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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부, 대진국은 자체연호를 쓴 황제국 (2부)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부, 대진국은 자체연호를 쓴 황제국 (2부) 중국의 지방정부가 어떻게 자체연호를 함부로 쓸 수 있나?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03/28 [17:34]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 중의 핵심은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허황되기 이를 데 없는 이론이나, 문제는 대한민국 정부가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한 동북아역사재단에서조차 제대로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강단사학계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이론이 거의 같은 일제식민사학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발해에 대해 설명한 의 자료는 다음과 같다. (원문) 勃海是中国古代行政区划中的一个郡。三国时期的地名。最早设立与汉高帝五年,属幽州。东汉改由冀州管辖。北魏登国元年改勃海郡为渤海郡。治南皮,今河北南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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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삼국지'의 명장 관우는 원래 고구려 출신! (3/4부)

'삼국지'의 명장 관우는 원래 고구려 출신! (3/4부) 고구리에서 한나라로 망명한 관우의 고향은 산서성 남부 운성시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02/08 [17:11] 진수가 쓴 정사 에 평범하면서도 우수한 장수로 기록된 관우는 나관중이 쓴 소설 에서는 천하무적의 위대한 장수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명나라는 그런 소설 의 내용을 바탕으로 관우를 군신(軍神), 무신(武神), 전신(戰神) 급으로 격상시키는 역사왜곡을 단행하여 관제(關帝) 신앙을 만들어냈으며, 관우의 사당인 관왕묘(關王廟)를 전국에 설치하였다. 게다가 당시 속국이었던 조선에까지 많은 관왕묘를 세웠다. 그렇게 세워진 대표적인 관우의 사당이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동묘(東廟)인 것이다. 그 이유는 한족(漢族)의 우수성을 내세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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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호태왕비가 집안으로 옮겨졌다는 여러 의혹들 (2부)

호태왕비가 집안으로 옮겨졌다는 여러 의혹들 (2부) 대석과 관석도 없고, 산이 아닌 평지에 서있는 호태왕비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01/18 [14:30] 2) 받침대(대석)가 없는 비석도 있나? 무게가 37톤이나 되고, 높이가 6.34m나 되는 거대한 비석을 세우려면, 지반침하를 막고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큰 받침대(대석)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런데 사진으로 본 1900년 초의 비석은 받침대(대석) 없이 그냥 땅 위에 서 있던 것으로 보인다. 받침대도 없는 상태에서 지반침하도 없이 1,500년을 버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광개토태왕 비에는 가로 2.7m x 세로 3.35m 높이 약 20cm의 화강암 받침대가 있는데 3부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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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집안 광개토태왕 비 옮겨졌을 가능성 크다 (1부)

집안 광개토태왕 비 옮겨졌을 가능성 크다 (1부) 37톤짜리 비석도 옮기는 판에 0.5톤도 안되는 비석쯤이야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01/17 [11:50]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마셴(麻線)향 마셴촌에서 高句麗 비석으로 보이는 비석이 발견됐다. '중국문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7월29일 한 주민이 마셴강(河) 가에서 비석을 발견해 지안시 문물국에 신고했고, 문물국은 현장에 조사팀을 파견해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정밀 조사한 결과 高句麗 비석임을 확인했다고 중국문물보는 전했다. 화강암으로 된 이 비석은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결실된 상태로, 크기는 높이 1m73cm, 너비 60.6-66.5cm, 두께 12.5-21cm다. 무게는 464.5kg이다. 국내 학계는 광개토태왕비, 충주 高句麗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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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춘추필법으로 가려진 당나라 대종의 눈알 (1부)

춘추필법으로 가려진 당나라 대종의 눈알 (1부) 위구르에게 도성이 함락 당하고 눈알까지 뽑힌 당나라 대종 세르게이 정 ㅣ 기사입력 2013/01/16 [15:06] 에 의하면, 775년이 되면서 당나라에서 활동하는 위구르 사신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위구르와 당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고 한다. 775년 섬서성 장안에서 홍려(弘麗)시를 빠져나온 위구르 사신일행이 대낮에 동시(東市)에서 당나라 사람을 살해했다가 체포되었는데, 이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우두머리 강적심(康赤心)이 당나라 관리를 상하게 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이 사건을 기회로 양국 관계가 악화되자 위구르는 775년 11월 1,000명의 기병이 출동해 하주(夏州)를 약탈하는 등 군사적 위협을 가했다. 이에 당나라 장수 양영종이 오수에서 위구르를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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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요 태종과 청 강희제가 추존한 고구리 황제 시호와 묘호

