....'
   두성이는 남에 대한 배려도 각별하고 정도 많은 아이었다. 그러니 나름대로    부

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비록 나와 아내가 그 동안 심    하게 다

치진 않았어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부모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만큼 서운한 것을 할 줄 하는 사람이 돼    라고  말씀하신 아버지
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민 끝에 그날 밤 나는 모처럼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네가 잘 알아서 할 텐데 공연한 노파심 때문에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하    
다.
앞으로는 절대 아버지의 편견으로 네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으마, 아빠    엄마는

상 널 믿고 사랑한다.'
   며칠 후 아내는 두성이가 전처럼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않아 있지 않으며    대신
스스로 시간표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줄이나 빽, 학연, 지연이 없어도 성공 할 수  있다. 오   

려 매니아가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프로게이머'란 직업만 해도    그렇
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직업이 뭐라구요?"라고 물을 정도로 생소했    지만 지금 그
렇게 물어봤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    러므로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던 "좋아하는 일로 성공하라"는 말도 엄밀히    따지면  앞으로는 안 통
할지 모른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성공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될 무렵이면 아마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
도로 수많은 직업들이 탄생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직업들이 탄생할 것    이다. 또
생각지도 못한 일로 커다란 부를 거머쥘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부모    들이 자식들에
게 은연중에라도 이런 일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직업을 가졌으    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그 아이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밖에 되지 않는    다.
   자신이 가장 원하는 일로써 생계를 해결할 때 가장 효율적이고 만족도도  높    다
고 한다. 좋아하면 집중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에너지가 한쪽으로 모아져서    빛나는
아이디어들을 더 많이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일을 즐기고    성취감을 맛

는 사이에 돈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편지 사건 이후로 나는 두성이를 이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내 아들은    나
를 깜짝 놀라게 할 어떤 성공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몰두해  있는    것이라
고. 만일 두성이가 앞으로 펼칠 일이 컴퓨터 게임을 하듯 미칠 수 있는    일이라면

석은 이미 성공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
 
    부자는 자신의 몸값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나는 여성들을 사랑한다. 특히나 일하는 여성들을 보면 그저 바라만 보고 있    어
도 좋다(아내가 질투를 느끼려나? 물론 나는 이 세상에서 아내를 가장 사     랑한다)
.
집안일 하랴, 아이를 키우랴, 그것만 해도 벅찰 텐데 회사일 거뜬히    잘 해내는 것

보면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난다.
   일하는 여성들의 막강 파워는 우리 사회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일단 직    원

80퍼센트가 여자다. 사장을 포함한 임원 10명 가운데 여성이 4명이고,     중간 간부

의 여성 비율도 절반이나 된다. 개발팀장도  등 핵심 요직도 대부    분 여성  몫이
다.
그러다보니 여자 팀장에 남자 직원으로 구성된 부서도 여럿    된다. 아마도 그들이

었다면 회사가 이렇게까지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끔 너무나 놓치기 아까운 인재인데 아이 때문에 일을 그만 두어야 할 것    같다
는 여직원들을 만나게 된다. 그만두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사직서    를 제출해
야 하는 본인의 심정은 오죽하랴. 그럴 때마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힘이 될 수 없

는 것이 안타깝고 슬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하는 여성들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주는 오숙희     씨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그녀가 쓴 글들을 유심히 읽어보는 편인데, 최근 그녀가    낸
책 [솔직히 말해서 나는 돈이 좋다]에서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다. 프리랜    서 강사

뛰고 있는 그녀가 '돈' 때문에 겪었던 개인적인 체험에  관한 것이    다. 그녀의 말

직접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직업란에 여성학 강사라고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어느 단체에    서
강의 청탁이 들어왔다. '한국 여성 운동의 역사'를 테마로 강연해달라는  것    이었
다.
그건 내 석사 논문의 주제이기도 해서 나는 흔쾌히 그러마 했다.
   밤 8시에 시작해서 질문 시간까지 마치고 나니 10시가 넘어있었다. 뒤풀이가    있
으니 함께 가자고 했지만 임신한 몸이었던 나는 너무 피곤해서 사양할 수     밖에 없
었다.
   "같이 가시면 좋을 텐데.... 저, 이거...."
   내게 강연 청탁을 했던 그 단체의 총무라는 이가 어색해하며 들려준 작은     쇼핑
백을 받아들고 나는 버스를 탔다. 그 안에는 포장된 작은 상자가 들어      있었고 그
것을 풀어보니 컵 두 개가 나왔다. 당시 유행하던 부부 커피잔 세     트였다.  그런

있으리라 기대했던 봉투가 보이지를 않았다. 상자 속 포장지    까지 샅샅이 살펴지만
아무리 찾아도 강사료가 담긴 돈 봉투는 없었다. 기가    막혔다. 허탈했다.
   솔직히 나는 강연 청탁을 받으면서 적어도 몇 만 원은 생길거라 기대했다.     대

강사의 한 시간 강사료가 채 만 원이 안되던 시절이었고, 그나마 방학     때는 실업

신세였다. 겨울 방학은 더 길었고 그 동안 아이를 낳아야  하는     나에게 외부 강의
청탁은 '돈이 생긴다'는 희망이기도 했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돈을 바라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자아 비판도 했지만     감정
이 더 복잡하게 뒤엉키게 했지, 마음의 평정은 쉬 오지 않았다. 타이르는    나와 속

했지만 나 사이에서 분열증을 겪으며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 화가    나서 견딜 수 없
었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례 중 하나가 '일'은 중시라면서도 그에 대한 '대가     
(돈)'
에 관해서만큼은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일이 조직    대 개인의
관계일 경우, 개인은 명복 없는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프리랜서    로 강의  활동

하고 잇는 오숙희씨가 그랬다.
   강연을 업으로 삼소 있는 그녀는 어디 나가 사람들에게 입담을 펼치는  것이    곧
생계와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강연 요청을 받을 때 강사료 얘기는
  상대편에서 먼저 꺼내지 않는 한 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알아서 챙겨주면    좋

련만, 아쉽게 그런 '산뜻한' 경험은 단 한번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끔은 본의 아니게(?) 무료 강의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중에 봉투를 열어보고는 기가 막힐 정도로 적은 액수에 속을 끓이기도 했    다.
   결국 자기 스스로 강사료를 책정한 그녀, 그러나  강의를 갖고 '거래'를 한다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억울한 비난도 듣게 되고, 강연을    다니는

결국 '몸 팔러' 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자조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꿋꿋이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그것이 곧 프로정신이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단 그녀가 겪고 있    는
문제를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켜가지 못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 한 명이 급하다면서 돈을 빌려갔다고 치자,  매일 전화를 할 정도    로
친한 사이인지라 흔쾌히 돈은 빌려주었다. 오히려  "천천히 쓰고 돌려줘.     나 별로
돈 쓸 데 없어"라고 미안해하는 친구를 안심시켜 가면서.
   그런데 친구는 한 달이 넘었는데도 빌려간 돈 얘길 껴내지 않는다. 처음엔      '

이 생기면 주겠지' 했는데, 잊고 지내는 듯 보이는 친구의 모습에 슬슬  신    경이

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마음뿐 좀체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나중에    겨우 어렵게
얘기를 꺼낼 즈음이면 돈은 돈대로 못 받고, 감정은 감정대로 상    한 상태가 된다.
   또 다른 예 하나, 살다보면 직장을 옮길 일이 생긴다. 어떤 이유에서건  직장   

옮기면 상식적으로 선행되아야 할 일이 바로 봉급 협상이다. 그런데 이상    하게도

얘기는 항상 마지막에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오간다.
   "저, 그런데..., 봉급은 어떻게 되나요?"
   "전에 받으셨던 것 정도는 책정됩니다."
   봉급은 일의 성격과, 신체적 정신적 노동의 가치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    하

신중하게 책정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대부분 이 문제에 대한 시간은 채    5분을 넘기
지 못한다.
   지금은 떳떳하게 그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까

도 많은 사람들이, 특히 사회초년생의 경우  봉급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지    못한다.
말해놓고는 면구스러워 어쩔 줄 모른다. 혹시나 괘씸죄(?)가 적용되어    부정적인 

상을 남길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할까? 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할
까? 왜 돈 얘기를 꺼내지 것이 항상 힘들고 거북스러운 걸까?
   친한 친구사이라면 그놈의 '정' 때문에, 사회적 관계에서는 속물 취급 당할까   
봐,
그보다 더 극단적으로는 욕을 먹기 싫어서?
   생각해보면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이다. '정'과 '돈'이 무슨 상관인가?   

가 정당한 요구를 하는데 어째서 속물 취급을 받아야 하단 말인가?  남한테    피해준
일도 없는데 욕은 왜 먹는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의 가치란 돈으로 환산 될 수밖에 없다.    경

자들은 개개인이 더 열심히 일하게 하기 위해 몸값을 올리고, 개인들은     자신의 몸
값을 더 올리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 그래서 성공하면 할수록 몸    값은 같이 올라
가기 마련이다.
   그들 중 몇몇은 호로 독립하여 '프리랜서'를 선언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값을 스스로 결정하며 그에 맞는 대우를 요구한다. 그것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정되어야 할 기본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단 일을 맡으면 최    선을 다해 일
한다. 그들에게 "잘났으며 얼마나 잘났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은 결코 프로가

지 못할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질투하는 게 아닌가.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고 했다. 앞서 남에게 돈은 꿔준 사람을 예로 들었는     
데,
만일 엄마가 빌려준 돈에 대해 말도 못하고 끙끙 앓는 모습을 자주 본다    면, 그리

아빠가 회사에서 일한 만큼 돈을 못 받는다는 푸념하는 소리만 자    꾸 듣게, 된다면
그 아이는 과연 무엇을 배우게 될까?
   이제 더 이상 돈을 '밝히는' 것과 받아야 할 돈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을 혼동하지 말자. 그리고 당당하지 못하게 만드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경계    하자

렇게 부모가 먼저 당당하게 다음 그러한 마음가짐을 아이들에게 전해    주자.
   또 아이에게는 '정당한 대가' '정당한 자기  요구'가 무엇인지 알려줄 필요가   

다. "부자는 자신의 몸값을 당당하게 요구한다"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다.
 
    절대로 유산을 남기지 마라

   두성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두성이를 불러다 앉혀놓고 이런 이야기    를했
다. "나는 너한테 유산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 내가 죽을 무렵이면  아마    모든 돈

다 쓰고 수중엔 한 푼도 없을 거다."
   물론 나는 부모 된 입장에서 내 아들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을 영위하길     바라
지 않는다. 세상에 그 어떤 부모가 자식이 돈에 전전긍긍하며 사는 모습    이 달갑겠
는가. 오히려 나는 두성이가 나보다 훨씬 더 부자가 되길 바란다.
   그럼에도 내가 유산을 남겨주지 않겠다고 선언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유

이 두성이가 부자가 되는 것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것저것 해보    다 안 돼

유산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하는 기대감으로 나태한 삶을 살까
  걱정되는 것이다. 아니 그 전에 '내가 무슨 사업을 한다고 하면, 집이 필요하    다

하면 부모가 알아서 해주겠지' 라는 기대를 주고 싶지 않다.
   내 입장에서도 그렇다. 만약에 유산을 물려준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나는    두

이의 삶에 개입할 여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아들녀석이 내 돈을 어디다    쓰는지,

되이 쓰지는 않는지.... 만약 헛되이 쓰고 있다고 생각되면 그 녀석    의  삶에 적극

으로 끼여들지도 모른다. 아들이 그것을 반기겠는가. 아니다.     그런면 유산으로 인

아들과 나의 관계가 소원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유산을 남겨주지 않는 대신 두성이가 일찌감치 '정신적인  독립'   

이루도록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를 낚는 법    을 가르

기로 한 것이다.
   한 편 나는 두성이를 조기 교육 보낼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이를 몇 년 외    국
에 나가 살게 하면서 보다 넓은 세상을 배우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아    무래도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혼자 살다보면 '홀로 서는 법'을 터득할 수밖     에 없지 않

는가. 하지만 공교롭게도 때마침 조기  유학 부작용 사례가 빈번     해지면서 정부의
 
제재가 심해졌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그건 우리 부부의 생각은 아이의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번

는 아이를 지방에 보내고 싶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에서 편히 살    아가기보

는 새 친구와 새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    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마음에 두고 있던 학교에 지원자가 너무 많아 두성이    는 결국  밀려나고 말
았다.
   하지만 천마다행인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이런 생각들이 두성이에게 은연중    에
전해졌고, 이제 고3인 두성이는 지나칠 정도(?)로  독립심이 강한 아이가     되어 있
다.
   두성이가 제 장래에 관해 우리 부부에게 알려준 것은 단 두 가지. 대학에서    경

학을 전공하겠다는 것과,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 독립을 하겠다는 것    이다.
   내 욕심 같아서는 예능 분야를 권하고 싶었지만 굳이 강요하지는 않았다. 어    쨌
거나 녀석은 지금껏 키워온 사고력을 바탕으로 제 갈 길을 찾게 될 것이고,    부모로
서 녀석이 선택한 것을 믿고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독립하겠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내가 그랬다. "돈은 있니?"    그

자 두성이는 "거기까지만 엄마 아빠가 도와주세요. 죄송해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 말을 전해듣고 순간 나는 내 자식이 참 자랑스러웠다. 실은 나는 방을 얻    어
주고, 만약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제 힘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여건이 안 되면    얼마간
지원해줄 생각이었다. 물론 두성이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지킬 수 있    을지는 두고

문제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방 얻는 것에도 "죄송해요"라고     말할 정도면 정신적

독립의 틀을 기본적으로 갖추었다는 것이기에 기특한    것이다.
   자식을 품안에서 키우는 것도 잠시뿐이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부모 곁을 떠    나

할 때가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며 아이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나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자식이 떠나기 전에 정신적 독립을  이루도록    도
와주는 것이다. 또한 부모는 아이의 상관없이 자기  자신의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
한다. 부모도 아이와 별개로 중요한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조금씩 독립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박수치고 격려해주자. 그리고 행    여

당신의 곁을 떠나가는 아이에게 섭섭하다고 불평하거나 붙잡지 말자. 당    신이 품안
을 떠나왔듯 언젠가 아이도 당신 품안을 떠난다는 진실을 기억한다    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유산에 기대어 나약하게 자랄지도 모를 위험한 사전에 미리 막자. 그리고 집    보
다는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를 더 많이 경험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세상이    라는 넓
은 바다를 헤엄쳐 건널 수 있게 만들어주자. 진정 아이를 부자로 키우    고 싶다면

이다.
 
    돈보다 시간을 낼 줄 아는 아빠가 돼라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이제 가난이라면 지긋지긋하다. '돈'이 없음으로 해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난한 부모를 둔 탓에 어려서부터  너무나 많은 설움    을 겪었다.
처음에는 가난한 부모를 원망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    다. 여전히 "이

봐라. 최신형 장난감 로봇인데, 아빠가 어젯밤에 사다주셨     다"라고  자랑을 늘어

는 친구 앞에서 기가 죽어야 했고, 여전히  납부금 마감    일에 교무실로 불려다녀야
했으며, 여전히 반찬이라곤 김치밖에 없는 맛없는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는    남

이 알아주는 대기업에 취직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돈을 모았다. 그 사이
  결혼하고 아들과 딸이 생겼다. 그 아이들에게만은 절대 가난을 몰려주지 싶지    않
았던 그는 더욱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는커녕 불만을 늘어놓기 시     작
했다.
   "아빠 얼굴 보기 너무 힘들어요." "아빤 우리보다 회사가 더 좋은가봐."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불만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우리보다 회사가 더 중요해요?" "아빤 정말 너무해. 우리에게 요만큼이라도    

경 써 본 적 있어요?"
   그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일

는데,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달라지겠지.'
   그러나 아이들은 그의 기대와 달리 점점 어긋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한 달    용
돈을 며칠 만에 다 써버리고 와서는 또 달라고 했다. 분명히 넉넉히 주었는    데 말

다. 그래서 "벌써 다 썼니?"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천연덕스럽게 "얼마    안  주셨잖

요. 아빠 이번 기회에 용돈 좀 올려주세요"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부잣집이라는

리를 듣는다지만 그 돈이 어떤 돈인가. 내가 안 입고, 안 쓰    면서 피땀  흘려 번

이 아닌가. 돈을 너무도 함부로 쓰는 아이들이 원망스러    웠지만 그는 기억하기도

은 끔찍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고개를 젓곤 했    다.
   "아니야, 절대 아이들에게 나 같은 설움을 겪게 하지 않을 거야."

   나는 주위에서 종종 이런 아빠들을 보게 된다. 자식들에게는 자신이  겪었던    '

난의 설움'을 불려주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열심히 일하는 아빠. 그들은    자녀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럴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없다. 돈을    버느라고 너무
바빠서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못 내는 것이다.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바쁜 아빠들을 탓 할 수는 없다.     하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과연 아이들이 바쁜 아빠를     얼마나  이
해해주며, 그리고 그것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 하는 문제다.    분명  부모는

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주어야 할 의    무를 지니고 있다. 하
지만 돈을 벌어다 주는 것으로 아빠 역할을 다 했다고     자위하면 그건 오산이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은 아빠가 주는     돈

다 아빠 자체를 원한다. 아빠가 자신에게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라며,

럼으로 해서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한다.    결국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아빠와의 '시간'이다. 돈으로 하는 아빠  노릇보다    시간으로 하는 아

노릇을 더 원하는 것이다.
   당신은 나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바쁜데 어떡하냐고. 정말 시간을  낼   

없는데 어떡하냐고.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진정 '돈'보다 '시간'이 중요    하다는

실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know'와 'do'의 차이점을 아는가. 'know(알다)'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do   
(하
다)'는 아무나 할 수 없다. 당신의 삶을 바꿀 용기를 내야 하며, 바꾸기 위    해  수

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가난한 아빠가 되    기 싫다면 아
이를 가난하게 키우고 싶지 않다면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앞에서 시례를 든 아빠가 마음을 바꾸자면 일단 '돈'보다는  '시간'을 벌   

위해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얻어낸 시간에 아이들에게 애기 할 것이다.    그리고

어낸 시간에 아이들에게 얘기할 것이다. 삶에서 돈이 돼 필요한지,    돈에 끌려다니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또 얘기할 것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

하는지,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
프]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어느 사회학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과제물을 냈다. 볼티모    어

유명한 빈민가로 가서 청소년 2백 명의 생활 환경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 청소년들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이 아이들에겐 전혀 미래가 없다."
   그로부터 25년 지나 다른 사회학과 교수가 그 연구 결과를 접하고서는 그     청소
년들이 지금 현재 이떻게 살고 있는지 추적 조사하라는 과제를 냈다. 그    런데 놀랍
게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20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80명 중에서    176명이 아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성공한 요인을 물    었을 때 대답은 한

같았다.
   "여선생님 한 분이 계셨지요"
   그 여교사를 찾아가 어떻게 빈민가의 청소년들을 성공적인 삶으로 이끌었냐     고
물었을 때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었지요. 난 그 아이들을 사랑했답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참 못하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 말의 위대함을     몰

서일까.
   시간을 만들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하자.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면 당신의 아이는 분명 특별한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이 곧 재산임을 가르쳐라

   내가 살던 고향 마을에는 해마다 가을이면 유난히 많은 거지들이 나타났다.    대

추수가 끝날 무렵 사람들의 마음 또한  풍성해진 틈을 타서 배고픔을 면    해보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흘 간격으로 마을에 나타나 밥을 얻어먹고    는 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그들에 대한 예우가 참 별났다. 아예 사랑채까지 내주    고
며칠씩 재워 보낸 적도 있었다. 곳간에 곡식이 넘치는 추수철에라도 잠깐    들러 마

편히 쉬다 가라는게 그 이유였다.
   그러다보니 자연 우리집엔 '단골 거지'가 어린 나는 어떤 아저씨를 해마다     사

채에 와서 자고 가기에 처음엔 먼 친척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며칠씩 신게 지고 가는 게 미안했던지 언제부턴가 단골 거지는  우리    집
일손을 거들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식구가  논일을 하러 나가    면 으레
낫자루 하나를 들고 따라나섰다. 그리고 가끔은 나를 데리고 들판에    나가 곤충을

아주기도 했는데, 어린 나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거지랑 돌아다닌다고 나무라는 법이 없으셨다. 동네     사

들은 그런 어머니를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였지만 어머니는 그를 식구처     럼 따뜻하
게 대해주셨다. 심지어 추수철이 끝나고 그가 떠날 때는 동구 밖까    지 배웅을 나가
기도했다.
   어머니의 그런 인정이 통했던 걸까. 몇 년 후 내 누이가 결혼을 할 때, 그     거

는 어떻게 알았는지 결혼식장까지 찾아와서는 얼마간의 축의금을 내놓아    주위 사람
들을 놀라게 했다. 사람이 사람을 신뢰를 갖고 대할 때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
는지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결국 어머니께 '사람을 섬겼을 때 그것이 곧 가장 큰 재산이 된다'는     인

의 커다란 교훈을 배운 것이다.
   한솔교육 법인 설립 1년쯤 지나서였다. 교재 만드는 것은 자신이 있었지만     영

은 도통 '젬병'인지라 영업 사원들을 데리고 있으면서도 대대적인 광고      물량에

존했다. 하지만 비싼 광고비 덕에 순이익은 없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만 초

했다. 할 수 없이 광고를 줄였고 그랬다간 이번에는 영업 사원    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광고에 투자할 게 아니라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제서야 했다. 무    엇
보다 사람을 섬기는 게 우선이라는 원칙을 그제서야 절감한 것이다.
   그 이후부터 쭉 나는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는 신념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람에 대한 신뢰와 투자만이 부를 창출하는 기본  바탕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지만, 신입    사원이 들어오
면 우선 해외연수부터 시킨다. 영어 교사들은 입사와 동시에 캐    나다 및 호주로 연
수를 보내고, 한글 교사들은 인원이 많아 1년 이상 근무자    중 우수 교사를 선발해

일본과 싱가포르에 연수를 보내고 있다. 그렇게 연    수를 보내고 있다.  그렇게 연

를 마치고 돌아온 교사들은 회사의 튼튼한 재    산으로 한몫을 톡톡히 해낸다.
   남이 보기엔 아집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나의 신념은 회사가     성장
함에 따라 오히려 나를 더 큰 부자로 만들어주는 힘이 되곤 한다. 그리고    이 신념

상기할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지난 1992년 어느 이른 아침 새벽이었다. 배송 기사로 일하던 우양삼 씨가     회

부근에서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친구를  대하는 양 내    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 그는 주섬주섬 안주머니를 뒤지더니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꼬깃꼬깃
접힌 한 유아 교육 회사의 제품 안내 전단이었다.
   그가 내게 전단을 건넨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다보니 다    른
집 대문 앞에 경쟁 회사 전단이 놓여 있었다. 순간 그는 경쟁 회사에서는    이런 동

골목까지 전단을 뿌리는데 우리 회사는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아찔했다고 한
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사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마    음먹고  이른 새벽녘에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 한 구석이 뭉클했다. 회가 일을 자기 일    처

걱정하는 그의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소중했다. 물론 그가 전해준 전단    은 이미 내
가 본 것이었지만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회사가 발전할 수 있     구나' 하는 생

이 들었다.
   그와의 새벽 만남은 이후에도 몇 차례 이어졌다. 주변으로부터 우리 회사 지    도
교사에 대한 불만을 전해듣고는 '이러다간 회사가 큰일나겠다' 싶어  "이런    일을

고 있느냐"고 알려준적도 있었다. 그는 지난  1997년에 정년 퇴직을 했    다.  하지

나는 그가 보여준 마음을 보석처럼 간직하고 있다.
   나는 우리 회사가 이만큼 자리잡은 데는 이렇듯 사람에 대한 끈끈한  신뢰가    바
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성공의 발판은 사람의 중요성을 알고, 그들과 더     불어

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영인으로서가 아    니라 이 같

사실을 깨닫은 한 사람으로서 아들 두성이에게 항상 사람을 섬    기라거 가르친다.

체적으로 아들에게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얘기한    다.
   다행히 두성이는 정이 많고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남이 자신에게 말 걸기    전
에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열 줄 안다.
   우리집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이 드나든다. 그런데 두성이는 그것을 절대 귀    찮

하지 않는다. 사촌들이 와서 자고 가는 날이면 평소에는 행동이 굼뜨던     녀석이 개
미굴 속 드나들 듯 연신 주방을 들락거리며  먹을 것을 챙겨다준다.    친척들이 놀러
와서 한 밤도 안 자고 가면 오히려 그것을 서운해할 정도다.
   주위 어른들이 그런 두성이를 칭찬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왠지 마음이  한    실
름 놓이는 것이 아버지로서 아들을 아끼는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아이    가 장차
커서 자신의 인생을 걸고 무슨 일으든 할 때,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먼저 디가가

을 내밀고, 그 사람을 자기 재산으로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    기 때문이다.
 
    '버는 법'보다 '쓰는 법'이 중요하다.

