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의 핵심은 지명을 국명으로 변경한 역사왜곡 (1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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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25.

 

 

동북공정의 핵심은 지명을 국명으로 변경한 역사왜곡 (15부)
 
조선, 고구려,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권인 지명이 아니라 나라이름
 
편집부 기사입력  2017/04/12 [12:13]
 
 
 
 
 
 
 
 

<단군세기> 3세 가륵단군 재위 45

갑진 6(B.C2177) 열양(列陽)의 욕살 색정(索靖)에게 명하여 약수(弱水)로 옮기게 하고 종신토록 갇혀있도록 하였다. 뒤에 이를 용서하시고 곧 그 땅에 봉하니 그가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

 

위 기록은 조선대연방의 일원이었던 흉노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으로 흉노와 조선은 한 핏줄 한 몸이었다는 의미이다. 중국 사가들은 조선이라는 국명을 역사기록에 안 나타나게 하기 위해 모든 사서에서 조선이라는 국명 대신 조선대연방의 일원이었던 흉노(匈奴), 동호(東胡), 숙신(肅愼), 동이(東夷), 서이(西夷), 북적(北狄), 견융(畎戎) 등 종족명을 사용했다. 즉 조선이라는 나라를 실체가 없도록 조작한 것이다.

 

위 기록에서의 열양(列陽)은 열수(列水)의 북쪽으로 해석된다. ()은 북쪽, ()은 남쪽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이 열양은 조선의 위치를 비정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하면서 <산해경 해내북경의 기록인 조선은 열양의 동쪽에 있고,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에 있으며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鲜在列阳东海北山南列阳属燕)”문구를 많이 인용하는데, 여기서의 조선은 나라 이름이 아니라 낙랑군에 속한 25개 현 중 하나인 조선현이라는 일개 지명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산해경(山海經)에()를 달은 곽박(郭璞)조선은 지금의 낙랑현이고, 기자가 봉해진 곳이다. 열 역시 강 이름으로 지금의 대방에 있다. 대방에는 열구현이 있다 (朝鲜今乐浪县箕子所封也列亦水名也今在带方带方有列口县)”라고 했다. 이 기록의 문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기서의 조선 역시 국가가 아니라 일개 지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원래 고구려와 발해도 지명이었는데 추모대제(고주몽)가 국명으로 사용했다. 아래 <한서지리지>에서 볼 수 있듯이, 고구려는 유주의 현토군(玄免郡)에 속한 3개 현 중 하나이며, 역시 유주에 속한 발해군의 상징인 발해는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있던 가로 100km 세로 300km 되는 큰 내륙호수인 대야택(大野澤)이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 대야택을 동해(東海)라고 불렀다. 

 

역사왜곡을 위해 하남성 동단에서 중국의 내해로, 일제식민사학에 의해 동만주로 옮겨졌다.

 

 

(玄菟郡 현토군)武帝元封四年开高句骊莽曰下句骊属幽州(유주)户四万五千六口二十二万一千八百四十五县三高句骊(고구려)辽山辽水所出西南至辽队入大辽水又有南苏水西北经塞外上殷台莽曰下殷西盖马马訾水西北入盐难水西南至西安平入海过郡二行二千一百里莽曰玄菟亭(현토군에는 고구려, 상은대, 서개마의 3개 현이 있다)

 

勃海郡(발해군)高帝置莽曰迎河屬幽州(유주)師古曰:「在勃海之濵因以為名。」 戶二十五萬六千三百七十七口九十萬五千一百一十九縣二十六浮陽莽曰浮城陽信東光有胡蘇亭阜城莽曰吾城千童應劭曰:「靈帝改曰饒安。」 重合南皮(남피)莽曰迎河亭師古曰:「闞駰云章武有北皮亭故此云南。」 侯國章武(장무)有鹽官莽曰桓章中邑莽曰檢陰高成都尉治高樂莽曰為郷參戶侯國成平虖池河民曰徒駭河莽曰澤亭侯國臨樂侯國莽曰樂亭東平舒(동평서)師古曰:「代郡有平舒故此加東。」重平安次(안차)脩市侯國莽曰居寧應劭曰:「音條。」 文安(문안)景成侯國束州建成章郷侯國蒲領侯國

 

<단군세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해모수가 태어난 고향이라 고주몽이 나라를 세우고는 국호를 고구리(高句麗)라 칭하였다하며, 발해는 당나라 측천무후가 대진국(大震國)의 대조영에게 일방적으로 발해국왕(渤海國王)으로 봉한다는 교지를 내리면서부터 당나라에서 부르던 국호였다. 그 이유는 대조영이 발해 근처에서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조영이 있던 도읍은 동만주 일대가 아니라 대야택 부근 하남성 일대로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물론 유적이 발견된 동만주도 대진국의 강역에 속했다.

