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작사자, 독립운동가일까? 친일파일까?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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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5.

 

 

 

애국가 작사자, 독립운동가일까? 친일파일까? (2부)
 
후렴 '무궁화 삼천리'는 생물학적/역사적으로 맞지 않다.
 
편집부 기사입력  2012/08/27 [17:39]
 
 
 
애국가 작사자가 누구인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아래는 애국가 작사가에 대해 밀착취재를 하고 있는 뉴시스의 보도 내용이다.  
 
(서울=뉴시스】 신동립의 ‘잡기노트’ <298> 애국가의 재발견④
‘이 땅이 해방이 되자 1945년 8월16일 오후 5시부터 중앙방송국 마이크를 통해 우렁찬 합창소리가 울린 후 나온 것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는 애국가였다. 우리들은 오랜 동안 듣지 못하였던, 또는 일찍이 들어본 기억도 없는 이 노래의 구절구절 맺힌 심정에 눈물은 빗발쳐서 참지 못하였고 감정은 압도적이었다.’ 

월북 평론가 박은용의 글이다. 애국가 작사자를 규명하려는 첫 글, 애국가를 독립적으로 다룬 첫 글이다. 광복기 신문과 잡지의 음악시평을 통해 민족음악의 진로를 걱정한 박은용은 동아일보에 기고한 ‘애국가고(考)-주로 그 작사자에 대하여’에서 광복 이튿날 방송으로 애국가를 들은 감격을 그렇게 전했다.

이어 ‘시대의 변천이나 역사의 개혁에 따라서 하나의 사관이 변동할 수는 있으나 역사의 사실을 조작할 수는 없다. ‘찬미가’를 통해 애국가의 작사자는 윤치호이다’고 주장했다. ‘찬미가’에 애국가가 들어있다는 사실이 근거다. 

노래 15편을 담은 16쪽짜리 책이 ‘찬미가’다. 현 애국가를 처음 수록했다. 광익서포 발행, 1908년 채판, 윤치호 譯述(역술)이라고 돼있다. 역술은 일부 번역하고, 일부는 저술하는 구한말의 특이한 형태다. 15곡 가운데 12편은 서양 찬송가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고, 애국적인 노래 2편(제1, 10장)과 현 애국가(제14장)는 지었다는 고지다. 번역한 것들 말고, 윤치호가 창작한 3곡 중 하나가 바로 애국가라는 얘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신나라레코드(회장 김기순)에 따르면 ‘찬미가’의 제1장 ‘코리아’와 제10장 ‘패트리어틱 힘(Hymn)’ 그리고 제14장은 다른 찬송가집에는 없다. 윤치호가 영어 곡명 ‘코리아’와 ‘패트리어틱 힘’을 붙였다. 의역하면 ‘국가’와 ‘애국가’다. 전자의 곡조는 미국 찬송가 ‘아메리카’, 즉 영국 국가 ‘갓 세이브 더 킹’이고 후자는 ‘올드 랭 사인’이다. 제10장과 제14장은 같은 후렴에 같은 명칭과 같은 곡조를 쓰고 있다. 음수율, 성격, 기능이 같다.

‘찬미가’ 뿐 아니다. 독립신문 1899년 6월29일자 배재학당 방학예식 기사에는 ‘무궁화가’ 4절이 실렸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죠션 사름 죠션으로 기리 보죤하셰’라는 후렴이 현 애국가와 같다. 1890년대 ‘무궁화가’가 1908년 전후 현 애국가로 바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배재 80년사’가 독립신문 보도 3년 전 독립문 정초식 행사를 언급한 대목도 주목해야 한다. ‘그 식순(독립문 정초식) 중의 창가 곧 국가는 배재학당이 맡아서 하게 되어 갑자기 부를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 그때 노래를 만드는데 가사는 윤치호 박사가 작사하였고 곡조는 뻥커 교사가 스코틀랜드의 로렐라이(올드 랭 사인의 오기) 곡을 붙여서 연습하여 가지고 정초식에서 부른 것이다.’

‘윤치호’라는 이름을 명기했다. 역사는 애국가 작사자로 이렇게 윤치호를 가리키고 있다. 문제는 위 두 기록이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작사자로 거론되는 인물 중에는 윤치호와 대척점에 선 안창호도 있다.