   나에게는 자식이 두성이 하나뿐이다. '두성'이란 이름은 부두칠성에서 따다     붙

다. 북두칠성처럼 어디서든 빛나는 사람이 돼라는 뜻에서였다. 결혼하고    1년  뒤

원에서 처음으로 두성이를 보았을 때 참 신기했다. 어찌 보면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아내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때 두성이는    참 조막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열아홉, 180센티미터가 넘는 훤칠한 키에, 나름대로  의젓하기   

지 하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한다. 눈에 넣어    도 

아플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늘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것이 도리    어
아이를 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용돈만 해도 그렇다. 나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두성이에게 한 달 용돈으로    4만
원을 주었다. 조금 너무하나 싶어 2만 원을 올려주었는데 그것도 두성이    가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제 딴에는 4만 원으로도 할 일 다 하며 사는 눈    치인데 제 엄마
가 안쓰러운지 마음에 그리 하자고 한 것이다.
   조금 있으면 성인이 될 아들에게 용돈은 그만큼 준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구    동
성으로 너무 짜다는 말을 한다. 요즘 10대들의 평균 용돈이 9만9천 원이라    는 것을
감안하면 그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돈이란 모름지기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황금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될 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가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

지 판단하기도 전에 쓰는 재미부터 알아 버리면 이런 돈의 특성을    에 대해 모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무슨 일을 하건 돈의 액수는 크게 상관이 없다. 다만 이미    정

진 액수를 어디에 우선하여 사용할 것인가가 중요할 따름이다. 한 중국집
  주인은 이것을 홍보용 전단지를 만드는데 사용할 수도 있고, 쾌적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내부 수리를 한는 데 쓸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실

즐기는 데 써버릴 수도 있다. 똑같은 돈이라도 어디에 썼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판
이한 형태로 나타난다.
   내가 아는 프리랜서 작가가 한 사람이 있다. 독신주의를 고집하며 꿋꿋이 혼    자
살고 있는 그녀는 작년에 이사를 했다. 이사가는  집이 기름 보일러를 사용    한다는
게 좀 걸리긴 했지만 거래처 가까이 살 수 있다는  게 어딘가. 그래서    그녀는 당장
계약을 하고 짐을 쌌다.
   그렇게 이사를 한 것이 늦은 여름, 한동안 그녀는 아무 불편 없이 행복하게    지

는 듯했다. 그러나 가을이 자나고 날이 쌀쌀해지자 한가지 문제가 생겼     다. 난방

기름값이 생각보다 더 많이 들었던 것이다.
   보일러를 껐다 켰다 하기를 반목하던 그녀. 결국에는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보

러를 끄고 예전부터 써오던 작은 전기 난로에 의존한 채 며칠을 떨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온 그녀는 문득 목욕이 하고    싶

졌다. 그러나 보일러를 켜지 않은 탓에 수도꼭지에선 찬물만 펑펑 쏟아졌    다. 할

없이 그녀는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데웠다. 
  찬기만 가신 물로 대충 마친 그녀는 못다 한 일을 계속하다가 새벽이  되어서    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녀는 눈을 뜰 수 없었다. 대충 끓인 물로 목욕을 하고    밤
새 추위에 떨었으니 몸이 온전하지 못할 밖에. 지독한 몸살 감기에 걸린 그    녀는

원을 찾았고, 결국 밀린 일감을 포기하고 말았다. 병원에서 든 치료비     며 약값으

예상외의 지출을 했지만, 그달치 일을 못한 탓에 수입은 반으로    줄어 버렸다.

   만일 그녀가 기름값이 비싸더도 '여기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마음   

었더라면 비싼 병원비며 약값을 들지 않았을 것이고, 일을 못해 수입마저     줄어드

비극적인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추위에 떨며 겪은    그 동안 스트레
스를 생각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낭비 역시 만만치 않    다.
   나는 돈의 진정한 가치는 눈앞에 드러나는  액수보다 올바른 활용법에 있다    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윤이 생기면 우선 향후 10년 뒤의 미래를     위해 투

하는 데 쓴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말한다.
   "여보, 앞을 내다보고 투자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당장 쓸 것은 놔두고 해    

죠."
   그러면 하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반문한다.
   "그렇다고 당장 굶어죽지 안잖아, 나도 모를 변수에 대비하는 게 나쁜가요?"
   그래서 나는 재작년까지 마포에서 건물 두 채를 세내 셋방살이를 하면서 3    평밖
에 안 되는 대표이사실에서 일했다. 사업이 어느 정도 본 궤도에 올라서    자 주위에
서는 사옥 하나 지을 만하지 않냐고 말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옥이 그 어떤 기치도 창출하지 못한    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매출의 2퍼센트를 과감하게 신규사업 개발에 재투자했다. 그리고    정

원의 1천 명 중 10퍼센트가 연구개발 인력일 정도로 연구개발 분야에 아    낌없이 투
자했다. 이렇게 투자한 돈은 향후 반드시 순이익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이미 경험
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회사는 매출액 3억 원으로 출    발, 지금은 현재 70
0
여 배의 고도 성장을 이루었다.
   아빠의 그런 모습을 봐서인지 다행히도 아들녀석은 적은 용돈을 나름대로     규모
있게 잘 활용하는 것 같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용돈으로도    제 할 일

다 하고 다니는 모습이 때로는 기특하기도 한다. 대개 사내아이들    은 기분파여서

달 용돈을 며칠 만에 써버리기도 하는데, 녀석은 적당히 절    제 할 줄도 알고 필요

땐 미리 용돈을 저축해두었다가 생색을 내기도 하는    눈치다.
   쓸 일이 없을 만큼 친구가 없냐면 그것도 아니다.  녀석은 어릴 때부터 주위    에
친구가 많았다. 결국 아들은 돈의 쓰임새를 알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썼     을 때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고 남에게도 좋은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흔히 현대인들을 가리켜 돈의 노예라는 말을 쓰곤 한다. 돈이 시키는 대로,    돈

쫓아가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돈 벌기에만 급급하여 정작 제대로 쓰    는 법을 모
른다. 그러다보니 돈에 발목 잡힌 채 평생을 돈에 쪼들리며 산다.
   내가 감히 말하건대 부자는 절대 돈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자신    의
손에 넣은 돈을 절대 까먹지 않는다. 더 큰 부를 창출해낼 수 있는 일에     과감하게
그 돈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부자로 키우려면 주어진 돈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 즉 돈을    통
제하는 능력부터 가르쳐야 옳다. 어떤 때 자린고비 소리를 듣더라도 돈을     쓰지 말
아야 하는지, 어떤 때 아낌없이 가진 돈을 다 내놓는 용기가 필요한지    가르쳐주어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내 아들이 내게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볼 수 있냐고     묻는
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줄 것이다.
   "너는 이미 돈 버는 법을 알고 있다."
 
    돈을 찾아다니게 만들어라

   요즘에는 TV 광고도 참 재미있다. 가끔씩 배를 잡고 웃기도 하는데, 그 중    에서
는 나를 가장 웃긴 광고 하나를 소개한다.

   보기만 해도 피식 웃음이 나는 얼굴을 한 사내녀석이 창 밖으로 자신을 바    라보
고 있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 나 누구예요?"
   뜬금 없는 아들녀석의 질문에 "이 녀석이?" 하며 웃어 버리는 아버지.
   "알죠? 아버지 나 누구예요?"
   녀석의 끈질긴 질문에 아버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나두 잘 몰라."
   아버지의 황당한 표정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아들녀석. 이번에는 제 손    으

가슴을 가리키며 말하길.
   "난 알아요. 난 공짜가 좋아요."
   아들녀석의 실없는 말에 아버지는 또 한번 "허허" 웃고는 뒤돌아  아내 곁으    로
앉으며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라고 말한다.

   아마 그 광고는  그 상품이 '공짜'라는 것을 강조하려다보니 나온 것일 게다.
  하지만 나는 공짜가 좋다는 아들녀석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라고 말하     는
아버지에게 더 공감이 간다.
   나는 솔직히 세상에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는    공
짜가 많고 앞으로는 그 비율이 더 높아질 거라고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    다. 엄

히 말하자면 공짜를 얻기 위해 돈의 또 다른 형태인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공짜가 어디 가면 있다는 정보를 수비하고, 그것을 기억    하든지, 적어놓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깨친 것은 1989년 무렵이었다. 그때 한참    여
성 인력의 고급화 물결을 타고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는 태세였다. 당연히    부모를
대신해 아이 교육을 책임질 그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러나 이를 뒷받    침해줄 여건

이 너무나 열악했다.
   나는 이런 상황들을 개선시키면서도 사업적인 효과가 있는 무언가가 있으리     라
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정확히 감을 잡    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날짜만가고 있는데 어느 날 아내가 그랬다.
   "그렇게 않아 있지 말고, 답답하면 직접 현장에 가봐요."
   그거였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면 당연히 그들이 있는 것으로     가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당장 산동네 유아원까지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

않고 찾아다녔다. 유아 교육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     다.
   말로만 듣고 상상하던 것과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실제는 너무도 달랐다.    당
시만 해도 한 유아원은 대략 2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평균적으로 한    반 구성
원이 30명이 넘었다. 그에 비해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구나 원장의 70퍼센트가 이상은 무자격자였고 아이들이 직접 보    고  배우는 교재도
형편이 없었다. 그런 환경에 비해 선생님들의 열성은 대단    했고, 아이들의 눈망울

너무나 초롱초롱했다. 나는 그때 결심했다.
   '그래,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제대로 된 교재와 프로그램만 만들면 돼.'
   하지만 '새로운 유아용 한글 교재'를 만들려고 하니 무얼 어떻게 시작해야     할

막막했다. 교육학자들도 조기 교육에 대해 회의적이던 때였다. 그러다보    니 주위

람들은 모두 '미친 짓'이라며 나는 만류했다.
   그러던 차에 미국 필라델피아주의 '인간능력개발연구소'에서 일기 시작한 소    

없는 혁명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한 두 살배기 아이들이 책을 읽고,     말 못하

아기가 엉금엉금 기어가 글자 카드를 집어오는 사진도 있었다.
   '아기의 능력은 무한하다.'
   당시로선 생각을 180도 뒤집지 않고는 상상도 못할 얘기였다. 나는 순간 무    릎

쳤다.
   '카드와 스티커로 배우는 한글 교재를 만들면 되겠구나.'
   그로부터 신기한 한글나라가 나오기까지는 2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만들    면

이것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실험 학습도 거쳤다. 당시 편집개발부 조성    희 씨의 조
카와 그 옆집 아기를 상대로 한 시험은 셩공적이었다. 30개월짜리    아이들의 정말로
책을 읽은 것이다.
   이미 눈으로 확인까지 했으나 제대로 된 교재임을 틀림없었다. 출시된 후 엄    마
들의 반응이ㅣ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만일 책상머리에 않아 사업을 구상했더라면 지금의 한솔교육은 절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요행만 바라거나,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만 갖고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없   
다.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지부하면서도 절대적인 진리는 '발로 뛰어야  하다'    는 사

이다. 무엇이 부족한지, 그래서 무엇을 만들면 되는지 알아야 부를 창    출할 수 있
고,
그러기 위해서는 직접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패를 권장하라

   아이와 함께 무슨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엄마 혼자 그 일을 하는 경우가  종    종
있다. 특히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 과제물을 받아 오기도 하는데,     이때 엄

들은 아이의 서툰 손놀림을 보고 답답한 나머지 일을 직접 나서서    후딱 해치우기도
한다. 엄마가 하면 3분이면 될 일을 아이에게 맡기면 30분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
다.
   아이가 자란 후에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건 엄마 생각에 그 일이 위험하거   
나,
별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무조건 말리려고 한다.
   언뜻 생각해보면 별 문제가 아닌 것도 간다.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    면
그리 쉽게 넘길 일만은 아니다. 다음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에 실

글로, 어느 유명한 과학자의 이야기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기자로부터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창조    적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을 말해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어떤 것이 그를 그렇게    특별한 인
간으로 만들었는가?
   이 질문에 그는 자신이 네 살 때 어머니와 함께 나눈 경험을 예로 들었다.     그

냉장고에서 우윳병을 꺼내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미끄러    운 우윳병

바닥에 떨어지면서 주방 바닥 전체를 우유 바다로 만들었다.
   주방으로 들어온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고함을 치고 훈계를 늘어놓는 대신    이렇
게 말했다.
   "로버트, 도대체 무슨 걸작품을 만들어놓은 거니! 이런 엄청난 우유 바다는    처

보는구나. 어쨌든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네 맘껏 우유를 갖고 놀아봐라.     그런 다

닦아내자꾸나."
   실제로 그는 엄마의 말대로 바닥에 쏟아진 우유를 갖고 장난을 치며 놓았다.    몇
분 뒤 어머니가 말했다.
   "로버트, 이렇게 어질러 놓은 다음에는 반드시 깨끗이 치우고 제자리에 돌려    놓
아야 한다는 것 너도 알겠지. 그런데 어떤 식으로  치웠으면 좋겠니? 스폰지    를 쓸
까. 아니면 수건이나 막대 걸레를 써서 치울까? 어느 쪽에 네 맘에 드     니?"
   그는 스펀지를 선택했고,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엎질러진 우유를  닦아냈다.   

런 다음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잘 들어봐, 넌 작은 손으로 큰 우유병을 드는 실험에서 실패한 거나 마찬가    지
야. 우리 뒤뜰로 가서 병에 물을  채워서 다시 한번 시도해보자. 병을 떨어     뜨리

않고 그걸 옮길 수 있는 방법을 네가 발견하도록 말이다."
   그 결과 어린 소년은 두 손으로 병의  주둥이를 잡으면 그걸 떨어뜨리지 않    고
옮길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이 유명한 과학자는 그 일을 통해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았다
고 말했다. 그 대신 실수가 어떤 새로운 걸 배우는 기회임을 깨달았다.     과학  실

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어떤 실험이 제대로 성공하지 않    을지라도 우리
는 그것으로부터 가치 있는 어떤 걸 배우기 마련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만일  이 과학자의 엄마가 아이    가
저지른 일을 두고 다른 보통 엄마들처럼 야단을 쳤더라면 어땠을까? 아이     는 아마
야단맞은 것이 두려워서 절대로 우윳병을 들지 않을 것이며, 심한 경    우에는 우윳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실패'해서 엄마에게 또 엄마에게    또 혼나고 싶지 않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보여준 의외의 행동을 통해 아    이는 우윳병에서 우유를

라 마시는 법도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실패'를 통     해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배우

되는 것이다.
   여기 또 다른 예가 있다.
   두 아이 앞에 자전거가 한 대 있다고 치자, 두 아이가 그 자전거를 보고 이    야

를 나눈다.
   "너 자전거 탈 줄 아니?"
   "아니, 난 무서워서 자전거 못 타. 너나 타렴."
   자전거를 탈 줄 아냐고 묻던 아이는 어느새 자전거 위에 올라앉았다. 그러나    실
은 그 아이도 자전거를 처음 타는 것이었다. 결국 몇 미터 가지 못해 아이    는 자전
거와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약간의 상처를 입은 아이는 페달 밟는 요령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자    전

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약간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그래도 넘어지기    는 마찬

지. 그러나 이번에는 핸들 움직이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도하

다시 넘어진 끝에 아이는 자전거를 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균형 잡는 법을 배웠
다.
   결국 아이는 3번의 실패만에 자전거 타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무서    워
서 못 타겠다는 했던 아이는 끝까지 자전거를 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두 아이 다 처음 대하는 자전거지만 대응 방식은  정반대였다. 한 병은 무릎    이
깨지는 실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에 도전했고, 한 명은    그게 두
려워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다. 결국 성공한 쪽은 자전거를 타는 법을    배우려면 반
드시 실패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아이였다.
   우리는 종종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하곤 한다. 그러나 그 경험을 어떻게 간직    하
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즉 자전거를 타게 된 아이처럼 '실패는 성공의    어머
니'
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결국 자전거를 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    처럼 실패

체가 두려워 시도조차 못하는 사람도 있다.
   살다보면 우리의 신체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 우리를 둘러싼 환경,   

랑하는 사람 등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늘 미지    의 세

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때 실패를 두려워하는 아이는 이러한 변화가 전혀 달갑지 않을 것이다. 자    신
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경험하게 될 실패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    기가 이
미 알고 있는 세계에 안주하려 들고, 안주한 자체에 만족한다. 두려움    에 갇혀 버

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라면 자라서도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이     고
낙관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실패를 실패 자체로만 받아들이고 않고, 다    른 무언

를 성취해나갈 발판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미 많은 실패를 통해 알게 모르게 그에 대한     두려
움 많다. 그래서 '변화'라는 말을 들으면 우선 겁부터 집어먹고 새로운 경    험을 하

되는 것을 꺼린다. 그리고 아이에게 강요한다. 잘 모르는 것은 가    능한 한 피해가

고, 실패할지 모르니까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는 조심하라     고.
   그러나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새로운 시도, 미지의 세계의 대한 경험    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항상 실패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홈런왕 베이비 루스는 1927년 한 해 동안 60개의 홈런을 치는 경이    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해에 삼진  아웃을 가장 많이    당한 선수
또한 베이비 루스라는 것이다. 한 해에 같은 홈런왕과 삼진왕을 동    시에 거머쥔 이
사건은 미국 야구 역사상 사장 흥미 있는 기록으로 우리에게    의미 교훈을 준다.
   그가 만일 삼진을 당하는 것이 두려워  방망이를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더라    면
그토록 많은 홈런을 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    도 마찬
가지다.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성공으로부터 점점 멀어    질 수밖에 없
다.
   이제 부모로서 우리가 할 일은 앞서 얘기한 과학자의 어머니처럼 아이에게    실패
를 '권장'하는 것이다. 아이가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오히려

패에서 성공의 귀중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내가 두성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    
 
   나는 세상에서 아버지를 제일 존경한다. 남들이 보면 이름 없는 농사꾼에 불    과
한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은.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얻을  수 없는 삶의     중요한
교훈들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내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를 어루만

주고, 다시금 용기 내어 세상과 싸우게 만든다. 결국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

데는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가끔 두성이를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아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나는 아들에게 어떠한 어버지로 기억될 것인가. 그런 생각들이 구    체적으

들기 시작한 것은 내 나이 사십을 넘기면서부터였다. 어느 날 문득    뇌리 속에 '죽
음'
이라는 단어가 스쳤다. 나도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 다    시금 인생 앞에 겸허
하게 서게 했다.
   나의 최종 목표는 마지막 날에 나의 인생을 후회 없이 돌아보면서  이제까지    보
냈던 시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아들    에게 다
음과 같은 것을 물려주고 떠나는 것이다.

   첫 번째 유산, 올바른 리더십

   앞으로 다가올 사회에서는 성공을 해서 부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리더십이     필요
하다. 지금 당장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소위 말해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대

사람을 이끄는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내 아들녀석에게     가장 물려주고픈
유산도 바로 리더십이다.
   앞으로 나는 사람이 재산이라는 것을 말한 바 있다. 제대로 된 리더라면 사    람

재산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이런 생각하에 주위 사람들을 자기 사    람으로 만
들 줄 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    이 있다.
   "아랫사람들이 제 말을 잘 따라주지 않아요. 사장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느 지국장이 나를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얘기인즉  지국의 규모가 커지면    서
자기는 정말 의욕적으로 열심히 일해 보고 싶은데, 그에 동조해주지 않는    아랫사람
들 때문에 속상하다는 얘기였다. 나는 가만히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는 대뜸 물었
다.
   "죄송하지만 지국장님께서는 그 선생님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네?"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지금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인지,  회사 생활   

하면서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    습니까?"
   관리자와 리더의 차이점은, 관리자는 부하 직원들을 열등한 사람들로만 보지    만
리더는 부하 직원들 각각의 재능을 인정하고, 일을 함에 있어 그들을 선두    에 세운
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의미의 제대로 된 리더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    어
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가르치기(Teaching)'과   '배우
기          
(Learning)'이다. '가르치기'는 자신이 갖고 있는 노하우를 십분 발휘하여 아    랫사

이 자기만큼, 혹은 자기보다 더 탁월한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    는 것을 말

다.
   그러나 이는 무조건 노럭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남을 가르치    려

내가 전달하려는 지식과 정보를 상대가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지 먼     저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고민을 하고 있는지 그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모두 알라

말이다.
   결국 내가 그 지국장에게 요구한 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이해였다. 그게 안    되

아랫사람들과 겪는 갈등이 절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같이 일하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같은 경우에는 힘들 때마다 철학서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철학서들은    기본적

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을 캐묻는다. 그러므로 철    학서들을 읽

보면 세상과 사람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내가 그 중에서도 가장 애독하는 책은 노자의 [도덕경]이다. 요즘도  내 책상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펼쳐 읽는다. 이 책에는 천지와 인간의 근본이 무    엇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해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제대로 된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배우기', 즉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갖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부자 되기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된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두성이를 부자로 키우기 위해 바른 리더십을 가르쳐주고 싶다. 그리고    이

위해 사람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필요한지 꼭 알려주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아들녀석은 이미 사람들의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이
고 있다. 나는 이것이 두성이의 미래에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    며, 앞으

도 이런 노력을 계속 시킬 생각이다.

   두 번째 유산, 객관적인 자기 바라보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보면 미국의 사업가 헨리 포드에 관한 유명한 일    화
가 나온다.
   하루는 많이 배웠다는 지식인들이 찾아와서  포드에게 "당신은 무식하며 아    는
것도 별로 없다"고 비난했다. 이 말을 들은 포드는  그들을 사무실로 초대    해 어떤
질문에라도 답변을 하겠다고 얘기했다.
   얼마 후 그 지식인들은 포드를 찾아와 마구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고  포드는    아
무말없이 그들의 질문을 듣고 영리한 보좌관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지    식인들

질문에 답하도록 지시했다. 포드는 당황해하는 지식인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나는 학교를 다녀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대답을 하도록     한
겁니다. 그러면 나는 당신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는 시간 동안 더     중요한

을 할 수 있죠."
 
   포드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사업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자기가    어
떤 사람인가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주제 파악(?)이     확실했
고, 따라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기준이  분명    했다. 자

의 쓰임새를 분명히 알았던 것이다.
   학교 공부를 제대로 못한 탓에 포드는 사실 지식이나 이론면에 있어서는  다    른
사람에 비해 부족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현장에서 몸소 부딪치면서 얻은     노하우
와.
끊임없는 사고에 기인한 창조력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서     부족한 부분을

른 사람을 고용해 채우는 대신,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들을 사업에 십분
활용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성공하는 삶, 부를 축적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

습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생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     의 생각

로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잘 할 수는 없지만 가장 할 수 있는 일이  적어도 한가    지
씩은 있다.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고, 수리에 강한 사람    이 있
고,
글쓰기에 능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원체 말솜씨가 없고, 사    람 앞에  서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큰 프로젝트의 프리젠테이션을  맡았다    고 해보자. 당연히
그가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확률은 적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뛰어날수록 성공할 확률     이
높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으면, 자신의 쓰임새     또한

대로 알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세상의 어디에 자기를 포지셔닝해야 돋    보일지 알

있기 때문이다.
   이때 한가지 알아둘 것은 자신이 잘 하는 것은 적극 소문낼 수 있어야  한단    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겸손    이 아니
다. 자신의 능력을 알려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은 '

난 척'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적극적인 태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두성이에게 "솔직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자기가     가

고 있는 장단점에 대해 명확히 파악하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솔직한 사     람은 당

하면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못하는 일은 못한다고     얘기할 줄 안
다.
그리고 포드처럼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뛰어    난 사람을 파트너로
삼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포드처럼 적재적소에 자기를 놓을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할  것    이
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객관적인 자기 바라보기'이    고, 그

서 나는 두성이에게 그것을 물려주고 싶다.
 
      제 2장 아이를 부자로 키우려면 가장경영 이렇게 하라

    가슴 뛰는 삶을 가르쳐라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영    화
포스터가 있다. 로빈 윌리암스가 열연한 <죽은 시인의 사회>거 바로 그것    이다. 환
하게 웃고 있는 선생님을 여러 명의 학생들이 받쳐들고 행진하듯 앞    으로 나아가는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진다.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고등학교는 전통적으로 상류층 자녀들만 다니는     이른
바 귀족 학교이다. 그러나 이제 막 청년기에 접어들려는 그곳의 학생들은    나이답지
않게 미래에 대한 희망도, 꿈도 잃은 지 오래다. 학부모들은 한결같    이 자신들이

대로 물려받은 가치관을 자식들에게 강요하고 있었고, 그 가치    관에 따라 의사나

호사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랐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의    억압을 길들여진 학생들은
어느덧 그것을 자신의 꿈인 양 받아들였고, 어떤     아이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

까지 했다.
   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애써 찾으려고 하지 않    았
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의 운명을 뒤바뀌놓을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키팅

생이었다.
   키팅 선생은 그들에게 학교에 전시되어 있는 졸업생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영
문을 몰라 하는 아이들에게 그는 사진 속의 인물들을 가리키며 "불길을 눈    동자 속
에 간직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폭풍의 같은 힘으로 이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인생을    멋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칠십 년 전의 일이다.     이제 그

은 모두 죽고 무덤에는 데이지 꽃만 자라고 있다. 그들 중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이
들이 자신의 꿈을 진정으로 실현했을까? 그들은 과연 자신들    이 세웠던  야망을 성
취했을까?"
   열변을 토하던 키팅 선생은 자신의 말을 경청하던 아이들에게 이렇게 속삭    인
다.
   "카르페 디엠(이 순간을 붙잡아라)!"
   처음으로 학생들은 키팅 선생의 상식을 벗어난(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
하는 것이 당연했다) 행동에 당황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가 말하는  것    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들의 삶은 변화하기 시    작한다.
   키팅 선생이 그들에게 했던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얼    까?
키팅 선생은 '현재'의 삶을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그들이 자유로워지길 원    했다. 그

서 종국에는 잃어버린 열정과 희망, 그리고 삶의 즐거움들을 되찾    기를 바랐다.
   사람에게 있어 정작 중요한 것은 과거에 어떻게 했고, 미래에 어떻게 할 것    인

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삶이다.
   생각해봐라. 지금 만약 내가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과거에  겪었던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 지금의 나를 괴롭게 할 원인이 있었던 것이    다. 기

것도 마찬가지다. 아주 옛날이었건 바로 좀 전이었건  간에 여하튼     과거의 영향을
받아 기쁘고 즐거운 감정이 생겨난다. 즉 현재는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
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지금 살고 있는 현재로부터 영    향을 받는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과거나 미래는 지금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이지만 현재만큼은  우    리
힘으로 조절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관한 문제이기 때    문이다.
   진정 행복하길 바란다면 우리는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제
대로 살 수 없다면 행복한 인생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현재의 삶이 곧     미래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가 미래에 행복하길 바란다면 이  순간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야만 한다. 그리고 아이가 현재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의 미래가 더 중요한 게 아니냐고, 그 미래가  있   

에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나는 미래가 중요하     다고

서 그 미래를 위해 현재를 무조건 희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미래를 준비

되 현재의 삶을 즐길 줄 아는 것, 나는 그것이 "카르페 디엠"의    진정한 의미라고

각한다.
   현재를 즐긴다는 것은 결코 나쁜 뜻이 아니다. 이 말을 단순히 무의도식하라    는
말로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된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되 그 자체를 즐기라    는 의미
다. 밥을 먹을 때도, 대화를 할 때도 현재 일어나는 모든 일을  즐긴다    는 차원에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부모들은 보통 아이의 현재가 불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세

에 잘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명한  부모하면 아이의 현재    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에게 고정된 틀을 요    구하거나 이

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어린 아이가 뭘 한다고 그러니? 그건 나중에  자라서 해도 돼!" "착한 아이    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단다. 엄마 말을 잘 들어야지?" "그만 놀고 공부 좀    해! 나

에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는 말을 할 때 한번 더 생각해보자. 과연    내가 지금 아

의 삶을 방해하거나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어린 아이라고 해서 못할 일은 없다. 다만 부모가 못한다고 생각할 따름이     
다.
그리고 그 일을 나중에 자라서 하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
   착한 아이라는 틀을 또 누가 만들어놓은 것인가? '착한'이라는 말에는 사실    많

규제와 억압이 숨어 있다. '착한' 이란 밧줄에 구속되어 우리가 어릴 때    못했던 일

얼마나 많은가?
   그만 놀고 공부하라는 말도 그렇다. 아이는 놀만큼 놀면 다른 일을 찾기 마    련

다. 한 가지 일에 하루 이상 매달리는 아이는 없다. 그런 아이가 있다면     그것은

히려 집중력과 인내력이 대단한 아이일 것이다.
   부모들은 보통 아이가 "하루 종일 논다"고 말들을 하는데, 유심히 지켜보면    놀

놀되 나름대로 다른 일로 옮겨가며 논다. 지혜로운 부모라면 그렇게 옮    겨가는 순

을 잘 파악하여 다른 일에 흥미를 갖도록 유도할 것이다. 아이가    한창 무언가에 열
중하고 있을 때 다른 일을 강요하는 건 의미가 없다. 설령     부모 뜻대로 공부를 한
다 하더라도 그것이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올 리 만무    하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의 현재를 인정하는 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
다. 그리고 아이 입장에서도 현재를 즐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를 수     있다.

