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흥리 고분으로 본 광개토태왕의 강역 (3/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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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2019. 11. 24.

 

 

덕흥리 고분으로 본 광개토태왕의 강역 (3/8부)
 
백제 근초고왕에게 잃었던 산서성 남부를 되찾는 광개토태왕
 
성훈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2/07/23 [10:09]
 
 
 

4. 덕흥리 고분으로 본 광개토태왕의 강역  

1976년 북한 평남 덕흥리에서 한 무덤이 발굴되었다. 그 무덤의 주인공은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태왕까지 벼슬을 한 인물로, 그의 무덤에는 13 명의 태수가 무덤의 주인공에게 하례를 드리고 있는 벽화와 함께 아래의 묵서명이 발견되었다. 이 묵서명을 현 식민강단사학계에서 상세하게 언급함은 금기사항으로 되어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1) 덕흥리 고분의 묵서명
□□郡信都[縣]都鄕[中]甘里 釋加文佛弟子□□氏鎭仕
位建威將軍[國]小大兄左將軍 龍將軍遼東太守使持
節東[夷]校尉幽州刺史鎭 年七十七薨[焉]永樂十八年
太歲在戊申十二月辛酉朔卄五日 乙酉成遷移玉柩周公相地
孔子擇日武王[選]時歲使一 良葬送之[後]富及七世子孫
番昌仕宦日遷位至侯王 造欌萬功日煞牛羊酒 米粲
不可盡[掃]旦食鹽[豆]食一記 [之][後]世寓寄4)無疆  

□□군 신도현 도향 [중]감리 사람으로 석가문불의 제자인 □□씨 진은 역임한 관직이 건위장군 국소대형 좌장군 용양장군 요동태수 사지절 동이교위 유주자사였다.
진은 77살로 죽어 영락 18년 무신년 초하루가 신유일인 12월의 25일 을유일에 (무덤을) 완성하여 영구를 옮겼다. 주공이 땅을 보고 공자가 날을 택했으며 무왕이 때를 정했다. 날짜와 시간의 택함이 한결 같이 좋으므로 장례 후 부는 7세에 미쳐 자손이 번창하고 관직도 날마다 올라 자리는 후왕에 이르기를, 무덤을 만드는데 1만 명의 공력이 들었고, 날마다 소와 양을 잡아서 술과 고기, 쌀은 먹지 못할 정도이다. 아침에 먹을 간장을 한 창고 분이나 두었다. 기록하여 후세에 전한다. 무덤 찾는 이가 끊이지 않기를... 
 

위 묵서명에 의하면 덕흥리 고분의 주인공인 유주자사 진의 무덤은 사후 최소 200년 후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무덤인지 아니면 멀리 중원에서 이곳으로 이장된 무덤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우선 유주자사 진의 고향인 신도현을 <중국고대지명대사전>으로 찾아보면, 그는 산서성 임분(尧都) 출신으로 보인다. 여하튼 평남 덕흥리는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信都县) : 汉置,为信都国治,三国魏擅冀州治,晋立南宫王子玷为长乐王,因改国长乐国,其后石赵、慕容燕、苻秦皆置冀州于此,隋初析置长乐县,省信都入之,仍为信都郡治,唐初复曰信都,为冀州治,后改国尧都(요도=임분),寻复故,明省入冀州,即今河北省冀县治。 

이 덕흥리고분이 우리에게 남겨준 아래 역사적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첫째. 군(郡)의 태수, 주(州)를 다스리는 자사 등의 벼슬이 중국에서만 쓰인 벼슬이 아니라, 바로 고구리에서도 사용한 지방장관의 벼슬이라는 점이다.
둘째. 위대한 대제국 고구리의 강역이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산서성 남단의 황하까지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자사를 지낸 사람의 무덤이 공주 무녕왕의 무덤보다 1.5배나 커 당시 고구리의 국력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덕흥리고분의 주인공인 유주자사 앞에서 하례를 드리고 있는 13명의 태수    

고구리 광개토태왕의 신하였던 유주자사 진이 묻힌 덕흥리고분은 백제 무녕왕릉의 1,5배 크기이다.

