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바람자료실/풀뿌리여성운동사례

풀바람 2011. 5. 16. 22:40

 

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서울 동네운동 이야기1

 

박신연숙

마을 이야기

 

“우리 마을 공원에 화장실이 있는데 날이 저물면 이용하기가 겁나요. 거기서 성추행 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거든요.”

 

“아이가 팔만 걷어 올려도 멍자국이 시퍼래요. 집에서 맨 날 맞고 사는 거 같은데, 물으면 어디 부딪쳐서 멍들었다고 해요.”

 

“옆집에 폭력이 있어도 쉬쉬하니까 잘 모르지요. 그러다가 큰 사건이 나면 그제서야 아는 거죠.”

 

“신고요? 해봤자 소용없어요. 부부싸움이라며 그냥 돌아가는 걸요.”

 

마을에 들어가 여성들을 만나면 허다하게 듣게 되는 이야기이다. 여성운동덕분에 법과 제도는 많이 바뀌었고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뤄왔지만, 정작 여성들의 일상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우리 마을에서 느끼는 변화속도는 더디다. 지자체와 경찰, 학교의 정책과 관행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사회 일반의 인식과 주민들의 태도도 그다지 변함이 없다. 마을로 들어갈수록 가부장적 권위주의, 지역유지를 중심으로 한 인맥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성들의 역할은 여전히 종속적이며, 쉽게 동원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성 평등을 지향하는 여성단체들은 아직까지 지역사회 내에서 영향력이 미약하다.

 

마을은 가정과 일터가 있고, 아이들 초등학교를 보내고, 운동 삼아 동네한바퀴 산책을 하기도 하고, 장도 볼 수 있는, 모든 이들의 삶의 터전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격언이 있다.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 가정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이 함께 힘을 쏟고 지역사회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들 마을에서 6가정 중 1가정은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10명중 6명의 아동이 가정 안에서 폭력을 당하고 있다. 여성폭력에 대한 우리 지역사회의 무관심과 몰이해, 대응력 부족으로 폭력을 당하면 쉬쉬하고 살거나,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나 쉼터로,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야 하는 현실이다.

 

이제 나부터, 나의 이웃들이, 우리 마을 공동체가 협력하여 폭력없는 평화마을 지킴이가 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폭력 피해자가 생존하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마을 단위 운동이 필요하다.

 

지사모를 아시나요, 혹시.....

 

1995년부터 10년 이상 여성운동하면서 법과 제도를 많이 바꾸었다. 거리에 나가 데모도 많이 했다.

 

가정폭력방지법 만들라고, 남편 죽인 폭력피해 주부는 정당방위라고, 호주제 폐지하라고, 일본은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하라고.........

 

참 많이 했다.

 

그러는 사이 내 동안(童顔)은 어느덧 중후한 여인의 얼굴로 변해갔다.(?)

그리고 여성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 그러한 운동의 성과들이 과연 여성 개인들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여성이 안심하고 또 자존감 갖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지 직접 확인해야 했다. 지역으로 들어가 여성들을 만나고 싶었다. 아니 이제 우리가 중앙에서 전개한 운동을 지역 여성들이 자기 삶의 터전에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여 내 삶을 다시 여성운동의 제 2탄인 지역운동에 바치게 되었다. 여성들의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위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지역여성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내가 몸담은 서울여성의 전화는 여성인권운동의 대중적 확산과 회원중심의 여성대중조직을 위해 서울 내 지역운동에 힘을 결집하였다. 지방자치시대에 걸맞는 구 단위의 조직편재 및 지역사업을 전개하여 1998년 강서양천지회를 창립하고 동성지회 준비위(동대문성북지회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역시 사람이였다. 오랜 활동 경험이 있는 리더가 있는 강서양천지회는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는 동성지회 준비위는 실험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 후 2-3년간 지역운동은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그 후, 2003년 지역여성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지역운동센터’로 조직을 확대, 개편하였다. 우리는 각 지역 마당발 회원들을 찾아내어 일대일로 만나고 ‘지사모’를 만들었다. ‘지사모’는 ‘지역을 사랑하는 자매들의 모임’으로 이 모임을 통해 지역의 핵심 리더십과 활동회원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지역운동센터는 지사모 회원과 함께 당시 600여명 가까운 회원들이 어느 구에 많이 살고 있는 지 조사하여 5명 내외의 인원이 모이면 구별, 권역별 지역모임을 만들었다.

