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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호태왕에게 항복하고 식민지가 된 왜 (3부)

호태왕에게 항복하고 식민지가 된 왜 (3부) 80~90%가 죽자 나라를 들어 항복한 왜를 군국으로 만든 호태왕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11/29 [22:03] 세칭 신묘년 기사로 알려진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到海 破百殘曷侵新羅以爲臣民”의 해석은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으로 조공을 바쳐왔고, 왜는 신묘년(391, 호태왕 즉위년)부터 와서 (조공을 바쳤다). (고구리가) 바다를 건너가 백잔을 격파했고, 말갈이 신라를 신민으로 삼기 위해 침략했다.” 즉 왜가 가야·신라에 식민지인 임나일본부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말갈이 신라를 신민으로 삼기 위해 침략했었다는 사실을 기록해놓은 문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왜의 움직임은 어떠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에는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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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만년 2인자에서 태양이 되고싶었던 당태종 (2부)

만년 2인자에서 태양이 되고싶었던 당태종 (2부) 수양제의 패전원인을 작전으로 택한 당태종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11/21 [05:40] 당 태종 이세민은 요새 군대용어로 전군에 전투준비태세를 발령하고, 북쪽 영주(營州)로 군량을 수송하게 하고 동으로는 고대인성(古大人城)에 군량을 비축하라고 지시했다. 수양제의 작전을 그대로 반복해서는 고구려 연개소문에게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당 태종은 수양제의 패인을 분석해 완전 정반대의 전략으로 요동정벌에 임하겠다고 결심했다. 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양제의 참패원인이 요동정벌의 전략 (1) 수양제가 참패한 첫째 원인은, 병사를 정예병 위주로 동원하지 않고 군세를 과시하기 위해 오합지졸까지 포함해 머리수만 많은 대군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후방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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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임나일본부설의 허구를 입증한 '고구리사초략' (2부)

임나일본부설의 허구를 입증한 '고구리사초략' (2부) 신묘년이 아닌 을미년에 신라를 침략한 말갈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10/31 [12:21] 일제에 의해 왕실궁내청 서고에 오랫동안 감금되어 있다가 1933년부터 12년간 그곳에 촉탁으로 근무하게 된 한국인 남당 박창화 선생에 의해 세상 밖으로 탈출해나온 이 우리의 위대한 고대사를 재정립할 수 있는 호태왕비문 해석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1. 호태왕의 칭호와 즉위/생몰년도 먼저 칭호부터 달랐다. 명나라의 속국이었던 조선왕조에 의해 각색된 에는 ‘광개토왕(廣開土王)’이 392년에 즉위해 413년 훙(薨)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에서는 영락대제라는 칭호를 사용했으며 즉위년도와 돌아가신 연도가 다르게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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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자제력을 잃고 고구려를 침공한 당태종 (1부)

자제력을 잃고 고구려를 침공한 당태종 (1부) 기라성 같은 당태종 이세민의 신하들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10/16 [14:55] 혁명원로들의 자제들을 일컫는 일명 태자당(太子黨)의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손자, 주더(朱德) 전 국가부주석의 손자, 리셴녠(李先念) 전 국가주석의 사위,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의 사위 등이 오는 10월에 열릴 제19차 중국공산당 당대회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대거 탈락되었다. 이들은 같은 태자당인 시 주석의 정치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인물들이기에 권력중심부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일인체제를 확고하게 굳히려는 시진핑 주석은 태자당 뿐만 아니라 장쩌민 전 주석의 상하이방과 후진타오 전 주석과 리커창 총리의 공산주의청년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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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일본 왕실서고에서 탈출한 고구리사초략 (1부)

일본 왕실서고에서 탈출한 고구리사초략 (1부) 호태왕 비문의 비밀을 열 수 있는 열쇄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10/02 [11:56] 현존하는 우리나라 역사기록 중 가장 시기적으로 앞서는 기록이 바로 1,600년 전 고구리인에 의해 세워진 광개토호태왕 비문이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보다 730여년 앞서는데다가 고구리인이 직접 적었으며, 돌에 새겨져 있어 변조의 가능성이 적으므로 우리 민족의 고대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해왔었다. 그 이유는 1876년~1880년경 발견된 비문의 탁본이 일본육군참모부 소속 첩보장교인 사가와 가게노부(酒匂景信)에 의해 본국으로 넘겨져 1889년에 일본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여러 탁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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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호태왕에게 항복하고도 계속 도발한 아신왕 (7부)