재를 즐긴다는 것이 그리 쉬운 개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는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아이의 본이  되기 위해 부모 스스    로
현재의 삶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아이 앞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다거나,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말 따위는 하    지
말자. 가능하면 "나는 지금 너무 즐거워" 하며 현재를 삶에 충실하고 긍정    적인 모
습들을 보여주자.
   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아이들과 부모들이 현재를 즐기는, 그래서 항상 가슴    이
뛰는 그런 삶을 살길 바란다. 그것이 곧 지금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이
며,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마치며 문득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오늘 산 나의 삶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이다."
 
    때로는 게으른 엄마가 되는 것도 필요하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뻐 보인다"는 말이 있듯, 모든 부모들은 자기 아이    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땐 그저 옹알거리는 것만 봐도 예    쁘고,

서는 책상에 앉아 책 읽는 것만 봐도 예쁘다.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    로 예쁘다는
말은 자식에게만 통하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부모가 사랑을 전하는 측면이 아니라  아이가 바르게 자라는 측면에    서
볼 때, 그렇게 내리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일까? 귀    한 자식

수록 엄하게 키운다는 옛말을 그대로 실천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말    이 지니고 있

속뜻은 부모 됨에 있어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해    도 되는 것. 하지 말

야 할 것을 따져보고 시간이 모든 부모에게 반드시 필    요하다는 것이다.
  
   늦둥이를 막내아들을 얻은 한 엄마가 있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애지    중
지하며 아이를 돌보았다. 아이를 과보호하에 키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이    미 경

으로 알고 있지만, 너무 오래간만에 다시 해보는 '아이 키우기'이다 보    니 엄마의

잘한 걱정은 끝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막 바깥 놀이를 시작한 아이가 엄마가 잠깐 눈을 돌린  사이    흙
더미 위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엄마는 아이가 혹은 더러운 것    에 감염
이라도 될까 싶어 얼른 아이를 일으켜세웠다.
   "엄마가 이런 데서 놀면 안 된다고  말했지? 자 어서 일어나 집에 들어가서     씻
자."
   아직 의사 표현이 서툰 아이는 볼멘 표정으로 엄마를 따라나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의 활동 반경이 점점 넓어지자 엄마의 걱정도 따라  늘    었
다. 아이가 계단을 올라가려 하면 어느샌가 아이를 안고 성큼 올라가고, 행    여 아

가 의자 같은 데서 뛰어 내릴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달려오곤 했      다. 상황이 이
렇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새 엄마는 아이 일이라면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고,
아이는 엄마의 계속되는 제지에 스트레스까지 받을 정도    였다. 이 시기의 아이는

접 부딪치고 깨지면서 세상을 배우는 것이 당연하    건만 엄마의 지나친 걱정이 아이
의 성장을 방해하고 만 것이다.
   아이는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기뻐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하려고    한
다.
그리고 그 이상의 어려운 일까지도 도전 해보고픈 의욕을 가진다. 한번    높은 계단

올라가면 그보다 더 높은 곳에 눈을 돌리게 되는 식으로, 뭔가     전보다 어렵고 새

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아이를 성장케 하는 원동력이 된    다.
   그런데 엄마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 뭐    든

말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위험해!" "하지마" "엄마가 대신 해줄게" 하는    동안 아

는 점점 그 시기에 꼭 경험해봐야 할 것들에서 멀어지고 만다. 자신    은 끝까지 사

이라 믿었던 엄마의 과보호가 결과적으로 아이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사랑도 지나
치면 '독'이 된다는 사실을 그 엄마는 진정 몰랐던 걸까.
   엄마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앞선 마음에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보면 정신적     피로
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몸마저 지치고 만다. 어떨 땐 놀아주는 것마저도    버겁게 느
껴진다. 마지못해 놀아주더라도 평소처럼 지극한 정성으로 아이를     대하는 게 아니
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찾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낸다. 뿐만     아니라 보통 때 관대
하게 넘어가던 아이의 버릇이나 행동 하나하나에도 일일    이 잔소리를  늘어놓게 되
는데, 이미 이때는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엄    마의 감정을 아이는  귀신같

알아챈다.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기까지 모름지기 엄마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특히    나
어릴 때 엄마와 함께 노는 것은 단순한 놀이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이 혼    자 내버
려두어야 좋을 때는 이것저것 간섭하면서 꼭 챙겨야 할 건 오히려 그    냥 넘겨 버리
는 어리석은 엄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엄마와 아이 모두를 위한 사랑의 실천법은 무엇일까? 사랑에도  절    제
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엄마들에게 아이와  조금만 떨어져 있어보라고 귄    한다.
엄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내    자식을 보

조금은 아이에 대해 객관적이 될 수 있다. 그러면 훨씬 더 큰 사    랑으로 아이를 보
듬을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시간을 마련할까.
   엄마와 아이 모두를 위한 시테크 전략 첫 번째, 나는 필요하다면 돈으로 시    간

사라고 말하고 싶다.
   회원 학부모 중에 유독 교육에 열성적인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아이에 대한    대
한 관심과 정성이 지나친 탓에 아이를 가르치는 것마저도 자신이 직접 해     야 한다
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각종 육아 서적과 육아 관련 인터넷 사이트들을 뒤지고 학습  교재까    지
직접 골라 공부한 다음, 손수 아이를 교육시켰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방법만

실천하면 아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엄마의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의    욕

너무 컸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 아이가 해야 할 학습    분량을 정

놓고 아이가 그것을 모두 마칠 때까지 다그치지를 계속했다. 결국    지쳐 나가떨어진
것은 엄마 쪽이었다.
   "아휴, 차라리 유아원에 보내고 말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그녀는 그제서야 정신을 가다듬고 친구들을 통해  괜찮    은
유아원을 수소문했다. 몇몇 친구들의 검증을 얻어 아이를 유아원에 보낸     그녀는

순간부터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그 동안 아이 때문에 미루었던    자신의 일들을

나 둘씩 되찾으면서, 힘들고 지치게만 느껴왔던 일상이 새롭    고 즐거워졌다. 아이

아이대로 유아 교육 전문가들의 맞춤 교육을 통해 몰    라보게 학습 능력이 향상되었
다. 물론 자기 자신의 행복도 되찾은 것이다. 이    처럼 과감히 돈으로 시간을  살

요가 분명히 있다.
   시테크 전략 두 번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게 한는 판단력을     갖

자.
   이것은 비단 엄마만 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걸레질 하나 못하고,  운동화   

하나 제대로 못 매는 아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엄마들이 너무 많은 것을    대신해주
기 때문이다. 자식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게 하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이라지
만,
나중을 위해 뭔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받    드시 필요하다.
   처음에는 서툴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복하다보면 분명 나아진다. 조금만 인    내

면 아이가 방법을 터득할 텐데 늘상 엄마가 도와주면 아이의 기회를 빼     앗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면 아이가 자라면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수    도  있다. 실제

단체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과보호    성향이 강한 엄마 밑에
서 컸다는 통계 자료도 나와 있다. 그러므로 평생을 아    이가 필요로 할 때마다 옆

있어주기 못할 거라면 차라리 일찍부터 아이가    혼자 설 수 있도록 도와주자.
   지금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자. 아이를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아이가 부담스러    울
정도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은지, 또 자신의 잘못된 사랑법이 아이    를 이기

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아이의 일에 이것저것 간섭이 지나친 것 같을 땐 차라리     의도
적으로 게으른 엄마가 돼라. 아이의 일에 무관심해보라는 이야기다. 게으    름이 지

치면 아이가 사랑에 목말라 엄마를 원망할 수도  있지만, 적당한 게    으름은 아이와
엄마 모두를 위해 좋다.
 
    아이를 당신의 머릿속에 가두지 마라

   내가 아는 어느 집엔 연년생인 두 딸이 있다.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보    지

전에 동생을 맞게 된 큰아이는 동생에 대한 질투가 유난히 심했다. 동생    이 엄마

에 안겨 있으면 한사코 떼어놓으려 억지를 쓰고, 간혹 동생이 장난    감을 갖고 놀면
어느새 달려들어 빼앗아 버리곤 했다.
   엄마는 큰딸의 행동에 대해 '다른 집 아이들도 동생이 생기면 으레  그러려    
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큰아이의    행동은

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져 이제는 잠시라도 둘만 있    으면 손에 잡히
는 대로 동생에게 집어던졌다.
   그런 언니에 비해 동생은 어릴 때부터 유독 욕심이  없었다. 제 물건을 언니    가
달라고 하면 군소리 없이 내주기도 하고, 고집피우면 울며 떼쓰는 일도 없    었다.

마는 작은아이의 그런 행동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다른 아이들 같    으면 욕심껏

려들만도 한데 항상 너그럽게 구는 모습이 언니보다 낫다는     생각이었다.
   엄마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둘째아이를 칭찬하는 일이 많아 졌다. 둘째를 칭    찬
하다보면 첫째도 자극을 받아 무언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칭찬을 자주 듣는 둘째는 갈수록 바른 아이가 되어갔지만, 큰    아이는 반대

점점 삐뚤어지기만 했다.
   결국 엄만는 '못된 버릇을 일찍 잡아주자'는 생각에 큰아이에게 강압적인  자   

를 취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너보다 어리고 몸도 약하잖니? 그러니까 언니인 네가 동생을 아껴    줘야
되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둘째아이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생겼다. 엄마는    첫

를 친척집에 맡겨두고 둘째 곁에 머물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엄마의    정성이 통
했는지 둘째를 금세 건강을 되찾았고, 그제서야 친척집에 맡겨둔 큰    아이를 집에

려올 수 있었다.
   며칠 뒤 엄마는 큰아이의 생일을 맞아 친척들을 초대했다.  내심 그 동안 혼    자
떨어져 지낸 첫째에게 엄마로서의 도리를 다하고픈 마음에서였다. 드디어    생일 케

크를 놓고 일가족들이 모두 둘러앉게 되었다.
   친척들은 둘째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이런저런 덕담을 늘어놓    았
다.
저마다 애가 착하고 순하다. 그 아픈  주사를 다 맞았느냐. 약은 쓰다고    안  하더

등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둘째를 칭찬하며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큰아이가 갑자기 둘째의 뺨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자   

장난감을 만졌다는 이유로 동생에게 시비를 건 것이다.
   "넌 도대체 왜 그러니? 네 동생을 이렇게 얌전하고 착한데 너는 왜 그렇게    동생
을 못살게 구는 거야?"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당시 나는 큰아이가 잘못되는 것이    아

까 걱정이 되어 그녀에게 좀더 신경을 쓰라고 말해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목소    리

전해들으며 나는 예상했던 대로 큰아이 문제가 커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런데 전
화 도중 전혀 뜻 밖에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었다.
   어느 날 외출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안방에 있던 돼지저금통이 찢겨져  있고    그
안에 있던 돈이 한푼도 없더란다. 두 아이를 불러놓고 누가 그랬냐고 물어    보니 둘
째가 너무도 당당하게 자기가 돈을 가져갔다고 했다. 그러자 둘째아이    는 아주 자

스럽게 "친구에게 다 줬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아이스크림을 머    고 싶은데 돈이

다고 하기에 그랬다는 것이 아이의 말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둘째는 엄마가 제 언니를  향해 평소 입이 닳도록 강조    한
'양보의 미덕'을 직접 실천해보인 것이다.  언니가 야단맞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칭찬을 받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통해 문제의 요인이 아이가 아닌 그녀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첫째가 동생에게 질투심을 보이는 것은 어느 집에서나 흔한 일이다. 어린 아    이
일 경우 아직 정신적으로 독립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 동    생은 엄
마와의 관계를 방해하는 성가신 존재일 따름이다.
   이럴 때 부모들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감정이 아닌 바른 판단하에    아이
들을 대할 필요가 있다.
   그 엄마는 나중에서야 자기가 잘못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첫째가 동생    에
게 질투를 가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했는데, 아    이를

쁘다고만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결국 두 아이 사이에서 객관적인 눈을    갖지 못했던
엄마는 첫째와 둘째 모두를 어긋나게 만들고 말았다.

   미국의 키신저 형제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형은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이고 동생은 월터 키신저이다. 둘은 언제    나
놓고 보았을 때 주목을 받는 쪽은 형인 헨리였다. 그러나  동생 월터는 그    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WBK어소이에이츠  컨설팅 그룹의 사    장, 홉스트라
대학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고, 키신저 가족재단을 이끌면서 성    공가도를 달리고 있
다. 그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문은 헨리만 쫓아다니지 말고, 나의 성공담을 실어야 할 것이다."
   월터의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형제는 소나무와 잦나무처럼, 겉보    기

같아보여도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나무와 같다. 월터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

형과 자신의 차이를 능력이 아닌 개성으로 보았기에 가능한 일    이었다.
   형제, 자매가 서로에게 경쟁 의식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경

의식은 아이의 성장 발달을 촉진시켜줄 수도 있다.  그러나 키신저 형제    처럼 모두
바르게 자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모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개성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싸울 때 무조건 끼여들어 말리고 야단치는 엄마들이 간혹 있다. 그    러
나 너무 심하지 않다면 차라리 그냥 지켜보는 것이 좋다. 아이들의 싸움은    그 원인
이 단순하기 때문에 놓아두어도 자연히 그치게  마련이다. 이때 엄마가    끼여들어서
섣불리 중재자 역할을 하면, 당장은 그냥 넘어갈지  모르지만 싸움    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어 다시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형이나 언니라는 이유로 싸울 때마다 일방적으로 꾸중을 듣는다거나, 동생이    라
는 이유로 무조건 참아야 한다면 서로간에 나쁜 감정을 품게 되는 것은 당    연하다.
이렇게 엄마가 형제 사이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부모로서 두 아이를 대할 때 가장 먼저  가져야 할 대원칙은 무얼    까.
그것은 부모가 모든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부모의 머릿    속에 자

을 가둬두지 말라는 얘기다. 부모 스스로 자기가 만든 사고의 틀로    만 자식을 바라
보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커진다.

약 그 엄마가 '언니는 무조건 동생에게 양보해야 한다'라    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

두 아이 각자의 개성과 심리 상태에 문제를 풀어갔    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설령 자
매 사이에 갈등이 있었더라도 둘째의 이상 행    동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신의 머릿속에 가둬둔 아이들은 이제는 자유롭게 풀어주자. 그것은 물론     쉬

일은 아니지만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부모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마    인드임에는
분명하다.
 
    자식과 싸우려거든 제대로 싸워라

   스무 살쯤 된 한 남자가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골목을 뛰고 있다. 얼마나 뛰    었
는지 두 모두 사람 모두 땀에 흠뻑 젖은 모습니다. 드디어 어느 집 대문 앞    에 멈

두 사람. 여자가 급히 초인종을 누르고 남자가 숨이 턱에 찬 목소리    로 묻는다.
   "아직 안 늦었지?"
   "응."
   두 사람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스치며 이런 멘트가 이어진다.
   "지킬 건 지킨다."
   얼마 전에 한창 떴던 광고 장면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여자 쪽 부모님께 사    귀

걸 허락받는 과정에서 한가지 조건이 붙었을 것이다. 그것은 귀가 시간     엄수, 아

도 남자는 근엄한 여자 쪽 부모님 앞에서 아무 소리 못하고 꼭 지    키겠다는 약속을
했을 것이다.

   나는 내 나름의 상상력으로 그 이야기의 다음 전개 상황을 그려보았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청춘남녀는 모르긴 몰라도 위와 같은  상황을 반복할 것이    다. 저녁
때 헤어지기 싫어서 결혼했다는 말을 괜히 나왔겠는가. 처음엔 허락    을 받았다는

만으로 좋지만, 관계가 진전되면 늦도록 함께 있고 싶은 마음    이 생기는 건 당연지
사. 그들이 언제까지 아버지가 제시한 그 조건을 불평 없    이 따를 수  있을까. 나

쪽으로 전개된다면 여자가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거    짓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
니면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저도 다 컸어요. 제 앞가림은 어련히 알아서 할 나이란 말이에요."

   비약이 섞인 상상이긴 하지만 내가 그려본 이 상황은 어느 집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살다보면 자식과 부모 사이에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반 년 차    이

나도 세대차가 난다고 하는데 하물며 스무 해 이상 차이 나는 부모 자    식간 오죽할
까. 흔히들 가깝고도 먼 사이가 부부 관계라고 하는데 나는 오히    려 자식을 키우면
서 그런 생각를 많이 한다.
   요즘 아이들을 왜 그렇게 부모에게 따질 일이 많은지, 어떤 사람들은 마치     자

이 부모가 아니라 피해를 입힌 가해자인 듯 원망을 듣는다고 한탄했다.     어떻게 

식이 보모에게 그렇게 말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자신이 말하는 것    이 결국 다 자식
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겠냐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    이다.
   문제는 자식과 부모간의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원만히 해결할 원칙이 없다    는
데 있다. 부모들은 나름대로 세운 원칙이 있다고 하겠지만, 과연 그것이      자신들

일방적인 생각이 아닌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일방적인 원칙은 아무    쓸모가 없다.

포츠 선구들이 시합을 벌일 때 원만한 경기 운영이 가능한 것    은 이미 서로가 합의
한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자식과 부모 사이란 엄연히 보     면 인간 대 인간의 관계
다. 따라서 '일방통행'이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부모    의 생각이  옳다고 해도 자

의 동의 없이 우격다짐으로 강요하는 것은 월권    과 다를 바 없다.
   부모 자식간에 생긴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을 보면 대개 두 가지 경우로 나    뉜
다.
한가지는 부모가 이기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식이 이기는 것이다.
   부모가 이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런 부모는 아이와 갈등이 생길 때 그     해

책으로 아이를 설득한다. 그러나 아이가 반항하면 자기 주장을 포기하고    아이가 원
하는 대로 끌려간다.
   혹자는 두 번째 경우가 오히려 낫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둘 다 문제가    있
다. 부모나 아이나 다 자기 주장만 앞세우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건 간에     지는 

람이 나오면 원만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두 사람 다 만족하는 답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하

보면 이 역시 만만치 않다. 부모는 흔히, 두 사람 다 만족하는 답을 찾는    것과 아

의 의견에 맞추는 것을 혼동하게 된다. 갈등을 된다. 갈등을 풀어가    는 과정에서

이의 의견에 점점 더 끌려가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내 주장    을 포기하는 것'아

니라 '원만한 해결책을 찾는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부모도 만족할 수

는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노력하라는 말이다.
   "그게 잘 안돼요"라고 말하는 부모는 해결책을 한 가지로만 단정짓고 출발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만은 관철시킨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절대    만족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의견을 제시하기 전에 여러 가지 답    을 미리 준비할 필
요가 있다. 아이가 싫다고 할 경우를 대비해서 차선책을 마    련하라는 것이다.
   언젠가 부모와 자시 사이에 대립이 생겼을 때, 종이  한 장을 준비해서 각자    가
원하는 바나 서로에 대한 불만 사항들을 그 이유와 함께 남김없이 적어보     라는 글
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함께 그것을 검토해보라는 것이다.     서로간의 요

사항과 그에 대한 이유가 빽빽이 적힌 종이를 보면, 각각  포기    할 수 없는 부분이
나왔을 때 차선책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이때는 허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밤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들    에
게 무조건 나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엄마는 너랑 같이 있고 싶은데, 너는    네 친구
들만 아는 것 같아서 참 서운해"라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양쪽 다 수용할 만한 원칙을 찾을 수 있다.
   아들 두성이는 비교적 부모 말도 잘 듣고, 트인 성격을 가졌지만 그 아이 역    시
내가 일방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면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요해봤자 아이에게 통하지도 않는다.
   언젠가 저녁 식사를 하면서 두성이의 친구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아이가    워
낙 성격이 좋아서 친구가 많은데 부모 된 입장으로서는 그것도 걱정이 되    었다. 무
슨 말 끝엔가 "친구도 잘 가려 사귀어야 해. 아버진 네가 예외가 없    는 친구와 어

리길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성이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    도  하지 않았다.

래서 나는 혹시 아이가 내 마음을 잘못 받아들인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시큰둥

표정으로 밥그릇만 바라보던 녀석의 모습 때문에 내    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이후, 친구를 좋아하기는 하되 함부로 휘말리지 않으려    노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들의 그런 모습은 둥실둥실한  자기 성격 때문    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거기에 한가지 이유를 더 붙이고 싶다. 그것은 두성    이와 나 사이

'합의된 원칙'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 원칙이란 바로 '예의 바르게 행동하기'다. 내가 친구의 예의 문제를 거론    했

때, 두성이는 나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내가 전하는 말을 통해,    살아가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합의해서 '

의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의 그런 모    습을 그냥  지나치며

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제 자식에게 '무조건 지켜라'라는 말은 하지 말자.  대신 싸움을 하되 제대   

싸우자. 그것은 합의를 통해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에 따라 요구할 부분    들은 명

히 요구하는 것이다. 싸움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더구나 부모 자식    간의 싸움에는
아주 특별한 전략이 필요하다. 지는 사람 없이 서로가 웃을 수    있는 싸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을 싸우더라도 이렇듯 '제대로' 싸우    면, 부모 자식 모두 행복

질 수 있다.
 
    당신의 어머니로부터 벗어나라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알 수 있다더니 아들 두성이를 얻은 뒤부터     돌아
가신 어머니 생각이 부쩍 간절해졌다.
   갓난아기 땐, 나도 저렇게 밤마다 어머니를 힘들게 했을까 싶을 정도로 녀석    은
수시로 엄마를 보챘다. 직장 생활 때문에(1982년 지금 회사의  모태인 '영    재수학

육언구회'를 세웠는데 돈이 조금 축적되자 나는 노동에 전념하기 위    해 구로공단에
취업했다. 당연히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은 아내의 몫일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시

에 아이를 맡겨야 할 형편이었던 아내는 그것만으로도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
었던지 밤중에 아이가 울며 보채도 불평 한번 하    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며 콧날이     시큰해지곤 했다.
   가난한 농사꾼 집에 시집와서 평생 고된 농사일에 시달려야 했던  어머니는    6남
매를 모두 들어서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식을 낳으면 몸     풀기가

섭게 논으로 나가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결국은 젖도 그곳에서     먹이고,  여름

면 뙤약볕 아래서 김을 매는 틈틈이 논두렁 밭두렁에서 낮잠     자는 자식들을  보살
펴주곤 했다.
   그렇게 농사일 하랴, 자식 키우랴, 온종일 힘들게 살다보면 당신 몸  돌볼 틈   

나 있었겠는가. 어머니는 끝내 지병인 천식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지금도     밤이

내뱉으며 잠 못 이루시던 어머니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목이    메이곤 한다.
   어린 시절에는 왜 한번도 어머니가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워낙    말
수가 적으셨던 분이라 나는 더욱 어머니의 속내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 여름이었다. 하루는 친구들이 물가에 나가 미꾸라지를 잡자고 했다.  나   

어머님께 "미꾸라지 많이 잡아올께요"라고 큰소리치며 집을 나섰다. 그 무    렵 어머
니는 늙은호박에 미꾸라지를 넣고 끓여먹으면 천식에 좋다는 이야기    를 이웃들에게
들어왔던 터라 내심 기대라는 게 있으셨던 모양이다.
   한창 놀기 바쁜 철부지였던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물가에서 잡은  미꾸라지    를
친구들이랑 다 구워먹어 버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미꾸라지 잔뜩 잡    아서 친
구들이랑 맛있게 구워먹었어요"하며 어머니께 자랑까지 했다.
   어린 나는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지 내가 어머니를  위    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머니를 무척 좋아했지만, 정     작 그

을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은 찾을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유일하게 남은 기억은 외지에 나가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주말에 집으로 돌    아오
는 아들을 위해 동구 밖까지 마중을 나오시던 그 모습이다. 생각해보면     이제는 말
귀를 알아들을 정도로 자란 아들에게, 속상한 일을 털어놓거나 아니    면 다른 사소

부탁을 했을 법도 한데 집까지 걸어오면서 어머니는 단 한번    도 그런  이야기를 꺼
낸 적이 없으셨다. 오로지 자식에 대한  걱정이 일상적인    물음으로 이어졌다. 밥은
잘 먹냐, 아픈 덴 없냐, 혹은 친구들하고 잘 지내느    냐....
   그래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가슴 한가득  슬픔이 밀려온다. 그리    고
내심 가슴 한켠에 죄책감마저 든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그것이 부모의 당연한 도리라 여기셨을지도 모르겠다. 그    러
나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조건적인 희생만이 아니다. 자    식의 최
초 학습 모델은 부모이다. 그렇다고 보았을 때  자식에게 자신의 희생    적인 모습만
보여줄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떠    오르는 후배가 있
다.