 

사실 회원들을 모아 지역모임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모임이 들쭉날쭉 하기 일쑤고 솔직히 그만 둬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단 2명이 모이더라도 모임을 지속한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사람들을 모았다.

 

2003년 처음 만든 모임이 ‘영구’ (영등포구로구모임), ‘송강초’ (송파강남서초구모임), ‘서마은’ (서대문마포은평구모임)이였고 이들이 지역여성운동의 초동주체가 되었다. 영구와 송강초, 그리고 서마은은 강남 뉴코아에서 평화의 달 선포식, 영등포에서 성매매예방사업, 여성의 재산권 확보를 위한 대중교육 등의 사업을 전개하였다.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서울여성의전화 지회인 강서양천지회가 등대 같이 우리를 지켜보아 주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은 중앙일 뿐 지역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래서 회원들은 ‘지역운동이 뭐예요?', ‘여성의전화가 지역운동도 해요?’라는 질문을 하곤 하였다.

 

나飛센터 날다!

 

우리는 ‘지역운동센터’라는 딱딱한 명칭을 나飛센터(나로부터 비상하는 지역운동센터)로 바꾸고, 지역여성들을 만나러 나비처럼 훨훨 마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마을 여성들을 더 많이 만나서, 친해지고, 모을까....

 

우리의 일차 목표는 사업을 많이, 멋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 사는 여성들을 모아 운동체로 조직하여 사업을 통해 지역 여성들을 ‘주체화’하는 것이었다. 지역여성들의 역량을 강화시켜 내는 작업을 통해 여성들이 지역 문제의 해결사가 되게 하는 것이였다. 2005년부터 이런 ‘주체화 사업’은 계속되고 있다.

거대한 서울, 인구의 1/4이 집중되어 있는 거대한 도시 서울에서 25개 자치구별로 지역운동을 전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시범지역을 선정해 경험을 통해 노하우를 축적해 다른 지역으로 확산해 가는 전략을 세웠고 이 전략에 따라 동작구를 선택하였다. 동작구는 대방동에 ‘서울여성플라자’가 위치해 있어서 모임방을 무료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영등포 구로구가 인접해있어 지역모임 회원들의 조력도 용이했고, 풀뿌리지역운동이 취약한 곳이기도 하였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2005년 동작구를 지역운동 시범지구로 선정하고 우선 동작구에 살고 있는 회원을 조사해보았다. 당시 동작구에는 20명 남짓의 회원이 살고 있었는데, 이 중 활동 중인 회원은 거의 없었다. 한 분 한 분 전화통화를 한 결과 대부분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 아이가 어려서 활동이 어렵다는 답변이었다.

 

지역은 선정했는데 활동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어찌할꼬....

머리를 짜냈다.

우리는 인접 지역인 영등포구로구모임(당시 3년째 지역모임이 운영되고 있었다) 회원들로 기획팀을 구성하여 “유후~ (you who?, 당신 누구?) 여자세상!” 대중강좌를 열었고, 강좌 후속으로 동작구의 첫 지역모임인 “동작구 유후모임”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유후모임은 우리가 모은 지역의 첫 여성모임인 셈이다. 대중강좌를 열 때 지역여성 조직화를 목표로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것과 그런 목표없이 하는 것과는 조직화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홍보 방식부터 달리했다. 중앙일간지에 내거나 홈페이지에 올리는 홍보가 아니라, 주택가와 아파트를 돌며 하루 종일 전단을 나눠주고 다녔다.

 

우선 우리 회원들이 활동하는 학부모모임이나 주변사람들을 참여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다같이 돌자~~ 동네한바퀴~~” 노래를 흥얼거리며 주택가와 아파트에 전단을 나눠주고 다니며 지역 여성들을 만나고 홍보하였다. 지역 여성을 만나면 한마디라도 말을 붙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단을 돌리며 자리가 부족하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는데, 강좌마다 스무명을 넘기기가 어찌나 어렵던지......모든 강좌에서 기획팀 회원들이 돌아가며 사회를 보고 토론을 이끌었다. 매회 강좌 후에 김밥과 빵을 준비하여 1시간 정도의 공식적인 뒷풀이를 통해 새로 만난 분들과 어떻게든 서로 친해지고 교감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였다. 수강신청서에 후속모임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모임에서 무얼 하고 싶은지, 가능한 시간대는 언제인지 등을 적게 하여 이후에 참고로 하였다.