 

중국은 우리의 이러한 점을 교묘히 악용하여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동북공정을 펴고 있는 중이다. 즉 바로 이것이 동북공정의 핵심인 것이다. 따라서 고주몽이 세운 나라인 高句麗고구려로 발음해서는 안 되고, 한자사전의 설명대로 고구리로 발음해야 할 것이다. 대조영이 세운 나라도 발해가 아니라 대진국으로 불러야 옳은 것이다. 즉 고구려와 발해로 부르는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대로 인정하는 아주 위험한 행위인 것이다.

 

한자사전에 가 나라이름으로 쓰일 때 발음은 ''라고 했다.

 

 

조선이라는 지명도 마찬가지이다.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우면서 조선이라는 국호를 여기서 가져왔는지 여부는 잘 알 수 없으나, <한서지리지>의 기록에 따르면, 한사군의 낙랑군에 속한 25개 현 중 조선현이 있다. 곽박의 <산해경주>와 정도원의 <수경주>는 바로 이 조선현이라는 지명을 말하는 것이다.

 

(낙랑군乐浪郡)武帝元封三年开莽曰乐鲜属幽州户六万二千八百一十二口四十万六千七百四十八有云鄣县二十五朝鲜(조선)讑邯浿水(패수)水西至增地入海莽曰乐鲜亭含资带水西至带方入海黏蝉遂成增地莽曰增土带方(대방)驷望海冥莽曰海桓列口(열구)长岑屯有昭明高部都尉治镂方提奚浑弥吞列(탄열)分黎山列水所出 西至黏蝉入海行八百二十里(탄열현에 분려산이 있고 열수가 나오는 곳이다. 서쪽에서 점선까지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东暆不而东部都尉治蚕台华丽邪头昧前莫夫租

 

: <수경주><설문>에 따르면 패수는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한서지리지>에서 浿水西至增地入海로 썼으므로 列水西至黏蝉入海도 같은 개념으로 썼을 것이다. 따라서 "열수는 서쪽으로 점선까지 흘러 바다(황해)로 들어간다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일제식민사학자들과 중국의 학자들은 이러한 열수를 한반도 평양을 지나는 대동강으로 비정했다. 그 근거로는 이 땅에 반도사관을 이론적으로 정착시켰던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연구논

 

문과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발견된 점제현신사비를 들고 있다. 그러나 점제현신사비는 북한의 학자들이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비문이 훼손되고 옮겨진 것임을 확인한 적이 있다. 

 

 황하 북부에 있었던 점제현신사비가 역사왜곡을 위해 평안남도 용강군으로 옮겨졌다.

 

이런 엉터리 이론을 역사의 진실이라고 아래와 같이 들이대는 중국학자들의 후안무치함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더 희한한 일은 이러한 엉터리 식민사학의 이론을 중국학자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강단사학자들도 바이블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학자의 논문 원문을 아래와 같이 보기로 한다.

 

列水是大同江还可由黏蝉县遗址的确定来证明一九一三年日人今西龙氏断定平安南道龙冈郡的乙洞古城即汉黏蝉县治所在,【见大正八年六月出版的朝鲜总督府古迹调查特别报告第一册转引自小田省吾著朝鲜史大系.上世史第六章第三节。】因为距该土城不远有古碑一座碑文内容是祈祷山神保佑黏蝉五谷丰饶境内平安。《汉志云列水西至黏蝉入海”(见前文所引)而黏蝉县遗址正在大同江口则列水自然非大同江莫属了

 

(번역) 열수가 대동강임은 점선현 유적지의 확정으로 증명되었다. 1913년 일본학자 금서룡씨는 평안남도 용강군 을동고성에 한나라 점선현의 치소가 있었다고 단정했다. (: 대정 86월 출판된 <조선총독부 고적조사특별보고> 1책과 소전성오가 쓴 <조선사대계 상세사> 63절을 인용한다). (비문내용생략) <한지>의 내용에 따라 점선현 유적지가 대동강 입구에 있으므로 열수는 자연적으로 대동강이다.

