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와 풍경

타박네 2021. 1. 7. 10:02

전철 공사 중인 전곡역,오전 10시.

 

출근을 하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와 보니 아직 치우지 못한 눈이 길가에 소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연강나룻길의 눈부신 설경이 떠올랐을 것이고,

지난 해 다 쓰지 못하고 해를 넘겨버린 연차휴가가,

비싼 술집 입간판 '미인항시대기'처럼 '백수24시간대기'라며 동네방네 나발 불고 다니는 내가,

줄줄이 사탕처럼 생각의 꼬리를 물고 따라 올라왔을 것이다.

 

점심 먹고 곧바로 갈 수 있게 준비하고 있으라 해서

그러기엔 추워도 너무 추워 곤란하다 했고

몇십 년만에 닥친 기록적인 한파라며 떠들썩했던 날에도 태백산 등산을 했던 우리 아니냐며 가오를 잡길래

작금의 상황은 감기라도 걸리는 날엔 코로나로 의심부터 살 뿐 아니라

하필이면 재수에 옴 붙어 감기가 코로나로 변질되기라도 하면

아픈 건 고사하고 몹쓸 연애하다 들킨 것보다 더한 손가락질을 받을 게 뻔할 뻔자이므로 '조심'해야지 않겠느냐,

귀찮은 마음 들킬세라 매우 합리적인 썰을 앞세워 풀어보려 했으나,

1시쯤 태우러 갈테니 단디 준비해라,목도리도 두르고 모자도 챙기고 어쩌구 저쩌구 사설이 길어지길래

아이고, 모르겠다,체념 끝에 벌러덩 자빠지는 심정으로 그러자 그럼.

케쎄라 쎄라지 뭐.

 

커피 외에 뜨거운 물을 한 병쯤 더 챙기자.

장갑과 양말은 두 켤레씩 겹쳐 끼고 신고 습기 조절을 위해 마스크 안에 면손수건도 접어 넣자.

참,아이젠과 무릎보호대도 챙겨놔야겠구나.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미처 접시 세 개를 다 씻기도 전,두번 째 번화벨이 울렸다.

첫번 째 벨이 울리고 용사여,진격하자! 버전으로 통화 아니 통보를 한지 딱 6분 뒤였다.

진짜 추워서 안 되겠다고,우리 가지 말자고.

ㅋㅋㅋ 정말 추웠나 보다,우리 실장.

 

어젯밤 실장님집에 마실을 가는데 쌀가루 같은 눈발이 뿌리기 시작했다.

으아,눈 내리면 연강길은 무조건 가야해,거긴 더 추우니까 주말까지 눈이 남아있겠지?라며

꿈을 꾸듯 아련한 얼굴로 풍구질은 한 것에 대해선 일말의 가책을 느낀다.

하지만 영하 20도, 혹한의 날은 아니라고 못을 콱 박은 것도 사실이다.