   그는 3형제 중 막내로 자랐는데,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 당시만  해   

여자가 결혼을 하면 열이면 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게 당연했다. 그러    다보니
그는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자랑하기 바빴다. 물론  남들처럼 집에 가    면 어머니가
"왔니?" 하며 반겨주는 것이 아니어서 때로는 섭섭한 마음에 어    머니를 원망하기도
했다. 어머니 앞에서 대놓고 "엄만 뭐야?" 다른 엄마들은    안 그러는데" 그러면서

머니의 속을 긁어놓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것도 어    릴 적 얘기였다.  크면서 오히

자기 일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어머니를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정년퇴임식을 마치고 돌아온 날 그를 불러서 손을 꼭  잡고    는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일하느라 너에게 신경 못 써준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   
려.
정말 미안하다."
   그 말을 끝내자마자 눈물을 터트리시는 어머니. 그가 "왜 미안해요? 엄마가    무

잘못을 했는데요"라고 해도 어머니는 그렇게 한참 우셨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어머니는 직    장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인생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으로    된 것이
다. 그렇다고 그 어머니가 후배를 제대로  안 챙겼느냐 하면 그것도 아    니다.  그

어머니는 정말 슈퍼우먼에 가까웠다. 직장에서 돌아와 다음날 출    근 할 때까지 남

처럼 못해줘서 아이가 어긋날까 봐 두세 배 더 노력했다.     그것으로 부모의 도리를
다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왜 그 어머니는 늘 죄책감    을 지니며 살아야  했을까.

녀는 자식에게 오히려 좋은 본을 보여주었고, 그    래서 자식에게 자랑스런 인생의

델로 자리잡았는데 말이다.
  
   이제 무조건적인 희생을 미덕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당신의 어머니에게 물려    받
은 '희생적인 부모상'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얘기다. 자식을 자  키우는 것은     부모

도리지만 그것이 무조건적인 희생이어서는 안 된다. 부모에게도 부모    의 인생이어

는 안 된다. 부모에게도 부모의 인생이  있다. 과연 자식의 장래    를 위해서  자신

삶까지 포기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오히려 나는  "인생은     이렇게 사는 거야"하며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가꿔나가는 모습이 자식에    게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
각한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식을 위해    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에 반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매사를 자식이 아닌 부부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 다음에    아
이를 배려하는 생활을 한다.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대신, 부모     로서

이 인생의 최고의 모델이 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가 인생을 즐기는 법을 알아야 했다. 원하는 일을    하
고, 그를 위해 매진하며, 삶의 여유로운 시간들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고    민했
다.
   간혹 두성이는 엄마 아빠가 자기들끼리만 친하다며 투정 아닌 투정을 늘어    놓기
도 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준다.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이담에 장가가서 엄마 아빠처럼 살면 되잖아?"
 
    안 하느니만 못한 교육법이 있다

   우리집 아이의 단점은 다소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

갔지만 자랄수록 그런 성향이 짙어가는 아이를  보고 아내와 나는 내심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두성이가 수업 시간에 좀처럼 손 들고 발표하는 일이 없나 봐요. 선생님이    보

에 두성이가 분명히 알고 있는 문제인데, 자리에 앉아 남이 발표하는 것    을 보기만
한다는 거예요."
   수업 시간에 자기가 아는 것조차 말하길 꺼린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주장이    약
하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현대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는 시대이    다.
자기 PR을 분명히 할 줄 아는 사람에게 성공의 기회가 더 많아 가는 시    대인 것이
다. 아무리 개인적 역량이 뛰어나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건강하게 표    출할 기회를

스로 만들어가지 않으면 그만큼 성공이 더딜 수밖에 없다.
   내 아이가 어쩌면 그런 경우에 해당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우리 부부를    무척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아내는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여간 속상해하지 않았다. 그 동안 나름대로    사

활동을 하며 아이도 잘 키우려고 노력했는데, 자신이 곁에서 쭉 지켜봐    주어야 했

게 아닌가 하는 회의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    의 교육 방법에

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며 몹시 혼란스러워했다. 지금    껏 "남을 배려하는 마

을 가져라" "항상 양보하는 사람이 돼라" 하고 가르친     것이 오히려 반대급부로 작
용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문제를 비약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아내가 사회 활    동

한 것이.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돼라고 가르친 것이 뭐가 잘못이    런 말인
가.
나는 두성이가 날 닮아서 성격이 다소 소극적인 것뿐이라며 아내    를 다독거렸다.

리고 나서 아이의 성격을 개선시킬 방법을 골똘히 생각했     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내 친구 부부의 아이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 집 아이    도
우리 아이와 마찬가지로 형제 없이 자란 외동딸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은 물론, 말    하

수준이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낯선 사람과 스스럼없이 이야기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발표도 도맡아서 할 정도로 성격이 활달한     아이였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기는 그 집이나 우리집이나 마찬가지고 환경도 거의 비    슷한
데 어째서 두 아이가 그토록 차이 나는지 궁금해진 나는 친구에게 넌지    시 아이 문
제를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친구는 나보고 자기네처럼 해보라고 했    다.
   그들 부부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매주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가족회의를 해왔는데, 그 덕분에 아이가 발표력이 좋아지고 성격도 적극    적으로 변
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로서는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얘기였    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우리 부부는 두성이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
회의 시간을 마련해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다음 두    성이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독후감을 말해도 좋고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을 듣고 느낀점을 말해도 좋아.    만
약 이 시간을 빌어서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말해주기
바란다."
   처음에는 이 방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기도 했다. 녀석이 어    눌

게나마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아이의 자신감과    발표력을
키워주고 있다는 만족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아이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우    리

의 착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두성이는 우리와 얼굴을 맞대    고 대화

나누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눈치가 역력했다.
   이 아이가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 혹시 엄마 아빠와 대화를 나누는 일에  무    슨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점점 말수가 줄    어

는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도 속시원한     대답을 듣
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아이를 앉혀놓고 단도직입적으로 "가족회의 하는게 싫으냐?"고     물었
다. 그랬더니 녀석은 한참을 더듬대다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와 같이 있는 건 좋은데 회의는 싫어요."
   이쯤 되면 우리 부부의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백기를  들지    않
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들녀석의 대답 때문에 한동안 혼란에  빠졌다.    어째

다른 아이에게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방법이  내 아이한테는 통하    지 않는 걸
까? 어째서 내 아이는 가족간의 대화를 그토록 부담스러워할까?
   두성이는 성격이 다소 소극적이긴 해도 부모에게 거리감을 보이거나 부정적     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유독 가족회의 시간만 되    면 잔뜩
주눅이 들어 쩔쩔매는 녀석의 모습에 우리 부부는 무던히도 곳을 끓    여야 했다.
   결국 부모 자식간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서 자기 주장이 확실한 아이로  만들    겠
다는 우리 부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우리는 가족회의가 아이    를 그

게 힘들게 했다면 당연히 폐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잘    못하면 오히

부모 앞에서조차 기죽는 아이를 만들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    었다.
   우리는 이 경험을 통해서 한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부모의 지나친 목적    의
식이 개입된 대화는 오히려 아이를 구속한다는 교훈이다.
   아이가 말을 갓 배우기 시작할 무렵, 엄마가 어떤 식으로 대화를 끌어가느냐    에
따라 아이의 언어 능력은 폭발적으로 발전하거나, 그 반대로 언어 장애를    일으킬

도 있다. 특히 언어 장애의 경우 심하면 자페증으로 이러질 수 있는     데, 이때 부

가 아이에게 자꾸만 말하기를 강요하면 아이는 이를 자신을 야    단치는 것으로 받아
들인다. 결국 아이는 '제대로 말을 못하면 엄마에게 야단    을 맞는다'는 사실을 알

되고, 아예 말하는 것을 포기해 버린다.
   억지로 해서 제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들녀석은 매번 그 시간이     돌

올 때마다 무언가를 발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을 것이고, 우리    부부는 그
런 줄도 모르고 아이가 억지로 말했던 일상적인 느낌에 대해서 교    육적인 측면으로
만 접근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니 가족회의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었겠는
가.
   가족회의를 그만둔 다음 아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서로 어깨를 맞대고  TV를 보거나 별 의미 없는 잡담이    라도
나눴더라도 좋았을 뻔했어요. 그런 사소한 대화에  익숙해지면 두성이 입    장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 일에 부담을 덜 느꼈을  테구요. 그러면서 점    차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교육 전문가들은 아이 교육에 있어서 왕도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아무리    좋
은 학설이나 방법이 있어도 그것이 모든 아이에게 통용될 수는 없다는 것    이다.
   아이는 나름의 개성과 장단점이 있는 엄연한 인격체이다. 한 사람이 좋다고    해

그 방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게 아닌 것처럼, 자녀 교육도 아이    들 각자의
개성에 맞는 방법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법을    실천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 가족회의 실패를 통해서 얻게 된    뼈아픈 교훈이다.
 
    '자아존중'이라는 무기를 들게 하라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이 잘 되기 바란다. 그러다보면 사랑의  매를 들 수도     있
고, 남 보는 앞에서 훈계도 하게  된다. 그런데 절대 명심할 사랑은 그것이     아이

자아존중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경쟁 사회로 치닫고 있다. 어른들만 그것을 느낀    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이들 역시 집을 나서는 순간 치열한 경쟁의 틈바    구니 속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너 참 괜찮은 얘야" "너는 잘 해    낼  수 있을 거
야"
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보다 "난 그것도 못하니?" "넌 참 못    됐구나"라는 말을 부지
불식중에 내뱉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말이 얼마나 아    이에게 상처를 주는지는 생

지도 않고 말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집에서만큼이라도 아이들에게 자신이 존중받는    다는
걸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남과 비교하지 마라
  
   두성이를 키우는 데 있어 나와 아내가 매사에 생각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    래

딱 일치를 본 부분은 두성이를 '저 혼자만 아는 아이'호 키우지 말자는    것이다. 다

히 녀석은 사람을 좋아하고 이웃을 배려할 줄 안다. 오죽하면      "넌 엄마 아빠 없

도 살 수 있겠다"는 말이 나올까.
   그러던 녀석이 언제부턴가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 좋    아

는 건 여전했지만 집안에 누군가 다녀가고나면 이상하게도 표정이 어두    워졌다. 두
성이와 늘 함께 하는 아내가 그 사실을 먼저 알아챘다. 아내는 조    심스런 기색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두성이가 아빠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봐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유인즉 천척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집에 와서    아

를 보게 되면 대부분 내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었다.
   "두성아, 너도 아빠처럼 좋은 대학 가야 한다. 그래서 아빠처럼 성공해야 한   
다.
보는 사람마다 그러니 애가 마음이 편하겠어요?"
   친척들 입장에서는 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  사회에서 이만큼 자리잡은 것    이
대단하고 자랑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아마도 무심결에 두성이에게 "네가    아빠를

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넌 왜 그 모양이니? 너는 왜 아빠처럼 그렇게 못하니?"    라는
질책이 숨어 있다.
   우리는 흔히 "형을 조금만이라도 닮아봐라" "네 친구 반만  따라가렴" 하는     말
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하지만 그 말만큼 아이들의 의욕을 꺾고, 상    처를

는 것이 없다. 남과 비교 당하는 일이 잦아지면 누구든 자기 자신을     잦아지면 누

든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폄하하게 되기 마련이다. 특히나 부    모나  친척처럼 자

의 응원군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는 그런 상처를 입으    면 더욱 아플 수밖에 없
다.
   그러므로 아이를 진정 격려하고 싶다면 남과 비교하는 것부터 그만두어야     한
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라

   영재수학교육연구회라는 간판을 달고 어린이 학습지 사업을 할 때였다. 집집    마
다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목격하는 것이 엄마가 아이    의 의견
을 무시하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며 윽박지르는 장면이었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이 세계에서 으뜸간다는 사실은 이미 정평이 나     있지
만 때론 이 때문에 아이들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는 방문을 나갔더니 그 집 어머니가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해왔다. 고등    학
교에 다니는 큰아이 때문에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부모로서 이것저것 안 시    켜본

없을 정도로 노력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제 갈 길을 못 찾    고 방황하고 있
단다. 조금 있으면 대학도 가야 할 텐데 아이가 방황만 하고     있으니 이를 어쩌냐

한숨을 내쉬었다.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낸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다.
   어릴 때부터 아이의 능력을 길러주고 깊어 피아노와 미술, 태권도, 바이올린,   

영 등 전 분야에 걸쳐 학원을 보냈다. 이것저것 하다보면 그 중 자기가 잘    하는 것
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에 들어섰다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그만
두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재미가 없어서 그리려니 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아

에게서 반항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벌써 10년    이라는 것이다.
   지칠 대로 지친 엄마가 아이에게 "네가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그러    자
아이 입에서 황당한 대답이 나왔다.
   "엄마는 제가 좋아하는 게 뭔지 이제야 묻네요. 그런데  저는 그 동안 제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한번도 없었어요, 여기저기 학원에 다니느라구    요."    
   그러면서 아이는 엄마 아빠가 자신을 너무 바쁘게 만들었기 때문에 어느  한    가
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럼 네가 좋아하는 것만 하겠다고 그랬어야지. 엄마  아빤 네가 적성에 맞    는
과목을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도와주려고 했을 뿐이야."
   "덕분에 저는 뭐든 조금씩 흉내낼 수는 있어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건 하    나
도 없게 되었어요."
   이쯤 되면 부모로서도 할 말이 없을 터였다.
   이 엄마는 아이 스스로 자기가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무시했    다.
아이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고 미리 속단해 버린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     남은 것은
엄마 아빠가 자기 인생을 망쳐 버렸다는 원망뿐었다.
   아이는 결국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하고 생각했고, 이는 자기   

신에 대한 비하로 이어졌다. 만일 엄마가 인내심을 갖고 아이 스스로 원하    는 일을
찾도록 지켜보았더라면, 시간은 걸릴지라도 아이는 신중하게  자기가    갈 길을 선택
했을 것이다.
   성장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생을 좌우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일

다. 그러므로 시행착오가 있다. 하더라도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것에

임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것은 곧 평생을 따라다닐 '자아존    중'의 첫 단추

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부모 밑에서 자아에 대한 믿음과 존중을 배운 아이는 세상이라는  거    대
한 파도와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파도와 싸워서 얼마나 자    신이 단
단해질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하지만 자아존중감이 없는  아이는 그     파도를 피할
생각부터 한다. 자아존중감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강    력한 무기하고 해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들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과 존중감을 심어줄     것
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며, 어떤 것이  자아존중감을 해치는 것인지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하루쯤 아이에게 부모가 될 권한을 주라

   어릴 때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어느 덧  머리가 커지고 나면, 바야흐    로
부모들의 사춘기는 시작된다. '품안의 자식'으로 대할 수 있는 건  불과 2~3    뿐이
다.
이제 좀 컸다고 슬슬 반항까지 하는 아이들을 보면 부모들 마음엔 서     늘한 찬바람
이 분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맞나 싶어요. 이렇게  이렇게까지 엄마 맘을 몰라줄    까
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식들은 절대 부모 속을 모른다. 아니 알려고도  않는다.   

일 잔소리 듣는 것도 지겨워 죽겠는데 부모 마음까지 헤아릴 정신이 어디    있겠는
가.
   자식이 부모 마음을 알아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가질  것이 못 된다. 당신    이
어렸을 적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것저것 못하게 하고    잔소리

는 부모를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말이다. 그 시기에는 그 시기    에 맞는 생각
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 부모 마음처럼만 자식이 따라준다면 세    상에 제대로 안 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을 볼 때마다 한가지 제안을 한다.
   "아이가 당신을 이해해주길 바란다면, 정말 아이에게 당신 입장이 돼볼 기호    를
줘보세요."
   내게 이 말을 전해들은 엄마들은 처음에 '도데체 이게 무슨 마리야' 한다. 차   

되묻지는 못하지만 그런 생각이 역력하게 표정에 드러난다.
   그러나 나는 반말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정말 자식으로부터 이해받기를 원    한

면, 하루쯤(사실 길면 길수록 좋다) 완전히 부모 노릇을 시켜보라는 것이    다.
   정신과에서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사이코드라마'를 생각해 보자. 가족이나     다

사람과의 갈등이 기본적으로 어디서 비롯됐는가를 알아볼 때 흔히 사용     하는 사이
코드라마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갈등 상황을 재연한다. 그러면 상    대편에 대해

금은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자신의 상처를  보다 객관적으    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내가 말하는 것은 바로 사이코드라마의 효과를 부모    자식간에도 적용시켜보

는 얘기다.
   이것이 부담스럽다면 아이들이 흔히 하는 '소꿉놀이'라 생각해도 된다. 소꿉    놀

가 뭔가. 여자아이는 엄마가 되고, 남자아이는 아빠가 되어 그 역할을 대    신하며

기는 게 아닌가. 다만 내가 말하는 방법은 소꿉놀이보다 조건이 약    간 더 까다로울
뿐이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로서의 권한뿐 아니라, 막강한    권한에 따른 의무와

임을 같이 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오늘 아침 아이에게 하루치 생활비를 주자. 그리고  엄마가   

왔던 일들을 가르쳐주는 거다. 시장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집안 청소하는     일, 빨

하는 일, 심지어 식사 준비하는 일까지 하나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에는 아이와 관계 되는 일까지 모두 포함시킨다. 숙제를 검사하    거나, 아이 외출

간을 체크하거나, 먹을 먹인다거나 등등 말이다. 그리고는    엄마로서의  하루 역할

아이에게 그대로 하게 하자.
   그럼 엄마는 무얼 하냐고? 그건 쉽다. 바로 어제 아이가  했던 말과 행동 그    대
로를 흉내내면 된다. 아이 입장에 서라는 거다. 방안을 어지르고, 숙제(물론    아이

제다)는 절대 하지 말고, 밖에 나가 반나절 이상 돌아오지 말자.
   아이가 만일 제대로 역할을 못하거든 아이처럼 떼를 써보라. 그리고 "네가     엄

니까 이젠 내가 집 밖에서 놀아도 되지?" 하고 집을 나서자. 이때 아이가    혼자 있

것에 대해 두려워해선 안 된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아이는    혼자 있다고 해

절대 위험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혼자 있을수록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이
생겨 엄마와 함께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신중해질 것    이다.
   역할을 바꿔 사는 것. 내가 엄마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들의 얼굴에    일
순간 희색이 비친다. '오늘 당장 써먹어야지' 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역할을    바꾸

데 있어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 있다. 엄마 자신이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식이

어서는 안 되다는 것이다.
   한 엄마는 이런 나의 말을 듣고 갔다가 다음날 아침 울상이 되어 전화를 했    다.
   "아이가요. 이제 말도 안 하고 놀지도 않아요. 하루 종일 화가 난 표정이에    요.
"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마도 그 엄마는 옳다구나 하고 아이에게 책임감만 떠    넘

채 그걸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아이를 비난했을 것이다. "그것 봐라.    엄마가 얼

나 힘든지 이제야 알겠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역할 바꾸기의 근본 취지는 아이로 하여금  엄마의 감정과 마음에 조금이라    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런 목적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
다.
만약 엄마의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드러난다면 아이는 그걸 단박    에 알아채고,

히려 그것을 역이용하려 들 것이다. 또 다른 공격 수단으로     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로 하여금 역할 바꾸는  것을 하나의 놀이로 알게 하    는
것이다. 놀이 안에 책임과 의무라는 규칙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주지시킬     뿐, 그

못한다고 해서 비난해서는 안 된다.
   아이 스스로 느끼게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아이가 얻게 되는 것은 많     다.
   아이는 엄마의 행동을 직접 체험해봄으로써 엄마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     할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이 뭔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
고,
그걸 거울삼아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이 작업이    이루어지면 뒷날
엄마와 부딪칠 일이 생길 때마다 한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    게 될 것이다.
   가정의 화목은 서로의 입장을 얼마나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 아이와 갈등    이
있을 때, 아이가 부모 마음을 너무 몰라준다고 생각이 들 때, 가끔은  아이    에게

모가 될 권한을 주자, 권한만 휘두른다고 생각했던 부모의 숨은 사랑    을 일깨워주

위해서 말이다.
 
    가끔은 아이를 거꾸로 보라
   영재수학연구회를 운영할 당시 한 회원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가 몇    개

전부터 방문 수업을 받고 있는데 담당 교사가 왔다. 아이가  몇 개월 전    부터 방문
수업을 받고 있는데 담당 교사가 진도는 나가지 않고 오히려 전에    배운  내용만 복
습시킨다는 항변이었다. 그 엄마는 "그 동안 선생님만 믿고 아    이를 맡겼더니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실력도 없는 선생님이 시간만 끌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그 말을 전해들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실력  있는 교사를 확보하기 위    해
많은 신경을 쓰긴 하지만, 정말 그  엄마의 말대로일 경우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학부모의 말만 전적으로 믿고  교사를 문책하는 것도     경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분의 말을 귀담아듣는 한편, 담당 교사에게 넌지시 상황을 물었다.     양

은 설명을 모두 듣고보니 학부모 쪽에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담당 교사는 아직 수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아이를 위해서  기존의    수
업 내용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어마 입장에서는 그것이 분만이었던  거이다.    똑같

시작한 다른 집 아이들은 벌써 덧셈 뺄셈을  배우고 있는데 자기 아이    는 몇 주째
장난감만 만지고 있으니 앞뒤 정황을 모르는 엄마가 그런 불만을    가질만도 했다.

러나 아이가 제대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    도 기본을 다지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담당 교사에게 인내를 갖고 아이를 가르치면 분명 효과가  있을    거
라는 말을 전하면서, 학부모에게도 이런 사실에 대해 좀더 상세하게 설명해    주라고
했다. 내가 그 교사에게 가르치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한 것은 나에게    는 그런 비슷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재수학교육연구회 초창기 때 나는 직접 발로 뛰면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맡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수학 실력이    3학년

계에 멈춰 있었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수학과    는 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이 학생은 기초가 부족해서 초등학교 3학년 과정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    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엄마는 무척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내 말을 믿고 따르겠다    고
말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아이가 6학년이 되었을 무렵에는 아이의 수학    성적이

라보게 좋아졌다. 엄마의 인내가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  어머

가 나이에 맞는 교육만을 고집했더라면 그 같은 효과를 보기    는 어려웠을 것이다.
   자식이 똑똑하게, 남보다 앞선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들의 공통    된
마음이다. 그러나 그 희망이 지나치면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다.    심한 경

는 아이가 뭘 배우는지,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남    보다 앞서 나

기만을 바라게 된다.
   [탈무드]에는 학생에게 같은 것을 400번이나 반복해서 가르친 현자 라브 프    레

더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가 제대로 알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가    르치는 것
이 모든 교육자와 부모의 의무이며, 잊지 말아야 할 법칙이라는 것    이다. 랍비 슈

한알프에도 "교사여 가르친 것을 학생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화내지  말고 필요한
만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이러한 이상에 맞는 교육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자녀에    게
공부를 가르칠 때, 부모가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즉 아이의 능력에 맞는 맞춤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아이의 능력은 50 정도인데, 70의 수준을 강요하는 부모은 아이에게      "넌
왜 이것밖에 못하니?" "이것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하고 윽    박지른
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자신에게 부과된 눈앞의 과제를 벗어나고    싶어하고, 그래

학습부진아가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면 먼저 아이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
다.
무엇이 부족한지, 이 단계에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부모가 먼저 알고 있    다면 적어

능력 밖의 것을 무리하게 요구해서 아이를 망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
의 능력을 키워주겠다는 부모의 바람은 절대 나쁜  것이 아    니다. 다만 과대평가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것은 아이에게도, 더 나아가서    는 부모에게도 좋지 않다.

로간의 쓸에없는 기대와 바람이 없어질 때, 비로     서 가정은 화목해지고 더 발전하
다.
   아이의 능력이 엄마의 욕심 때문에 ㄽ여서는 안 된다. 지금 드러나지 않는     아

의 능력이 언젠가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면 가끔씩 내 아이를 거꾸로 보    자.
   '이 나이에는 이렇게!' 에 맞추지 말고, 거꾸로 '내 아이는 이렇다'를 먼저  이   

하면 아이 키우는 일이 훨씬 더 행복해진다. 
 

    아이는 부모의 엘리베이터가 아니다

   며칠 전에 TV에서 드라마 한 편을 본 적이 있다. 평범한 공무원을 남편으로    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지만 어려운     집안 환

때문에 피아노를 계속 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밖에 졸업    하지  못했다.