 

교육에 참여하신 분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여자들이 몰려올까요?”

“그거, 다 입소문이예요”

아하, 홍보 플러스 동네 입소문이다!

 

“우리 동네에서 무얼 하면 좋을까요?”

“딸들을 위한 캠프 열어주세요. 자녀 성교육, 경제교육 모임해요. 남자들이 변해야 하니 남자들 교육합시다.”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지역 여성들의 요구가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이 3,40대 전업주부인 “동작구 유후모임" 회원들은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며, ‘아하’ 무릎을 쳤고, 이런 변화가 바로 남성에게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남자들도 같이 변해야 한다며 남편들 교육을 시키자고 하여, 우리단체의 10년 된 모임 “평등문화를 가꾸는 남성모임”과 함께 지역에서 포럼을 개최하게 되었다.

 

“동네에서 여자들을 모으기도 이렇게 힘든데, 남자들이 과연 올까? 남편들이 오게 하려면 데리고 와야 한다. 그럼 아이들은? 자녀성교육도 동시에 하자.”

 

이렇게 하여 마을에서 “성(性)에 관한 포럼”을 개최하였다. 이 행사는 직장인들의 참여가 가능한 일요일 오후 2~5시에 진행하였고, 자녀성교육을 준비하여 편안한 참여를 유도했다. 부부와 자녀, 한부모와 자녀, 부부, 연인, 독신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고, 서울여성플라자에 교육실을 네 군데 빌려서 남성포럼, 여성포럼, 연령별 자녀성교육 2팀을 운영하였다. 90분 강의를 듣고, 90분간 참가자들의 토론을 하였다.

 

성에 대한 주제가 낯선 분위기에서 마음을 열고 터놓고 얘기하기 힘든 주제이다 보니, 이제 막 얘기가 나오려고 하는데 끝날 시간이 됐다며 아쉬워하는가 하면, 남성포럼 참가자들은 “뭐하는 줄도 모르고 아내에 이끌려 왔다.” “성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는 이런 자리는 태어나서 처음이다”라며 얼떨떨해 하면서도 “나만의 고민이라고 여긴 ‘성’문제도 열린 마음과 좋은 방법으로 더 바람직하게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동작구에서 대중강좌를 열 때와는 달리, 별다른 홍보 없이도 모임 회원들이 주축이 되고 가족과 동네 친구에게 소문을 내어 조직하니 금새 참가자가 모집되었다. 뒷풀이를 통해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도모하면서, 이런 행사를 가끔 한번씩 주제를 정해 계속해서 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모임 회원들은 2005년 여성의전화를 만나 여성주의를 접하고, 새로운 비젼을 찾게 된 것이 한 해 동안의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조윤숙, 임성은, 안명숙 등 유후모임 회원들은 2005년 여성의전화를 만나 여성주의를 접하고, 새로운 비젼을 찾게 된 것이 한 해 동안의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고백하였다.

 

의회에 놀러가자!

 

서울여성의전화 여성정책 모니터링 사업은 2003년부터 진행하였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모니터링단을 모집해도 별로 호응이 없었고 결국 상근활동가가 전담하게 되니 이걸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자치구 정책과 예산을 분석해야 하니 전문적이고 딱딱하게만 여겨지고,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앞에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2005년에 지역여성들의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진행해보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모니터링단을 모집하니 문순자, 박숙, 배정아, 배문자, 조윤숙 등 동작구에서 5명이 참여했고, 이듬해 정교선, 홍경의 등이 합류했다. 역시 사람이었다. 5명중 한분인 문순자 회원을 만난 것이 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문순자 회원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열정적이였다. 그녀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힘든 순간도 잘 넘길 수 있었다.

 

모니터링단 이름을 ‘참나비모임’(참여하여 마을을 바꾸어가는 나비모임)이라고 정하고, 기초교육을 실시한 후, 처음에 동작구 의회에 놀러가 회의를 방청하였다. 청소년들이나 의원이 모시고 온 주민들이 아닌, 시민단체 회원들이 의회를 방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라며 동작구의회에서는 긴장하면서도 반기는 모습이었다. 의회 방청을 하면서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20명 전원 남성의원들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었다.

