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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um 2008. 5. 7. 04:31

 한국여행사에서 잘못 알고 있는 루터의 발자취

 


대표적인 독일인, 가장 위대한 독일인으로 누구든지 루터를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종교개혁의 나라’ 독일엔 그가 있다. 그의 발자취를 찾으려는 이들이 꽤들 있어 보인다. 그들을 위해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여행사를 통해 나온 프로그램들을 보면 기가 막힌 경우가 많다. 도대체 영어도 아니고 독일어도 아닌 지명들이나 표기들이 나오고, 있지도 않은 곳을 방문 장소로 올리기도 하다. 무슨 공중에나 떠 있을 장소를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인명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메란히튼이란 이름은 처음 들어 본다. 독일어 발음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멜랑히톤으로 써야 할 것이다. 그는 본명이 ‘Schwarzerdt’였던 사람이었는데, 그의 삼촌이었던 인문주의자 로이클린(Reuchlin)이 이 언어에 천재적인 ‘그리스인’이 된 조카에게 그 독일어 이름의 뜻을 따라 지어준 희랍어 이름이 멜랑히톤이다. ‘검은 땅’이란 뜻이다. 물론 그는 루터의 절친한 친구였자 교회개혁의 협력자였고 후에 그의 뒤를 이어 개혁을 이끈 사람이다.

 

또 하나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이 있다. 에어푸르트(Erfurt)에 있는 루터유적지를 말하는 것이 분명한 ‘오?치나 수도원’이다. 이 말을 한참이나 들여다 볼 수 밖에 없었는데, 나름대로 발음한 것일 테지만, 그러나 정말로 지나치게 무식한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어로 하자면 ‘아우구스티너 수도원’(아우구스틴파 수도원)이거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영어식 표현 ‘어거스틴 수도원’이라고 했으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하이델베르크에 있다는 ‘루터 탄생 500주년 기념교회’는 유령교회다. 분명 고증을 통해 루터가 논제를 내세우고 그것을 변증하는 식으로 진행된 이른바 ‘공개신학강연’(Disputation)을 했을 것으로 알려진 장소에 표시된 표식을 말하려는 것일 것이다. 그가 태어난 지 5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 놓은 것으로 현재 대학광장 한쪽에 있다. 아니면 대학교회인 베드로교회(Peterskirche) 뒤편에 그의 출생 400주년 기념으로 심어놓은 나무가 있다.

 

괴테가 그렇듯이, 루터가 활동한 흔적이 남겨진 곳은 소위 ‘성지’처럼 표시를 해 놓았다. 그 수 많은 장소들을 열거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가 활동했고 큰 흔적을 남겨둔 도시들만 언급함으로써 루터의 발자취를 찾아가보려는 이들에게 조금의 오리엔테이션을 제공하는 것으로 족하리라.

 

우선 독일 도시 중 ‘루터 도시’(Lutherstadt)라는 말이 도시의 이름에 붙어있는 곳이 두 곳 있는데, 이곳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루터 도시 아이스레벤’(Lutherstadt Eisleben)과 ‘루터 도시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다. 후자의 경우 독일남서부의 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州) 이름의 한 부분인 뷔르템베르크(W?rttemberg)와 혼동되어선 안 된다. 아이스레벤은 루터가 태어나고(Luthers Geburtshaus) 죽은 곳이며(Luthers Sterbehaus) 루터가 세례를 받았고(St. Petri-Pauli-Kirche) 마지막 설교를 한 곳이다(Andreaskirche).

 

비텐베르크는 그의 삶의 가장 많은 부분을 보냈던 곳이며 종교개혁의 중심지로서 당시 카톨릭 교회에 의해 소위 ‘이단자의 보금자리’(Ketzernest)로 불렸던 곳이다. 여기에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그 문에 95개조의 ‘토론을 위한 의제’를 내걸었다는 성곽교회(Schlosskirche)가 있고 - 여기에 그의 무덤이 있다. 아이스레벤에서 죽었던 그의 시신이 이곳으로 옮겨와 장사되었다. - 그가 설교했던 도시의 중심교회(Stadtkirche St. Marien)도 있다. 종교개혁은 이 의제를 내걸었던 루터의 ‘망치소리’와 함께 시작되었고 - 그래서 종교개혁주일은 항상 난 이 시기와 맞물려있다. - 그의 설교를 통해 진행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의 설교는 곧 유일한 권위의 근거였던 성서(sola scriptura)에 대한 주석이자 개혁강연이었다.

