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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바람 2011. 6. 27. 08:13

 

여성의원과 함께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창원 명곡동

                                              박영미 (한국여성단체연합 전공동대표/풀뿌리여성센터 운영위원)

 

 

                                                                      

마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다는 뜻을 세우고,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찾고 모아서 마을을 변화시키는 조직적인 힘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다. 누구나 이렇게 하면 마을리더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마을이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어도 자신이 리더로 나서기가 쉽지않다. 특히 여성들은 더 그렇다. 리더는 말 잘하고 활달하고 사람을 당기는 카리스마가 있어 첫눈에도 ‘리더구나!’ 느낄수 있는 사람인데, 자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조용한 리더,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뜻을 세우다

 

 

명곡여성회와 명곡마을행복지킴이 전 회장이자 명곡동의 시의원인 강영희의원. 그녀를 보면 저렇게 조용하고 미소만 짓는 사람이 어떻게 선거를 두 번이나 나갔을까? 궁금해진다.

 

강영희의원은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부터 마을을 변화시켜가는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기르는 것이자 사회의 변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민들 스스로 살기좋은 마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마을정치와 지역정치의 주체가 되고 나라 정치의 주인이 되는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 명곡에서 사는 즐거움

 

2004년부터 활동의 장을 여성운동으로 옮기고 2005년부터 명곡에 이사오면서 살기좋은 마을만들기를 결심하고 그 출발점으로 명곡여성회를 준비했다. 우리마을 사람들은 어떤 욕구와 경험을 갖고 있고, 우리 마을엔 어떤 자원들이 있는지, 초동모임 4명이 여러 차례 동네한바퀴를 하면서 마을을 조사했다.

초동모임 성원들이 모두 엄마들이다 보니 아이들과 관련된 것이 눈에 자꾸 들어왔다. 지저분하고 모래가 딱딱하게 굳은 놀이터, 늦게까지 차가 다니는 길거리에서 노는 아이들. 마침 2005년 당시에 전국적으로 ‘안전한 놀이터 만들기’운동이 전개되던 때라서 명곡여성회를 만들면 이일부터 하자고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갔다.

 

 

명곡여성회 창립과 지방선거

 

 

2006년초에 경남여성회 산하 창원여성회의 지부격으로 명곡여성회를 창립했다. 강영희 회장과 강성훈 사무국장을 비롯해 그해 아이를 처음으로 학교보내는 회원들이 많아서 명곡여성회의 첫사업으로 첫아이 학교보내기 강좌를 열었다. 열성을 갖고 준비한 덕에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어 2차 사업으로 마을여성들 욕구조사를 위해 설문기획을 하고 있었는데 바깥에서 지방선거에 강영희 회장이 출마하라는 요구가 들어왔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살기좋은 마을만들기가 주민들의 노력에 지자체의 지원과 협조가 있다면 더욱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으니까 지방의원이 되는 것도 좋겠다, 낙선하더라도 선거과정이 마을사람들을 만나고 마을사람들의 요구를 듣고 모으는 과정이니까 우리에게 도움되면 되지 나쁠 것은 없다, 4월부터 하기로 한 안전한 놀이터 만들기 사업은 여성회에서 그대로 밀고 나가자”라고 생각을 모았다.

출마 결심하고 석달만에 치른 선거라 당선시키지는 못했지만 선거를 함께 도운 명곡여성회 회원들에게 마을과 마을 사람들을 잘 알게 해준 성과는 컸다. 놀이터 사업도 선거지원활동과 함께 밀고 나간 덕분에 ‘안전한 놀이터 만들기’를 마을의 이슈로 만들었다. 마을의 놀이터 실태조사를 한 뒤 실태조사 결과를 전시도 하고 ‘우리동네 놀이터 이렇게 바꿔봅시다’ 주민서명도 받아 의회에 청원도 올렸다. 딱딱하게 굳어진 모래 를 뒤집어 부드럽게 만드는 작업을 엄마들과 아이들이 직접 했다.

 

 

아이들과, 이웃들과 함께 하는 마을활동

 

 

명곡여성회 회원들 대부분이 서너살부터 대여섯살되는 아이들을 키워 직장다니기는 어중간하고,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유익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엄마들이었다. 그래서 명곡여성회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체험활동을 많이 만들었다. 숲체험, 천문대에서 별자리 관찰, 역사탐방, 다양한 물건을 직접 만드는 공방운영 등 회원들은 혼자서는 엄두도 못낼 일들을 모이고 뭉쳐서 만들어내는 경험을 즐겁게 하였다. 회원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 요구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해도 마을의 다른 엄마들에게도 참가를 개방했다.

 

2006-2007년은 대외적으로도 정말 활발하게 활동했다. 사업에 사업이 꼬리를 물었다. 모래뒤집기를 한 그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알뜰장터를 열었다. 그 다음해는 알뜰장터 하면서 마을문화제를 함께 했다. 놀이터사업을 2년 연속으로 했고 알뜰장터도 연간 3회씩 2년을 했다. 명곡청년회와 함께 2005-2006 두해동안 마을영화제를 함께 개최하기도 했다. 온 마을에 플랭카드를 쭉 달고 부모교육과 첫아이 학교보내기 등의 프로그램을 했다.

 

<사진>명곡동 행복마을 문화제

 

명곡여성회만으로 마을사람들의 참여욕구를 다 담지 못하여 2007년도에 명곡마을행복지킴이를 만들었다.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하는 봉사단체로 모래뒤집기, 태복산 청소, 약수터 청소하고 환경수세미 달기 등을 했다. 아이들도 함께 올라가서 체험도 하고 환경지킴이 활동도 햇다. 태복산과 서곡 소하천 청소는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했는데. 여성들이 아이들과 함께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하니까 소문이 많이 났다.