 

그 후, 여성위원회 의원과 인사를 나누었고, 구청을 방문하여 가정복지과장, 여성복지팀장을 만나 우리 단체를 소개하고 ‘참나비모임’ 활동계획을 홍보하였다. 또한 여성위원회 구의원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열고 지역여성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방의회의 역할과 지역여성의 참여에 대해 토론도 하였다.

 

5월 가정의달 행사, 7월 여성주간 행사 등 일일이 ‘참나비모임’에서 직접 참여하여 모니터링 하였다. 8월~9월에는 본격적으로 여성정책과 예산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보름정도는 매일 만나다시피 하며 동작구청 홈페이지, 세입세출 예산서, 여성복지팀 등을 통해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여 읽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간담회를 앞두고는 자료집을 만들고, 지역에 홍보하고, 파워포인트로 작성하고, 사회와 발표자의 리허설을 하느라 또 정신이 없었다.

 

‘참나비모임’은 이렇게 6개월에 걸친 모니터링 활동의 결과를 모아 여성정책토론회를 개최하였다. 토론회는 지역주민, 단체, 구청, 구의원, 국회의원, 여성위원회, 정당, 지역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으며, 구청에서 간담회의 정책제안 내용에 대해 적극적 반영의지를 표명했다.

 

모니터링 활동은 적은 인원이지만 자발적 의지로 모였고, 사업의 성격상 자신이 사는 지역을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하고 또 우리가 재미있게 진행하여 좋은 성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처음 해보는 작업이어서 많이 헤매었지만, 끝내고 나니 자신감이 높아짐을 확연히 느꼈다. 분석내용을 지역에 널리 알리면서 네트워크를 구축해가고, 지역 내 여성정책 역량을 높이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모니터링단들은 고생을 많이 한 만큼 활동보고회까지 마치고 난 뒤의 그 뿌듯함과 보람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동작구에서 모니터링 활동을 매년 진행하면서 작년에는 지역에 소재한 다시함께센터, 대방복지관 범죄피해자상담지원센터, 마인하우스,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평화의샘과 연대하여 공동으로 진행하였다. 이 연대 사업이 계기가 되어 동작구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면서 중앙단위의 운동을 펼쳐나가는 여성단체들이 동작구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치구 여성정책 및 예산 모니터링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역량에 맞게 사업을 배치하고 쉽고 재밌게 진행해나가면서 지역의 인사들을 끌여 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작구와는 별도로 서울여성의전화는 지역사회의 뿌리깊은 성차별적 문화와 관행, 의식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 2005년 ~ 2007년 3년간 지역모임이 주축이 되어 ‘서울시 25개 자치구 여성주간행사 및 성폭력, 가정폭력정책 모니터링 활동’을 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서울의 여성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의 살림살이에 관여하게 되었다.

 

여성리더 발굴, 어렵다 어려워

 

어느 운동이든 핵심역량을 계속 발굴 육성해 가지 않으면 지속되기 힘들다. 따라서 회원 뿐 아니라 지역에서 이미 일하고 있는 여성 리더들 속에서 운동가를 발굴, 육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기존의 여성주민조직에 여성주의관점을 불어넣어, 지역의 아젠더들을 젠더문제로 인식하여 성차별적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것이 역시 쉽지 않았다. 지역여성을 모으는 것도 힘들었고 교육을 끝낸 후 어떻게 지속적으로 함께 할 것인가는 더 힘든 일이였다.

 

2005년 학부모회, 통반장, 아파트부녀회, 교사 등을 대상으로 리더십 워크샵을 개최하였다. 워크샵 제목을 ‘마을을 바꾸는 힘! 여성리더의 힘!’으로 하고, 모집에 들어갔다. 동작구는 7개 고등학교, 16개 중학교, 19개 초등학교, 70여개 유치원이 있다. 20개동에 통장 500명 중 약 절반가량이 여성통장이고, 약100개 아파트가 있다.

 

그런데 초청장을 받고 자발적으로 참가를 신청하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일일이 전화로 워크샵의 취지를 설명하고 꼭 오시라고 권유하여 참가자를 조직해야 했다. 어떤 분들은 여성의전화의 그간의 활동과 인지도를 믿고 워크샵에 참여하였다.