 

개혁의 모토는 그 외에도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로’(solus christus)였다. 바로 이곳 이단자의 도시엔 ‘검은 수도원’(Schwarzkloster)라고 불렸던 루터의 집이 있고 - Erfurt의 어거스틴 수도원도 그런 이름으로 불렸다. - 그 옆에 멜랑히톤의 집, 또 1502년에 세워졌던 옛 대학인 Leucorea도 있다. 이 대학은 제후가 의지로 자기 땅에 세운 독일 최초의 대학이다. 개혁자들은 이 대학의 교수들이었다. 물론 이곳엔 르네상스의 화가이자 나중에는 시장까지 지냈던 루카스 크라낙하(Lucas Cranach)가 살았던 곳이며, - 이름이 같은 아들이 있는데, 여기선 아버지 루카스 크라낙하를 말한다. 그래서 Lucas Cranach d.? (der ?ltere)와 Lucas Cranach d.J(der J?ngere)로 구분한다. 영어로 말하자면 the senior 와 the junior로 볼 수 있다. - 그의 인쇄소에서 루터의 중요한 저작들이 인쇄되어 독일과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많은 루터의 혹은 다른 개혁자들의 초상화와 성서 안의 삽화들, 또 개혁과 관련된 그림들도 그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다. 아무리 주마간산으로 훑어본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최소한 반나절은 보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루터도시’ 사이의 거리는 버스로 약 두 시간정도다.

 

다음이 에어푸르트(Erfurt)다. 루터의 소위 ‘종교적’ 삶의 여정이 시작되는 곳이다. 루터가 벼락을 맞았다는, 정확히 말하자면 루터가 큰 나무 곁을 지날 때 벼락이 떨어진 것인데, 그곳에서 그는 광부들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 안나’를 부르며 수도사가 되기로 맹세하게 된다. 그 자리는 에어푸르트 약간 북쪽에 있는 슈토턴하임(Stotternheim)인데 그 벼락이 떨어진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현 독일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 있고 루터 자신이 아주 높이 평가한 대학이 있는 에어푸르트는 루터가 수도원 문을 두드린 곳이며 (Augustinerkloster) 사제가 된 곳이다(Dom). 루터는 여기서 신학을 위한 기초적인 학문들과 기초적인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당시 어거스틴 수도원은 이름 있는 신학자들이 많았고 그의 신앙의 아버지와 같은 Johann von Staupiz가 수도원장으로 있던 곳이다. 에라스무스에게서 배운 것은 없다며 루터는 슈타우피츠에게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배웠노라고 고백한다. 그는 엄한 심판자가 아닌 사랑스러운 아버지 하나님을,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을 얻는 신앙의 원리를 루터에게 가르쳐준 스승이다. 이 수도원은 당시 부패한 교황청과 카톨릭 교회가 사람들로부터 불신을 받았던 것과는 달리 엄격하기로 이름나있었다. 제대로 된 신학공부는 나중에 그가 가르치게 된 비텐베르크에서지만 신학공부를 위한 기초가 되는 모든 필요한 것들은 이곳에서 익힌 것이다.

 