만 아니라 그녀보다 훨씬 못했던 친구들이 대학에 가서 나름    대로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렇게 가슴에 한을 간직한 채, 그녀는 평범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남   

는 아내를 사랑했고, 시간이 흘러 그들 사이에 두 명의 자식이 태어났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이 엄마는 어려운 환경 때문에 펼치지 못한 꿈에 대    한
미련이 너무도 컸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성공한 사람들이 언론매체를 통    해 보도

때마다 야릇한 환상에 젖어들곤 했다. 그녀는 자신의  두 아이에게    로 시선을 돌렸
다. 자신이 어쩔 수 없이 포기한 대신 아이들에게서 자신이 못    다이룬 꿈을 실현시
키고 싶었다. 그래서 첫째아이에게는 바이올린을, 둘째아    이에게는 골프를 가르쳤
다.
   다행히 아이들은 그쪽 방면에 소질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바이올린과 골    프
레슨비를 대는 것이 그 집 상황으로는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처음엔     생활비를
줄이고 통장을 해약하는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집을  담보로 잡히는    지경에 이르렀
다. 남편은 "자식들이 원하는 것이 이런 건 아닐 거다"라며  아    내를 뜯어말렸지
만,
아내는 "무능한 아버지" 운운하며 남편을 나무랐다.
   결국 직접 돈을 마련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녀, 하지만 그녀를 받아줄 곳을    찾

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찾아간 곳은 단란주점. 그녀가 할 일     은 서빙

하면서 가끔씩 손님들의 술 시중을 드는 일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그 일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생각보단 일은 너무 힘들었다. 술 시중을 드는  자신이 비참해 견딜     수
없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아이들에게 레슨을 그만    받으라

할 수는 없었다. 힘든 나날이 이어졌고, 그러다 자신의 괴로움을 이     해하는 손님

불륜의 관계에 빠졌다. 결국 어느 모텔에 들어가는  광경을 딸    아이에게 들키고 만
다. 자신을 쫓는 어머니를 뒤로한 채, 충격으로 길을 헤매    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는 딸.
   병실 안의 풍경. 침대 위에 딸아이가 누워 있고, 엄마는 그 위에 엎드려 흐    느

다.
   "엄마를 이해하렴. 다 너는 위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야."
   "나를 위한 것이었다구요? 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했던 말이에요? 아니요! 그    건
절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어요. 엄마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구요!    보기 

으니까 제발 나가주세요."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물론 방법이 옳진 않았지만 그녀는 정말  최선을    다
해 자식 뒷바라지를 하려고 애썼다. 그것만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결국 그녀를 기다리는 건 아이들의 냉대와 남편의  이혼 요구, 그리고    망가진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녀는 이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의 인생과 딸의 인생을 동일시했다는 점이었다.    자

은 부모와 분신 같은 존재하고 하지만 결코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    가 아니
다.
자식이 성공을 해도 그것은 결코 부모의 것이 될 수 없다.
   대개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부모들의 내면에는 자기 중심적    인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런 거 '사육'이지 결코 올바른 자녀 양육이라고 볼 수    없다.
   부모 자신의 인생관이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자식에게 강요    할
수는 없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 나름의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종종 가족 관계에 얽매여 자기의 인생을 포기하고 그것으로 충족    되지
않은 것들을 자식에게 보상받으려고 한다. 물론 그들은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
해서는 그 길밖에 없다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킨다. 하지만 그것    은 엄밀히 말

"내가 이렇게 너를 위해 내 인생을 바쳤으니 너도 이렇게  해    야만 한다"고 강요하
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두성이의 미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간섭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단지     염

에 두는 부분이 있다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를 어떻게 보내야 하     는가에 대
한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런 마음을 불

내비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식과 함께 하는 동안, 즉 같이    밥을 먹거나 대화를

누는 사소한 일에도 늘 신경을 써야 한다.
   아이는 결코 부모의 엘리베이터가 될 수 없다. 자식을 아끼고 사랑한다면서    자

의 인생을 한 단계 높여줄 수단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그러는 동
안 부모는 부모대로 인생의 가능성을 죽이게 되고,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당신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우리 회사는 신입  사원이   

어오면 우선 사회봉사 활동을 시킨다. 사무실 근처 노인정이나 갱생원 같은    곳을

접 찾아가 이웃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 보게 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1997년 초 지도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고아원 아이들에게 한    글나
라를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다. 작은 소모임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우리 회    사의 독특
한 기업 문화로 자리잡은이 프로그램은 공동체 문화를 사내에 형성    시켜 주었다.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주된 업무 중 하나인 우리 회사에서는 남을  배려    하
는 마음이 곧 '생명'과 과도 같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제품은 그    어떤

보다 최상일 것이며, 그것이 곧 교육과 연결될 때 어떤 효과를 가져올    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    은 결코 남을 배

할 줄을 모른다.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만 해도 힘들고 지칠 때마다 가족    과
회사 직원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용기를 얻는다. 때로는    그들과

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리고 가끔은 그들이 힘들어할 때     내가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여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 곁엔 두 명의 친구가    있
다.
   첫번째 친구는 그 사람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정말 슬프겠구나"하며  손을 내    밀
었다. 그리고 어깨를 다독거리며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나는

상 네 곁에 있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만일 다른  이가 그에게 말이라    도 걸라치면
먼저 나서서 "이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상대할 기분이 아니에      요"하고 막아 버렸
다. 그리고 시종일관 침묵를 지키는 그에게 말했다.
   "네가 이러니 내가 너무 속상하다."
   두 번째 친구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상시와 똑같은 태도로 그를  대    했
다. 그러다가 가끔씩 그가 명해져 있을 때면 한 발짝 떨어져서 말없이 지켜    보았
다.
그러던 어느 날 슬픔에 못 이겨 펑펑 우는 그에게 어깨를 내주었고,    설움과 복받쳐
쏟아내는 이야기들을 아무 말없이 그저 듣기만 했다.
   훗날 그 사람은 두 번째 친구를 껴안으며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첫번째 친구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다. 그는 친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를
고민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입장에서만 친구를  바라보았을 따름이다.     그가 단
몇 분만이라도 친구를 위해 그 입장에 서서 고민해보았더라면 아마    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친구를 돕다는다고 했지만     친구의 마음에 상처만
입히고 말았다.
   진정으로 남을 배려하려면 그 사람에게 '다가서는' 것을 먼저 생각할 줄 알    아

한다. 마음으로부터 가까워지고, 그래서 심적인 교감이 오간 다음, 내가    원하는 것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다. 만일 상대방이 원    하는 것이 한 걸은
떨어져 있는 것이라면 그 사람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배려다.
   신영복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    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결국 남의 배려하는 것은 곧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더불어 사는 삶    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남을 돕는다고 하면서 내 중심적인 사    고를 하

않았나 돌이켜 생각해보자.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남의  입장에 서는    훈련을 해보자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배려를 가르치자. 그런 배려를    기반으로 남과 더불
어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자.
   그러기 위해선 아이에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
워줘야 한다. 그것은 물질적, 환경적인 기준에서 평등하다는 것이 아니다.    부잣집

태어나 부유한 환경속에서 자란 사람과,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족한    환경 속에서

란 사람이 물질적인 면에서 평등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볼 때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이 사실을 깨닫    게
되면 아이는 자신의 기준이 아닌 사회의  다양한 기준에서 사람을 바라볼    줄 알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다양한 부류의 아이들과 사귀어 보게 하는 것이    좋
다.
그런 과정 속에서 아이는 모든 사람들이 각각의 개성과 특성이 다를      뿐, 서로 평
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 인간이든 그 내면적 가치를 지    니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이 아이에게 더불어 사는 지혜를 제대로 가르쳐    준

면 그것은 아이에게 줄 수 없는 최대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제 3장 한솔교육의 성공에서 배우는 학습전략 AtoZ

    자녀를 가르치는 4가지 학습 대원칙

   엄마들이 내게 가장 많이 묻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학습 원칙에 관한  부분    이
다. 가만히 듣다 보면 "잘 가르쳐보려고 하는데 아이가 너무 집중을 안해     요" "계
속 가르쳐줘도 모르면 화가 나서 아이를 구박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면    안 되는 거
죠?" 등 엄마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겪는 애로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다음은 자녀를 가르칠 때 엄마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기본 원칙들이다. 엄마    들
이 가장 많이 실수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들 중, 아이 학습에 있어 반드    시 짚

넘어가야 할 것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보았다.
   절대적인 원칙이란 없다

   17세기경 로체스터의 백작이었던 존 윌모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어린이 교육에 관해 여섯 가지 원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나 여섯 아이를 둔 아버지가 된 지금 하나의 원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주변의 많은 엄마들이, "이렇게 공부시켜야 한다'는 원칙에 사로잡혀     있

것을 종종 본다. 공부는 항상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하고, 이 시기에는  적    어도 읽

쓸 줄 알아야 하며, 뭔가 배우고 나면 항상 결과가 있어야 하고,     적어도 나중에

교는 이곳에 보내야겠다는 등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학습원    칙'들을 세워놓고 있

것이다.
   물론 그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원칙들이 하나씩    늘
어갈 때마다 아이의 가능성은 그만큼 닫혀 버린다.
   에디슨의 부모가 임의로 에디슨을 학교에서 자퇴시켰다는 사실을 아는가.
   알려진 바대로 토머스 에디슨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일에만 매달리고, 다    른
것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문제아'라고 낙인    찍힌

들의 갖가지 질문에 끈기와 정성을 갖고 답해주었다.
   학교 선생님은 아무리 읽고 쓰는 것을 가르쳐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에디    슨
을 보고 "너는 돌머리야!"라고 꾸짖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선생     님에

달려가 아이에게 사과 하라고 요구한 다음 '이런  학교는 에디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결국 에디슨을 자퇴시켰다.
   그 후 어머니는 3년 동안이나 에디슨에게 읽고 쓰는 등 초등학교 교육을  직    접
시켰다. 뿐만 아니라 에디슨이 과학에 흥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작은    실험실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훗날 위대한 과학자로 자라난 에디슨 뒤에는 이렇게 '정해진 원칙'에  구애받   

않던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에디슨이 읽고 쓰고 못한다고 해서 야단치    지 않았

며, 모든 것을 아이 위주로 판단하고 결정했다.
   피카소는 여인의 얼굴을 이렇게 그려야 한다는  규칙을 깸으로서 위대한 예    술
작품을 남겼고, 프로이드는 병을 이렇게 치유해야 된다는 규칙을 깸으로써    정신의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
   나는 자녀 교육이 이 같이 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아이를 키우는     데
정해진 규칙은 없다. 다만 아이의 기질에 맞춰 아이의 숨겨진 능력을 찾아    내고 키
워줄 엄마의 안목이 중요할 뿐이다.

   틀린 답에서 배우게 해라

   아이에게는 세상의 모든 일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하는 일마다 처음 겪는 새    로
운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습에 있어서도 엄마가 잘만 이끌어주면 아이    는 흥

를 갖고 잘 쫓아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때 엄마들이 종종 범하는 실수가 있다. 어떤 공부를 하건 간에 아    이

틀린 답을 말하면 그것을 바로잡으려 들거나 심지어 화를 내는 것이다.
   "아이구 답답해.   1더하기 1은  2랬잖아, 이게   어떻게 11이되니?  이런 것도  
몰   
라?"
   "이건 '게'가 아니고 '개'야. 너는 바다에 사는 '게'랑 우리 집 앞마당에서 뛰   
어노
는 '개'랑 구분도 못하니?"
   아이에게 바른 답을 가르치는 것이 잘못이 아니다. 아이에게 혼란을 주지 않    기
위해서라도 무엇이 맞고 틀린지는 지적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    가 말한
답을 고쳐주는 엄마의 태도다.

   토머스 에디슨은 배터리 하나를 발명해낼 때까지  무려 2만5천 번이나 실패    를
하였다. 배터리 만들기의 바른 답을 알아 낼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음은    물론이
다.
   "배터리 하나를 만들면서 이렇게 많은 실패를 했던 이유가 뭡니까?"
   그 물음에 에디슨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그것을 실패라고 말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배터리를    만

는 방법은 1가지밖에 모르지만, 배터리가 되지 않는 방법은 무려 2만5천    개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묻는 당신은 배터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    까?"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가 공부할 때 실수를 하거나, 틀린 답을 말하는 경우    를
수도 없이 보았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엄마 입장에서야 속이 터지겠지만    아이 입

은 다르다. 아이는 어른들이 하듯, 이건  맞고 저건 틀리고 하는 식    의  이분법적

논리를 모른다. 그러다보면 자연 자기 식대로 생각하여 나름의    이상한(?) 답을 내

기 마련이다.
   그러나 엄마는 나름대로 대답을 한 아이에게 "그건 틀렸어. 이게 맞는 답이    야"
"그렇게 하면 어떡하니? 이렇게 한번 해봐"하고 엄마가 알고 있는 '정답'    을 말해

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의 시도 제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처럼 정답이 한 가지만 있다고 생각지 않으면, 설령 자    신
이 틀렸어도 실망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있어 '틀린 답'이라는 것은 절대 부    끄럽

나 절망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이    것을 통해

것이 왜 아닌지, 그렇다면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    름의 방법을 터득
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보다 고차원적인 학습에 들어갓을     때, 응용력과  창조력

바탕이 된다.
   아이가 1 더하기 1이 11이라고 말했을 때, 엄마는 아이와 수 개념이 어떻게    자

잡고 있는지만 생각하면 된다. 바른 답을 가르쳐주되, 그것이 틀렸다고     닦달할 

요는 없다. 일단 바른 답을 알고 나면 아이는 자기가 왜 틀린 답을    말했는지 스스

생각한 다음 2 더하기 2는 22가 아닌 4라는 사실에 대입시    킬 수 있게 된다.
   '게'와 '개'의 차이점을 알러줄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개'를 '게'라고 답한   
것은
자기 나름대로 낱글자에 대한 조합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같은    답을 가르

주더라도 틀렸다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낱글자가 합쳐지    는 원리를 다시

번 얘기해주는 편이 학습에는 더 효과적이다.
   아이는 어른과 달리 학습에 있어서만큼은 스펀지와 같다. 어른들은 이미 고    정

사고방식이 있어 바깥에서 얻은 정보를 일원화시키지만, 아이는 엄청난    흡수력으로
그 정보를 나름대로 응용하고 확장시킨다.
   틀린 답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가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 풍부하다는    것이
다.
   엄마가 할 일은 그저 틀린 답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깨달아 가는 것을  격려    하
고 지켜봐주는 일이다. 가능성이 풍부한 아이 일수록  틀린 답을 많이 내놓    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칭찬의 힘은 세다

   말을 배우는 속도가 다소 느린 아이가 있었다. 그에  비해 엄마는 성격이 몹    시
급한 편이었다. 엄마는 다른 아이들이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도 한참 더듬    거린 다

에야 입을 떼는 아이가 답답했다. 결국 보다못해  엄마는 아이를 앞    서가기 시작했
다.
   아이가 장난감을 가리키며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면 "이거 달란 말인지?"     하며
얼른 장난감을 아이 앞에 가져다 놓는 식이었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말을 더 많이 더듬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심한    놀
림이 아이를 더욱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아이를 닮아 성격이    급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고 더 심하게 야단을 쳤다.
   "좀 천천히 말하지 못하겠니? 넌 왜 매일 말을 더듬는 거야? 딴 애들은 안    그러
잖아?"
   엄마의 그 한마디로 아이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더 이상 입을 열기    를
두려워졌다.
   아이는 차라리 말을 안 하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엄마는 그런     줄

모르고 그저 애가 얌전해졌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는 실    어증에 걸

고 말았다.
   비슷한 증상으로 고민하는 다른 엄마가 있었다. 그러나 그 엄마는 그것 때문    에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리 애는 좀더    예쁘고

확하게 말하려고 지금 좋은 말을 찾아내는 중이랍니다"라며 의도적    으로 아이를 칭
찬했다.
   "지금 한 말 엄마에게 다사 한번 해줄래?" 엄마는 그렇게 빨리 말하면 못     알아
듣거든?"
   엄마는 항상 아이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며 자연스럽게 발음하는     훈련
을 시켰다. 그런 결과 언젠가부터 아이는 '좋은 말'을 좀더 빨리 찾아낼     수 있게

었다.
   "언제 이만큼 말을 많이 배웠지? 이젠 너도 형만큼 컸구나!"
   내가 형만큼 컸다니! 아이에게 그 이상의 칭찬은 없었다.
   그리하여 동갑내기 친구가 말더듬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실어증으로 악화되    고
있는 사이에, 이 아이는 동화구연대회에 나갈 정도로  언어 구사력을 갖출    수 있었
다.

   엄마의 칭찬은 이처럼 아이의 학습 능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학습에 있어서 아이들이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좌절감'이다. 그때 엄마의   

은 격려 한마다의 칭찬은 그 좌절감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된다. 그리    고 그

은 자기 확신과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일종의 '성장 촉진제' 역할을    한다. 아이

좀더 나아진 모습을 보였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칭찬해주면 아     이들을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과 함께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칭찬의 힘은 보기보다 세다.

   야단치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영어 과외 교사가 돌아간 뒤, 엄마가 아이에게 물었다.
   "곰이 영어로 뭐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 입으로 수없이 "베어"라고 떠들던 아이가  갑자기 꿀    먹
은 벙어리가 된다. 엄마는 화가 나서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
   "넌 도대체 왜 늘상 그 모양이니? 왜 방금 배운 걸 기억 못해?  자, 따라해    
봐.
베어!"
   아이는 곰이 영어로 '베어'라는 것 하나만큼 확실하게 깨쳤는지도 모르겠다.    그

데 이 엄마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이가 지    금 다섯
살이며, 엄마의 잘못된 다그침이 아이에게 학습에 대한 거부감을 불    러일으킬 수

다는 점이다.
   아이는 엄마에게 야단을 맞아 가며 단어 하나를 외우기는 했지만, 그 뒤부터    '

자'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 문자가 자기 생활에 끼여든 이후로 엄마    에게

단맞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는 선생님이 오는 것도 결코 반갑지 않았다. 선생님이 사고 난 다    음

시작될 엄마의 다그침과 꾸짖음이 두려워서다.
   그러다가 학교에 들어간 아이, 이미 공부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아이에게는    학

마저 재미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숙제도 하기 싫어졌다. 그런데 엄마는     숙제를

못할 때마다 "이런 것도 모르니?"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들으    랬잖아!"라고 야
단부터 쳤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엄마가 화를 내고 야닫치는    모습에 익숙해지기 시
작한다.

   이 엄마의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일까? 문제는 학습에 대한 엄마의 태도에 있    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때가 바로 학습 문제로 아이를 야    단치
고 혼낼 때이다. 엄마들은 대부분 아이가 무언가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     면, 그것

바로잡아야겠다는 마음에 아이를 꾸짖게 된다.
   그러나 이때 '화를 내는 것'과 '야단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엄마가 야단을    
친다
면서 너무 감정만 앞세우다보면 아이는 단순히 '엄마가 화가 났다"고만     생각할 뿐
자신이 잘못했다거나 다음부터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    각하지 않는다.
또 그런 상황이 자꾸 반복되면 엄마에 대해 불신감이 생긴다.    따라서 아이를 바로

아줘야 할 때는 엄마는 자신의 감정부터 다스릴 필요가    있다.
   한편 엄마가 아이를 야단칠 때는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학습 능력이 약간     떨

지는 것은 다독거려줘야 할 일이지. 야단치고 다그칠 성질의 것이 아니     다. 공부

는 습관이 잘못되었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등의 태도 문제라면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겠지만, 능력 문제를 두고 야단을 치게 되면 아이가    자신감만 더 잃어버리
는 역효과를 낳게 된다.
   그리고 아이에게 야단을 칠 때는 그 자리에서, 잘못된 행동만을,  구체적으로   

적해야 한다. 한참 전의 일을 들춘다거나 너무 확대시켜 마치 그 행동이 아    이의

체적인 성향인 양 대하지 말라는 얘기다.
   특히 "넌 왜 그 모양이니?" "바보같이 그게 뭐니"  하는 비난조의 말을 하면    아
이는 열등감이나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된다. 이런 말들은 아이를 궁지    로 몰

넣는 극단적인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야단을 치는 궁극적인 이유는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주는 데에 있    다.
그러나 그런 원칙을 잊어버리고 엄마가 자신의 감정에 휩싸여 아무 말이    나 내뱉는
다면 학습에 장애가 될 뿐더러 성격적인 결함까지 초래할 수 있다    는  것을 명심해
야 한다.
 
    인터넷 교육, 4세부터 가능하다

   "어린 아이가 무슨 인터넷을? 그래도 초등학생은 돼야지."
   유아기 인터넷 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인다. 다    른
것도 할 게 많은데 굳이 컴퓨터까지 따로 가르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그리고

직 이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조기 인터넷 학습은 필수적이라     는
의견도 많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런 생각에 동조하는 편이다.
   실제로 세계 최고의 정보 경쟁력을 지닌 싱가포르에서는 일찍부터 정부 주    관하
에 정보화를 계획을 추진하여 기업과 정부는 물론 각 가정까지 이미 3년    전인, 199
7
년 초고속 인터넷 구축망을 완성하였다.
   탁아소에서는 세 살배기에게 컴퓨터로 숫자와 알파벳을 가르치고, 유아원은    그

다 휠씬 더 앞서 있다. 심지어 그곳  아이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즐기는 스타크래프트를 유치원 때부터 즐긴다.
   우리나라에서도 CD-ROM 타이틀로 공부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몇몇 앞서    가는
부모들은, 어른들이 두려워하는 컴퓨터가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쉽고 친    근한 존재

지 이미 알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와 시대적인 흐름을 볼 때, 이제 유아들의 컴퓨터 및     인

넷 교육은 한글이나 영어처럼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장 먼저 인식해야 될 사람은 바로 아이를 둔 부모들이다.

   21세기 대안교육은 인터넷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학교'라는 말을    들

면 떠올리는 것들이 똑같을 것이다. 4~5층짜리 건물 한두  개에 같은 모양    의 교실
들, 똑같은 형태의 책상과 의자, 거기에 교복까지.
   그러나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루가 멀    다
하고 신기술이 나타나 기존의 뒤엎고 있으며, 디지털 세상이 펄쳐지면서     공간적인
거리뿐 아니라 시간의 거리도 소멸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
고,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바로 교육뿐이다.
   교육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학교는 아직까지 학생들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
으며, 여기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스스로의 판단력을 상실한 채 그저 학교에    서 시

는 대로 동일한 모습들을 보이게 된다. 이 모든 문제는 학교가 성장기    에 있는 아

들의 가능성을 개발하기보다 수십 년 전부터 내려오는 주입식     교육을 반복하고 있
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의 학교는 이제 서서히 쇠퇴기를 맞고 있다. 장차 21세기의    경
쟁력이 될 상상력과 창의력이 이런 형태의 교육에서는 제대로 발현될 수     없기  때
문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개성과 다양성을 장려하는 교육이 필     요
하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획기적인 교육 형태가 나타나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    은 미래 교육

대안적 역할을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컴퓨터는 최고의 놀잇감이다.

   '인터넷 교육이 전면적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아이들이 그  과정   

따라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만약 인터넷을 교육시킨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하

가.'
   아이가 인터넷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컴퓨터부터  제대로 만질 줄 알아    야
한다. 그러나 '컴퓨터는 어른들도 만지기 어려운데 아이들이 활용하기에는    무리'라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연령별로 아이가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따져보면 그것이    기우
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이 경우 교    수는  [

아 멀티미디어 교육의 이론과 실제]라는 논문을 통해,  아이들의 만 3    세 이상이면
마우스를 조작하면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우선 생후 18개월까지의 아이는 컴퓨터를 엄마 아빠가  사용하는 물건이며     '크
고, 무엇인가 바쁘게 일어나는 상자'로 인식한다. 이  시기는 모니터에 뜨는    다양

색과 스피커에서 들리는 소리를 접하며 컴퓨터에 강한 관심을 보이게    된다. 가끔

보드를 두드리기도 하는데 이는 아이가 그만큼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는 증거이다.
그러다가 생후 30개월 가량이 되면 터치스크린이 떳을 때    컴퓨터 화면의 그림을 움
직일 수 있다.
   30~36개월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획기적인 발전을 보이는 시기이다. 신체    적

로도 좀더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으며 소근육이 발달하여 마우스를 움직    일 줄 알게
된다. 아이는 화면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집중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하고, 음악 소리가 나오면 따라서 소리낼 줄도 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이제는 컴퓨터를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즉 4세    부
터는 마우스 조작을 자유자재로 하게 되고, 다른 친구와 컴퓨터 활동을 같    이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략 5세 정도가 되면 메뉴에서 프로그램을  불러올 수도 있으며, 어    느
정도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 타
자는 불가능하지만 자판의 글자 위치를 알게 되고, 글자를 찾거나 자    기 이름을 찍
어 낼 수도 있다.
   아이가 컴퓨터를 잘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은 문제를 단순히  기술적인    차
원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물론 컴퓨터를 제대로 다루려면 여러 가지 기능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아이는 이를 기술적 차원이 아닌 놀이로 받아들인다. 따    라서 당장

능들을 아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이에게 컴퓨터만큼 새롭고 흥미를 끌 만한 것은 없다.  학습 이론에서 볼     때
유아의 학습 능력 향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호기심'이다. 컴    퓨터와

를 통한 인터넷이 계속 새롭게 변신하고 정보를 구축하고 있는 한,    유아에게 최고

놀잇감이자 학습 상대는 바로 컴퓨터일 것이다.
 
   컴퓨터 교육의 숨은 효과

   이리저리 화면이 바뀌고 다양한 소리가 나오는  컴퓨터를 보며 좋아하지 않    을
아이는 없다. 그리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성격적 결함을 치    유하는

에서부터 인지 및 언어 발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를 얻을 수    있다.
   컴퓨터 교육시 한 대의 컴퓨터를 두 명이나 그 이상의 아이들이 함께 사용    하도
록 하면 더욱 그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아이들은 모르는 것을 대할 때 호    기심과

께 두려움도 가지기 때문에 컴퓨터 역시 혼자 배우기보다는 또래와    함께 배우는 것
을 선호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서로간의 의사 전달력과 협동심    이 높아진다. 특히

심하거나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아이라면 컴퓨터를 매개    로 하여  성격을 개선시킬
수도 있다.
   어떤 연구 결과에서는 컴퓨터를 매개체로 하는 시청각 교재를 사용할 경우     TV
를 통한 것보다 더 활동적이며 긍정적인 얼굴 표정이 나타났다고 한다. 아    이가 지
나치게 TV에 집착하거나 성격이 긍정적이지 않을 경우,  대안으로 컴    퓨터 교육을
생각해볼 만하다.
   그리고 컴퓨터는 물리적 지식 획득을 가능케 하여 아이의 문제 해결  능력을    향
상시킨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컴퓨터 사용 횟수가 많은 아이들이 그렇    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인지적 성숙 수준이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즉 컴퓨터    활동은 아이

의 학습 능력을 신장시킬 뿐더러, 새로운 방식의 사고를 기능케    해 지적 발달을 향
상시키는 것이다.
   최근 밝혀진 또 한가지 사실은 컴퓨터가 아이의 언어 발달을 촉진시킨다는    사실
이다. 아이들이 흔히 하는 쌓기 놀이, 미술 놀이, 찰흙 놀이에 비해 컴퓨    터를 하

되면 아이들의 언어력이 2배 이상 신장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학습적 효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컴퓨터를 배우면 인터넷을  활    용
할 줄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세상을 간접 경험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    금 이

간 다른 나라의 아이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

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 아주 실질적이고 수준 높은 정보들    을 인터넷을  통해 원
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간접 경험들은     아이들의 뇌 속에 다른 활
동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보로 자리잡을 것이다.
 