 

일주일에 한 분야씩 우리 지역의 여성리더들을 새롭게 만나가는 데, 매번 이번에는 어떤 분들이 참여하실까 설레였고, 한편으로 이번에는 몇 분이나 오실까 노심초사하며 한 달 동안 이 사업을 진행했다. 공교롭게도 워크샵마다 꼭 12명씩 참가하여 사업팀을 포함하니 20명 정도 되었다. 우리는 이렇듯 어렵게 만난 분들과 일회성 강좌로 끝내지 않고 지속적 관계로 이끌어내고자 노력하였다. 첫날 워크샵 참가자 중에 2~3명 정도 모범사례를 물색하여 둘째날 워크샵에서 사례발표를 의뢰하였다. 우리 마을 사례를 듣고 나니 좀 더 심화된 내용의 조별작업이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공동으로 해나갈 수 있는 사업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고 다음해 사업계획에 반영되었다.

 

참가자들의 머리는 반짝였고 의지는 굳어지는 듯 하였다.

“나로부터 시작되고 참여해야겠다.”

“내 가슴속에 도전으로 다가온다.”

“어느 거대 회합과는 달리 가슴으로 마음으로 활짝 열어젖힌 기분이다.”

“소그룹 토론을 통해 실질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많은 경험담을 접하면서 자신감과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여성리더의 힘을 느낀다.”

“학부모로서 학교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동기를 주었다.”

“내년 수업시간에 활용해 보겠다.”

“네트워크 형성의 기회가 되어 좋았다. 역시 모이면 힘이 생긴다.”

“여성단체에서 하는 일들이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힘이 되고 여성단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참여자들과 후속모임을 하고 싶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역시 어려웠다.

 

그러나 리더십 워크샵을 하고 나서 그 덕을 두고 두고 보고 있다. 이삼십년 동네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 지역 내에서 쌓아 온 신뢰와 인적 네트워크, 지역에 대한 정보를 따라 갈 자가 있을까? 첫 워크샵 이후 어떤 사업이든지 지역의 여성리더들을 찾아가서 만나고 함께 하는 것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이후 이러한 방식이 일을 추진하는 친근한 방식이 되었다.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지역의 여성들을 오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프로그램이 좋다고 해도 역시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발로 찾아가서 그들을 만나기로 하였다.

 

뿌리내리기 1: 학교로, 아파트로, 주민자치센터로

 

2006년 우리는 ‘학교로, 아파트로, 주민자치센터로 찾아가는 마을 강좌’를 진행하면서 더욱 더 깊숙이 마을로 찾아들어갔다. 이 사업은 서울여성의전화가 가진 밑천으로부터 출발하기에 좋은 사업이었다. 우리는 1996년부터 성교육강사를 배출하고 성교육과 딸들을 위한 캠프를 해왔고, ‘도하의꿈’, ‘폭력쫑! 대화짱!’, ‘여자와 돈에 관한 이야기’ 영상물을 제작해왔다. 이렇게 쌓아온 전문성과 인적자원들을 지역여성운동에 접목하여 마을로 찾아들어갔다. 강사팀을 구성하고 이름을 ‘풀뿌리강사활동가’라고 하였다. 강의도 하고, 지역여성들도 조직한다는 정체성을 강조한 것이다.

 

학교에서 성폭력예방교육이 의무화되어 정기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반면, 가정폭력예방교육은 2006년 10월 의무화되었으나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성폭력예방교육도 전교생 집합교육이나 방송수업으로 매우 형식적인 경우가 많았다. 풀뿌리강사활동가팀은 반별 수업을 기본으로 하고,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우리가 속해있는 학부모회, 아파트부터 출발했다.

 

‘학교의 가정폭력예방교육’ 협조 공문을 보내고 교장선생님 면담을 했는데, 그 학교 학부모와 동행 했고, 학부모회 임원이 있으면 얘기가 더욱 잘 되었다. 한차례 수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마을을 만들기 위한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기에, 직접 발로 뛰면서 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하였다.

2006년 동작구 7개 학교에서 학부모, 교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총50여회, 2,000여명을 교육하였고, 2007년에는 동작구와 인근 영등포구에서 16개 학교와 3군데 공부방 총150여회, 6,000여명을 교육하였다.