다음이 아이제낙하(Eisenach)인데 이곳은 루터가 성서를 번역한 곳으로 유명한 바아트부르크(Wartburg) 성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납치된 정치포로’로 머물러 있으면서 Junker J?rg이라는 이름으로 숨어있었다. 수염도 길렀었다. 이곳은 그 유명한 노래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이곳에 올라본 사람만이 이 대표적인 ‘개신교의 노래’의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이곳 체류가 남긴 업적은 성서번역이다. 그의 성서번역은 그가 이룬 개혁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원전으로 돌아가라!’는 인문주의와 개혁의 모토는 여기서 완성을 이루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이들에게 ‘성서’를 선물해 바닥에까지 전달된 말씀으로 인해 그의 개혁은 더 이상 멈출 수 없었다. 거룩한 교회의 언어이자 학식있는 자들의 언어인 라틴어에서 당시 모든 독일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마이센의 공용어로 번역된 이 성서는, 아니 어쩌면 당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바 성서를 일상어로 번역하겠다는 그의 아이디어가 더 위대한지 모른다. 물론 성서번역이 독일어문학사에 미친 영향을 구태여 다른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곳은 보름스의 심문과 루터문서의 금서결정이후 돌아가던 길에 숨어있던, 루터 자신이 서술한 것 같은, ‘밧모섬’이나 ‘새들의 왕국’으로서만 그와 관련된 ‘어떤 산 위’가 아니다. 루터는 이미 이곳에서 대학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3년 동안 학교에 다녔다. 막데부르크에 이어 명문의 이 학교를 방문했던 것이다. 이곳은 그 외에도 요한 세바스챤 바하(Johann Sebastian Bach)의 출생지이며 바하는 200년이 지난 후에 그가 거의 숭앙하다시피 추종했던 루터가 다녔던 바로 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루터의 심문으로 유명한 곳이 보름스다. 제국의 유물들이 보존된 소위 유서 깊은 도시, 젊은 황제가 처음으로 주재하는 첫 제국의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뉘른베르크에서 갑작스럽게 이곳으로 장소가 이동해온 것이다. 뉘른베르크에 전염병이 발병해 보름스가 이 역사에 기록될 이름으로 남게 되는 사건의 장이 된 것이다. 젊은 황제 칼 5세의 이 제국의회는 ‘주변적인 사건’으로 다루려던 ‘루터의 건’으로 역사에 더 알려지게 되었다. 이미 일년 전 교황청으로부터 파면을 당한 루터는 21일간의 ‘자유통행권’을 발부받아 제국의 문장을 앞세운 호위장 Deutschland의 동행 하에 오게 된다. 그는 이곳에 마치 ‘개선장군’처럼 수백의 기사들에 의해 호위를 받으며 도시에 들어서게 되었고 그가 머물던 Johanniterhof엔 2000여명의 시민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결국 그의 의회심문에 참여하기 위해 온 과정은 카톨릭 교회가 원했던 ‘참회의 고행길’이 아니라 오는 곳마다 환영을 받으며 온 ‘승리의 개선행진’이었다. 사실 Aleander의 보고에 의하면 독일인들의 90%가 루터를 따르고 있었으니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곳에서 그가 쓴 세권의 대표적인 소 책자에 쓴 내용들을 취하할 준비가 있는지 질문을 받게 된다. 물론 루터가 제국과 황제 앞에 섰을 것으로 알려진 곳엔 표식이 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루터 기념건축공원이 있다. 종교개혁에 참여한 개혁자들과 제후들, 도시들이 함께 있는 기념건축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다. 여기엔 그 외에 로마네스크 전성기 혹은 후기의 대표적인 건물일 ‘대성당’이 있다.

 

그 외에 그와 관련된 곳을 더 방문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그 많은 루터 관련 도시 중 아버지의 고향 뫼라(M?hra), 루터가 14세까지 살면서 학교를 다녔던 만스펠트(Mansfeld), 앞의 도시에 이어 아이제낙하로 가기까지 공부했고 사실상 95개조의 테제를 발표하게 된 계기도 제공한 막데부르크(Magdeburg), 황제에 대해 개신교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제후들과 도시들이 모여 조약을 맺었던 슈말칼덴(Schmalkalden), 특히 스위스의 개혁자 츠빙글리와 ‘성만찬 논쟁’으로 유명한 마부르크(Marburg), 소위 비텐베르크가 종교개혁의 어머니였다면, 산파라고 평가되는, 또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가 묻힌 토르가우(Torgau) 등을 추천할 수 있다. 물론 관심이 많아 집중적으로 그의 족적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이를 위해 몇 도시를 추가한 것이지, 그의 활동지를 모두 찾아보려면 독일 전역을 뒤져야 한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도시만으로 그의 일생의 중요한 발자취는 더듬은 셈이다. 게다가 이 도시들은 모두가 예외 없이 조그만 하고 또 루터의 유적지라고 하는 곳들도 가까이 있어 걸어서 몇 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산책을 겸해 걷는 즐거움도 있고, 또 중간에 거리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어가도 좋을 것이다.