    엄마가 영어가 박사일 필요는 없다

   1년 반쯤 전에 엄마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TV광고 한 장면.

   멘트: 장우는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외국 꼬마(브레들리): What are you doing now?
   한국 꼬마(장우): I'm going to the hospital

   로버트 할리의 아들인 브레들리와 함께 출연하여  영어로 대화를 나눈 화제    의
주인공 장우는 당시 39개월, 네 살배기였다.
   방송이 나간 후 "정말 그 아이가 영어를 그 정도로 하느냐?" "혹시 외국에서    살
다 온 아이 아니냐?"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비록 한마다였지만 장우가     외국 아
이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놀
라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덕분에 영어 조기 교육에 대한 찬반 논쟁에 다시 불어 붙였다. 모 시사 프로    에
서는 교육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영어 조기 교육'에 대한 찬반 토론을 벌리    기도

다. 영어 조기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유아 영어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이유

   장우는 단 한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부모가 영어를 잘하냐    하
면 그것도 아니다. 다른 집 엄마들처럼 장우 엄마 또한 영어에 자신 없기는    매한가
지였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장우 엄마는 아이에게 영어 실력을  길러주    어
야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하고, 그것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장우가    백 일

지나면서부터 벽에 알파벳 그림 포스터를 붙여두고, 유아용 영어 비    디오를 보여주
었다. 한글 동화책을 읽어줄 때는 간단한 낱말이나 문장을 영어    로 바꿔서 읽어주

도 했다.
   "아이가 알아들어도 그만, 못 알아들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주    고
영어 비디오를 보여줬어요. 사실 당시만해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
요."                              
   그녀가 어떤 이론적 바탕 위에서 그런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것    은
장우에게 한국어 자극과 영어 자극을 동시에 주는 결과를 낳았다. 장우를    영어적인
환경에도 친숙하게 만든 것이다. 그 덕에 장우는 영어로 말하는 것    에도 흥미를 느
끼기 시작했다.
   장우가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것은 생후 19개월부터였다. 이때부터    30
개월이 될 때까지 일주일에 한번 30분씩 영어 공부를 했다. 다른 아이들이    유치원

나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시작했을 공부를 장우는 아주 어린 나이    에 시작했던 것
이다.
   외국어 학습은 해당 외국어의 음운체계나 억양이 모국어와 다르기 때문에     음감
이 발달하는 3세 전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때 저장된 외국어를 나중에    다시 듣

되면, 아이는 무의식중에 기억을 되살려 원어 발음에 가까운 언어    구사를 한다고

다.
   언젠가 '어릴 때 배운 외국어는 빨리 익숙해지지만, 그만큼 쉽게 잊는다'는     이

이 제기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유아기에 입력된 정보가 없어지기는    커녕 대

의 언어 중추 신경에 확실하게 보관된다는 사실이 입증됨으로써 잘     못된 이론으로
판명났다.
   한편 몇몇 언어학자들은 너무 일찍부터 외국어를 배우면 모국어 습득에 지    장을
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아이의 무한한 잠재력을 하나의 학설에 의해 막아    버리
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밝혀진 뇌에 관한 연구 결과만 보     더라
도,
아이는 어른과 비교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있    다. 따라서

른의 잣대로 아이가 자신의 수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따라서 영    어 교육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실제로 강원도 동해시에 사는 석민주라는 아이는 23개월 때 한글 공부를  시    작
해서 3개월 만에 한글을 떼고, 곧바로 영어 공부를 시작해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

다. 민주는 34개월부터 600여 개의 단어를 외우고 그 중 240여 개는    철자까지 정확
히 알아맞히었다.
   아이를 '꼬마 동시통역사'로 키우는 첫번째 열쇠는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다.
유아 영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문제는 엄마에게 있다

   언젠가 한 마케팅 연구소와 공동으로 '엄마들의 영어 교육에 대한  인식도'를   

사한 적이 있다. 유아를 대상으로 영어 공부를 시킬 경우 어느 연령이 적당    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조사 결과 4~5세 시켜야 좋다고 생각하는 엄마들    이 그 이후에
시켜도 된다는 생각하는 엄마들과 비슷한 비율로 나타났다. 상    대적으로 4세 이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은 적었다.
   가장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되는 영어 교육 방법에 대해 물었을 때, 57퍼센트    의
엄마들이 비디오 테이프를 꼽았다. 그 이유로는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는 점

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엄마들은 대체로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의견
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시기와 방법에 들어가서는 아주 막    연한 생

만 있을 뿐이다.
   이 엄마들의 가장 큰 오류는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

잡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영어나라 회원 학부모 사례를 보아도 '가르    쳐서' 아

가 영어를 잘하는 예는 거의 없다.
   더구나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가뜩이나 영어를 잘 못 하는  엄마들은    영
어 교육을 부담감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엄마가 영어 박사일 필요는 없다. 엄마 자신이 영어를  잘 하는 것과 아이에    게
영어 교육을 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배 엄마가 들려주는 영어 교육 노하우

   장우 엄마는 아이가 영어를 잘하게 된 비법을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말하고    있는
데, 그 첫번째가 바로 '기대하지 않는 마음'이다
   "빨리 가르쳐야겠다는 성급한 마음에 아이에게 자꾸 해보라고 요구하면 그    것이
곧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돼요. 그냥 한 두 마디 나올 때마다 칭찬만 해    주면 돼요.
"
   두 번째는 아이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가 무슨 말을    했
을 때, 틀렸나 맞았나 고민하지 않도록 가급적 어릴 때 시작하는 게  좋다는    것.

우 엄마는 그런 의미에서 다른 엄마에게 장우보다도 더 어릴 때 교육을    시작하라고
권유한다.
   세 번째는 억지로 단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엄마 스스로 영어를 자주 쓰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당장 일상 생활에서 간단한 영어를 들려주면, 아이    는  그 의

는 모르더라도 상황에 따라 유추하게 된다. 그래서  장우 엄마는 아    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나갈 때도 "산책하러 가자"라는 말 대신 "Let's    Take a walk"이라고
말해주었다.
   마지막은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를 통해 흥미를 유발시키라는 점이다. 이것은    우
리말을 배우는 과정과 똑같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사물의 단어를 영어로    말해주
고, 글자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예쁜 그림의 영어 동화책을 보여주는 것     이다. 영

노래를 들려주고, 쉬운 노래는 함께 부르며 아이가 즐겁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포인트이다.
   장우 엄마가 말하는 교육 비법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아이를 책상 앞에     앉혀
놓고 단어를 외우게 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일단 아이에게 영어와 친숙    해지는 환
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비법의 포인트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에게 꾸준히 반복적으로 우뇌 중심의 언어  자극    을
줄 경우, 모국어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익히게 된다고 했다.
   쉽게 말해 생활 속에서 우리말을 하듯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히면, 모국어와    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완벽에 가까운 영어를 구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감성을 자극하고 놀이가 우선시되는 우뇌 중심의 교육법을 실행하면,    습
득한 내용을 외우거나. 정리하지 않아도 뇌에 사진이 찍히듯 각인되어 오랫    동안

억된다.
   반면 논리적인 과정을 거쳐 지식을 흡수하는 좌뇌 중심의 언어 습득  방식에    는
무리가 많이 따른다. 보고 듣는 내용을 외우고 분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    기 때문
에, 기억하기도 어렵고 무의식적으로 꺼내 쓰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
다.
  
   영어 교육에도 단계가 있다.
 
   기본적으로 놀면서 영어와 친숙하게 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엄    마
들은 아이가 연령에 따라 영어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는지 알    아둘 필
요가 있다. 발달 단계를 알아야 그에 맞는 적절한 자극과 놀이를 제공    해줄 수 있

때문이다.
   3세 전후로 영어 교육을 시작할 경우, 아이가 비영어권 국가에 살고 있고 매    일
규칙적으로 영어에 노출된다면 보통 다음과 겉은 다섯 단계의 과정을 거    치게 된
다.
   우선 첫 단계는 '노출기'이다. 이 시기에는 청각이 급속도로 발달하기 때문이   

음에 대한 반응이 민감하다. 따라서 아이에게 영어  노래나 문장을 많이 들    려주면
발음을 정확히 따라하지는 못해도 죄 회로 속에  영어의 독특한 리듬    이 각인된다.
그것은 언젠가 영어에 다시 노출될 때 쉽게 영어 발음을 듣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두 번째 단계는 '인식기'이다. 이 시기에는 영어의 발음뿐 아니라 단어를 이    루

알파벳 각 글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므로 영어와 우리말이     서로 다르다
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사물의 명칭에 대한 어휘 습득이 증    폭되는 시기이므
로 주변의 사물 이름을 중심으로 영어 단어를 가르치면 쉽게    익힐 수 있다.
   세 번째는 '실험기'로 짧은 문장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 따라 말할 수 있게   

고 자기의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된다.
   네 번째는 '정착기'로 이 시기에는 영어  문장을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몇    

단어의 결합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단어를  바꾸어가며 문장 만들기 연습을    하기에
적절하다. 그림과 문장이 함께 주어질 경우 문장의 의미를 어느 정도    추측해가며

야기를 읽을 수 있게 된다. 몇 개의 기본 문형이 계속 반복되는    그림책을 읽어주면
문장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확실해진다.
   마지막 '활용기'에는 여러 문장으로 엮어진 글의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그 연령대의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글감    을 접하게
해주면, 어휘력 증가와 함께 문장 이해 능력이 급속도로 향상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이가 알아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릴 때 영어    에
충분히 노출시키면, 아이는 영어의 리듬을 이해하고, 그것이 우리말과 다    르다는

도 인식한다는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만 돼도 유아  영어의 기본 바    탕은 다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부터는 단어와 짧은 문장, 긴 문장 순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 된     다.
   이것은 연령대에 맞춰 수준을 놓여가며 가르치라는 의미가 아니다. 놀이식     방

으로 흥미를 유지하되 엄마는 '지금 이런 단계에 와 있구나' 하고 인식만    하고 있

면 된다.
   유아 영어 교육이 실패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엄마의 잘못된 마음가짐과 인    식에
있다. 목적 의식을 갖고 일일이 확인해가며 결과만을 따지다보면 아이는    영어를 배
우기 전에 거부하는 마음부터 가지게 된다. 그러한 거부감은 순간으    로 끝나는 것

아니라 훗날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진다.
   가르치려 들지 말고 일상 생활 속에서 방법을 찾자. 아침 인사를 영어로 시    작

는 것부터 시작하여, 한두 가지 동요쯤은 영어로 들려주자. 음악 테이프     나 그림

을 사용하고 싶다면, 아이가 흥미를 보일 때를 골라서 하자. 엄마가    인내를 갖고

어로 계속 놀아주면, 단순한 학습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    을 것이다.
 
    그림을 아이들의 언어로 이해해라

   유치원에 다니는 남자아이가 어느 날 엄마에게 자기가 그린 그림 하나를  보    여
주었다. 색깔을 보아서는 수박 같은데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엄마가     이 그

이 뭐냐고 묻자 아이는 실망한 표정으로 "엄마는 사과도 몰라?" 한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자꾸만 이상한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내심 걱정스    러웠
다. 혹시나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 무언가 엉뚱한 구석이 있는 건     아닌지,

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생긴다.
   아이가 모든 것을 잘 했으면 하는 것은 부모 된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이다.    그

관점에서 이 엄마의 마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미처     깨닫지 못

사실 하나가 있다. 이 아이는 자기가 그린 그림이 절대 잘못된     그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아기에 있어 미술 활동은 다른 어떤 영역보다 의미가  크다. 아직 언어 표    현
능력이 미숙한 아이들은 그림이나 만들기로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     하며 표
출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면 어른들 입장에서 무언가 이상하거나    불완
전하게만 보인다. 그러다보니 엄마는 아이의  그림을 놓고 "이게 아니다."     "여기

뭐가 빠졌다"는 식의 간섭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 그것은 불필요한 간섭이며, 또한  아이의 미술적 재능    을
키워주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그런 간섭을 받으며 자유    로운 표

의지를 읽게 된고, 그나마 남아 있던 표현력은  아이 자신의 기준이    아닌 어른들의
만족을 위한 것으로 바뀌게 되고 만다. 스스로 창조하는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21세기는 창의성과 개성이 중시되는 사회이다. 우리 아이가  이 시대의 당당    한
주역으로 서시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창의적인 미술 교육이 강조될 수밖    에 없다.
   어린 시절의 미술 시간을 떠올려보자. 지금의 부모 세대들은 대부분 스케치    북

크레파스를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창의성이 결여된 미술  교육을    받아왔
고,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이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에게 있어 미술은 표현 수단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술    활
동에서 즐거움을 찾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    키는 것
이다.
   아이가 미술 활동을 통해 만족스럽게 자기  감정을 표출하려면 그만큼 풍부    한
재료와 다양한 미술적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을 찾아주는 것이 곧 엄마의    역할인

이다.
   그렇다면 이제 엄마는 기존의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    다.
미술에는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찢고 오리는 과정에서 만들고 붙이는    것에 이

기까지 미술, 즉 아이의 표현력과 관련된 활동은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엄마는 생활의 모든 부분을 미술적 환경과 연결시켜 놀이로 만들어    주는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이르다느니, 집안이  더    러워진다

니 하는 이유로 아이의 창작 활동을 막아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자유스러운 분위
기 조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조건 많이 그리게 한다고 해서, 새로운 재료가 계속 갖다준다고 해    서
아이의 미술적 능력이나 그에 다른 표현력이 개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아

에게 표현의 모든 권한을 맡겼을 경우, 창의적인 표현을 하기보다는    자기가 자신

는 표현으로만 도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표현의 기회를 많이 준다는 미명하에 아이 마음대로 하게 놔둔  채    너
무 무관심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간혹 그림이나  표현 활동을 통해 아이의    정서적
문제가 발견되는 수도 있으므로 엄마들은 간섭하지 않되 항상 지켜보    며 관심을 갖
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무엇보다 낙서 하나에도, 아이가 찢어놓은 종이 한 장에도 그 아이의 숨은     마

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의 미술 활동을 지     켜보
며,
지금까지 하찮게 보였던 것들이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질 것이다.
 
    엄마 먼저 수학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라

   "자, 이제 1부터 10까지 세어봐."
   "1, 2, 3, 4, 6, 7...."
   "그게 아니야! 5가 빠졌잖아. 처음부터 다시 해봐."

   아이 키우는 엄마라면 한번쯤 이런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보통 아이에게    수

을 가르칠 때 엄마들은 가장 먼저 숫자 세는 것부터 시킨다. 아이가 1부    터 10까지
셀 수 있게 되면 그 다음 단계는 자연스럽게 덧셈, 뺄셈으로 연결    된다.
   '수학'이라고 하면 이렇게 숫자를 세고 계산하는 것만 떠올리는 이유가 뭘까.   

마도 지금의 부모 세대들이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자란 후에도 일상    생활 속
에도 그때 배운 것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어린 시절에 그렇게 배운 수학이 재미있었던가. 무슨  일   

하건 재미가 없으면 그 일에 흥미를 못 느끼기 마련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수를 세고, 덧셈 뺄셈을 잘하는 것이 수학의  기본이   

는 하지만 그것만 강요해서는 아이들이 수학에 재미를  붙일 리 만무하다.     그러면
자연히 그 효과는 반감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수학은 재미없는 과    목'이라는 생

이 머릿속에 박히면, 나중에 본격적으로 고등 수학을 공부할     때 심각한 문제를 초
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은 유아 시절부터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수

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수를 계산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안에 분류  개    념, 시

간 개념, 규칙 개념 등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들을 포함    하고 있기 때

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수학 교육에 열을 올리는 국가들이 늘    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수학을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 우선     엄마
먼저 기본적으로 수학에 대한 학습 개념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숫자    세기나 더
하기 빼기 같은 단순한 접근이 아니라. 수학이 일상 생활에서 어떻     게 적용되는
지,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수학이 놀이처럼 흥분 있게 느껴질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배우는 수학이 진짜 수학이다

   알고 보면 수학은 모든 곳에 존재하며 유용하고 재미있는 학문이다. 매일의    일

은 아이들이 수학을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이 된다. 뿐만 아니라 가정    에서는

양한 형태의 수학 활동들이 교육 기관에 비해 보다 풍부하게 일어    날  수 있으므로
가정에서의 수학 활동은 유아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부모는 언어 발달과 달리 아이의 수학적 성장을 그냥  무    시
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수학이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며, 숫자 교육     이 수

공부의 첫걸음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이러한
고정관념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신기한 수학나라'의 경우 주입식 교육보다는 놀이를 통해 아이 스스로  깨닫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즉 아이들이 늘 하는 행동과 말, 주변의 모든     것에 수

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아이 스스로 수학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가정에는 아이들과 함께 수학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수    학적
개념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이러한 기회는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수학을 이
야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무엇보다 엄마는 '수학은 즐    길 수 있는
것'
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와 함께 '수학 활동'을 만들어라

   저녁 시간, 엄마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곁에 있는 아이가 자꾸만 귀찮게 치    맛

락을 붙들고 칭얼댄다. 확 짜증이 친민 엄마의 한마디.
   "저리 가지 못해!"
   현명한 엄마라면 일상 생활의 모든 부분을 아이의 수학적 개념 형성에  연결    시
킬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식사 시간은 아주 좋은 환경이 된다. 이    렇게

보면 어떨까?
   아이와 함께 가족 수에 맞게 숟가락과 젓가락, 밥공기, 국그릇을 준비하자.     그

고는 "의자 하나에 한 사람이 앉을 수 있겠네. 한 사람당 하나씩 숟가락    과 젓가락
을 나란히 놓아줄래?"라든지. "우리 가족이 모두 몇 명이지? 네 명    맞지? 그러면

공기는 모두 몇 개가 필요하지?" 등의 질문을 하는 것이다.
   상 차리기 활동은 일대일 대응과 숫자 세기와 같은 다양한 수학적 경험을     가능
케 한다. 비단 상 차리기뿐만이 아니다.
   빨래 갤 때 아이와 함께 양말은 양말끼리, 속옷은 속옷끼리 모아서 정리하는    활
동을 할 수도 있다. 아이에게 자기 옷과 아빠 옷, 엄마 옷을 딸로 개게  하    고 각

의 서랍에 정리할 수 있도록 해보자. 이는 단순한 수 개념에서 한 단    계 더 나아
가,
같은 종류끼리 모으고 적당한 장소에 넣는 과정을 통해 분류     개념을 형성케 한다.
   이렇듯 엄마가 마음만 먹으면 가정 안에서 놀이처럼 재미있게 아이에게 수    개념
을 심어줄 수 있는 '거리'가 무척 많다. 그림을 그린 다음 크레파스나 색    연필을

나씩 세면서 정리시키고, 신발장에 신발을 차곡차곡 정리시키는 등    엄마가 생각하

에 따라 수학 활동은 무한대로 개발될 수 있다.
   이때 한가지 유의할 점은 무의식중에라도 학습적 차원에서 숫자를 세어보게     해
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는 수학적 개념을 인식한 다음에 사물을 그에    대입시

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통해 역으로 수학적 개념을 인식한다. 예를    들어 소와 닭

보고 난 다음, '크다' '작다'를 느끼고,  과일가게에 수북히 쌓    여 있는 딸기와 
방금
막 산 딸기를 보고 '많다' '적다'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수학 활동을 할 때는 이런 아이의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수를 가르치    겠

는 목적 의식이 지나치면 오히려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주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가 수학도 잘한다.
 
   아이에게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만큼 좋은 학습 자극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    면
수학적 개념을 익히게 하기 위해 아이에게 가장 좋은 자극은 무엇일까?
   아이는 걷기 시작할 때부터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만큼     밖

는 새롭고 경험할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집에서    부터 수

활동을 하고 있었던 아이라면, 이를 응용해 밖에서는 보다 고차원    적인 수학적 개

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갔다고 치자.
   시소, 미끄럼틀 등의 놀이 기구는 모두 숫자 세기, 일대일 대응, 도형 개념,    형

인식으로 이끌 수 있는 재료들이다. 또한 모래 놀이장에서 여러 가지 그    롯을 이용
하여 모래를 담아보는 놀이는 양을 측정하는 경험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은 자신이 귀찮다는 이유로, 또는 아이가 다칠까     걱

스러운 마음에, 아이들로 하여금 집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일을     등한시한
다.
   엄마들이여, 아이를 가르치기에 앞서 수학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라.    

리고 아이와 함께 재미있는 수학의 바다에 빠져보라. 아이가 수학을 쳐다보    기도

은 '악마'로 여기든가, 재미있는 '친구'로 여기든가의  여부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사실을 기억하면서.
 
    '한글 떼기'에도 단계가 있다.

   엄마들이 아이를 가르칠 때 가장 먼저 신경 쓰는 분야가 바로 '한글'이다. 옆   

아이는 어느새 동화책도 줄줄 읽고, 제 이름 석 자도  쓸 줄 아는데 우리집    아이는
동화책은커녕 낱말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면 그만큼 속상한 일이 없    다. 혹자는 그
저 건강하게 자라도록 내버려두면 커서 자연히 알아서 배울 거    라고 하지만  내 생
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아이들의 능력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

도 어느새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춘다. 그러나 나는 그 방법이 옳다고만 보    지는 않

다.
   '생일 케이크의 촛불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가능성의 창은 하나씩  닫힌다'   

기사를 외국의 유명 시사 주간지에서 본 적이 있다.  즉 아이가 0세에 가까    울수록
모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    자마자 말하
기, 읽기, 쓰기와 관련한 한글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    고 싶다.

   말하기, 엄마의 수다 실력에 달렸다

   한글 공부라고 하면 엄마들은 제일 먼저 읽고 쓰는 일을 떠올린다.
   "말이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거 아닌가요?"
   도리어 나에게 이렇게 되묻기도 한다. 그러나 말을 배우지 않고는 읽기도 쓰    기
도 배울 수 없다. 학습의 기초는 말하기이며 말을 제대로 못하면 사고력이    나 표현
력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장애가 따른다.
   아기들을 말문을 떼기 이전부터 이미 수많은 언어를 뇌에 저장해두고 있다.    뱃

에서부터 일상적으로 들어온 말들을 모두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들    은 그런

들을 두뇌의 언어 회로가 완성될 무렵인 생후 24개월부터 정신없    이 쏟아내기 시작
한다. 교육학자들은 이 시기를 가리켜 '언어 폭발' 단계하고    표현한다.
   아기가 말을 갑자기 쏟아내기 전에 엄마들이 해야 할 일은 '언어  샤워'를 시   

주는 것이다. 언어 샤워란 아기가 좀더 많은 언어를 듣고 기억할 수 있도록    다가적
인 자극을 주는 것을 말한다.
   생후 20개월의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평소에 말이 많은    엄
마의 아기가 그렇지 못한 아기보다 구사하는 어휘 수가 2배 이상 많다고     한다.
   말은 사고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아이가 구사할 수 있는 어휘 수가 많    다

것은 그만큼 사고력도 증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아기에는 보다    많은 언어
체험을 통해 어휘 수를 늘려줄 필요가 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엄마의 역할이다. 엄마의  수다 실력이 아기의 말하    기
능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아기의 말하기 능력을 키우기 위한 언어 자극    원칙은

략 다음과 같다.
   우선 첫째, 태아 때부터 아기를 엄마의  이야기 파트너로 만들자. 아이가 말    을
못하더라도 자신의 머릿속에 다양한 어휘들을 저장해두기  때문이다. 아기    가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면 생후 6개월만 돼도 엄마의 말투를 흉내낼 수 있    게 된다.
   둘째, 아기의 행동과 느낌을 말로 표현해준다. 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즐겁게   

면 "와! 재미있는 인형이네?" 이유식을 먹일 때는 "야채죽이야, 참 맛있다"    리고

기의 입장에서 이야기 해주는 것이다. 그러며 아기는 엄마가 자신에게    커다란 애정
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 엄마의 말을 흉내내려는 듯 옹알    거리거나 몸짓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부모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자. "엄마 청소한다" "엄마    전

받을게" 등 아기 돌보기 외에 여러 가지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도  아기    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그러면 아기는 새로운 어휘를 듣고, 이미 알고 있    는  말을 다시

인하면서 자신의 언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셋째, 아기와 친숙한 사물의 이름부터 말해주자. 전화기, 식탁, 의자  등 아기   

집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물건을 가리키거나 실제로 사용하면서 그 이름     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림책이나 사진을 이용해 동물의 이름을 말해주고 울음    소리를 흉내
내는 것도 좋다. 아기의 신체 부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이름    을 말해주는 것

어휘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넷째, 아기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되묻자. 생후 10개월경에 첫 말문을 튼 아    기

대부분 돌이 되면 한 낱말로 여러 가지 의사 표현을 할 줄 알게 된다.     이때 아기

한 말을 정확한 문장으로 되받아 이야기해주자. 아기가 강아지를    보며 "멍멍이"라

하면 "강아지가 있네" 등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이때는 특히 아기처럼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기가 말을 배우는 과정    에
서 자신이 한 말이 정확한지 아닌지를 확인 받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엄마가
아기 수준에 맞춘다고 "쉬 하자" "쭈쭈 먹자"하는 식으로 아기의 말투    를 흉내내면
아기가 정확한 언어 표현법을 배우기 어렵다.
   언뜻 보면 이러 원칙을 지키는 것이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생
활에 들어가보면 이를 실천하기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언어 폭발'이 일어났을 때, 아기들은 하루 종일 쫑알거리며 엄마에게 말을     걸

고 한다. 그간의 학습에 대한 일종의 복습인 셈이다. 이때 엄마는 자연스    럽게 아

의 말에 대꾸해주면 된다.
   그러나 온종일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고, 대꾸를 해주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
니다. 전화 통화를 하려고 하면 수화기를 빼앗으려 들고, 다른 사람과 여유    있게

한잔이라도 마시려고 하면 종종 훼방을 놓는다. 때로는 귀찮을 수 있    지만 그렇다

아기를 야단치지 말자. 그러한 아기의 몸짓은  세상에 대한 적    극적인 호기심이며,
본격적으로 언어 학습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뜻    이기 때문이다.
  