 

 

시련과 끈기

 

 

그러다 2008년에 강영희 전회장이 또 다시 총선후보로 거론되면서 시민단체적 성격이 강한 경남여성회 본부와 지역밀착형 마을조직인 명곡여성회의 입장이 크게 다르면서 갈등하고 그 여파로 명곡여성회 사무실을 닫는 일이 생겼다. 공간이 없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회원들이 실망감으로 활동의 의욕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명곡여성회(당시 회장은 강성훈 현 도의원)와 명곡행복마을지킴이가 주최가 되어 2008년에는 차없는 거리만들기 마을문화제와 알뜰장터를 했다. 2008년부터 전교조 지부와 함께 마을에서 어린이날 행사도 3년째 열었다. 10여년간 전교조가 어린이날 행사를 창원시 재정지원을 받아 진행해왔는데 2008년에 창원시가 재정지원을 끊었고 전교조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마을단위 어린이날 행사로 전환하여 명곡을 비롯하여 마을역량이 있는 3개 마을에서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진> 태복산 새해맞이 대청소

 

행복지킴이는 2009년부터 1월1일 새벽에 새해맞이 행사를 하며 산에 올라온 주민들에게 차나누기를 했다. 2010년엔 늘 떡국나누기를 하던 재향군인회가 신종플루 때문에 떡국나누기를 하지않는다고 하여 행복지킴이가 떡국나누기를 했다.

 

 

저소득가정 아동 돌보기와 여성들 일자리사업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는 마을은 행복한 마을이 아니다. 방과 후에 돌볼 사람이 없어서 간식도 못먹고, 때맞춰 식사도 못하는데 숙제를 해가기가 쉽겠나? 일에 지쳐 돌아오는 부모나 조부모들이 숙제까지 돌봐주기는 참 힘들다. 명곡여성회 회원들은 자신들도 부유하지 않고 언젠가 직장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방과후에 방치된 아동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경남여성회에서 장소와 인력을 지원받아 2006년에는 방과후교실을 운영했고 2007년에는 찾아가는 방과후 사업을 했다. 먹거리와 학습지도는 담당 선생님이 직접하고 요가. pop, 그림지도, 상담 등의 수업은 마을에서 재능기부를 받았고 운영비도 마을에서 후원을 받았다.

 

2008년 사무실이 문을 닫고는 방과후 사업도 중단되었는데, 2008년엔 할머니가 키우는 두집을 세탁소와 연결해서 이불을 빨아주게 했고 2009년부터는 명곡여성회 회원들이 주로 일하는 사회적 기업 동네찬방에서 네 가정에 음식배달을 지원하는 것으로 근근히 이어왔다.

이런 사업들 때문에 명곡동의 법정동인 명서지역에서는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명곡여성회를 찾는다. 산모가 아이를 낳다가 죽었는데 아이를 어떻게 하냐? 놀이터가 우범지역이다. 나무에 가로등 빛이 막혀 아이들 밤길이 위험하다. 등등

 

<사진>찾아가는 먹거리강좌(동네찬방)

 

아이들이 자라면서 회원들이 직장을 가게되었다. 마땅한 일자리를 갖지 못한 회원들끼리 고민을 하다 일자리도 되고 지역사업도 되는 사회적 기업의 아이디어를 냈다. 청년실업극복센터가 아이디어를 받아 2009년 2월에 명곡에 동네찬방을 만들었고 회원들이 팀장과 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 일자리로는 자리를 잡았는데 지역사회에서 역할을 하는 수준으로는 올라가지 않는다. 청년실업극복센터가 마을사업에 대한 관심이 약하고, 회원들도 여성회가 하는게 아니니까 직장이라는 개념이 더 강하다.

 

 

 

 

다시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로

 

 

2010년 명곡여성회에서는 시의원 1명과 도의원 1명을 배출했다. 이제는 주민들이 아이들 관련 문제만 아니라 동네의 여러 일을 갖고 온다. 마을사람들에게는 여성회가 시의원이고 시의원이 여성회처럼 느껴져 의원이 없을 때도 민원을 이야기하고 간다. 강영희 의원은 민원을 갖고온 주민들에게 자신도 시의원으로서 역할하지만 여러분도 이웃들이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어보고 뜻을 함께 모으시라고 말한단다. 민원을 통해 주민들과 더 깊이 만나고 주민들의 동네생활의 여러 면, 생활문제들, 동네정서까지 알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명곡여성회(회장 박정미)는 올해 사업목표를 여성의원과 함께 살기좋은 마을만들기로 하고 마을모니터활동과 민원사랑방을 주 사업으로 잡았다. 3월에 모니터 모집을 했고, 여성과 아이들이 편안하고 안전한 동네를 중심으로 4월주제는 안전한 놀이터 만들기, 5월은 자전거도로, 6월은 안전한 통학로로 잡고있다..

명곡마을행복지킴이(회장 안승렬)도 활동을 재개하여 3월에 학교 학원주변 밤길 실태조사, 4월에 하천청소를 했다. 취직한 회원들의 요구를 중심으로 마을 청소년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로서 활동을 확대하고, 방과후와 청소년활동지원을 모색해보려한다. 또한 자녀에 관심이 많은 유초등 엄마들을 새롭게 모아서 여성과 아이들이 살기 좋은 마을의 동력을 만들려고 한다. 명곡여성회가 다시 시련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듯이 행복한 명곡마을만들기가 앞으로 쭉쭉 뻗어가기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자치발전 5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