 


▲  왼쪽은 친일파 윤치호, 가운데 작곡가 안익태, 오른쪽 독립운동가 안창호

안창호 작사설은 두 가지다.
임시정부에서 함께 활동한 주요한이 “애국가를 선생이 지으셨다는데요?라고 하자 선생은 빙그레 웃고 말으셨다”는 기록, 안익태가 미국에 도착해 처음 만난 샌프란시스코의 한인교회 황사성 목사가 ‘애국가는 도산(안창호)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며 지은 노래이니 이를 알고 작곡하라’고 했다는 회고기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사료가 현물이나 영인으로 입수됐다. 개중에는 미주지역의신한민보도 있다. 이 신문 1910년 9월21자는 ‘국민가’라는 4절 노래를 게재했다. ‘동해물과···’로 시작되는 현 애국가다. 곡명 밑에는 ‘윤티호’라고 작사자를 밝혔다. 안창호는 이 시기 미주에서 국민회를 이끌며 바로 이 신한민보를 발행했다. 애국가 작사자가 안창호라면, 윤치호를 기명할 까닭은 없다.  

1931년 미국 리들리의 교육자 한석원 목사가 펴낸 ‘셰계명쟉 가곡집-무궁화’는 애국가 작사자가 ‘치호윤 선생’이라고 밝혔다. 안창호 쟉가 ‘한반도가’, 김인식 쟉가 ‘대한혼’ 등 1919~1931년 한국인 사이에 불린 애국독립창가와 찬송가 103곡을 담은 책이다. 애국가 연구가인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곡명 애국가, 가사 4절, 작사가 윤치호를 일치시킨 첫 기록으로 중요하다”고 특기한다.  

1951년 세계 국가 만을 모은 미국적십자사의 ‘내셔널 앤섬스―앤드 하우 데이 케임 투 비 리튼’ 역시 작사가로 윤치호를 지목한다. 미국 한국 영국 오스트리아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 7개국 국가의 작사·작곡 배경을 다룬 책이다. 22, 23쪽에서 저자 E R 그리피스는 ‘TONG HAI MAIN(동해바다)’이라는 제목 아래 애국가 1, 2절 영어 가사와 후렴을 싣고 작사자를 ‘Chiho Yun’(치호 윤)이라고 알렸다. 

그동안 애국가 작사자 리스트에는 윤치호, 안창호, 김인식, 최병헌, 민영환, 윤치호와 최병헌(합작) 등이 올랐다. 크게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이 맞섰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윤치호 단독 작사설을 심의했으나 ‘찬성 11, 반대 2’로 만장일치를 끌어내지 못한 채 결정을 유보했다. 애국가는 작사자 미상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창호를 비롯한 애국가 작사자설의 다른 주인공들은 윤치호와 같은 기록을 갖고 있지 못하다.
< 문화부장 reap@newsis.com

(편집자 주)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國歌)로 불려지고 있는 애국가 후렴가사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다. (1부)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후렴구는 식물학적 사실과 역사적 사실에 전혀 맞지 않는 점이 이상하다. 

첫째 무궁화는 원산지가 인도인 외래종으로 온대지방에서는 7~10월 사이에만 피는 아열대성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인지라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어불성설의 문구이다. 

둘째 역사기록으로 볼 때 대한제국 때까지 조선의 영토는 분명 ‘남북사천리 동서이천리’였다.
남북사천리라 함은 한반도 땅 끝 마을 해남에서 만주를 흐르는 흑룡강까지이다. 즉 만주 땅 간도가 포함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애국가 후렴가사에 ‘무궁화 삼천리’가 등장하는 것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분명 친일파가 지어낸 소행으로 추정된다. 
 
사정이 이와 같음에도 독립운동을 했던 도산 안창호선생이 현 애국가 가사를 작사했다고 흥사단에서 주장하는 것은 그분에게 오히려 누를 끼치는 행위가 아닐까 한다. 
 
애국가 작사가가 누구인지 여부는 기록을 검토해 학자들이 밝혀내야 할 것이다.
독립신문 1899년 기사에 무궁화가로 현 애국가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니 할 말은 없으나,
만일 그 무궁화가 작사가가 친일파였다면 애국가 사용을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과 1909년 간도협약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면 더더욱 문제가 된다.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선생 역시 친일 파문에 자유롭지 않지 않은가!
애국가에까지 친일의 손길이 깊이 스며있으니 어찌 대한민국이 친일의 천국이 아닐 수 있으리오!
 

▲ 대한제국의 영토는 남북사천리인데, 어떻게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가능한가?

▲ '간도되찾기운동본부'에서 제시한 간도의 범위. 회색부분과 연해주지역 남부가 조선의 영토로 보인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