 

이렇게 하다 보니 마을을 위한 일이라면 두 팔 걷어 부치고 솔선수범하는 지역 일꾼들을 자연스레 많이 만나게 되었다. 학부모회 임원, 마을복지관 자원봉사자, 통반장, 자율방범대원, 아파트부녀회 임원, 학교 선생님, 여성 공무원, 여성 경찰 등. 이분들이야말로 우리 마을 실정에 대해서 누구보다 밝고 문제에 대한 해법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집단과의 네트워크 형성은 지역운동의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뿌리 내리기 2: 평화마을축제

 

우리단체는 10년 넘게 매년 여성폭력예방 캠페인을 개최해 왔다.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행사 내용을 기획하고 추진하였으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사동, 대학로, 선유도공원 등을 찾아다니며 그곳에 놀러온 시민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조직화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2006년 “제1회 동작구 평화마을축제”는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행사를 만들어 가도록 기획하였다. 동작구는 20개동 41만5천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작구 서쪽 끝이 서울여성플라자가 있는 대방동이라면 동쪽 끝은 사당동이다. 사당동은 여성운동에서 소외된 곳이라며 정교선 회원이 설득하여 축제 장소가 사당동 삼일공원으로 정해졌다. 정교선 회원은 주민자치위원, 학부모회, 아파트부녀회 활동을 섭렵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가고 살기 좋은 동작구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30대의 젊은 리더이다.

 

‘마을축제’라는 문화적 방식이 남녀노소 주민모두에게 호응이 좋았다. 평화마을축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축제를 준비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동작구 사당동의 훌륭한 여성리더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김영례, 김경남 회원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김영례 회원은 20년전 둘째 아이 낳고 동네 반장을 시작으로 온갖 마을봉사에 앞장서는 분이다. 요즘도 매일 매일 하루에 대 여섯 명을 자원봉사은행에 등록시킬 정도로 탁월한 조직가시다. 김경남 회원의 순수한 헌신성과 추진력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평화마을축제를 준비하면서 마을의 다양한 기관, 단체, 주민들을 접촉할 수 있었고 마을 내에서 영향력 있는 집단이 누구인지, 실질적인 마을 돌봄 노동을 하는 주민들은 누구인지, 서서히 알게 되었다. 동작구에는 지역시민단체가 없는 줄만 알았는데, 일을 하다 보니 소외된 계층과 더불어 살기 좋은 동작구를 만들기 위해 뜻을 함께하는 단체들과도 연결이 되고, 학교, 지자체, 경찰서 등 공공기관과도 협력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사당동 지역주민들이 주요 소비자인 지역 백화점에서도 마을축제에 참가자 기념품을 후원하여 기쁨을 주었다.

 

동작구 평화마을축제는 마을자원봉사자 150여명, 마을주민 1,5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감동적으로 치러졌다. 지역주민들의 힘으로 만든 축제였고, 모두가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주민조직들과 연대하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겪었다. 조직과 조직간, 개인과 개인간 권한과 책임에 있어 긴장과 혼선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오해가 생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즉시, 때로는 여유와 시간을 갖고 대화를 하면서 갈등을 해결해 나가다보니 의사소통과 팀웍의 이치를 배울 수 있었다.

 

지역에서 누구와 함께할까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이슈에 따라 운동단체들과 연대의 경험은 무수히 많았지만 소위 관변단체와 함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또 진보적인 운동단체 중에는 가부장적인 조직들이 많은데- 지역단위로 가면 그나마도 거의 없지만- 이들과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새마을부녀회, 녹색어머니회, 여성자율방범대, 마을봉사단체와 함께 일하면서 도전을 받았다. 서로 다르다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여성운동의 이념과 철학과 그 조직들이 가진 조직력과 주민에 대한 영향력이 잘 조화를 이룬다면 엄청남 시너지 효과를 얻을 것 같은데 그 조화의 비법은 무엇일까,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다.

 

뿌리 내리기 3: 평화마을 지키기

 

동작구에서 지역모임이 서너 개 운영되면서 리더십교육의 욕구도 높아졌다. 2007년 모임의 핵심리더 12명을 모아 지역지도력강화훈련을 주민자치와 지역여성리더십, 조직 의사소통과 팀웍, 사례에서 배우기 등을 내용으로 6회 진행하였고 교육 수료 후 ‘동작구 평화마지’(동작구 평화마을지킴이)를 발족했다.