요 태종과 청 강희제가 추존한 고구리 황제 시호와 묘호 자체 연호를 쓴 고구리 태왕들! (동북공정 허구 입증 가능)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11/06 [16:05] 최근 한 민족사학자에 의해 요나라 태종과 청나라 강희제에 의해 추증된 高句麗 황제의 시호 및 묘호가 밝혀져 학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자료제공자는 (사)고구리역사문화보전회의 학술위원인 정길선 위원으로, 본 자료의 출처는 요나라의 제천행사를 기록한 와 청나라의 제천행사를 기록한 라는 책으로 현재 러시아 모처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아래 자료에서 보듯이 식민강단사학계에서 위서(僞書)라고 말하는 에 기록된 고구리 태왕들의 년호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어, 만일 출처의 판본 원본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면 지금까지 중국과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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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대조영이 당나라를 격파한 천문령은 어디인가? (2부)

대조영이 당나라를 격파한 천문령은 어디인가? (2부) 대진국(발해)의 건국과 관련있는 천문령은 황하북부 하남성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10/09 [13:39] 에 따르면, “대조영은 부사를 따라 영주(營州) 계성(薊城)으로부터 무리를 이끌고 당도하여 제위에 올랐다. 홀한성(忽汗城)을 쌓아 도읍을 옮기고 군 10만을 모집하여 위세를 크게 떨치었다. 곧 계책을 세우고 제도를 세워 당나라에 복수할 것을 스스로 맹세했다. 말갈의 장수 걸사비우와 거란의 장수 이진영과 손잡고 병력을 연합하여 당나라 장수 이해고를 천문령(天門嶺)에서 크게 격파했다. 국호를 정하여 대진(大震)이라 하고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고,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니 땅은 6,000리가 개척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조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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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대진국(발해)의 시국처인 동모산은 어디인가? (1부)

대진국(발해)의 시국처인 동모산은 어디인가? (1부) 동모산은 동만주가 아닌 하남성 대야택(발해) 일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10/05 [15:10] 우리는 우리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가 발해(渤海)였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대연방제국이었던 단군조선과 그 정통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고구려의 강역을 식민사학계에서 잘못 표기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발해라는 나라는 이웃나라인 당나라로부터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릴 정도로 강성한 대제국이었다. 발해라는 국호는 대단히 잘못된 국호이다. 발해라는 국호는 당나라 때부터 일방적으로 불려진 국호로, 713년 당나라 측천무후가 대조영을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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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고구려(高麗)를 가문의 성씨로 쓰고 있는 일본인

고구려(高麗)를 가문의 성씨로 쓰고 있는 일본인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 약광이 시조, 현재 60세손이 제사장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8/10 [13:30] 高句麗 왕족을 모시는 "고마진자(高麗神社)" 아시아의 대제국으로 군림했던 高句麗는 668년 연남생을 앞세운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그러나 高句麗 황족의 핏줄은 바다 건너 일본 땅에서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도쿄(東京)에서 전철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고마가와(高麗川)역에 도착하면 광장에 우뚝 선 한국식 장승이 눈에 띈다. 일본 고마씨의 총본산 高麗神社는 여기서 1.5㎞쯤 더 들어간 산기슭에 있다. 일본의 도쿄 북서쪽 히다카시 사이다마현에 있는 고마진자와 高麗씨의 가계 족보 기차역 두 곳의 명칭이 高麗驛과 高麗川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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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열국통합과 홍익인간을 실현한 영락대통일 (8/8부)

열국통합과 홍익인간을 실현한 영락대통일 (8/8부) 백제, 신라, 가야, 왜를 연방제로 통일한 광개토태왕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09/13 [10:34] 거란과 연(燕)의 정벌 에 “12년(402년) 4월 붕련과 룡신 등을 보내 거란을 정벌하여 그 임금 오귀를 사로잡고 구리성과 대극성 등을 빼앗았다. 내친김에 후연의 모용귀를 쳐서 그 선봉을 참하였다. 당개귀는 성을 버리고 서쪽으로 도망하였고, 모용희도 도망하여 요수(遼隧)를 지켰다. 이리하여 요동(遼東)이 모조리 평정되었다. 5월 고국원으로 가서 연(燕)을 멸하였음을 국원릉에 고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모용희가 다시 도발했으나 “17년(407년) 모용운이 모용희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풍발과 고운(=모용운)이 모용희를 죽이고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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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고대 일본(왜)를 식민지로 삼은 광개토태왕 (7/8부)