 

위를 근거로 하여 열수가 대동강이라는 근거를 여러 개 나열하고 있는데 주된 내용은 한사군의 핵심인 낙랑군이 대동강 부근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면서 <사기 조선전>에 기록된 한사군전쟁 후 한무제가 참전한 장수들을 치죄하는 문구까지 언급하고 있다 

 

사기 조선전에 기록되어 있기를, “누선장군(양복)열구(洌口)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좌장군(순체)을 기다려야 마땅했는데, 멋대로 먼저 서두르다가 잃고 망한 것이 많아 목을 베어야 마땅하나 속죄금을 냈기에 서인(庶人)으로 삼았다”(: 열구(洌口)는 열수의 입구)

史记朝鲜传楼船将军亦坐兵至列口 当待左将军 擅先纵失亡多 当诛赎为庶人

 

아래 기록 앞의 상황을 간단히 부연설명 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거(右渠)를 칠 때 양복(楊僕)이 제병(齊兵) 7천을 거느리고 먼저 왕검성(王儉城)에 이르렀다. 우거는 성을 지키고 있다가 양복의 군사가 적음을 알고 나가 공격하니 양복의 군사는 대패하여 산속으로 도망하였다.”

 

열수는 위 몇 개의 기록에만 언급되어 있고 이후 사서에는 기록이 나오지 않아 열수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근거라고는 위 <한서지리지>에서 유주의 낙랑군을 설명하는데 언급된 기록과 <산해경><사기 조선전>의 기록과 아래 두 기록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것 가지고도 열수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후한서/지리지>에는 낙랑군 열구현에 곽박이 <산해경>에 주석달기를 열은 물길의 이름이고 열수는 요동에 있다. (郭璞注 山海經口 列水名 列水在遼東)”라는 기록이 있고,

<조선전 집해>를 인용해 장안이 말하기를, “조선에 습수, 열수, 산수가 있는데 세 물길이 합쳐져 열수가 된다. (朝鲜传集解引张晏曰朝鲜有湿水冽水汕水三水合为冽水)이 있을 뿐이다. 

 

필자 주 : 여기서의 열()자는 열수의 열()자에 삼수()변이 들어가 있으나 같은 물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기>에는 열()로 기록되어 있고, <한서>에는 같은 내용이 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강이름으로 제하, 망하, 추하가 한 곳에서 합쳐져 한 물줄기 망하가 되어 황하로 흘러 들어간다.

 

 

여기서의 조선(朝鮮)은 나라가 아니라 조선현(朝鮮縣)이라는 일개 지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넓고도 넓은 조선 땅에 강이 세 개 밖에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중국학자들은 열수가 바로 지금의 대동강인 이유는 대동강에 순천강, 성천강, 능성강의 세 지류가 있기 때문이라는 어불성설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列水是今大同江正有顺川江成川江能成江三支流)” 그러나 이 세상에 지류 없는 강이 어디 있는가? 위 기록의 의미는 한 곳에서 3개의 강이 합쳐진다는 뜻이지, 지류가 3개 있다는 말이 아닌 것이다. 즉 엉터리로 둘러댄 것이다.

 

지금부터 열수가 어디인지 추적해 보기로 한다. 먼저

1)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열수는 유주의 낙랑군에 속한 현이므로 산서성 남부나 황하북부 하남성에서 찾아야 마땅하다. (유주의 요서군을 상징하는 백이.숙제의 묘가 결정적 증거이다)

 

2) <산해경>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현은 열양의 동쪽이며 바다(황하)의 북쪽이며 산의 남쪽이며 연나라에 속한다.”고 했으므로 황하의 북쪽 하남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3) <사기 조선전>의 기록에 의하면 열구는 왕검성으로 가기 전에 있고, 한사군전쟁의 주 무대는 위만이 건넌 강인 패수(浿水)이므로 그 근처를 흐르는 다른 물길임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한서지리지>에서 낙랑군에 속한 현 중에 패수현과 패수가 있고, 열수가 나오는 탄열현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패수는 여러 기록에 의해 정확한 위치는 황하북부 하남성 제원(濟源)시를 흐르는 강으로 밝혀졌으므로 열수도 그 근처를 흐르는 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제원시에서 패수(=추수溴水)를 포함한 세 물길(현재명 추하溴河, 망하蟒河, 제하濟河)이 합쳐져 동쪽 온양현으로 흘러 황하로 들어가므로, 패수는 왕옥산에서 발원해 제원시에서 3개 물길이 합쳐지기 전까지의 강이고, 열수는 세 물길이 합쳐진 지금의 망하(蟒河)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서지리지>에서 말한 낙랑군에 속한 조선현은 황하북부 하남성 제원시가 확실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