   쓰기보다 읽기를 먼저다

   한 꼬마아이가 신문을 읽으며 엄마에게 이렇게 묻는다.
   "엄마, 청와대가 어디에요?"
   그 광고가 나가자마자 어떻게 세 살짜리 꼬마가 신문을 읽냐며 문의가  쇄도    했
다. 아이가 대본을 외운 것이 아니냐, 정말 읽는 것이 확실하냐, 도대체 어    떻게

육시켰기에 신문을 다 읽냐는 것이었다.
   그 광고로 일약 스타가 된 문주는 생후 20개월부터 한글나라를 시작했다. 한    글
을 깨치기에 그다지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였다. 문주는 학습에 들어간    지 6개
월 말에 동화책을 물론 신문도 읽을 줄 알게 되었다.
   사실 회원들 가운데 신문을 읽을 줄 아는 아이들은 꽤 있었다. 그 중 카메라    테
스트를 거치면서 후보로 뽑힌 50명의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어보게 했는데,    갑자기
문주가 "청와대가 어디에요?"라고 물었던 것이다. 너무나  똑 부러진     질문에 당시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문주를 나점했다.
   문주가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은 청와대에 노루가 산다는 가서를 보았기  때문    이
다. 청와대가 뭐하는 곳인지, 어디 있는지도 몰랐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동     물이

곳에 산다고 하니까 궁금해진 것이다. 그것은 곧 문주가 한글을 그냥    읽는 게 아니
라, 낱말이 갖는 의미, 낱말과 낱말이 만나 문장을 이루었을 때    의  의미 등을 완

히 이해하며 읽고 있음을 뜻했다. 그러므로 광고 모델로 누    구를 쓰는가에 더 이상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엄마들 사이에는 읽기가 먼저냐 쓰기가 먼저냐, 아니면 두가지가 동시에 이    루

져야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어떤 엄마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두    는 게 좋
지 않냐는 말까지 한다.
   그러나 아이의 성장 발달 과정을 고려해 볼 때, 나는 말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익
숙해지면 바로 읽기부터 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뇌 활동이 왕성하고    높은

관력을 가지고 있는 유아에는 읽기가 휠씬 쉽기 때문이다.
   말문이 트인다는 것은 아이가 말의 규칙을 터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시

에 읽기를 지도하면 아이 스스로 글의 규칙을 깨닫게 된다.
   반면에 쓰기는 말과 글의 규칙과 함께 기호를 익히는  것으로, 아주 어릴 때    가
아니더라도 반복된 훈련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쓰기는    뇌의 운
동을 조절 능력에 의해 결정되므로 운동력(연필을 쥔  상태에서 움직    이는 능력)이
없는 유아의 쓰기 교육은 좀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단수한 반복과 암기
식의 쓰기 교육은 단어의 의미나 뜻과는 관계없이 기계적    으로 훈련을 시키는 것이
므로 한글 교육에 결정적인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충분한 읽기 학습으로 어휘력과 상상력을 키운 아이가, 낱말의 뜻    과
의미를 정확히 인지하면서 쓰기를 배워야만 진정한 의미의 쓰기 교육이     되는 것이
다. 글을 잘 읽는 아이가 글을 잘 쓰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또한 유아 한글 교육에서는 읽기와 학습을 병행할 필요가 없다. 두 기능을     주

하고 있는 뇌의 영역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     스]  최

호는 '읽기 영역을 제어하는 뇌와 쓰기 영역을 제어하는 되가 서로    다르고 각각 독
립적으로 발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곧 읽기 학습과     쓰기 학습이  서로

개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두 학습이 동시에  이루어    져야 한다는 전혀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읽기 공부는 어떻게 시켜야 할까?
   여기에 사과 하나가 있다. 그 사과를 두고 아이에게 '사과'라는 낱말을 알려    주

그 낱말 자체가 곧 빨갛고 달콤한 맛이 나는 과일의 이미지를 연상시킨    다. 즉, '

과'라는 낱말 자체가 하나의 덩어리로서 사과의 이미지와 그대로     연결되는 것이
다.
따라서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는 낱말을 하나의 덩어리    로 가르쳐야 한다.
   반면 처음부터 낱글자로 한글을 가르치려면 방법 자체가  매우 까다롭다. 처    음
한글을 배우는 아이에게 '사' + '과' 혹은 'ㅅ' + 'ㅏ'라는 원리를 가르치는    것은
아이
에게 추상적인 기호를 무작정 주입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모든 학습의 기본은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추상적인 것으로 발전한다는     것
이다. 한글 교육도 마찬가지다. 낱말 하나를 가르치더라도 구체적인  것(사    물의

름)에서 시작하여 추상적인 것(문자)으로 나아갈 때 더욱 효과가 있     다.
   그러므로 가족이나 자기 몸, 집안의 물건 등 아이가 좋아하거나 친밀감을 느    낄
수 있는 낱말을 통째로 가르치고, 그 후에는 낱자 학습, 즉 글자  하나하나    가 모

낱말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게 좋다. 이 과정까지 끝나면 일반적으    로 글을 읽는
단계에 맞춰 간단한 단문, 장문, 동화책 순으로 넘어가면 된다.
   그러나 모든 아이에게 이런 과정들을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네

살에 읽기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때는 아이가 좋아하고 관심을 갖    고 있는 사
물이나 놀이에 관한 낱말부터 가르치는 편이 낫다. 이 정도 연령의    아이는 일상어

자기 스스로 쉽게 학습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낱말을 선정    하고 단문 학습과 책 읽
기를 빨리 도입하는 등,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쓰기를 가르치되 시간에 연연해하지 마라

   "싫어, 그만 쓸래."
   "두 줄만 더 쓰자, 응?"
   "손 아파, 엄마~."
   "리을을 한번에 쓰면 어떡해? 자, 지우고 다시 쓰자."
   아무리 달래도 이린 유아들에게는 연필을 쥐는 것조차 힘들다. 읽기 과정을    재

있게 공부한 아이라도 쓰기는 또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만 4세가 되    면 손가

의 소근육이 발달하여 쓰는 것이 가능해 진다. 그러나 놀이로 읽기    를 배운 아이가
가만히 책상에 앉아 깍두기(?)칸을 메우기는 힘든 노릇이다.
   앞서 말했듯 글쓰기는 아이가 글을 읽고 난 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더구    나
자칫 잘못하면 무리한 쓰기 연습이 아이에게 지나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읽는 것은 아이에게 육체적인 행위를 요구하지 않지만,  쓰는 것은     운동력은 물론
집중과 인내를 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연필과 공책보다는 커다란 전지나 달력, 스케치북이 아이에겐    더
적당하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그것을 학습으로 느끼지 않게끔 놀이식으로    풀어가

는 점이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이 며칠인지 물어보자. 그런 다음 아이에게     연

을 들고 달력 앞으로 가 동그라미를 치게 해보자. 시장을 다녀와 장바구    니를 보여
주고 어떤 물건들을 샀는지 쓰게 하는 식의 아이디어도 괜찮다.
   또한 아이가 크레파스 따위를 들고 엄마가 알아볼 수 없는 모양을  그리더라    도
계속 칭찬을 하여 아이의 의욕을 북돋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글을    쓰려고

력한 것에 대해서, 또 나름대로 표현하려고 한 것에 대해서 칭찬해    주는 것이다.

러나 제대로 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하는 형식적인 칭찬은 삼    간다.
   그리고 제발 시간에 연연해하지 말자. 아이들이 글을 쓸  때 한 자리에 가만    히
앉아 있지 못하면 엄마들은 종종 화를 낸다. 그러나 낱말 하나, 글자  하나    를 쓰

데 최소한 3일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유를 갖자.  글쓰기를 가    르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엄마의 인내력이다.
   그렇지만 아이가 글쓰기에 집중 못하는 것이 환경 탓이라면 엄마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들은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절대로 글을 쓸 수 없     다.  그

니까 학습에 들어가기 전에 TV를  켜놓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에게     글을 쓰라고
해놓고 엄마는 청소기를 돌리거나 설거지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 보자.
   한가지 덧붙이자면, 아이가 무언가를 썼을 때는 벽에 불여두는 등 성의를 보    이
는 게 좋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다. 아이가 직접 쓴     작픔(
?)
을 눈에 띄는 곳에 걸어둔다면  세상에서 그것보다 더 좋은 자극은  없    을 것이다.
  
  
 
    음악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유아 교육의 중요성이 계속 부각되고 있는 요즘, 과도한 학습에 찌들어 감정    이
메마른 아이로 자라면 어쩌나 고민하는 엄마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요즘     엄마들은
어떻게 하면 아이를 감성이 풍부하게 키울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     법들을 시도한
다. 음악을 가르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어릴 때부    터  음악적인 환경

서 자라게 해주면 그만큼 메마른 정서를 완화시켜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예능 분야의 영재들이 종종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엄마들의 교육열

한층 더 자극받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예능 분야라고 해서 그것이 곧 감수성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며, 특히    이
를 아이의 앞날과 연결지어 생각할 경우 엄마는 아주 신중해질 필요가 있    다.
   음악을 가르치는 데 무조건 '악기를 다루는 것부터 그르치고 보자'는  마음으   

다가서거나, 아이는 흥미가 없는데 엄마 욕심 때문에 강요하면, 단순히 예     능 교

의 실패를 넘어서서 아이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기 때문    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경우 공통적인 특징이 그들의 부    모가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에 본격적으로 매진한 시기     는 대략
10~14세 정도였다.
   물론 아이의 재능을 개발시키는 데 있어, 결정적인 시기를 발견하는 것은 매    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아이가 살아가고 있는 유아기가    인생을

틀어 가장 중요한 시기며, 이때의 경험은 아이의  성격이나 기질 형    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먼저 음악과 친숙하게 만들어라

   언젠가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초등학교 3학년짜리 남자아이가 TV     에
출연한 적이 있다. 턱시도를 입고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나온 그 아이는 언    뜻 보기

는 평범한 아이 같았지만, 막상 피아노에 앉자 180도로 바뀌면서 유    감없이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아이와 사회자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 나는 '무언가 잘못 되었    구
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노를 언제 시작했어요?"
   "그건 기억이 잘 안 나구요. 지금은 매일 하루 9시간씩 연습하고 있어요."
   "장래 꿈이 피아니스트겠네요?"
   사회자의 질문에 아이 대신 엄마가 대답을 했다.
   "글쎄요. 아직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이가 이쪽으로 계속 재능을 보이면 부    로

도와주고 싶어요."
   나는 그 아이에게 피아노 치는 것이 정말 좋은지, 좋다면 이유가 무엇인지를    듣
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방송이 끝날  때까지 그 대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관심

초점이 아이가 얼마나 대단한가, 그렇게 키우기 위해서 엄마는 어떤     뒷받침을 해

었는가에만 모아졌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부모들은 음악 교육이라고 하면 악기를 다루는 것만     떠올
린다. 그래서 피아노 연주를 얼마나 잘하나, 바이올린을 얼마나 잘 켜나     등등 눈

보이는 결과만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일찍부터 악기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것보    다

음악을 듣고, 즐길 수 있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 우선이다. 연주 기술    의  연마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고 나서, 그것을  직접 연주해보    고 싶은 욕구를
느낄 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 오히려 그럼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효과 면에서 더
빠르다.
   어려서부터 음악이 흐르는 환경에서 자라 아이는 음악과 금세 친숙해진다.     그

아이는 악기 연주법은 배우지 않았더라도, 음악의 리듬에  맞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거나 흥얼거리는 등 자기만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음악적 재능을

우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알게 모르게 갖추어간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음악 교육을 시킨다고 하면서 악기를  얼마나 잘 다루나에만 초점    을
맞추기보다는 음악과 친숙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우선되어    야 한다.

    음악적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연령별 지도 노하우

   뮤지컬 배우 최정원 씨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마법의 성>이란 가    요를
비롯하여 많은 노래를 직접 불러주었다. 신기하게도 평소 태동이 없던     아이는 노

를 들려줄 때마다 발차기 등으로 반응을 보였고, 그녀는 그게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어, 낮이건 밤이건 상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들       려주었다.
   그런데 그녀의 아이는 태중에 있을 때부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건 탓인지,    태

난 후에도 무척 예민했다. 그녀는 그런 아이 때문에 무척 속이 상했고,      그때 문

생각해낸 것이 임신 때 많이 불렀던 <마법의 성>을 들려주는 일    이었다.
   그 효과는 놀라웠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다가도 그 노래를 들으면 언제 그    랬
냐는 듯이 울음을 그치고 그녀를 보며 방실방실 웃는 것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아이의 음악적 능력은 임신 4~5개월 때부터 자란다고     한
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들은 음악을 출생 뒤에도 기억하는    것이다.
   생후 2개월이 지나면 아기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움직이게 된다. 모빌에서    소
리가 나면 그쪽으로 쏠리는 게 이 때문이다.
   생후 6개월이 되면 아이가 손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기는 주변의 소    리

는 물체에 특히 관심을 기우일 때다. 따라서 주변의 생활용품으로도 좋은    음악 놀

감을 제공해줄 수 있다.
   그러므로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 소리,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 냄비  뚜껑   

여닫는 소리 등은 아이에게 좋은 음악적 자극이 된다. 뿐만 아니라 빗소      리, 바

소리, 동물 소리, 등 집 밖에서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도  아이의    음악적 감수

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본격적으로 음악적인 소리와 비음악적인 소리를 구별하는 것은 생후 12개월     부
터인데 이 시기에는 근육이 발달하여 무엇이든지 두드려보면서 연주(?)를     하려 든
다. 조리기구나 수저 따위를 이용하여 무엇이든지 서로 부딪치고 두드    리며 소리

드는 일을 즐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소리가 특이하고    청명한 여러 종류

악기 대용품을 준비하여 아이 스스로 음악 만들기에 열    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
요하다.
   만 3세가 되면 아이는 음의 높낮이와 길이, 음색 등 음악을 이루는 기본 요    소

깨닫게 된다. 이때 아이는 자기 스스로 체득한 음 개념을  갖고 노래를     부르는 등
음악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엄마들은 직접 두드려보게  하여 음에    대해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좋다.
   만 4세 정도가 되면 제법 음악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되며 나름대로의 표    현력
도 생긴다. 노래 부르기를 통하여 정확한  음정이나 리듬을 표현할 줄 알    게  되
며,
리듬 악기를 갖고 손과 발을 흔들면서 나름대로 즐기는 아이도 있     다.
   어때는 모든 종류의 음악 활동이 가능한 시기이므로 다양한 음악 활동이  필    요
하다. 단 모든 음악 활동이 놀이의 연장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악기를 처음 접하는 시기는 아이의 성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정답이  있을    수
는 없다. 다만 그 동안의 연구에 따르면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 교육은 만    3세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만 3세가 되면 자신의 의사를 비교적 정확    하게 전달할

있으며, 현을 짚을 수 있는 손가락 힘과 활을 유동적으로 움    직일 수 있는 팔의 힘
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휠씬 입체적인 표현을  요하    는 피아노의 경우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훨씬 입체적인 표현을 요하는 피    아노의 경우 만 5세 정도가 본

적으로 시작 할 수 있는 적기라고 전문가 들    은  말한다. 소리의 강약 조절은 물론
한 옥타브 안에서의 자유로운 연주가 어    느 정도 선까지는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엄마  눈에 잘 할 것 같아 보여도 아이     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악기를 가르치는 데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감수성을 키워주는 명목 아래 공부를 강요받는  아이는 결코 음악으로 성공    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신경질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다. 결국 엄마가 궁    극적으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이가 무얼 하든 행복해지는 게 아닌가.
   
      제 4장 나는 조용한 혁명을 꿈꾼다

    아이들은 이런 엄마 아빠를 원한다

   이스라엘에서 국적을 얻으려면 엄마가 반드시 이스라엘 인이어야만 한다. 이    스
라엘 엄마로부터 이스라엘 전통의 가치관을  배운 사람에게만 국적 취득의    자격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식의 뿌리 깊은 가정 교육을 받지 못    한 사람은

스라엘 인으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네들은 결혼한 그 순간부터 아이와 함께 살아갈 연습을 한다. 대대로 내려    오
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면서 태어날 아이에게 이렇게 하겠다는 자기 다짐    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이 계획 임신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이를 임신

고 나서야 비로소 허둥지둥 부모가 될 준비를 하는 것과는 대    조적이다.
   한 이스라엘 엄마는 아이에게 무얼 가르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    했다
고 한다.
   "흔히 이스라엘에는 무슨 대단한 조기 교육법이 있다고 말들하는데, 우리는    아

에게 관심을 갖고,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고 애쓰죠. 그러다보면  자    연스럽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열린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이 키우는 부모들과 만나며,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줘야겠다고 다급해    하
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래서 임신과 동시에, 혹은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치 수험생인 양 각종 육아 서적들을 뒤져가며 공부하는 엄마들도 볼    수 있다. 그

분에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세계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인재들은 그리 많지     않
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나는 분명 우리 가정에도 문    제가

다고 생각한다.
  
   엄마들에게

   평소 만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 아내가 보던 만화책 한 권을     어깨
너어로 읽은 적이 있다. <마이 퍼니  베이비(My Funny Baby)>라는 만화    였는데,
그 속에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스물한 살의 쌍둥이 엄마, 그녀가 어느 날 남편에게 묻는다.
   "만약에 말야, 홍수가 나서 나랑, 찬이랑 선이랑 떠내려간다면 누굴  제일 먼   

건질 거야?"
   잠시 망설이다가 질문의 의도를 눈치챈 남편이 이렇게 대답한다.
   "그야 물론 너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시험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남편, 아마 나도 그렇게 대답    하
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내는 뜻밖에 이렇게 말한다.
   "난, 아이들을 먼저 구할 거야. 애들 중 누군가가 잘못된다면 대책이 안 서.    나

따라죽을 수밖에 없겠더라고, 그러니까 여보,  누군가를 구해야겠거든 아    이들부터
구해. 아이들이 없으면 난 어차피 죽은 목숨이니까."
   아마도 모든 엄마들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아이를 사랑하고 그래서 아이를    위

목숨마저 내던질 수 있는.... 물론 아빠들도 그럴 거다. 그럼에도 엄마들    에게는
지극
한 모성애로부터 시작되는, 아빠와는 다른 아이에 대한 남모를 사    랑이 있는 것 같
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감당해내기에는 너무나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게
바로 '아이 기르기'다.
 
   한글나라를 통해 알게 된 한 엄마의 이야기다. 외아들 하나만을 키우고 있던    그
녀는 평소 아이 기르는 일에 남다른 포부를  갖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아이로
하여금 세상을 직접 체험하게 하고, 이를 통해 감성을 길러주고 싶다    는 것이 그녀
의 생각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아들에게 다른 집처럼 틀에 박    힌 교육을 강요하
기보다는 집 근처의 계곡을 다니면서 자연을 느끼게 해주었    다. 아들은 개미도 잡

꽃도 만지며 즐거워하곤 했다.
   그런데 아이가 점차 그런 생활에 짜증을 내는 게  아닌가. 급기야는 집에 와    서
장난감을 집어던지는 등 반항적인 행동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기를 며칠, 그녀는 아이가 무심결에 던지는 한마디를  통해 아이의 불만    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애들이 글도 못 읽는다고 자꾸 놀려."
   아! 그렇구나. 그녀는 생각 끝에 아이에게 한글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마음먹    

다. 아이가 빨리 한글을 깨칠 수 있도록 일대일 방식의 방문 수업을 택했     고, 공

를 시작한 지 세 달이 지나자 아이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곧    아이는 전처럼
명랑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그녀는 아이에게 다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 교육과 관련하여 무수한 정보 속에 살고 있다. 교육은     물

아이 건강이나 성격에 관련되니 것까지 상담기관과의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정도
다. 그러나 오히려 엄마들은 너무나 많은 정보에 치여서 어떻게     아이를 교육시켜

좋을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위의 엄마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 '이렇게  키우겠다'고 마음먹기까지 나름대   

정보도 찾고 고민도 했을 것이다. 딴에는 아이에게 가장 좋을 듯한 교육법    을 택했
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럼 그런 엄마의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친

들에게 놀림을 당했고, 그 결과 애초 시도했던 방법은 안 하느니    만 못한 형국이

고 말았다.
   그녀의 가장 큰 오류는 아이가 자라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갖춰줘야 할     성장
환경을 무시한 데 있었다. 아이의 언어 능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    기는 일정

게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그 시기에 꼭 필요한 교육 환경을 제공    해주야 하는 것

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가 생각한 육아관에 빠져 미처 그 사    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녀가 어떻게 키우겠다고 마음먹을 시간에 차라리 아이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더라면, 그에 맞는 환경을 제공해주었더라면, 아이가 놀     림감이

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차라리 어떤 육아관 하나    만을
고집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연주의니 지능 개발이니 한쪽     이론만을

집하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아이의 스트레스만 가중시키    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엄마에게는 어느 한가    지 이론에 얽매이지 않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아이가 자라는 것을 그저 손놓고 보고만 있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에 관심을 갖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적    절하게 제

하라는 것이다.
   내가 교육 사업을 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교훈은, 아이에게 가장 나쁜    영
향을 미치는 것이 '엄마의 일반적인 강요'라는 사실이다. 엄마가 자기 생각    만 고

하며 "이렇게 하라" 고 강요할 때, 아이는 의지를 잃게 된다. 그러므    로 강요하기

앞서 아이가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    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깨야 할 고정관념이 바로 '아이 키우기는  엄마의 몫'   

라는 생각이다.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잘못되면 엄마 탓으로 돌    리는 경
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엄마들이 아이 교육에 있어 아빠보다 더 많은    부담감을 안

되고, 그로 인해 과중한 스트레스를 시달린다.
   게다가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육아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우리 회사에서    직

에 다니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도 "당신의 가장 큰 스트레    스가  뭐
냐"는 질문에 거의 대부분이 "육아에 대한 부담"이라고 응답했을 정도    다.
   아이가 잘못되면 왜 엄마에게만 화살을 돌리는가. 엄마가 아이를 하루 종일    끼

있다고 해서 아이가 바르게 자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양'이 아

시간의 '질'이다. 그러므로 잠시 일 때문에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아이가 엄마의

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애정을 쏟는다면 죄책감을 느    낄 필요는 없다. 아이는
오히려 자아감이 분명한 엄마를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적어도 20년 이상 투자해야 할 기나긴 마라톤이다. 그러    므
로 한 아이가 제대로 자라려면 엄마만 노력 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아이

키우는 데는 적어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이    의 모든 성장

주위와의 접촉과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감암한다    면 아이는  엄마 외에
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딪치며 자랄 필요가 있는 것이    다.
   그러므로 엄마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정작 신경을 쓸일은 '육아냐,     직

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아이 키우기에 적극 동    참시킬 방
법을 찾는 것이다.
   우선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어느 부부 사    원
이 전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우리 남편은 아이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해요. 특히나 교육 이야기만  나오    
면,
나는 잘 모르니 당신이 알아서 해라, 이런 식이에요. 아이는 이제 아빠  얼    굴 보

것마저 서먹한가 봐요."
   그러나 아이를 위해 자리를 찾아줄 사람은 엄마뿐이다. 이럴 땐 남편에게 아    이
교육에 너무 무관심하다고 투덜거리기보다 아빠의 자리를 찾도록 유도하    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빠의 권위를 지켜주면서 가정 아닌 다른 곳에서 아이와 아빠가 함께 할     시간
을 자주 만들어주자. 자녀 앞에서 남편 칭찬을 하는 등 아빠 스스로 자신    의 자리

자각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빠는 아이 교육에 있어서    엄마의 가장 좋

파트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아빠들에게

   어느 날 저녁인가 아내와 함께 TV를 보다 가슴이 훈훈해지는 광고 하나를    발견
했다.
   장소는 어느 한적한 호숫가. 한 남자아이가 아빠와 함께 밤낚시를 하고 있     
다.
밤새 기다려도 움직일 줄 모르는 낚시대를 보며 아빠와 아이는 두 손을     모으고 기
원한다. 모르긴 몰라도 아이는 속으로 '물고기 좀 잡게 해주세요'라    고 빌었을 것

다.
   아빠는 그런 아이를 위해 아이가 눈을 감은 사이 물고기가 결려든 자기 낚    시대
를 얼른 아이 것과 바꿔놓는다. 살짝 실눈을 뜬 아이가 아빠와 눈이 마주    치자 뭔

통했다는 것처럼 씩하고 웃는다.
   그 마지막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왠지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
계로 아들녀석과 여행 한번 가보지 못한 내 자신이 조금은 후회스럽다.
  