고대 일본(왜)를 식민지로 삼은 광개토태왕 (7/8부) 죽은 자가 십중팔구, 거국적으로 고구리에 항복한 왜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09/04 [14:13] 신라의 복속과 비문징실로 본 왜의 항복 (광개토태왕 비문) 九年己亥, 百殘違誓, 與倭和通, 王巡下平穰. 而新羅遣使白王云, 倭人滿其國境, 潰破城池, 以奴客爲民, 歸王請命. 太王恩慈, 稱其忠誠, 特遣使還, 告以密計. 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 住救新羅. 從男居城 至新羅城*, 倭滿其中. 官軍方至, 倭賊退. (번역) 9년 기해에 백잔은 자기의 맹세를 위반하고 왜와 더불어 화통했다. 왕은 하평양을 순유했다. 그리고 신라가 사자를 보내어 왕에게 아뢰었다. 왜인이 국경에 가득 차 성과 못이 파괴되니 노객(신라왕)은 백성으로써 왕의 명을 듣기를 원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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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티베트와 청해성를 순시한 광개토태왕 (6/8부)

티베트와 청해성를 순시한 광개토태왕 (6/8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08/17 [10:45] 3. 비문의 토곡(土谷)은 어디인가? 광개토태왕 비문의 8년 기사를 보면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원문) 八年戊戌, 敎遣偏師觀帛愼土谷, 因便抄莫斯羅城, 加太羅谷男女三百餘人. 自此以來, 朝貢論事. (번역) 8년 무술에 일부 군대를 변경의 백신(숙신?) 토곡에 보내어 살피게 하여 인하여 다시 막사라성, 가태라성에서 남녀 3백여 인을 잡아왔다. 이 이후로 조공하여 일을 논하게 되었다. 여기서의 토곡(土谷)을 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토곡혼(吐谷渾) : 4세기 초 중국의 청해(菁海) 지방에 있던 나라 이름. 왕족은 선비(鮮卑)로 5호16국 시대부터 세력을 떨쳤으나 뒤에 북위ㆍ수ㆍ당의 토벌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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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광개토태왕 비문의 염수는 어디인가? (5/8부)

광개토태왕 비문의 염수는 어디인가? (5/8부) 광개토태왕 비문의 비리와 염수는 산서성 남부 운성시 일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08/02 [16:54] 나. 비문으로 본 광개토태왕 때의 강역 3대 대무신제와 태조황제를 거치면서 넓은 강역을 보유했던 고구려는 위나라 관구검과 후연 그리고 백제 근초고왕에 의해 국세가 많이 위축된다. 그렇게 위축되었던 高句麗의 강역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강역을 넓히고 백제, 신라, 왜를 모두 복속시킨 분이 바로 광개토태왕인 것이다. 1.비려(碑麗)와 염수(鹽水)는 어디? (1면 7행 원문) 永樂五年, 歲在乙未, 王以碑麗不歸#人, 躬率往討, 過富山負山至鹽水上, 破其三部落六七百營, 牛馬群羊, 不可稱數, 于是旋駕, 因過襄平道, 東來#城, 力城, 北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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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중국대륙 한복판에 있는 지명 ‘영락진’ (4/8부)

중국대륙 한복판에 있는 지명 ‘영락진’ (4/8부) 영락진에 있던 영락궁은 광개토태왕의 행궁(?) 유적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07/31 [14:36] 중국대륙 한복판에 있는 지명 ‘영락진’ 중국대륙 한가운데인 황하변에 이상한 지명이 하나 있다. 그 지명의 이름은 바로 영락진(永樂鎭)인데 영락진이라는 지명은 섬서성과 사천성 등 여러 곳이 있는데, 광개토태왕과 관련있는 영락진은 산서성 최남단 황하변에 있는 운성시 예성현(芮城縣)에 있는 소도시이다. 원래 이곳에는 영락궁(永樂宮)이라는 유적이 있었는데, 이 영락궁이 바로 광개토태왕과 관련 있는 궁궐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영락제와 관련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동아시아 역사상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쓴 황제는 고구리의 광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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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덕흥리 고분으로 본 광개토태왕의 강역 (3/8부)

