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풀바람 2011. 5. 3. 00:20

 

이제 아기를 키우기 시작한지 10개월에 접어들었다.  

육아를 하다보니 여러가지 얘기들을 접하게되는데, 개중에는 저런 얘기들이 왜 생기게 됐을까 생각해보게 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애는 딸인데, 중성적으로 생겨 '아들이냐?'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런데 '아들이냐'는 질문에 딸이라고 대답하면 곧잘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아이구~그럼 남동생 보겠네'
말인즉슨, 딸이 아들같이 생기면 그밑에 동생이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게 무슨 연관이 있나?' 생각하면서 대수롭지않게 넘기지만,

여러번 듣다보니 그냥 넘길 얘기가 아닌 것 같다.  

 

딸이 아들같이 생겼다거나, 아기 손목이나 목에 잡힌 주름선이 어긋나지않고 하나로 이어지면 동생이 아들이라는 식.

이런 식으로 '동생이 아들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여러가지 근거들이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어본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과학적이다. 
내가 들어본 것 말고도 많은 엄마들이 '동생이 아들이라는 증거'들을 많이 들어보고 있으리라 생각됐다.

그래서 임신출산육아 커뮤니티인 네이버 카페 <맘스홀릭> 게시판에 글을 남겨, 사람들에게 '남동생 생기겠다는 증거'들을 물어봤다.

 

- 아기가 줄을 목에 걸고 다닌다.

- 딸이 남자애같이 생겼다.

- 엄마한테 와서 앉을 때 앞으로 안기지 안고 엉덩이부터 들이밀고 앉는다.

- 땅에 머리박고 다리사이로 본다.

- 아기 손목이나 목에 잡힌 주름선이 어긋나지않고 하나로 이어진다.

 

그 외에도 여러 행동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략 위와 같은 행동을 보일 때 어른들이 흔히들 남동생 보겠다고들 한다는것이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여동생 생기겠다는 증거'는 특별히 없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위와 반대의 행동을 할 경우는 딸이라는 식이다.

 

 

이런 얘기들이 왜 나왔을까?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동생의 성별이 첫째의 유전자에 새겨져있을리 없으니,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럼 통계적으로 저런 행동들이 있을 때 남동생이 많았던걸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들타령'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봉건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들타령'은, 시대에 따라 그 형태와 정도는 달랐을지언정 얼마나 뿌리깊은가.

부모고 자식이고 할 것없이 아들낳기만을 바라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닥달하고...

그러다보니 '어떻게 하면 득남할 것인가'가 여성들의 생활을 좌지우지하는 고민이 되지 않았나.

그렇게 방방곡곡 산속에 있는 돌부처들의 코가 갈려 여성들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아들 낳게 해준다는 한의원들이 떼부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토록 아들을 바라던 와중에, 첫째(특히 그 첫째들이 딸인 경우가 많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들이 하는 행동에 그 바램을 싣고,

그 바램이 우연히 맞아들었을 때, 그 행동들이 '남동생의 증거'가 되지 않았을까.

어차피 남자 아니면 여자, 50%의 확률이니 그것이 증거라고 한들, 절대 아니라고는 못했으리라.

 

결국 '남동생의 증거'들은, 일종의 '아들타령사회의 주관적 통계'인 셈이다.

 

사실 남아선호사상의 바램은 아기들의 행동에만 실린 것은 아니다.

요즘에야 그런 이름은 거의 없지만, 적지않은 여성들이 '후남'(다음차례는 아들),'필녀'(이로써 딸은 끝) 같은 이름을 가져야했으니까.

 

 

최근에는 종종 '남아선호 옛말, 아들보다 딸 선호' 이런 식의 뉴스들이 보도되곤 한다.

하지만 임신출산 커뮤니티에 가보면 아직도 무수한 여성들이 아들타령에 시달리고 있다. 

 

종손과 결혼한 20년지기 친구는 이쁜 둘째딸을 낳자마자 셋째를 또 가져야한다는 사실에 한숨부터 쉬었고,

수년간 연애로 결혼한 후배는 결혼전 찾아간 시댁에서 '우리집은 손이 귀한 집'이라는 얘기부터 들어야했다. (시아버지 형제들에, 그 밑에 아들들이 또 아들들을 낳아 실제로 '손이 귀한 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카페에는 아들낳으라 성화인 곳들부터 은근히 압력주는 곳들까지 
아들을 못낳으면 죄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야할 일을 다하지 못한 며느리가 되고,

아들을 낳으면 낳는대로 아들을 너무 좋아라하는 시부모를 보며 눈꼴신 경험들이 즐비하다.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선 여성들이 자기 삶과 사회의 주인답게 살아가기는 어렵다.

가부장제가 사라지고 성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작은 부분에서부터 가부장제의 때를 벗겨내기 위한 노력을 많이해야할 것 같다.

 

그러려면 남동생이 생기겠다는 증거(?)같은 것들이 없어야하지 않을까?

혹은 있더라도 그것이 지금의 무게보다는 훨씬 가벼운 농담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유효한 '그래도 아들은 하나 있어야지'라는 말이 낯설게 되고,

딸만 가진 부모들에게 '나중에 딸이 더 효도한대잖아요' '요즘엔 딸이 더 낫지'라는 식의,

때론 곧이곧대로 들리지않고 위로하는 듯한 대꾸들이 어색하게 되었으면. 

씁쓸한 차별의 기억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없어지길.  

그래서 여성들이 어떤 외부의 압력없이 자신의 임신 출산의 경험을 소중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래본다. 

맞아!!! 또 임신하면 이래서 아들같다는둥, 저래서 아들같다는 둥 말이 많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