호태왕에게 항복하고도 계속 도발한 아신왕 (7부) 비문징실의 내용과 같은 고구리사초략의 기록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9/04 [15:23] 6년(396) 병신년 3월에 광개토호태왕에게 영위노객(永爲奴客)이 되겠다는 맹서와 함께 항복했던 백제 아신왕은 이후에도 계속 도발을 해왔다. 왜국과 화친을 맺고는 이듬해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냈으며, 왜왕은 자신의 딸을 전지와 혼인시켰다. 7월에는 한수의 남쪽에서 열병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참고로 에는 396년 5월에 전지태자를 왜로 보냈고, 397년에 고구리를 침공했다고 1년 빠르게 기록되어 있다. 항복하고도 계속 도발한 백제 아신왕 398년 3월 아신왕은 진무를 병관좌평으로 사두를 좌장군으로 삼아 쌍현(雙峴)성을 쌓았고, 8월에는 군사를 보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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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장수태왕에게 몸을 바친 북위의 하태후 (6부)

장수태왕에게 몸을 바친 북위의 하태후 (6부) 모용수의 북연 대신에 강자로 등장한 북위의 탁발규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7/30 [00:02] 광개토태왕 시절 중국에서는 304년부터 시작된 대혼란의 5호16국시대가 서서히 막이 내려지고 있었다. 383년 천하통일을 외치며 동진을 공격했던 전진의 부견이 비수전투에서 대패하자 다시 군웅들이 할거하게 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모용황의 다섯째 아들로 384년에 후연을 세운 모용수(慕容垂)였고, 또 하나의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탁발선비족의 탁발규(拓跋珪)였다. 모용수가 세운 후연의 몰락 396년 후연을 세운 모용수가 죽자 뒤를 이어 즉위한 모용보(寶)는 무리하게 개혁을 시도하다가 민심을 잃어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도읍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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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연개소문이 이세민에게 붙잡혔다가 풀려났을까?

연개소문이 이세민에게 붙잡혔다가 풀려났을까? (9부) 일인독주체제를 구축한 연개소문은 당나라에겐 두려움의 대상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6/25 [22:48] 시진핑 국가주석은 취임 이후 부패척결과 정년퇴직 등으로 공석이 된 67개 고위직에 29명을 자신의 측근들로 채우면서 일인독주체제를 확고하게 다지고 있다. 게다가 중국 혁명원로의 2~3세대 자녀들 일명 태자당(太子黨)이 정치권력화를 시도하자 격노하며 이를 분쇄했다. 시 주석도 속한다는 태자당은 개혁·개방 시기 경제 분야에 대거 진출해 권력형 비리로 치부했다는 평을 들어왔다. 자신을 덩샤오핑(鄧小平)의 수준을 넘어 마오쩌둥(毛澤東)과 같은 반열의 국부(國父)급으로 격상시키려는 시 주석은 지난 8월 초 중국 전·현직지도자들이 모이는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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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고구리 최전성기의 문치를 꽃피운 춘태자 (5부)

고구리 최전성기의 문치를 꽃피운 춘태자 (5부) 역사서를 새로 쓰고, 법령을 제정하고, 호태왕의 비문을 쓴 석학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6/17 [14:47] 고구리의 최전성기는 영락태왕 ~ 장수대제 ~ 명치(문자)대제로 이어지는 약 130년간이었다. 그 전성기 초기에 고구리가 찬란한 문치를 뿌리내리고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춘태자라는 뛰어난 대학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태왕의 永樂 연호를 정하고, 역사서를 새로 쓰고, 법령을 제정하고, 호태왕의 비문까지 쓴 춘태자가 얼마나 학식이 높았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호태왕 동상과 비석의 비문을 쓴 춘태자 © 편집부 장수태왕이 춘태자와 주변국들에 대해 논의하며 “후연, 남연, 후량, 남량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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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연남생 묘비명과 정확히 일치한 태백일사의 기록 (8부)

연남생 묘비명과 정확히 일치한 태백일사의 기록 (8부) 천남생이 아닌 연남생으로 연개소문의 아들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5/23 [09:46] 는 연개소문에 대해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해 “연개소문의 성은 연(淵)씨이고 일명 개금(蓋金)이라고도 한다. 선조는 봉성(鳳城) 사람으로 아버지는 태조(太祚)라 하고, 할아버지는 자유(子游)라 하고, 증조부는 광(廣)이라 했으니 나란히 막리지를 지냈다. 영양제의 홍무(弘武) 14년(603) 5월 10일 태어났고, 나이 9살에 조의선인에 뽑혔다.”고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에는 개소문의 성을 천(泉)씨라 하고, 조상들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다. 개소문의 원래 성씨가 淵씨였음에도 泉씨로 적힌 이유는 피휘(避諱) 즉 당나라 고조 이연(李淵)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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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현 중국대륙의 90%를 정복한 호태왕 (4부)

