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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중국이 숨긴 패수(浿水)는 북부 하남성 격수/추수(湨水/溴水) (8부)

중국이 숨긴 패수(浿水)는 북부 하남성 격수/추수(湨水/溴水) (8부) 패수위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산해경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12/25 [17:08] 명•청나라 때 학자들의 편집에 의해 권14에 언급된 포구(鲍丘)수와 습여(濕餘)수는 고(沽)하와 관련 있는 물길들이라 청장(淸漳)수•탁장(濁漳)수가 언급된 권10에 들어가야 마땅하며, 요서군에 속하는 유(濡)水는 하수의 본류를 설명한 권4의 지류에 언급되어야 하며, 요동군•현토군과 관련 있는 대요(大遼)수•소요(小遼)수는 권6 분수의 지류에 언급되었어야 한다. 그리고 패수(浿水)는 하내(河內)군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분명 권7~8 제수에 언급되어야 마땅하다. 권7~8 제수에 패수의 흔적이라도 남아있는지 아니면 아예 삭제되어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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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역사왜곡을 위해 ‘수경주’까지 편집한 중국 (7부)

역사왜곡을 위해 ‘수경주’까지 편집한 중국 (7부) 하북성 남부에서 산서성 북부로 옮겨진 대군(代郡)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12/10 [13:44] 는 10세기 무렵 일부 내용이 유실되었고 내용도 본문과 주석이 뒤죽박죽되었기에 원상회복을 위해 명·청 때 유명한 학자들이 노력한 결과 여러 종류의 복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상세한 고증본이 명나라 주모위가 1615년에 복원한 이다. 그런데 는 명·청나라 학자들에 의해 원상회복을 위한 복원과정을 거치면서 역사왜곡을 위한 편집과정도 거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대 한·중간의 경계였던 유주(幽州)를 흐르는 강들이 언급된 권14의 편집이다. 참고로 유주에 속하는 군들은 요동군과 요서군, 낙랑군과 현토군, 상곡군과 어양군, 대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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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재야사학의 패수설도 오류 (5부)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재야사학의 패수설도 오류 (5부) 패수는 청천강도 난하도 아닌 북부하남성에 있는 강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10/06 [10:42] 고대 중국과 우리 민족과의 경계이며 연(燕)나라 사람 위만이 상투를 틀고 호복차림으로 망명하면서 건넌 패수(浿水)의 위치를 한반도 서북부(평안도)로 보는 견해는 스스로 소중화(小中華)를 자청했던 조선왕조의 모화사대주의 유학자들과 현재 강단사학계의 대부인 이병도 박사를 위시한 조선사편수회의 일제식민사학자들이다. 일제식민사학을 그대로 계승한 주류 강단사학계의 잘못된 반도사관을 비판하고 있는 학파가 있는데, 강단사학계에서는 ‘재야사학’이란 호칭으로 폄하하고 있는데 반해 스스로는 민족사학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공서·학교 점유율이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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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엉터리학설은 사학계의 바이블 (4부)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엉터리학설은 사학계의 바이블 (4부) 황해도 수안 갈석산서과 청천강 패수설은 엉터리 학설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9/14 [08:34] 일제 조선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편수회가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조작한 단군신화와 한반도북부 한사군설은 광복 72년이 지난 지금까지 강단사학계의 정론임은 물론 미래의 한국을 짊어지고 나갈 학생들의 교과서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일제식민사학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그대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으며, 현재의 적폐청산 정부에서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렇듯 국가와 민족의 미래의 희망을 좀먹고 있는 식민사학을 이 땅에 확실하게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이 바로 친일사학자 이병도 박사였다. 그의 황해도 수안 갈석산설과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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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식민사학자 이병도는 동북공정의 일등공신 (3부)

