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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조선 한나라는 공주·조공 바치던 ‘흉노의 속국’ (7부)

한나라는 공주·조공 바치던 ‘흉노의 속국’ (7부) 흉노는 바로 조선과 북부여를 구성하는 종족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2/27 [10:54] 한고조 유방이 흉노에게 평성(하남 맹진)의 백등산에서 7일간이나 포위당하자, 여왕후가 묵돌 선우에게 치마를 푸는 치욕을 당하고 굴욕적인 화친조건을 약속하게 된다. 그 조건이란 상호간 형제관계를 맺고 장성을 경계로 하여 침공하지 않는 대신에 한나라가 공주와 많은 공물을 흉노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이는 바로 시행되었고, 이후 유방은 "흉노와 전쟁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어갔다. 한나라가 흉노에게 바치는 조공액도 그때그때 역학관계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는데, 대체로 한나라에서 바치는 조공액은 매년 늘어났다. B.C 192년~135년까지 조공규모를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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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조선 식민지 낙랑군으로 둔갑된 우리역사 낙랑국 (2부)

식민지 낙랑군으로 둔갑된 우리역사 낙랑국 (2부) 전한 때 한사군이 과연 존재했을까?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1/12 [11:22] 전쟁에 참패하고도 한 무제는 항복한 5명 대신들을 제후로 삼아 우거가 다스리던 번조선 땅을 나누어 다스리게 한다. 직할령이 아니라 지역 제후를 통해 다스리는 자치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 서두에도 “한나라가 일어났으나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연에 부속시켰다”라는 기록이 있듯이, 번조선 땅은 본국에서 멀어서 지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사군의 핵심 낙랑군은 애초에 없었다 그 땅은 의 기록대로 원래는 홰청, 적저, 평주, 기, 온양의 5군으로 한사군의 대명사인 낙랑(樂浪)은 눈을 씻고 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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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조선 북한땅 먹으려는 중국 동북공정의 근거는 ‘한사군’ (7부)

북한땅 먹으려는 중국 동북공정의 근거는 ‘한사군’ (7부) 한사군전쟁의 주무대 패수는 황하북부 하남성 제원시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12/30 [10:41] 지난 컬럼에서는 자신들의 두목 우거를 죽이고 한 무제에게 투항하여 그의 제후가 된 5명의 반역자가 봉지로 받은 지역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지역은 바로 위만·우거가 다스리던 땅으로 과거 기준 왕이 다스리던 번조선의 땅과도 일치하며, 이곳 일대에서 일명 한사군전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지역은 현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일대로 귀결된다. 한사군전쟁의 자초지종을 상세히 기록한 에는 패수(浿水)라는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즉, 패수가 어디인지를 찾으면 한사군의 위치가 저절로 밝혀진다고 할 수 있다. 패수는 고대사의 지명을 밝히는데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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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조선 매국의 대가로 한나라 제후가 된 반역자들 (6부)

매국의 대가로 한나라 제후가 된 반역자들 (6부) 우거가 통치하던 번조선 땅은 어디인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12/23 [17:31] 자신들의 두목(우거)을 죽이고 한나라에 투항한 반역자들은 그 대가로 번조선의 땅을 나누어 봉지로 받고 한 무제의 제후가 된다. 에서는 “이로써 조선을 평정하고 사군으로 했다. 삼을 봉해 홰청후, 한음은 적저후, 왕겹은 평주후, 우거의 아들 장은 기후로 삼았다. 최는 아비(로인)가 죽었으나 큰 공이 있으므로 온양후로 삼았다.(以故遂定朝鮮爲四郡 封參爲澅淸候 陰爲荻苴候 唊爲平州候 長降爲幾候 最以父死頗有功爲溫陽候)”라고 기록했다. 위 의 기록에는 눈을 씻고 봐도 식민지 한사군의 대명사인 낙랑군이 보이지 않는다. 낙랑군이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 180년 이후에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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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조선 전쟁에 지고도 설치된 ‘식민지 한사군’ 믿기 어렵다 (5부)

전쟁에 지고도 설치된 ‘식민지 한사군’ 믿기 어렵다 (5부) 전쟁에서 참패한 육군.수군사령관을 참수한 한 무제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12/17 [10:17] 수차례 전투에서 계속 패해 도저히 승산이 없음을 간파한 한 무제는 우거에게 휴전을 제의했다가 실패하자 다시 공격명령을 내렸다. 좌장군 순체가 맹렬히 성을 공격하자 계속되는 집요한 한나라의 공격에 겁을 먹은 번조선의 대신들은 누선장군 양복에게 몰래 사람을 보내 사사로이 항복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말만 오고갔을 뿐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좌장군이 여러 차례 누선장군과 연합해 공격할 시기를 정했으나 누선장군은 번조선의 대신들과 화해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에 응하지 않았다. 좌장군 또한 번조선에 사람을 보내 대신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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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조선 도적 우거와의 한사군전쟁에서 참패한 한무제 (4부)