덕흥리 고분으로 본 광개토태왕의 강역 (3/8부) 백제 근초고왕에게 잃었던 산서성 남부를 되찾는 광개토태왕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07/23 [10:09] 4. 덕흥리 고분으로 본 광개토태왕의 강역 1976년 북한 평남 덕흥리에서 한 무덤이 발굴되었다. 그 무덤의 주인공은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태왕까지 벼슬을 한 인물로, 그의 무덤에는 13 명의 태수가 무덤의 주인공에게 하례를 드리고 있는 벽화와 함께 아래의 묵서명이 발견되었다. 이 묵서명을 현 식민강단사학계에서 상세하게 언급함은 금기사항으로 되어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1) 덕흥리 고분의 묵서명 □□郡信都[縣]都鄕[中]甘里 釋加文佛弟子□□氏鎭仕 位建威將軍[國]小大兄左將軍 龍將軍遼東太守使持 節東[夷]校尉幽州刺史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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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高句麗 광개토태왕의 압록수는 어디인가? (2/8부)

高句麗 광개토태왕의 압록수는 어디인가? (2/8부) 기록으로 본 압록수는 산서성 분하 성훈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07/16 [10:00] 2. 高句麗의 불우한 시기 高句麗에는 이렇듯 화려한 과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양대제 19년(동천왕 246년)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을 받아 도성인 환도산성이 함락 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고, 봉상제 5년(296년)에는 모용부의 모용외가 서천제의 무덤을 파헤치다 돌아간 적도 있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고구려는 미천대제의 중흥기를 맞이하다, 고국원제 때 전연의 모용황이 쳐들어와 미천대제의 릉을 파헤쳐져 시신을 가져가고 태후와 황후가 사로 잡혀가는 치욕을 당하기도 한다. 고국원제는 41년(371년)에 백제의 영웅인 근초고/근구수왕에게 평양성에서 화살에 맞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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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광개토태왕 '영락대통일'의 의미 (1/8)

광개토태왕 '영락대통일'의 의미 (1/8) 북부여를 계승한 위대한 대제국 高句麗의 초기 강역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07/05 [12:48] (본 시리즈는 8부작으로 연재됩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중국의 일방적인 역사왜곡인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에서 우리의 高句麗와 대진국(발해) 역사를 자국의 지방정권으로 편입시키려는 이 엄청난 음모에 이론적으로 전혀 대항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는 동북공정에 대해 울분을 느낀 소수의 인원들이 모여 중국대사관 앞에서 몇 차례 기자회견이나 소규모 피켓시위를 하는 정도이다. 그 이유는 이 나라 사학계의 이론이 일제식민사학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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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대조영이 세운 나라는 '발해'인가?

대조영이 세운 나라는 '발해'인가? 발해는 당나라에서 부르던 이름, 대조영이 부른 국호는 대진국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5/30 [10:52] 수년 전 KBS에서 방영된 적이 있는 드라마 의 시청률은 30%를 넘어 아주 높은 편이었고, 우리에게 잊혀지고 있던 발해(대진국)라는 나라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의미 있는 드라마였다. 비록 뜻하지 않게 나라(고구리)는 잃었으나 굴하지 않고 다시 나라를 30년 만에 되찾는다는 위대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드라마로 연말에 KBS 연기대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 2부에서 발해(대진국)에 대해 중요한 역사왜곡을 함으로서 조상님의 위대한 업적을 격하시켰다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발해라는 국호를 개국시 대조영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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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KBS 드라마 '대조영' 역사왜곡인가 아닌가?

KBS 드라마 '대조영' 역사왜곡인가 아닌가? 동만주 돈화는 대진국(발해)의 도읍이 아니다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5/25 [13:48] KBS에서‘대조영’이란 주말 드라마가 30%가 넘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다. 스토리는 대조영이 수많은 역경을 이기고 드디어 나라를 건국하기 직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이해고와 벌이는 천문령 전투와 동모산에서의 개국 과정이 압권이었다. 천문령과 동모산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현 사학계에서는 길림성 돈화현에서 정혜공주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돈화현의 성산자산성을 동모산으로 보고 있다. KBS 드라마 대조영도 동모산을 길림성 돈화현 쪽으로 설정했었다. 길림성 돈화현은 현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속하는 곳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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