식민사학자 이병도는 동북공정의 일등공신 (3부) 만리장성을 황해도까지 끌어들인 식민사학자 이병도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8/15 [13:22] 강단사학계의 대부 이병도 박사는 고대 한중간의 경계인 갈석산을 황해도 수안으로 비정했다. 조선총독부의 지침에 의해 조선사편수회의 일제식민사학자들이 확정지은 평양 낙랑군설에 맞추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수안 갈석산설은 중국의 장성이 황해도 수안까지였다는 의미로 한반도북부는 중국 땅이었다는 말과도 같은 뜻이다. 왜냐하면 에 “낙랑군 수성(遂成)현에 갈석이 있는데 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다.”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병도 박사의 황해도 수안 갈석산설은 애초에는 조선총독부를 위한 충정이었겠지만, 최근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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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민족혼을 말살한 식민사학을 장려한 대한민국 (2부)

민족혼을 말살한 식민사학을 장려한 대한민국 (2부) 친일사학자 이병도의 엉터리 황해도 갈석산설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7/10 [12:39]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겠다고 야심차게 출범한 반민특위가 이승만 대통령이 비호한 친일경찰에 의해 해체됨으로써 대한민국의 국가정의는 완전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침략지배자 일제의 견마(犬馬)가 되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고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동족을 짓밟고 약탈하던 친일매국노들은 주인이었던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갔음에도 그대로 기득권을 누리게 되었으며, 그 후손들은 조상이 남긴 막대한 부와 권력을 세습 받아 대대로 호강하며 잘 살게 되었다. 정상적이라면 해방된 나라에서 처형되거나 수감되었어야 할 친일부역자들이 그렇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이승만과 박정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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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6월 6일 현충일은 민족정기가 죽은 날 (1부)

6월 6일 현충일은 민족정기가 죽은 날 (1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국립현충원의 원조 장충단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6/06 [13:21] ㅣ 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고, 특히 6월 6일은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범국가적으로 조기를 게양하는 현충일이다. 정부는 1956년부터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이라 하여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행사를 해왔으며, 1975년 12월에 현충일로 개칭되었다. 또한 민간에서는 음주가무가 없어야하는 날이기에 전국의 유흥업소가 1년에 딱 하루 쉬는 날이기도 하다. 6월 6월이 매년 돌아올 때마다 잊혀져가는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이 떠오르곤 한다. 하나는 정부와 국민들이 현충(顯忠)에 대해서만 알지, 그 원조가 되는 장충(獎忠)에 대해서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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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장충단에 박문사와 신라호텔을 지은 일본건설회사 (5부)

장충단에 박문사와 신라호텔을 지은 일본건설회사 (5부) 박문사를 지은 오쿠라쿠미는 신라호텔을 지은 대성건설(주)의 전신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4/03/17 [10:11] 장충단 부지의 일부는 영빈관을 짓기 위해 1960년대 후반 박대통령의 지시로 약 28,000평(92,000m2) 가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주)임페리얼에 헐값인 28억 4,420만원에 불하되기에 이른다. 삼성그룹은 그곳에 외국인 접대를 위한 위락시설인 신라호텔을 지으면서 설계와 시공을 일본기업인 다이세이건설(주)에 맡긴다. 1973년 11월 1일 (주)호텔신라 기공식이 열렸고, 5년간의 공사 끝에 1979년 3월 8일 지하 3층 지상 22층 연면적 6만6,525m2 규모의 대형호텔로 탄생하게 된다. 또한 1975년 5월 31일 건설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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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장충단 파괴범은 3共과 삼성의 정경유착 (4부)

