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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um 2008. 5. 7. 04:32

수감자들이 그린 낭만적 그림

 

 

 

<낭만의 도시>라 불리는 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가 낭만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과 르네상스의 중후함이 살아있어서가 아니다. 30년 전쟁 그리고 루이 14세와의 왕권계승문제를 두고 벌어진 두 전쟁은 1백년 동안 하이델베르크를 끊임없이 황폐화시켰다. 이런 전쟁의 상혼 속에 폐허로 남게 된 도시는 강과 산이 만나 만들어 내는 풍요로운 자연과 함께 그 어떤 미묘함을 선사하며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심신의 고뇌를 달래는 안식처로 자리잡았다. 당시 새로운 시대적 사조로 등장한 낭만주의는 전쟁의 상처가 스며있는 그런 하이델베르크 모습의 진가를 새롭게 발견했고 새로운 하이델베르크를 추구하기 보다 부서진 건물이지만 과거가 담겨있는 그 모습 그대로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많은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이 낭만의 도시 하이델베르크에는 그래서 다른 도시에서 느낄수 없는 뭔가 다른 끈끈함을 맛볼 수가 있는데 그 중 이곳 하이델베르크 학생감옥과 같이한 학생들의 학생문화는 <황태자의 첫 사랑>과 함께 당시 낭만시대를 누리고자 했던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게 한다.

 

하이델베르크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수감되었던 학생감옥은 아직도 수 많은 여행객을 끌게 하는 그 어떤 매력을 발산하고 있어 하이델베르크 관광명소로 손 꼽힌다. 하이델베르크에 학생감옥이 있는 이유는 당시 학생처벌권이 대학당국에 있었고 대학은 취중행위, 야간소동 등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런 학생감옥은 1914년까지 사용되었으며, 감금기간 동안에도 학생들의 강의참여를 허가했다.

 

당시 학생들은 술과 함께 시를 쓰고 예술과 자유를 토론했으며, 수감생활을 통해 독특한 학생문화를 창조했던 것 같다. 학생들은 그래서 학생감옥에 감금되는 것에 대해 명예로 생각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런 그들의 독특한 낭만적 사고는 감옥에 그려진 수 많은 그림들과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학생들은 학생감옥을 근심이 없는 성이라는 뜻으로 샹수시 성으로 불렸으며 어떤 이는 로얄 궁또는 그랜드호텔로 적어 놓기도 했다.

 

감금된 학생들은 그 곳에서 자유를 열망하는 자신들의 여러 생각을 적어놓았고 쉬는 시간에는 수 많은 그림들을 그렸는데, 그 그림들을 보면 꽤나 익살스러워 수감자 생활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다. 왜냐면 그 그림 속에는 어떤 창조의 삶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해학과 풍요로움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몇 백년 전 하이델베르크 학생감옥에 그려진 익살스러운 그림들을 감상해 보며 빠르게 진행되는 시간의 속도 속에서 까칠해진 마음을 달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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