 

‘평화마지’는 첫 사업으로 경찰지구대와 함께 하는 ‘경찰간담회’를 추진했다. 가정폭력을 112에 신고하면 맨 처음 지구대가 출동하는데, 초동조치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화마지의 김영례, 김경남 회원이 녹색어머니회, 자율방범대 회장으로 남성지구대와 협력하여 봉사해온 분 들이었다. 두 분이 주도하여 간담회를 분기별로 실시하였고, 경찰, 학교 교사, 구의원, 통장, 주민자치위원, 녹색어머니회, 자율방범대, 아파트부녀회, 상담원, 여성단체가 다 모였다.

 

경찰과 함께 하는 사업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또 한 분은 바로 권송자 현 나비센터장이다. 권 센터장은 1998년 여성의전화에서 상담원교육을 받았으나 IMF 사태가 터지면서 남편 사업을 도와야 해서 사무실에 상담하러 오는 대신 가까운 지역에서 생활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원교육을 받았으니 경찰서에서 피해자를 상담을 하겠다고 자원하기도 하였다. 권송자 센터장의 자발적 지역 활동 경험은 나비센터 지역 사업에 상상력을 불어넣었고, 개인적 차원에서 해온 일을 조직적 차원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지구대 간담회는 여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깨고, 여성주의 마인드를 갖도록 자극하며, 정보도 서로 공유하고, 협력사업도 하는 자리가 되었다. 지역봉사활동을 솔선하고 있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간담회를 열기 때문에 지역 내 공공기관에서도 협조적으로 나왔다. 의식화된 주민들은 일상적인 감시자인 동시에 협력자임을 드러낸 매우 소중한 자리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2007년 3월, 동작경찰서 늑장대응으로 집단성폭행을 방치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기사를 접한 우리는 매우 놀라고 분노하였다. 다음날 마을 회원들의 긴급모임을 오전, 오후, 저녁시간으로 나누어 소집하였다. 우리 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진상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바로 대처해야 한다는 결의를 하고, 지역단체들과 연대하여 주민대책모임을 결성하고 동작경찰서에 긴급간담회를 요구하였다. 매일 아침 출근시간에는 주민들이 돌아가며 일인시위도 하였다. 사건보도 나흘 후 긴급간담회가 열렸고 지역단체 및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찰서장이 사건경위를 설명하고 사과를 했고 나아가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주민대책모임에서는 주민들의 입장을 전달하는 한편, 경찰 개선 방안의 책임 있는 수행을 위해 2차 간담회를 제안하였다. 7월에 동작경찰서와 관내 5개 지구대 일선 실무 경찰까지 참여한 가운데 2차 간담회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평화마을을 만드는 힘은 주민들로부터 나온다는 것과 지역NGO로서 경찰, 지자체 등에 대한 비판과 견제 기능을 충실히 하는 것이 민관협력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평화마지 활동으로 ‘생활상담실천연구모임’이 있다. ‘서울여성의전화’ 하면 지역주민들은 의례 ‘상담’, ‘폭력’을 떠올린다. 따라서 만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일어난 성폭력, 가정폭력 사례를 의논해왔다. 이런 것이 바로 ‘생활상담’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생활 속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하고, 일상의 관계를 여성주의로 해석하고 이웃과 여성주의상담자로서 상담하고 대화하는 것 등이 생활상담으로 다가왔다.

지역 내 폭력 피해 여성들이 상담을 의뢰해 오는 경우도 생겨났다. 전화상담은 어디서나 할 수 있지만 면접상담을 하려면 여성의전화 사무실까지 한 시간이 걸려 가야했다. 그런데 지역마다 동사무소, 구청, 치안센터에 상담실이 있어 우리는 그 공공의 공간을 빌려 안전하게 면접상담을 했다.

 

‘생활상담실천연구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이현자 회원은 10년 전 여성의전화 상담활동을 시작하면서 마을에서 이미 생활상담을 실천해온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비센터 활동에 누구보다 공감하고 ‘생활상담’을 발전시키는 사명을 즐겁게 감당하고 계시다.

 

동작구에서 뿌리 내리고 있는 풀뿌리여성인권운동이 이제 다른 지역에 모델로 작용하고 있다. 마치 강서양천지회가 여성의 전화 지부들에게 지역운동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듯이, 동작구의 평화마을 만들기 사업은 서울 ‘지사모’의 다른 지역모임에게 모델이 되어 자신감을 주고 있다.