장충단 파괴범은 3共과 삼성의 정경유착 (4부) 신라호텔은 장충단 복원에 앞장서야 한다.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4/02/17 [15:57] 본 글은 아래 장충단 시리즈에 이어지는 (4부)입니다. (1부) 일제가 훼손한 장충단의 슬픈 사연 (2부)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놀이공원으로 바꾼 일제 (3부)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짓밟은 이등박문의 망령 일제는 조선인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대한제국의 현충원인 장충단을 공원으로 바꾸고 이등박문을 위한 박문사(博文寺)를 지는 등 철저히 파괴했다. 해방 후 박문사 건물은 동국대학교 기숙사로 잠시 쓰이다가 1945년 화재로 전소되었고(경성일보 1945년 11월 26일자), 이후 장충단은 원래의 설립취지대로 국립묘지가 된다. 1946년 군이 창설되어 북한군과의 국지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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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짓밟은 이등박문의 망령 (3부)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짓밟은 이등박문의 망령 (3부) 박문사 건립에 경복궁 선원전, 경희궁 흥화문, 원구단 석고전 옮겨 사용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4/02/05 [09:49]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와 재한 일본인들 사이에서 이토오 히로부미의 공적을 기리고 널리 알리려는 현창(顯彰) 움직임이 있었고, 이토오의 동상을 건립하자는 안이 여러 번 나왔다. 그러나 공공장소에 이토오의 동상을 세울 경우 조선인의 반감을 사 언제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 대신 이토오 사망 20주년이던 1929년 말 동상보다는 이토오의 명복을 기원하는 불교 사찰을 건립하자는 움직임이 구체화됐다. 해군대장 출신의 사이토가 두 번째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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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놀이공원으로 바꾼 일제 (2부)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놀이공원으로 바꾼 일제 (2부) 장충단의 훼손은 조선인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4/01/18 [15:50] 국립현충원인 장충단의 건립 ▲ 황성신문 1900년 11월 12일자에 장충단이 건립되었고 갑오 이후 죽은 전망자와 대소 각 부원, 무관, 학도를 위해 제사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1900년 5월 고종 황제의 지시로 동년 11월 10일 남산 남소영(南小營) 터에 장충단(奬忠壇)이 완공되기에 이른다. 장충단은 1894년 갑오전쟁(동학농민혁명)과 1895년 을미참변(명성황후시해사건) 당시 왕실 수호를 위해 희생당한 군인들의 충절을 기려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내던 제사시설이었다. 현재 장충단의 원형을 보여주는 사진이 남아있지 않지만 ··관보·황성신문·만세보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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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일제가 훼손한 장충단의 슬픈 사연 (1부)

일제가 훼손한 장충단의 슬픈 사연 (1부) 장충단은 명성황후를 지키다 산화한 분들을 제사지내던 원조 현충원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4/01/09 [10:04] 60년대 불멸의 가수 배호의 히트곡 '안개 낀 장충단공원“의 가사는 참으로 애절하다. (1절)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 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 번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장충단공원 (2절)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쥐고 울고만 있을까 가버린 그 사람이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 있는데 외로움을 달래 가면서 돌아서는 장충단공원 위의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과 뚜렷이 남은 이 글씨’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가슴을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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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명성황후 장례식 기록까지 빼앗은 일제 (8부)

명성황후 장례식 기록까지 빼앗은 일제 (8부) 명성황후를 2번 죽인 일제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12/28 [11:38] 명성황후의 장례식은 대한제국의 위상에 맞게 장엄하고 화려하게 치루어졌다. 일제는 명성황후를 인류사에 그 유래가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치욕적으로 시해한 것도 모자라, 2년 2개월 후인 1897년 11월 22일에 시신도 없이 치러진 장례식 기록까지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간다. 그 장례절차를 기록한 문서가 바로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明成皇后國葬都監儀軌)이다. 그 장례기록까지 빼앗아갔으니 명성황후를 두번 죽인 것이다. 일본으로 보내는 절차는 조선총독부가 일본 왕실도서관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보내버린다. 물론 는 일본이 빼앗아간 의 일부이다. 이렇게 일본 궁내청에 보관되어 있던 우리의 문화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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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폐서인/빈으로 강등 후 복위되는 명성황후 (7부)

폐서인/빈으로 강등 후 복위되는 명성황후 (7부) 왕후 --> 폐서인 --> 빈 -->왕후 -->명성황후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12/16 [10:02] 명성황후는 너무도 처참하고 치욕스럽게 일본인에게 시해 당했다. 고종은 일제의 강압에 굴복해 8월 22일(음) 왕후를 폐서인한다는 조서를 내렸다가, 다음날 바로 빈으로 승격시키고, 10월 10일(음) 왕후로 다시 복위시킨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고종 32년 (1895 을미) 8월 22일(경인) 왕후 민씨를 서인으로 강등시키다 조령을 내리기를, “짐이 보위에 오른 지 32년에 정사와 교화가 널리 펴지지 못하고 있는 중에 왕후 민씨가 자기의 가까운 무리들을 끌어들여, 짐의 주위에 배치하고 짐의 총명을 가리며 백성을 착취하고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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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일제는 살아있는 명성황후를 불태워 죽였다 (5부)