현 중국대륙의 90%를 정복한 호태왕 (4부) 강태공의 제나라 땅까지 차지했던 고구리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5/14 [13:37] 광개토태왕은 위대했던 정복군주인 동시에 문치를 중흥시킨 임금이기도 했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춘태자라는 현명하고 뛰어난 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개토태왕 비문을 쓴 장본인인 춘태자는 학식이 풍부하고 현인을 존경했으며,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순리에 따르니 천하가 그에게 힘입어 편안해졌고, 종실 사람들의 표상이 되어 세세토록 모범이 되어왔던 인물로 당시 고구리 제일의 문장가·철학가·사상가였다. 춘태자는 소수림제가 태자 시절인 359년에 태자비 연(燕)씨에게서 얻은 강(岡)으로 호태왕의 이복형이었다. 춘태자는 소수림제의 장자였기에 황위계승서열 1위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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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영락 8년에 정벌한 숙신은 북맥으로 산서성 중부 (3부)

영락 8년에 정벌한 숙신은 북맥으로 산서성 중부 (3부) 맥족이 사는 예(濊)와 양(梁)의 위치는 산서 동남부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4/08 [21:04] 광개토호태왕은 6년(396) 병신년 3월에 친히 백제를 공격해 아신왕으로부터 영위노객(永爲老客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을 맹세하는 항복을 받고 왕의 동생과 대신 10명을 인질로 잡고 돌아왔다. 치욕을 당한 아신왕은 절치부심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했다. 이듬해 5월 왜를 끌어들이기 위해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내고, 7월에는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했다. 다음해 2월, 아신왕은 진무를 병관좌평으로 사두를 좌장으로 삼았고, 쌍현성을 쌓았다. 그러나 호태왕은 백제 아신왕의 이러한 복수 준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른 곳을 정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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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백제 전지왕비 팔수부인은 왜왕의 딸 (2부)

백제 전지왕비 팔수부인은 왜왕의 딸 (2부) 백제와 왜는 한 몸으로 서로 불가분의 관계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3/22 [08:44] 허구인 임나일본부설의 이론적 근거로 악용되었던 광개토호태왕 비문의 6년(396) 병신년 기사와 관련 있는 현재 일본 왕실의 뿌리가 되는 백제왕족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 백제 개로왕, 문주왕, 동성왕, 무녕왕, 성왕 시대와 연결되는 웅략(雄略), 무열(武烈), 계체(繼體), 흠명(欽明) 왜왕들에 대해 살펴본 결과 계체왜왕은 백제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왕자의 아들임이 확실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시 광개토호태왕의 역사이야기로 돌아가기로 한다. 에는 “영락 6년(396) 병신 3월, 태왕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대방과 백제를 토벌해 10여성을 함락시키고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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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현재 일본 왕실의 시조는 과연 누구일까? (1부)

현재 일본 왕실의 시조는 과연 누구일까? (1부) 일본 최초의 고대국가를 세운 응신은 백제인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3/04 [19:36] 호태왕 비문의 6년(396) 병신년 기사의 올바른 해석은 무척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일제는 병신년 기사의 첫 문구만 따로 떼어내어 신묘년 기사라는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해 조선침략의 정당성과 정한론의 근거로 삼았고, 1982년에 베스트셀러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을 출간한 김성호 박사는 자신의 비류백제설을 입증하는 기록으로도 사용했다. 먼저 김성호 박사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① 고대에 고구려·신라·(온조)백제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4의 왕조'인 (비류)백제가 존재했다 ② 도읍은 공주였고 한반도 서남부를 지배했고, 지방통치체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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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호태왕비문 임나일본부설, 조작된 허구임이 밝혀졌다. (10부)

호태왕비문 임나일본부설, 조작된 허구임이 밝혀졌다. (10부) 소위 임라일본부설 신묘년 기사는 병신년 병력출동의 원인 설명문구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2/21 [14:44] 일본은 호태왕 비문의 6년(396) 병신년 기사의 앞부분인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到海 破百殘􀀀􀀀新羅以爲臣民”만을 떼어내어 “백잔(백제)과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으로 조공을 바쳐왔다. 신묘년(391)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잔·임나(가야)·신라를 깨고 신민으로 삼았다.”라고 해석하는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하여 조선침략의 이론적 근거로 삼았다. ▲ 아직도 한국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을 외치는 일본 극우주의자들 © 편집부 정한론의 정당성을 합리화한 위 일본의 해석이 허구라는 사실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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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호태왕 비문에 임나일본부는 애당초 없었다 (9부)