대충 언급한 도시들을 둘러보자면 북쪽으로부터 비텐베르크 - 아이스레벤 - 에어푸르트 - 아이제낙하 - 보름스 순서로 남서쪽 방향으로의 이동이 가장 좋아 보인다. 베를린에서 두 시간여의 거리에 (약 100Km) 비텐베르크가 있다. 물론 다른 도시들을 들려보자면 달리 계획을 세워보아야 하겠지만, 이 루터의 중심도시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할 경우, 하루에 두 도시들을 둘러보는 정도로 생각하면 적당할 것이다. 이동 거리상 두 개의 루터 도시 비텐베르크와 아이스레벤을 하나로 묶고, 에어푸르트와 아이제낙하를 다음날에, 그리고 보름스를 그 다음날에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덧붙여 루터의 족적을 찾아보려는 이들을 위한 여행안내서 두 권을 추천하고자 한다. 독일어로 된 책이라서 아쉬움이 있지만, 우선은 그래도 가장 괜찮은 책이다 싶은 두 권을 소개는 해볼까 한다. Reinhard Dithmar가 끈 Auf Luthers Spuren: Ein biographischer Reiserf?hrer라는 책은 튀링엔과 작센 지방의 중요한 유적지만을 소개해 놓은 것이고 Wolfgang Hoffmann이라는 이가 쓴 Luther: Ein praktischer Reisef?hrer zu den bedeutendsten Wirkungsst?tten des Reformators in Deutschland라는 책은 그래도 많은 지역을 섭렵해 놓았다. 아직 번역이 없어 아쉬움이 없지 않다. 우리말로 된 루터의 유적지 안내서를 손에 들고 여행하는 이들을 만나게 될 날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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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모르는 가이드와 함께 여행을 한건가요? 어찌 그리 독일에 대해 잘 아세요? 좀 아쉬운게 있네요,,제가 아시는 가이드분들은 모두가 다 10년 이상씩 그 나라에서 살고 전문 지식이 풍부하신 분들이 많이 있으십니다. 일부의 가이드들이 그랬다고 말씀해 주셨으면 더 좋은 글이 돼지 않을까 싶네요,,이런 글들이 동남아를 비롯해 유럽,미주 등,,,같은 맥락의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근데 그런 글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여행에 대해 불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즐겁게 여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 님처럼 많이 아시는 분들이 글이나마 즐겁게 써주시길 바랍니다. 전문지식이 풍부하고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다는점도 잊지 말아주세요..님께서 말씀하신건 한국여행사를 통털어 말씀하신것처럼 느껴지네요,,제목부터 그렇고요,,,아침부터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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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어디로 모실까요<img src="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59.gif" value="?" />
김기사 이리와<img src="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28.gif" value="~" /> 어서어<im
<img src="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21.gif" value="★" />처음 이런 싸이트에 들어가 �어요.
만은 남 여 가모여있었습니다.
만은 여성들은 몸을 팔더라구요.
만이 황당했지만 가입해 보니
지금 성매매가 유행같았습니다.
함들어가 보세요.
http://wjsi.cyworld.to
독일발음을 한글로 �기기에 쉽진 않지만 유별나게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서 몇자 적습니다. eisenach는 아이젠나흐로 발음되고, Bach는 바흐로 발음됩니다. Sebastian은 제바스티안으로 발음을 옮겨야 할것 같습니다.
며칠전 교회분들과 유럽성지순례를 다녀와서 루터에 대한 글들을 찾아보다가 이 글을 읽어보고갑니다.
여행중 독일 가이드분이 해주신 설명들이 너무나 인상적으로 와닿아서 기억을 더듬으며 내용을 정리하는데 이글들이 도움이 되네요.
전 이랜드여행사를 통해 다녀왔는데
제가 만난 가이드분은 정말 최고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