일제는 살아있는 명성황후를 불태워 죽였다 (5부) 칼에 찔린 후 발가벗겨지고 능욕당하고 산 채로 불태워진 명성황후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11/20 [10:37]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은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죽었고 시신은 불태워졌다.”고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소설이나 영화/드라마/뮤지컬을 통하여 묘사된 명성황후의 최후만을 알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은 모두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드라마/뮤지컬의 장면은 너무도 처참하고 치욕스러웠던 명성황후의 최후를 적나나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대중매체의 제한성 때문이던가, 아니면 아예 제작자들이 명성황후의 최후에 대해 모르고 표현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필자의 눈엔 후자로 보인다. ▲ 뮤지컬 명성황후에서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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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명성황후를 죽임은 시해인가? 살해인가? (4부)

명성황후를 죽임은 시해인가? 살해인가? (4부) 살해라 함은 일본의 입장에서 본 용어로 일반인을 죽임에 쓰는 말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11/05 [12:42] 최근 명성황후 죽음에 대한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는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사건을 을미사변(을미사변)이라는 역사용어로 쓰고 있는데, 이는 매우 부적절한 용어이다. 또한 항간에는 명성황후의 죽음에 대하여 시해라는 용어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먼저 아래 신문기사를 보기로 한다. (신문기사 인용) 명성황후 암살 사건을 우리는 왜 시해(弑害)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시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일본인에 의해 조선의 국모가 살해된 사건이므로 시해라고 정의할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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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한 범인은 일본정부 (3부)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한 범인은 일본정부 (3부) 명성황후 시해범들에게 노고를 치하하는 일왕과 이또오 히로부미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10/21 [11:30] 명성황후를 처참하고 치욕적으로 시해한 범인은 조선에 있던 미우라공사와 일본 깡패들이 아니다. 그들은 단순 행동대원일 뿐이고, 진짜 범인은 당시 이또오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총리대신으로 있던 일본정부이다. 상식적으로 이런 어마어마한 사건은 국가가 정부차원에서 개입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시행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왕비를 죽이는 일을 일본 외무성의 국장급인 주한공사 정도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당시 총리대신인 이또오 히로부미가 결정하고, 외무대신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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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반일본인(?)이 쓴 백과사전의 명성황후 시해 설명 (2부)

반일본인(?)이 쓴 백과사전의 명성황후 시해 설명 (2부) 우리의 관점이 아닌 일본인의 관점으로 기술한 명성황후 시해 설명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09/25 [10:45] 오는 10월 8일은 118년 전인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놈들에게 처참하게 치욕적으로 시해당한 날로 역사는 이 날을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대단히 잘못된 역사용어로, 을미사변이 아니라 을미참변(乙未慘變) 또는 을미치욕(乙未恥辱) 또는 을미국치(乙未國恥)으로 변경되어야 마땅하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인터넷 백과사전의 상세한 설명을 보기로 하겠다. 아래 백과사전의 내용은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잡종(?)인 사학자가 쓴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참고로 적색으로 표시한 용어는 우리에게 맞게 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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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명성황후를 일제처럼 '민비'라 부르는 우리나라 (1부)

명성황후를 일제처럼 '민비'라 부르는 우리나라 (1부) 민비는 일제가 조선의 왕후를 낮추어 부르던 호칭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09/18 [17:14] 오는 10월 8일은 118년 전인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놈들에게 처참하게 치욕적으로 시해당한 날로 역사는 이 날을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대단히 잘못된 역사용어로, 을미사변이 아니라 을미참변(乙未慘變) 또는 을미치욕(乙未恥辱) 또는 을미국치(乙未國恥)으로 변경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그동안 뮤지컬이나 드라마 또는 영화를 통해 명성황후의 최후장면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대부분 국민들은 명성황후가 일제에 당당하게 맞서다 일본놈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젊잖게 죽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명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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