   근래까지만 해도 가장은 권위를 지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아빠로     부
터 섬세하고 자상한 교육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밀레니엄 시대에 맞    는 적

적이고 건강한 아이를 만들려면 엄마 이상으로 아빠의 역할이 중요하    다. 요즘은

빠들이 가정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    자만, 아직까지도

빠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아빠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뚜렷한 주관이 없는 것은, 아이에게 있어 아빠가    얼
마나 중요한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교육 문제에 있어서는 나 몰라라    하는

우가 종종 있는데, 사실 아빠가 아이 교육에 참여하면 몇  십 배의 효    과가 나타난
다.
   UCLA 대학의 의학부 로버트 모라디 교수는 "아빠가 교육(양육)에 참여하면    아
이가 보다 독립적이고 자립적으로 자라며, 덜 폭력적이고, IQ도 높으며, 감    정 자

을 잘 통제할 수 있고, 사회 적응력은 물론 정신적  건강의 모든 요소    들이 좋아진
다"고 했다.
   그리고 블랑차드와 빌러는 "아빠가 자녀 양육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경우  아    이
의 학업 성취도를 높일 수 있으며, 아빠의 일반적인 관심과 지원이 아이의    동기 발
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또한 호프만은 "아빠와 유사성을 느끼고 아빠를 동일시하는 자녀가 그렇지    않은
 
자녀보다 도덕 발달이 더 잘 되었으며, 자녀 양육에 참여하는 아빠의     아들은 아빠
를 더 좋아하고 스스로 양육 능력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이런 의견들을 종합해보면 아빠와의 강한 유대가 아이의 지적인 능력과 사    회적
능력을 훨씬 더 발달시키며, 아빠와의 친밀성은 아이의 자아존중감을 길    러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여기에 한가지 사실을 더 보태서,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는 다름아    닌
아빠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엄마가 매일 먹는 밥과 같은 존재라면, 아    빠는 모

과 맛을 달리한 반찬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내가 아는 회원 아빠인  이호상 씨는 "아이들이 아빠를 친구처     럼
여기게 하는 것은 쉬우면서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평소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방법이 떠    오
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선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데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아이들이랑 밖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는 퇴근 무렵 아내에게 아이들을  회사    로
데려오게 했어요. 아이들에게는 잠깐이라도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    고 싶었

요. 아빠가 일하는 걸 보면 낮에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아빠의 모습    을 상상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그는 작년 4월 TV를 통해 알게된 '좋은 아버지    가
되려는 모임'의 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모임에서  주관하는 각종 여행에 빠    짐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어딜 가면 아무해도  엄마를 더 쫓아다니게 돼    요.
하지만 아빠하고만 여행을 가면 보통 때 못 보던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되    니까 아빠
의 좀더 친해지지요. 일년에 열 번쯤 그런 행사에 쫓아다니는데 여    러모로 많은 도
움이 된 것 같아요."
   그런 노력이 있은 후에 그의 아이들이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굳이  설    명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이 어렵다면 우선 내가 어떤 아빠인지 자기 진단을 하는  시간부터    가
져보자.
   "아빠 제발 놀러 좀 가요." "아빠 그만 자고 놀아요." "아빠 오늘도 늦게 들    어

세요?"
   근래에 이런 질문을 들은 기억이 있다면 그 동안 아빠의 역할을 제대로 못    했던
것이 분명하다.
   아빠의 역할은 태아기부터 유아기에 이르는 동안 계속해서 결정적인 작용을     하
지만 특히 아이들의 정체감이 형성되는 3~6세에는 더욱 중요하다. 이 시기    에 아빠
가 아이 곁에 없다면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얻    을 수 없다.
   남자아이들의 경우 부모 중 어느 쪽이 아이 교육에 있어 더 강력한지에 영    향을
받는데. 엄마가 아빠보다 더 많이 아이 교육에 치중하면 남자아이는 엄    마를 모방

여 여성적인 행동을 보이게 된다. 반대로 남성적인 행동을 하는     남자아이들을 살

보면 대부분 아빠가 교육에 능동적인 경우가 많다. 즉 아빠    의 행동 여부가 아들에
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또한 딸의 경우 아빠는 첫 남자이기 때문에 아빠와의 관계는 딸이 남자와     상호
작용을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즉 아빠와의 관계는 딸로 하여    금 남자에
대한 관념을 배우게 하고, 나아가 배우자 선정을 비롯한 앞으로의    사회 생활에 커

란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아빠는 어떤 식으로 아이 교육에 참여해야 좋을까?
   우선 엄마와 함께 아빠도 '수다쟁이'가 되어야 한다. 물론 아이는 엄마로부터   

우는 언어만으로도 충분히 언어 구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빠가 해주는    말은 엄
마의 말에 비해 어휘의 종류와 억양 면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이    런 차이는

이에게 언어 발달을 위한 좋은 자극이 된다.
   여기에서 덧붙여서 아이와 많은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이 좋다. 유아기에 있어    아
빠와의 접촉 수는 아이의 환경 적응 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    다. 아빠
와 많은 접촉을 한 아이일수록 새로운 환경이나 새로운 사람에게 보    다  잘 적응한
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즉 아빠가 아이들에게 시간을 할애    하는 것은 그들의
사회성 발달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놀이 상대가 되어주어야 한다. 취학 전의  아이들은 자기 몸 속    에
에너지를 분출시키고자 하는 생물학적 욕구가 있다. 그래서 새벽부터 밤까    지 쉬지
않고 계속 움직여도 피곤한 줄을 모른다. 어른들은 아이들에 비해 생    물학적으로

씬 안정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이런 역동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러나 성장기의 아이는 이런 왕성한 생물학적 욕구를 충분    히 발산해야만, 지적으로
나 정서적으로 순조로운 발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생물학적 욕구의 충족은 아빠
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다.
   아이를 근처 공원이나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자. 아이가 신나게 노는 것을 지    켜
보는 것만으로도 아빠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빠가 되는 법]의 저자. 피츠 휴닷슨 박사는 여자나 남자가  태어날 때부터   

녀 양육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여자아    이들이
엄마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남자아이보다 자녀 양육법으르 더 많이 알    게 된다는 것
이다.
   좋은 아빠는 인내와, 학습과, 사랑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좋은 아빠가   

려면 아이 키우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는 데 게을러서는 안 된    다. 그리
고 아이의 발달 과정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즉 나이    에 따른 아이
의 심리적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바른 훈육이 가능    하며 아이들의 최

로 교사이자 평생의 모델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에겐 아빠가 필요하다. 생계를 책임지고 가장으로서의 아빠가 아    니
라, 이제 막 자신의 능력을 키워가려는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    는 아빠
가 말이다.
 
   
    '조기 교육'이라는 말이 없어져야 하는 이유

   1800년 독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칼 비테는  일곱 살 때 6개 국어를     할
수 있었고, 아홉 살에 라이프치 대학에 입학했다. 열세 살 때는 삼각에  대    한 책

써서 기젠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열여섯  살 때는 법학    박사 학위를
베를린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칼이 이렇게 천재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조기 교육 덕    분이
었다. 칼의 아버지가 가졌던 육아 원칙은 단 하나였다.
   "만약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교육을 시킨다면 얼마든지 지능이 높고  뛰어    난
어린이로 기를 수 있다."
   아버지는 칼에게 먼저 말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맨 처음 손가락 하나를 아이    의
얼굴에 가까이 대고 쳐다보게 한 다음, 아이가 그 손가락을  뒤거나 입에     넣고 빨
때 "손가락, 손가락"이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주었다. 몇 분 뒤 아    이의 입에서

가락을 빼고서는 또 한번 아이에게 보여주며 "손가락 한 개"    라고 말했다. 이와 같
이 하여 차츰 집게손가락, 가운뎃손가락, 약손가락, 새끼    손가락을 구별하여 가르

다.
   다음에는 방 안의 여러 가지 물건을 소재로 하여 단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렇게 해서 어휘가 조금 풍부해지자 동화를 들려주고, 따라서 말하게 했다.     이때

음을 될 수 있는 대로 크고 똑똑하게 하고, 천천히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들려주

다. 그리고 갓난아이가 쓰는 말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칼 비테는 자기 주변 가까이에  있는 것들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    고
바르게 발음하였고,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이미 3만 개의 단어를 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칼이 여섯 살에 이미 모국어인 독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자 아버지    는
외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때는 아이들이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도

증내지 않는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이솝우화]를 프랑스어,  이탈이어,    라틴어, 영
어,
그리스어 등으로 반복하여 읽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일찍부터 칼에게 물리, 화학, 수학 등의 자연과학과     지

학도 가르쳤다. 앉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항상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구체
적인 현장 학습을 시켰으며 아이가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을 잊지 않    았다.
   아버지는 이런 교육을 시키면서도 칼이 자만하거나 거만해지지 않도록, 아이    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들지 않았다. 그래서 칼은 자기가 보통    아이보

뛰어나다는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    할 수 있었다.

   모든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천재적 기질을 타고난다. 그러나 그들이 한번만    들
으면 모든 것을 척척 기억해내고, 이를 자기 성장에 응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
다.
21세기형 두뇌 천재란 꾸준한 자극에 의해서만 숨겨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다.
   미국연방교육위원회의 프랭크 뉴먼 회장은 "두뇌 발달에는 특히 출생 후 1    년까
지의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3세까지 부모로부터 버림받거    나 학대당
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자라면서 정상적인  되 기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한편 1997년 힐러리 여사가 주재하고 미국 각계의 교육, 심리, 의학 전문가    들

참가한 가운데 열린 '미국의 교육 개혁을  위한 위원회'에서도 미국의 장    래가  2

미만의 유아 교육에 달려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국가 경쟁력 차
원에서 유아 교육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다.
   이들의 주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아이들은 천재성을 계속해서 살려주려면     태
아 때부터 적극적인 교육을 시켜아 한다는 것이다.
   칼 비테의 경우만 봐도 그것은 여실히 드러난다. 만일 칼 비테가 아버지로부    터
그러한 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면 그처럼 천재적인 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닐 것
이다. 아무리 칼 비테가 천재성이 다분한 아이였다고 해도 교육의 뒷    받침이 없었

라면 그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칼 비테의 아버지는 바로    그

을 입증한 사람이다. 따라서 아제 부모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아이의 타    고난 재능
을 제대로 개발시켜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기 교육'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기     교

이라는 말은 '교육의 적당한 시기보다 앞서서 가르친다'는 의미이다. 하지    만 0~3

교육은 절대 조기 교육이 아니다. 그 때의 교육은 아이의 미래를 결    정짓는다고 생
각하면 조기 교육이 아니라 의무 교육의 범주 안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교육의 나침반은 아이들이다

   작년 말경 [한계레21]에서 열두 살 어린 소년의 삶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
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산다는 정훈이란 아이의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닐 나이의 정훈이, 그러나 정훈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   
다.
학교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아빠 엄마이고 교실은 다름아닌  정    훈이네
집, 아빠에게는 역사와 사회 과학 과목을, 엄마에게는 수학과 영어 등    을 배운단
다.
   얼마 전 역사 시간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났다. 정훈이는 6.25 전쟁  한   

운데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두 분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우리의 아픈 역     사를 생
생하게 알게 됐다. 뿐만 아니라 자연 시간에는 광릉 수목원이나 가까    운 주말농장

직접 찾아간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있는 자연 학습으르 하는     것.
   이렇듯 정훈이의 공부에는 교과서도 없고 꽉 짜인 시간표도 없다. 진도 계획    은
선생님인 아빠와 엄마와 함께 의논하고 어떨 땐 정훈이가 직접 시간표를    만든다.

   정훈이가 다니고(?)있는 학교는 가정학교(홈스쿨링). 이른바 대안학교다. 말    그

로 학교를 대신하는 학교로 가정학교처럼 개인 단위로 이루어진 곳 외에    제대로 시
설을 갖추고 있는 곳은 작년 말 기준으로 25군데 정도 된다.
   정훈이가 받고 있는 교육은 우리가 그토록 꿈꿔왔고, 아이들 또한 받기 원했    던
진정 살아있는 교육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도 크다. 일단 정훈이가     받고 있

교육은 정규 교육 과정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검정고시를     치르지 않으면

리나라에서 무학력자로 취급받게 된다.
   뿐만 아니다. 현행법상 초등학교 교육은 의무 교육이다. 따라서 이유 없이     부

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이 때문에 가정학교 아이들은 교육법 제 14조 의무면제 및 유예조항을  통해    학
교장에게 전문가 소견서를 제출, 서류상 학생으로 남아 있는 방법을 택한     다. 학

는 나가지 않지만 여전히 서류상에는 학생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탈학교'의 움직임은 잦아들 줄을 모른다. 주위   

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아도, 제도적인 학계에  무딪쳐도, 그리고 내 자식의    험난한
앞길이 빤히 보여도 굽히지 않는다. 고통은 고통대로 받아들인 채, 묵     묵히 그들

길을 걷는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학교에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학교가 바뀌기를 진정    으

바라지만 바뀔 때까지 손놓고 기다리기엔 우리에게 자식의 미래는 너무     나 소중합
니다."

   2

   언젠가 TV에서 한때 신동이라 불렸던 아이들이 지금은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
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추적 보도한 적이 있다.
   2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 중 기대했던 대로 영재로서의 전가를 발휘하고  있    는
아이는 단 2명에 불과했다. 다른 아이들은 남보다 약간 뛰어난 정도로, 아     니면

통 사람과 별 다른 차이 없이 그저 그렇게 사회에 적응해 있었다. 어    릴 적의 그

한한 잠재력은 온데간데없고, 평범하다 못해 자신감마저 잃은     모습들이었다.
   인터뷰 요청에 한 사람이 어렵게 입을 뗀다.
   "그때 이후 사람들이 제게 많은 관심을 보였어요. 그런데 그게 무척 부담스    럽

군요. 가족과 선생님들의 특별 대우, 친구들의 질투와 시기, 모두 다 견디    기 힘들

어요."
   그이는 어릴 적 기억이 괴롭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말 끝에 사람    들

관심 속에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커졌고, 그것은 당시 어린 아이였던    자신에게는
몹시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문제는 다름아닌 영재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    에
있었다. 뛰어난 영재들이 마음놓고 숨쉴 수 있고,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     을 수

는 교육 체제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영재들은  부담스런 주위의 시선    속에 자꾸만
시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만일 사교육 차원에서 영재 육성 시스템 활발히 개발되었더라면 결과는 달    라지
지 않았을까.

   3

   학교 폭력, 집단 따돌림, 체벌, 교사와 학부모간의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 미   

에 대한 잃은 아이들.... 그야말로 우울한 우리 교육의 자화상이다. 이런 현    실 속

우리 아이들이 마음놓고 학교라는 공간에서 제 꿈을 펼치리라 기대    하는 것은 무리
다. 그래서 학교에 가기 싫은 아이들이 생기고, 모든 불리함을    감수하고 대안학교

선택하는 부모가 생긴다. 그리고 어린 시절 영재성을 조    였던 많은 아이들이 순간

화제만 뿌린 채 그렇게 잊혀져 간다.
   이 모든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이 오로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데서 비    롯된
다. 학벌 위주의 사회 풍토가 모든 교육의 나침반을 '좋은 대학 보내기'에    맞추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공교육, 사교육  모두 하나같이     자신의 역할을
잃어 버린 채 그에 끌려가고 있다.
   공교육은 역할이 무엇인가. 공교육의 기본 임무는 아이가  자라 사회에 적응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과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다. 사회 생활을 하기 위    해 갖추

야 할 전반적인 정보와 지식을 가르치고, 기본적인 인격을 갖추게     하는 것이 공교
육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공교육에서 개개인의 특별한 재능을 더욱 살려주는 전문적인 교육까     지
맡긴 힘들다. 사교육의 존재 의의는 바로 거기에 있다.  공교육이 하지 못    하는,

개인의 미래에 필요한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사교육인
것이다. 영재는 더욱 영재적 능력을 키워주고,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아이들에게

각자 숨겨진 개성과 장기를 찾아 꿈을 이루게 하는 것    이 사교육인 것이다.
   이처럼 공교육과 사교육은 그 나름대로 해야 할 몫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이끌어주는 동반자로 서야만 한다. 지금처럼      '좋은 대학
보내기 운동'에 동참하여 서로 밥그릇 싸움이나 벌여서는 안 된다    는  얘기다. 결

이 싸움에 희생되는 사람이 누구인가. 미래를 짊어질 우리     아이들이 아닌가.

   4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군이 일본 땅을 밟았을 때 맥아더 장군은 일본    사람
들의 정신 연령은 열두 살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일본 사회를 가리켜 '철    학을 잊

버리고, 윤리를 등한히 여기며 미학을 멀리한 사회'라고 말했다.
   맥아더 장군이 살아서 우리 교육 현실을 보았더라면 과연 이떤 말을 했을     까?
   우리 교육이 이처럼 황폐하된 데에는 우리 기성 세대들의 잘못이 가장 컸다.    교
육의 원칙과 철학을 바로 세우기에 앞서 당장 눈앞에만 급급하여 탁상공론    만 벌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이해 관계만 따지고 있는 동안 교육을 포함한 전 세    계의
사회적 흐름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절대 우리를    기다려주

않는다.
   요즘 내가 아는 어느 교수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것이 교수직이라며  너스레    를
떨곤 한다.
   '이제는 하버드 대학 강의를 자기 방 안에서 인터넷을 통해 청강할 수 있는    시

입니다. 이런 태세라면 능력 없는 교수는 언젠가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겠    죠."
   그 교수 말이 맞다. 교수도 능력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옳다.  모든   

이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 강자만이 살아남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교육이라    고 예의
일 수는 없다. 지금껏 우리 교육의 나침반은  '입시'를 향해 놓여 있었    다. 그  속

아이들은 없었다. 다만 아이들의 미래를 방치는 어른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교육이 통했던 것은 최근까지만 해도 정말로  좋은 대학을    나와야 쉽게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대학에 들어가봐야 사    회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
다. 지금, 입시 교육이 아이들에게 먹힐 리 만무    하다.
   앞으로 개인이 나라를 선택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의 아이    들
은 이 땅에 고질적인 문제들이 싫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이 땅을 떠    나게 될
지도 모른다. 특히 능력이 특출한 영재들이 가장 먼저 그런 길을 택할    것이다.
   나라의 미래가 없어져 버리는 불행한 사태를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교육의     나

반을 아이들에게 돌려야 한다. 아이들의 경고가 들리지 않는가. 제대로     하지  않

면 학교를 떠나겠다고,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경고    가.
 
    나는 조용한 혁명을 꿈꾼다

   세상에는 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생겨났을까.
   사춘기 때 한동안 나를 따라다녔던 의문이다. 부에 대한 개념도 없고 빈부     차

도 같은 걸 의식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엔 그저 다른 아이들도 나처럼 하     루 세 끼
밥 먹고 학교 다니면서, 편하게 살아가는 줄로만 알았다.
   중학교 입학하면서 비로소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을
알게 되었다. 고향에서 같이 자란 또래 친구들 가운데 대부분은 농사를 짓    거나 돈
을 벌러 대도시로 떠났다. 왜 그들은 나와 다른 길을 가야만 하는지,     왜 그렇게

난한지에 대한 물음이 그때서야 생각난 것이다.
   그 해답은 대학에 들어가서야 찾을 수 있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선배의 권유로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군부독재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75년

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되었다. 물론 이분법적인 사고지만 가진    자
들의 횡포와 그 아래에서 신음하는 힘없는 민중들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    이다. 고
향 친구들이 왜 진학하지 못하고 돈을 벌어야만 했는지 그때서야 알    게 되었다. 
   내가 누려왔던 안정적인 생활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졌다는     생
각에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공장 생활을 해야    했던 친
구들의 피로에 찌든 얼굴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던 것이다.

   한솔의 밑거름이 되었던 '작은 분노'

   나의 갈등은 하루 세 끼 밥값도 안 되는 일당을 벌기 위해 밤새워 일하는     나이
어린 공장 근로자들을 직접 마주한 후, 분노로 바뀌었다. 나는 그 분노    를 양평동

구로동, 연희동, 상계동 등을 전전하며 야학 활동이라는  행동으    로 표출했다. 처

야학 교실에 들어서던 날, 친구 같고 동생 같던 그들의 초    롱한 눈망울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선배들과 같이 한문을 가르쳤다. 우리의 목적은  단순히 그들에게 한문    을
터득시키는 게 아니었다.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에 등장하는 한자들을 가    르치며

들이 자신의 권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게 근본 취지였다.
   당시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케케묵은 법전은 수 한문투성이였    다.
근로자들은 자신이 부단한 대우를 받고 있어도 그 어려운 법전을 해독할    길이 없었
기에 무엇이 얼마 만큼 부당한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산업재해를 당하거나 고용주 측으로부터 부당한 대     우
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하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    던 것이
다.
 
   야학의 취지를 설명하고 수업에 들어가면서 그 친구들의 면면을 찬찬히 훑    어보
았다. 교육에 대한 열망을 간직한 그 눈빛  하나하나에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나는 교육만이 희망이라는 걸 절감했다.
   그런 간절한 바람을 갖고 첫 수업을 마치던 날, 유난히 장난이 심했던 내 고    향
친구녀석을 닮은 청년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이후 1978년 가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1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   
다.
하지만 그것이 나늬 야학 활동을 막지는 못했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선    택을 후회
하지 않는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무렵에는 젊음의 우직한 열정만으로 세상을 바    꿔
보겠다는 어설픈 혁명가로서의 삶에 사로 잡혀 있었다면, 지금은 좀더 현실    적인

법으로 그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10여 년간의 사회 운동을 청산하고 유아 교육 사업에  뛰어든    내
게 '화려한 변신'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내 길이     결코

려하다거나, 변신한 모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1982년 9월, 영재수학교육연구회를 세울 때만 해도  사업가로서의 인생을 살    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사실 그것도 말이  좋아 '교육연구회'였지 실은    어린

산수 학습지를 만들어 집집마다   방문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불과했다.
   연구회 운영은 당시 노동 운동에 뜻을 같아하던 10여 명의 친구들과 그 부    인들
이 문제를 작성하는 일에서부터 지도 교사 역할까지 맡아서 해주었다. 우    리는 그

게 돈을 모아 야학에 투자하고 좀더 형편이 나아지면 사회과학 전    문  출판사를 차
릴 계획이었다.
   목적이 순수했던 덕분인진 학습지 사업은 생각보다 많은  돈을 벌게 해주었    다.
그렇게 벌어들은 돈을 갖고 다시 구로공단으로 향했다.
   야학을 통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교육적인 자극에 의해 인간은 얼    마든
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공단 노동자들은 조금씩이나마 한자를    해독할 능
력이 생기면서 자신들이 이 거대 자본주의의 그물망 속에 갇혀 얼    마나 혹하당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은 그    들의 노동자를 혹사시
키는 사람들에 대하여 마침내 "NO"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내가 경험
한 교육의 엄청난 위력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거대한 사회'에서 '사람'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유아 교육이란 결국 사람을 키우는 사업이다.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    기
위해, 한 사람의 혁명가로 살기보다 열 명의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 사업가    가로서

삶에 나머지 인생을 걸기로 한 것이다.
  
   교육은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한다.

   한솔교육을 설립한 다음 뼈저리게 느낀 것은 사회 전반에 걸쳐 생활  수준이    높
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모들이 다른  그 무엇보다 자녀 교육만큼    은 열과  성

보인다는 점이었다. 지도 교사들로부터 가끔 형편이 안  되는 회    원 아이가 열심히
공부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나는 가슴 한 켠이 아    려오곤 했다.
   성화도 그 중 한 아이였다. 성화네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비좁은 단칸방에서    세
식구가 모여살고 있었다. 지도 교사가 성화를 가르치러 가면 성화 아빠는    반갑게

이하고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변함없이 성화 아빠는 방을 지도 교사에게 내주고     밖

로 나갔다. 그녀는 성화의 공부를 하다 문득 창 밖을 보았다. 그곳에는     푸른  비

우산 위로 뿌연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성화 아빠가 행여    아들의 공부에
방해될까 봐 들어오지도 못하고 마당에서 쪼그려 않아 단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
다. 그녀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왜 나는 성화 아빠가 갈 곳이 없다는 걸 생각지 못했을까.'
   그날 이후 그녀는 성화 아빠를 방으로 들어오게 하고 방 한쪽에서 수업을     했
다.
   그런데 성화 아빠는 자신이 수업에 방해될까 봐 한 한구석에서 꼼짝도  않고    창
밖만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런 성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코끝이 찡해지     곤 했
다.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앉아 전화도 없이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돈을 꾸어서라

아이 교육은 시켜야겠다는 그의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 있    었기 때문이다.

   서울 강북지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그곳은 지국장으로 있는 박인숙     교

는 회사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도 다시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외진     곳에 처음
지환이를 만났다. 네 살인 지환이는 엄마와도 소통이 안 될 정도로    심한 언어 장애
를 지닌 아이였다.
   그녀는 처음에 무척 당혹스러웠다. 전임 교사도 이미  못 가르치겠다고 손을    든
터라 더욱 자신이 없었다. 지환이 엄마의 간절한 부탁이 있고 해서 최선을    다하겠

고 다짐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곁에 있던 선배 교사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우리마저 지환이를 포기해 버리면 지환이는 영영 교육을 못 받게 될지도     몰
라.
받아주는 곳이 없을 테니까."
  그녀는 다시 힘을 냈다. 발음이 불확실한 지환이에게  한 음절씩 또박또박 따    라
읽게 했고, 잘 되진 않지만 열심히 따라하려는 아이를 칭찬하며 수업을 진    행했다.
   그러기를 몇 개월, 사과를 "어더더"라고 발음하던 지환이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
작했다. 비록 정확하진 않았지만 "무 줘(물 줘)",  "시싱님(선생님)"이라고 말    할

도로 발전했던 것이다. 지환이는 더 이상 동네 아이들에게 따돌림받지     않았다. 

이터에서 매일 울면서 들어오던 아이가 씩씩하게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지환이 엄
마는 엄마나 기뻤을까.
 
   '혁명'은 한번에 모든 해결해주는 '요술방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은 "미래의 교육은 이래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무리한 교육 개혁을 단행    한다. 그

이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하다. 용두사미의 교육 개혁에 우리가 한    두 번 속았는
가.
   샘이 고여 작은 물줄기가 되고, 그 물이 계곡을 이루어 바다로 흘러내려가기    마
련이다. 그것은 바로 자연의 이치다. 나는  이 땅의 교육 역시 그런 자연의     이치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능력이 특출한 아이들뿐    만 아니라,
소외된 아이들, 저 아래 어느 곳에 숨어 있는 아이들에게도 공평    한 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용한 혁명'을 꿈꾼다. 잘못된 것을 하나씩 바로잡고,    부

한 것을 채워나가는 점진적인 혁명을 꿈꾸는 것이다.  나는 내가 흘려보내    는 물이
언젠가 바다를 이룰 때까지 주어진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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