2) 진이 자사(刺史)로 있었던 유주(幽州)는 어디인가?

덕흥리고분에서 가장 논란이 되어 온 것이 무덤의 주인공이 ‘요동태수’와 ‘유주자사’를 지냈다는 기록이다. 묵서명에 있는 영락 18년이라는 분명한 명문 때문에 유주자사 진이 광개토태왕의 신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중국사학계는 무덤의 주인공 진은 중국에서 유주자사까지 지내다 고구려로 정치적 망명(亡命)을 한 사람이라는 어불성설의 주장을 했다. 덕흥리고분의 묵서명은 광개토태왕 때 요동군은 물론 유주 지역까지 다스리고 있었다는 명백한 유물적 증거인 것이다. 

유주자사는 <한서지리지>에서 보듯이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 현도군, 낙랑군 등 7개 군을 다스리던 지방장관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지금의 경기도지사와 같은 직급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고대 유주가 중국의 주장처럼 북경 부근 하북성 일대가 아니라 산서성 남부와 황하 북부 하남성을 아우르는 광대한 지역이었다는 사실이다. 

유주자사 진에게 하례를 드리고 있는 13 태수의 지명을 살펴보면,
(1) 연군(燕郡) 태수      (2) 범양(范陽) 내사    (3) 어양(漁陽) 태수
(4) 상곡(上谷) 태수   (5) 광령(廣寧) 태수    (6) 대군(代郡) 내사
(7) 북평(北平) 태수   (8) 요서(遼西) 태수 (9) 창려(昌黎) 태수
(10) 요동(遼東) 태수 (11) 현토(玄兎) 태수 (12) 낙랑(樂浪) 태수
이고 1명은 판독 불능인 상태이다. 

이 12 태수의 지명은아래 <한서지리지>의 유주에 속한 7개 군의 지명과 일치한다. (위 굵은 선으로 표시)
(上谷郡 상곡군) 秦置。莽曰朔调。属幽州。户三万六千八,口十一万七千七百六十二。县十五:沮阳,莽曰沮阴。泉上,莽曰塞泉。潘,莽曰树武。军都,温馀水东至路,南入沽。居庸,有关。雊瞀,夷舆,莽曰朔调亭。宁,西部都尉治。莽曰博康。昌平,莽曰长昌。广宁,莽曰广康。涿鹿(탁록),莽曰抪陆。且居,阳乐水出东,南入沽。莽曰久居。茹,莽曰穀武。女祁,东部都尉治。莽曰祁。下落。莽曰下忠。 

(渔阳郡 어양군) 秦置。莽曰通路。属幽州。户六万八千八百二,口二十六万四千一百一十六。县十二:渔阳,沽水出塞外。东南至泉州入海,行七百五十里。有铁官。莽曰得渔。狐奴,莽曰举符。路,莽曰通路亭。雍奴,泉州,有盐官。莽曰泉调。平谷,安乐,ba3c奚,莽曰敦德。犷平,莽曰平犷。要阳,都尉治。莽曰要术。白檀,洫水出北蛮夷。滑盐。莽曰匡德。 

(右北平郡 우북평군) 秦置。莽曰北顺。属幽州。户六万六千六百八十九,口三十二万七百八十。县十六:平刚,无终,故无终子国。浭水西至雍奴入海,过郡二,行六百五十里。石成,延陵,莽曰铺武。俊靡,氵垒水南至无终东入庚。莽曰俊麻。薋,都尉治。莽曰裒睦。徐无,莽曰北顺亭。字,榆水出东。土根,白狼,莽曰伏狄。夕阳,有铁官。莽曰夕阴。昌城,莽曰淑武。骊成,大揭石山在县西南(대게석산=갈석산)。莽曰揭石。广成,莽曰平虏。聚阳,莽曰笃睦。平明。莽曰平阳。