도적 우거와의 한사군전쟁에서 참패한 한무제 (4부) 지리멸멸 패전만 거듭하는 한나라 군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12/12 [11:45] 위만은 조선의 일부였던 번조선 기준 왕의 정권을 탈취한 도적이었으나, 대한민국 사학계는 위만을 고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한 위대한 인물로 추앙(?)하고 있다. 중국 기록에는 그런 강도 위만에 대해 생몰미상이고 그의 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재위년도만 나온다. 위만(卫满, B.C194~B.C161 재위), 아들 위몽(卫蒙, B.C161~B.C129 재위), 손자 위우거(卫右渠, B.C129~ B.C108 재위) 그러나 우리 에 따르면 위만은 B.C 195년에 번조선으로 망명하고, 3세 고해사 단군조에 “계축 42년(B.C128) 단제께서 몸소 기병과 보병 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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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조선 <사기 조선열전> 한사군전쟁의 자초지종 (3-1부)

한사군전쟁의 자초지종 (3-1부) 번조선의 우거왕에게 연패를 거듭하는 한나라 군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11/01 [15:54] 아래는 한나라 무제 때 한사군전쟁을 직접 종군한 사마천이 쓴 을 번역한 것으로 해설과 더불어 2부로 나누어 게재한다. 위만의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右渠) 때에 이르러서는 꾀어낸 한나라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다. 천자(한무제)에게 들어와 뵙지 않을뿐더러 진번(眞番) 주변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섭하의 죽음) 원봉(元封) 2년(BC109) 한나라는 사신 섭하(涉何)를 보내 우거를 꾸짖고 달래었다. 그러나 끝내 천자의 명을 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섭하가 돌아가면서 국경인 패수(浿水)에서 마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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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조선 중국이론과 똑같은 한국사학계의 한사군 이론 (2부)

중국이론과 똑같은 한국사학계의 한사군 이론 (2부) 한반도의 3/4을 차지한 한사군이 그려진 중국지도에 분개하는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10/16 [18:07] 1. 에서의 한사군에 대한 설명 아래 의 설명도 대한민국의 국사교과서와 마찬가지이며, 중국 동북공정의 역사이론과 한 치의 차이도 없다는 사실이다. “약 1년에 걸친 전쟁 끝에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는 BC 108년 고조선의 옛 땅에 낙랑(樂浪)·진번(眞蕃)·임둔(臨屯)의 3군(郡)을 설치했고, 이어 BC 107년에는 20여 년 전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했던 예맥의 땅에 현도군(玄菟郡)을 설치했다. 그리하여 4군을 유주(幽州) 관할 아래 둠으로써 오랜 야욕이던 동방경략을 완성했다. 한나라는 4군의 산하에 많은 현(縣)을 두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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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조선 한반도 한사군 400년 역사의 허구 (1부)

한반도 한사군 400년 역사의 허구 (1부)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만이 망명한 패수와 기준의 도주로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09/25 [09:57] 본 글은 지난 5월 25일(토) 종로구민회관에서 열린 다움 삼태극 카페(http://cafe.daum.net/mookto) 학술대회에서 발제되었던 내용을 시리즈로 나누어 연속으로 게재합니다.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우리 역사 최대의 치욕이라 할 수 있는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서 400년 이상 존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단군조선의 뒤를 이은 천년 기자조선을 무너뜨리고 세워진 위만조선이 BC 108년 한나라 무제에게 망해 그 땅에 낙랑·현토·임둔·진번이라는 식민지 한사군이 설치되었고, 400년 이상 지속되다가 고구려 미천왕 때야 소멸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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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조선 사랑에 눈먼 공주에 의한 낙랑국 멸망 (4부)

사랑에 눈먼 공주에 의한 낙랑국 멸망 (4부) 낙랑국을 식민지 낙랑군으로 둔갑시킨 중국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1/28 [10:53] B.C 195년 최숭이 세운 낙랑국은 북부여의 마한에 조공을 바치던 부속국이었다. 이후 227년의 세월이 흘러 최숭의 후손인 최리(崔理)가 낙랑국을 다스리고 있었고, 당시 고구리는 대무신왕이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나 당시 낙랑국은 상국인 고구리와 별로 사이가 안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조공도 제대로 바치지 않고 독자노선을 걸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낙랑공주의 죽음과 낙랑국의 멸망 고구리 대무신왕은 최리가 다스리던 낙랑국을 쳐서 없애려 했으나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낙랑국에는 적군이 침입하면 저절로 울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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