 

하루는 웃고 하루는 울던 지난 3년

 

동작구에서 지난 3년간 지역활동을 한 결과 2005년 초 20명이던 회원이 매년 20명 가까이 꾸준히 증가하여 2007년 12월 현재 66명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당시 활동회원이 한명도 없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약30여명이 정기적인 모임이나 사업팀에 속해서 활동하고 있다. 물론 비회원으로서 여성의전화와 함께 하는 주민들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이다.

 

지역여성 조직사업을 담당하면서 사무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로 찾아가서 활동을 하였다. 처음엔 아는 사람도 전혀 없이 활동하는 것이 두렵고, 누구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기도 했다. 처음 만난 지역여성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늘 걱정이 앞섰다. 모임을 만들고 지속하기위해 ‘하루는 웃고, 하루는 운다’고 할 정도로 외로움과 기다림도 많았다. 하지만 한 명의 회원이라도 함께 하다 보니 이제는 회원들도 많아졌고, 우리와 연결된 마을사람들도 많아졌다. 마을주민들과 회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이제는 오히려 사무국 활동가들과의 소통과 경험 공유가 절실한 지경이다.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지역사회로 갈수록 기득권을 가진 남성 중심이고, 성차별적인 의식과 관행, 문화가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에 지역사회를 변화시켜 나가기는 그만큼 힘들고 더디다. 마을에서 온갖 궂은 일과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주로 여성이지만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에는 소외되어 있다. 또 지역에는 여성단체들이 많지만 성평등을 지향하는 단체보다는 가부장적인 관변화된 단체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지역사회의 가부장성에 도전하고 성차별적 지역사회를 변화시켜나가기 위해 우리는 풀뿌리 지역여성운동을 서울에서 전개하고 있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조직 내적으로도 여성의전화가 왜 지역여성운동을 하며, 우리 역량으로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나 고민이 많다. 구단위, 동단위 조직화가 진행될수록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커지게 되고 이러한 성장을 조직안에서 담보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여성의전화의 조직력, 자원, 리더십을 중앙으로 집중하기 보다는 지역으로 더욱 분권화해야 하는데 서울지역이라는 특수한 위치와 서울여성의전화의 역사성 속에서 중앙차원의 선도적 대응과 여성주의상담의 전문성 등을 요구받고 있어 갈등과 타협이 불가피하다.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줄타기는 계속된다.

문턱을 낮추어 회원과 주민들의 참여를 개방하면서도 여성의식을 확산하고 젠더 문제를 전문화하는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다.

상근활동가 중심의 사업방식을 탈피하여 회원 주체, 주민 활동을 넓혀가야 하는 걸 알지만 점점 빨라지고 많아지는 사업들의 홍수 속에서, 느릿 느릿 시간을 내고 공들여야 하는 회원관계, 주민관계 공식을 따르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쉬엄쉬엄 가야 하리라.

때로는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도 하면서.....

 

더 주민 속으로, 더 풀뿌리현장으로 내려가고, 그 속에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며 뿌듯한 참 좋은 계절이다.

 

 

후기

‘95년에 상담부를 맡으며 처음 상근활동을 시작했을 때 조직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2000년부터 4년간 사무국장을 하면서 회원 리더십 향상에 정성을 쏟았고 사무국 중심이 아닌 회원을 주체로 세우는 조직운영을 하고자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거의 10년을 상근자로 활동하면서 나는 소진하였고 항상 촉촉할 것 만 같던 마음도 푸석푸석해졌다.

1년간 안식년을 갖고 2005년 지역조직 담당을 자원하였다. 운동한지 10년이 넘어서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운동은 사람과 함께 하는 풀뿌리여성운동임을 깨달았다.

 

지난 10여 년간 항상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행복한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낯가림이 심하면서도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고 여럿이 함께 무언가 해낼 때 성취감을 느꼈다.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면 또 만나고 싶고, 모여서 나누다보면 에너지가 샘솟았다.

 

이 글을 마치니 여성들과 함께 한 순간들이 희망의 충전소였음을 알겠다.

이제 그만 쓰고 빨리 지역으로 가야겠다.

 

각주 1

‘여자, 길을 내다’ (한울, 2009)에 수록된 글 입니다.

  1. ‘여자, 길을 내다’ (한울, 2009)에 수록된 글 입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