호태왕 비문에 임나일본부는 애당초 없었다 (9부) 임나일본부 있는 신묘년 기사는 6년 병신년 기사의 일부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2/06 [22:1 정한론(征韓論) 즉 일본의 조선침략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임나일본부설의 결정적 증거라는 호태왕비 신묘년 기사의 문구와 해석은 지금까지 아래와 같았다. 일본은 판독 불가능한 􀀀􀀀를 가야(임나)라고 임의대로 해석해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해석은 과연 옳은 것일까? 과연 삼한인 마한(백제)와 변한(가야)와 진한(신라)은 200년간 왜의 식민지였을까? 한자로 된 문장을 해석할 때는 끊어 읽기를 잘 해야 한다. 어떻게 문장을 끊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기네 해석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百殘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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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에 악용된 호태왕 비문 (8부)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에 악용된 호태왕 비문 (8부) 가짜 임나일본부설을 위해 호태왕 비문을 조작한 일본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1/07 [20:41] 에는 “5년(395) 을미 8월, 호태왕이 비려를 정벌하고 있는 사이 백제의 진무가 또 그 빈틈을 노려 쳐들어오니, 호태왕이 기병 7천을 이끌고 가서 패수 북쪽에서 싸워 8천여 수급을 베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의 고구리국본기와 백제본기 공히 4년(395)으로 기록되어 있어 호태왕의 즉위년도가 1년 차이가 난다. 상세히 설명하자면 에는 고국양제의 재위기간이 8년이었고 391년이 영락대제 즉위 원년이라 395년이 영락 5년인 반면, 에서는 고국양왕의 재위기간이 9년이었고 즉위 원년이 392년이라 395년은 즉위 4년이라는 것이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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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호태왕이 30만 비려군을 깬 곳은 산서성 남부 (7부)

호태왕이 30만 비려군을 깬 곳은 산서성 남부 (7부) 영락 5년(395) 2월 비려 정벌 후 8월 패수에서 백제 격파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7/11/09 [20:28] 집안에 서있는 호태왕 비문 1면 7행에는 “永樂五年歲在乙未 王以碑麗不息征旅躬率往討 過富山負山至鹽水 攻破其三部族六七百營 牛馬羣羊不可稱數 於是旋駕因過襄平道 東來候城力城北豊五遊觀土境田獵而還”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그 번역은 다음과 같다. (번역문) 영락 5년 을미년(395)에 비려(碑麗)가 끊임없이 침공하므로 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했다. 부산(冨山)과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까지 이르러 그 3개 부족과 6~7백 군영을 깨뜨리니 (노획한) 소·말·양떼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어가가 개선하면서 양평도(襄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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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백제 아신왕에게 연전연승하는 광개토태왕 (6부)

백제 아신왕에게 연전연승하는 광개토태왕 (6부) 탐라는 제주도가 아닌 대만일 가능성 크다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7/10/14 [23:04] 호태왕은 2년(392) 임진 7월에 친히 4만의 병력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해 12개의 성을 빼앗고, 군사를 돌려 9월에 거란을 정벌한 후 그곳에 억류되어 있던 유민들과 포로들을 데리고 개선했다. 이어 10월에는 또 다시 수군과 육군을 이끌고 가서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주야로 20일을 쉴 새 없이 공격해 마침내 철옹성인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을 함락시키고 만다. 관미성은 사면이 가파르고 험하며 해수(海水)로 둘러싸여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인지라 백제 진사왕은 절대로 함락되지 않으리라 여기고는 그의 처 가리와 함께 구원(狗原)에서 약 10일간이나 사냥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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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민족의 고유명절도 모르는 한심한 한국인들 (5부)

민족의 고유명절도 모르는 한심한 한국인들 (5부) 칠석날 잉태되어 단오날 태어난 고주몽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7/09/17 [18:57] 에 호태왕이 “2년(392) 임진 7월에 친히 4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백제를 정벌해 석현성 등 12개 성을 빼앗고, 9월 군대를 옮겨 거란을 공격해 남녀 3,500명을 사로잡고 유민과 잡혀갔던 고구리 백성 만여 명도 데리고 돌아왔다. 백성들 모두가 수유(茱萸)나무 가지를 머리에 꽂고 축하했다. 이것이 ‘9월 9일’의 풍속으로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호태왕이 백제와 거란을 정벌하고 개선한 9월 9일은 우리 민족의 전통명절이 된다. 그날 백성들이 머리에 꽂은 수유(茱萸)나무는 현재는 간편하게 쉬나무로 발음되는 나무로, 키가 10여 미터이고 둘레가 한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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