(辽西郡 요서군) 秦置。有小水四十八,并行三千四十六里。属幽州。户七万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万二千三百二十五。县十四:且虑,有高庙。莽曰鉏虑。海阳,龙鲜水东入封大水。封大水,缓虚水皆南入海。有盐官。新安平。夷水东入塞外。柳城,马首山在西南。参柳水北入海。西部都尉治。令支,有孤竹城(고죽성이 있는 영지현)。莽曰令氏亭。肥如(비여),玄水东入濡水。濡水南入海阳。又有卢水,南入玄。莽曰肥而。宾从,莽曰勉武。交黎,渝水首受塞外,南入海。东部都尉治。莽曰禽虏。阳乐,狐苏,唐就水至徒河入海。徒河,莽曰河福。文成,莽曰言虏。临渝,渝水首受白狼,东入塞外,又有侯水,北入渝。莽曰冯德。cb63。下官水南入海。又有揭石水、宾水,皆南入官。莽曰选武。

(辽东郡 요동군) 秦置。属幽州。户五万五千九百七十二,口二十七万二千五百三十九。县十八:襄平。有牧师官。莽曰昌平。新昌,无虑,西部都尉治。望平,大辽水出塞外,南至安市入海。行千二百五十里。莽曰长说。房,候城,中部都尉治。辽队,莽曰顺睦。辽阳,大梁水西南至辽阳入辽。莽曰辽阴。险渎,居就,室伪山,室伪水所出,北至襄平入梁也。高显,安市(안시),武次,东部都尉治。莽曰桓次。平郭,有铁官、盐官。西安平(서안평),莽曰北安平。文,莽曰文亭。番汗,沛,水出塞外,西南入海。沓氏。

(玄菟郡 현토군) 武帝元封四年开。高句骊,莽曰下句骊。属幽州。户四万五千六。口二十二万一千八百四十五。县三:高句骊(고구려),辽山,辽水所出,西南至辽队入大辽水。又有南苏水,西北经塞外。上殷台,莽曰下殷。西盖马。马訾水西北入盐难水,西南至西安平入海,过郡二,行二千一百里。莽曰玄菟亭。 

(乐浪郡 낙랑군) 武帝元封三年开。莽曰乐鲜。属幽州。户六万二千八百一十二,口四十万六千七百四十八。有云鄣。县二十五:朝鲜(조선),讑邯,浿水(패수),水西至增地入海。莽曰乐鲜亭。含资,带水西至带方入海。黏蝉,遂成(수성),增地,莽曰增土。带方(대방),驷望,海冥,莽曰海桓,列口,长岑,屯有,昭明,高部都尉治。镂方,提奚,浑弥,吞列,分黎山,列水所出。西至黏蝉入海,行八百二十里。东暆,不而,东部都尉治。蚕台,华丽,邪头昧,前莫,夫租。 
 
덕흥리고분의 13태수의 지명 중 <한서지리지> 7개군의 지명과 일치한다.

이 12 태수의 지명은 <한서지리지>에 기록된 유주에 속한 7개 군의 지명과 일치하며 그 군에 속해있는 주요한 현(縣)은 다음과 같다.
(상곡군) 거용, 창평, 탁록
(우북평군) 대갈석산
(요서군) 고죽성, 유성, 비여
(요동군) 안시, 요양, 서안평
(낙랑군) 패수, 수성, 대방
(현토군) 서안평, 고구려
(어양군) 어양, 천주, 평곡
즉 유주는 산서성 남부와 북부 하남성 일대

이중 위치 추적이 가능한 지명에 대해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 상곡군 탁록은 치우천황이 황제헌원과 전투를 한 곳으로 현 산서성 운성시 일대,
* 요서군은 고죽성이 있는 곳으로 산서성 운성시 서쪽 영제시 일대,
* 요동군은 요서군의 동쪽으로 운성시 동북부와 임분시 일대,
* 현토군은 현 분하가 황하로 들어가는 곳인 산서성 하진시 일대,
* 낙랑군은 북부 하남성 일대,
* 어양군은 낙랑군의 동쪽으로 추정된다.
* 북평군은 산서성 운성시의 남쪽 예성현 영락진 일대이다. 
 

산서성 남부 운성시에 있는 치우촌. 이곳이 유주에 속한 상곡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